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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예수교회 True Jesus Church

채무자와 상속자 20

정호민 · 롬8:12-17

제작일 2026.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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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8:12-17은 성도가 채무자이자 상속자라는 정체성을 설명하며, 육신의 욕망을 이기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본문로마서 8:12-17
  • 로마서 8:12-17은 성도가 채무자이자 상속자라는 두 가지 정체성을 설명한다.
  • 성도는 육신의 욕망을 이기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하며, 고난을 감당해야 한다.
  •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광을 향한 삶을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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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8:12-17의 주요 내용

  • 채무자와 상속자의 정체성: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채무자이자, 하나님의 자녀이자 영광을 받을 상속자이다.
  • 죄의 종에서의 해방: 아담의 죄로 인해 죄의 종이 되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으로 해방되었다.
  • 채무자의 삶: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하며, 육신의 욕망에 따라 살지 말아야 한다.
  • 상속자의 삶: 그리스도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고난과 영광을 함께 받는 상속자가 되었다.
  • 성령의 인도: 성령의 도움을 통해 육신의 욕망과 죄성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 고난과 영광: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해 고난을 감당해야 하며, 성령은 고난 속에서도 함께 하신다.
  • 속사람의 변화: 성령의 인도를 따르면 속사람이 새로워지고 강건해질 수 있다.
전사(자막) 전문▼
할렐루야, 아멘 예수 그리스 이름으로 하나님 말씀 증거하겠습니다 먼저 하나님 말씀 찾겠습니다 로마서 8장 12절에서 17절까지 말씀 함께 보겠습니다 로마서 8장 12절에서 17절까지 말씀입니다 로마서 8장 12절에서 17절까지 말씀 말씀 찾으셨으면 저와 성도님들 한 절씩 나누어서 교도 가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먼저 읽겠습니다 로마서 8장 12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 돼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닙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입니다 아멘 오늘의 시간 우리 성도님들과 함께 채무자와 상속자라는 제목으로 말씀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저희가 지난 시간 성령을 쫓아 행하라라는 제목으로 말씀 살펴보았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쫓아 행하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으며 우리는 오직 성령의 생각을 따라 행하며 영적 생명을 얻어야 함을 이야기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쫓아 행하는 성도의 두 가지 정체성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우리가 생각할 것은 우리는 빚진 자로서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빚진 자로서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살아야 한다 먼저 12절 말씀을 제가 읽겠습니다
12절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 돼까지 보겠습니다 바울 사도는 형제들 곧 교회의 성도들을 향해서 우리는 빚진 자이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빚진 자라는 것은 말 그대로 빚을 진 사람, 채무자를 뜻하죠 채무자라는 말을 사전적으로 찾아보면 특정인에게 일정한 빚을 갚아야 할 의무를 가진 사람을 채무자라고 정의를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교회의 성도를 향해서 빚진 자, 채무자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죠 그렇다는 것은 우리는 누군가에게 무엇을 빚진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빚을 갚아야 될 의무가 있는 사람들이다 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누구에게 빚을 진 사람들입니까?
바로 하나님께 빚진 자이다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배웠던 로마서의 말씀을 정리해 보면 아담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그로부터 말미암아 난 모든 사람은 죄인이 되었고요 그리고 죄인이 된 모든 사람은 죄의 종로를 타며 살았다라는 것을 바울은 밝히 말했습니다
죄의 종로를 타며 살았다는 것은 죄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이고요 다시 말해 내 육신의 죄성, 욕심에 끌려다니는 상태를 읽혔습니다 예를 들어서 내 마음에 악한 생각이 떠오르면 그것을 내가 온전히 제어하지 못하고요 생각나는 대로 악한 행동을 하며 살아가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의 삭시자, 죄의 종으로 살아가는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로마서 6장 23절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곧 사망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래 죄의 종이었던 우리가 이제는 죄의 종의 상태에서 해방이 되어서 참된 자유를 얻고요 이제 사망이 아닌 영생을, 구원을 소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누구로 말미암은 것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으로 말미암아서 우리는 죄의 종된 상태에서 자유를 얻었다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의 종된 상태에서 해방시켜주기 위해서 무엇을 값으로 지불하셨다라는 것입니까?
당신의 목숨, 당신의 피를 흘리면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요 우리를 해방시켜주셨다라는 것입니다 애초에 우리가 세례를 통해서 죄사함을 받을 수 있는 것도 먼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으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3장 24절의 말씀을 보시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가 되었다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죄의 종된 상태에서 자유를 얻은 것은 우리가 내가 어떤 값을 지불해서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값을 대신해서 지불해 주셨기 때문에
당신의 목숨으로 우리를 사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자유를 얻게 되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6장 19절 20절의 말씀을 보시면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것이다 값으로 산 것이 되었다 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고요
사도행전 20장 28절을 보시면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모인 그 교회를 두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가 지난 시간 살펴본 로마서 8장 1절에서 11절을 보면 율법의 한계와 내 육신의 연약함으로 인해서 세례받은 우리라 할지라도
여전히 죄의 종로를 타는 율법의 정죄받는 그런 삶을 살 수 있다라고 했죠 그런데 그런 연약한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주셨다고 했습니까?
바로 성령을 주셨다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님께 빚진 자이다 채무자이다 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우리의 나의 첫 번째 정체성은 바로 채무자 빚진 자입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큰 빚을 졌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빚을 졌다라는 것은
곧 하나님께 이 빚을 갚아야 할 의무가 있다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일반적으로 빚을 지면은 대출을 하면은 어떻게 해야 됩니까?
정해진 기간 안에서 원금은 물론이거니와 그 원금에 따르는 이자를 곱절로 이렇게 갚아 나가야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실까요?
달리 말하면은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드려야지 이 빚을 다 갚을 수 있을까요?
사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 드린다 하더라도 우리는 하나님께 받은 이 은혜를 이 은혜의 빚을 다 갚을 수 없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는 크다라는 것이죠 그리고 하나님은 애초에 우리에게 전대산을 바쳐서 빚을 갚으라라고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 왜 우리를 위해 당신의 목숨을 바치셨습니까?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서이죠 여기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사망이 아니라 생명, 곧 구원에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제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우리에게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그 큰 빚을 진 것은 이제 우리를 향한 어떤 기대와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까?
바로 구원, 구원에 대한 소망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전에는 죄의 종으로 죄의 지배를 받으면서 내 육신의 소욕을 따라 살아가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제 하나님께서 그 큰 은혜를 주셔서 우리를 죄의 종된 상태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기대가 무엇이겠습니까?
당연히 더 이상 과거와 같이 죄의 종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더 이상 율법에 정죄받지 않고 정말 참된 자유를 누리면서 구원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삶 그래서 마침내 하나님이 예비하신 그 영생을 온전히 누리는 것을 기대하신다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당신의 목숨 바쳐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난 시간 로마서 6장의 말씀을 보지 않았습니까?
우리 다시 찾아보겠습니다 로마서 6장 6절에서 시작합니다
로마서 6장 6절에서 7절 말씀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로를 타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아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받음으로 그와 합하여 죽고 다시 살아났고요.
우리의 옛사람은 이미 십자가에 못 박혔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의 몸을 멸해서 다시는 우리가 죄의 종으로 살아가지 않도록 이것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라는 것이죠.
그래서 건너지어서 12절부터 13절을 보시면 제가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육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변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의 변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이런 큰 은혜를 받았다면 이런 큰 은혜의 빚을 졌다면 더 이상 과거와 같이 죄의 종로를 타면서 죄의 지배를 받으면서 몸의 사육을 따라 욕심을 따라 살아가면 안 된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고린도 후서 5장 15절을 보시면 여기서 이 말씀에 대해서 더욱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고린도 후서 5장 15절입니다.
고린도 후서 5장 15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신 것은 이제 그 사람들로 하여금 더 이상 나를 위해서 살아갈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오직 주를 위해서 살도록 이런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 빚진 자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어떻게 이 빚을 갚는 삶을 살 수 있을까 물론 우리가 우리의 무엇을 들여도 평생을 갚아도 다 갚을 수 없는 너무나 큰 은혜이지만 우리가 정말로 그 빚이 은혜임을 믿는다면 우리는 감사함으로 주를 위한 삶을 살 수 있어야 된다.
반대로 말하면 더 이상 과거와 같이 나를 위한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라는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오늘 본문 12절을 다시 보시면요.
우리 로마서 8장 12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 돼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우리는 하느님께 빚진 자이다.
그렇다면 이제 더 이상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아선 안 된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신대로 산다.
육신에게 지고 육신대로 산다라는 것은 과거와 같이 죄의 종로를 타면서 죄의 지배를 받으면서 산다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더는 육신의 빚진 자가 아니기 때문에 육신의 요구를 들어줄 의무가 없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우리가 죄의 종이었다.
죄의 종로를 탔다.
육신의 지고 사는 육신의 어떤 소욕을 따라 살아가는 그런 존재였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과거에 우리는 내 마음에 악한 생각이 나면 그걸 제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 죄가 마치 내 주인인 것처럼 끌려다닌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설령 악한 생각이라는 것을 안다고 하더라도 내가 그것을 제어하지 못하고요.
마치 주인의 명령에 따르는 것처럼 죄의 지배를 받고 죄에 끌려다니는 그런 삶을 살았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죄의 지배, 죄의 권세에서 참된 자유를 얻은 우리는 이제 육신이 원한다고 해서 무조건 그대로 따라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우리가 반대로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라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가 지난 시간 계속해서 이 말씀을 보지 않았습니까?
특별히 로마서 6장, 7장의 말씀을 보면서 율법의 한계와 또한 내 육신의 연약함, 내 안에 있는 죄성, 육신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비록 우리가 믿음으로 세례받고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할지라도 그렇다고 해서 내 안에 있는 죄성이, 욕심이 다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우리는 내 안에는 죄성이 있고 또한 내 뜻대로 살고자 하는 육체의 소욕, 욕심이라는 것이 있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많은 순간 이 죄성을 따라서 내 욕심을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여전히 내 욕신대로 살아가는 그런 내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런 연약한 우리를 돕기 위해서 성령을 주셨다라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육신에 져서 육신대로 살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우리 본문 13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13절 읽겠습니다.
시작!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아멘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다 육신대로 산다는 것 앞서 이야기 나눴죠?
내 안에 있는 죄성을 따라서 내 욕심을 따라서 여전히 과거와 같이 죄의 종으로 계속해서 살아가면 결국에는 어떻게 된다고요?
죽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죽음은 단지 내 육신의 죽음만은 말하지 않습니다.
영적 죽음이죠.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어서 결국 영원히 벌을 받는 영벌 영원한 사망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우리가 육신대로 살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몸의 행실을 죽여야 된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몸의 행실을 죽인다라는 것은 우리 육신에 있는 육신의 소욕을 따라서 내 안에 있는 죄성 또한 욕심을 따라서 악한 생각이 나면 그 악한 생각을 따라서 악한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습니까?
그러한 육신의 행실을 우리는 근절해야 된다.
내 소욕을 내려놓고 내 욕심을 죽이면서 우리는 말씀을 따라 살아가야 된다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내가 몸의 행실을 죽이며 살아갈 때에 비로소 우리는 영적 생명을 얻게 된다라는 것이죠.
그런데 중요한 것은 13절을 보시면 무엇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여야 된다고요?
영으로서 성령으로서 우리는 몸의 행실을 제어하고 죽이며 살아가야 된다라는 것입니다.
우리 말씀 드리겠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6절에서 18절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6절에서 18절 말씀 갈라디아서 5장 16절 찾으셨으면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조차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에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아멘 너희는 성령을 조차 행하라.
성령을 받는 단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제 그 성령을 조차서 행동해라.
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는다.
자 그래서 이하의 말씀을 통해서 성령을 받은 성도에게는 두 가지 소욕이 있다.
하나는 내 뜻대로 살고자 하는 육체의 소욕 욕심이고요.
또 하나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하고자 하는 성령의 소욕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두 가지 소욕은 내 안에서 끊임없이 충돌합니다.
자 그래서 이 두 가지가 끊임없이 서로를 대적하면서 서로의 뜻이 이루어지지 못하게 막는다라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
믿으론 세례받고 하나님의 전여가 된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야 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내 안에 있는 육체의 소욕이 내 뜻대로 살게 하고자 하기 때문에 여전히 우리는 내 욕신대로 살기를 원하기 때문에 우리는 성령을 받아야 되고요.
또한 성령을 조차서 행하며 살아가야 된다.
그리할 때에 육체의 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자 그래서 이어지는 갈라디아서 5장 19절에서 21절에
말씀을 보시면 육체의 소욕을 쫓아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육체의 일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를 말하고 있죠.
음행, 더러운 곳, 호색, 우상, 숭배, 술수, 원수 등등등 많은 것들이 대표적으로 언급이 되고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악한 일들은 육체의 소욕을 따라서 이러한 행동들이 그냥 갑자기 나오는 것이 아니죠.
모든 행함은 결국 그 마음으로부터 발현되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런 악한 육체의 일의 근원은 내 안에 있는 육체의 소욕, 내 뜻대로 살고자 하는 욕심이 근원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러한 육체의 소욕을 따라서 육체의 일을 행하며 살아가게 될 때에 다시 말하면 우리가 앞서 로마서 8장에서 본 것처럼 내가 육체에게 져서, 육신에게 져서 계속해서 그 악함을 제어하지 못하게 되면 결국 어떻게 된다는 것입니까?
갈라디아서 5장 21절을 보시면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세례받고 성령 받은 성도는 구원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을 마련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될 것은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안심하고 그냥 나 세례받았으니까, 나 성령 받았으니까 편하게 살아가면 안 된다.
왜냐하면 여전히 내 안에는 육체의 소욕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육체의 소욕을 제어하기 위해서, 이 육체의 소욕을 대적해서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도록,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도록 우리는 성령을 구해야 되고요.
성령을 받은 우리는 반드시 성령을 쫓아서 살아가야 된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22절, 23절의 말씀을 보시면 이제는 대조적으로 성령의 소욕을 쫓아서 맺어지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만 우리 앞에 있는 말씀과 대조해서 본다면 결국 이렇게 성령의 소욕을 쫓아서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는 사람은 무엇을 유업으로 약속받는다라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약속받는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24절, 25절의 말씀을 보시면 제가 읽겠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24절, 25절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아멘 그래서 오늘날 하나님의 자녀이자 그리스도인 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야 되느냐 나는 정말로 하나님께 다 갚을 수 없는 너무나 큰 은혜의 빚을 진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하면 이 빚을 갚으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물론 내 평생을 바쳐도 이 빚을 다 갚을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그만큼 내가 진 빚이 정말로 큰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령을 조차 살아가는 삶 그렇게 성령을 조차 성령으로 행하며 성령의 열매를 맺어가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기대이자 소망, 소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간절히 바라올기는 정말 이 자리에 있는 저와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정말로 나는 하나님께 빚진 자이다 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빚을 졌다 라는 것은 빚을 갚아야 된다 라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가운데서도 정말 사람 간의 관계에 있어서도 참 빚이라는 것이 때로는 사람과의 관계를 파괴하기도 하고요 또 때로는 반대로 그 관계를 더 돈독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바라올기는 우리가 하나님께 빚졌다는 것이 너무 가볍게 여기서도 안 되고요 또 너무 무겁게 여기서도 안 되겠습니다.
우리가 빚진 자라는 정체성을 통해서 기억해야 될 것은 그만큼 하나님은 우리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 또한 그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기대와 소망이 있다.
하나님이 이렇게 우리에게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은 당신의 목숨 맞춰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것은 우리가 더는 죄의 종로를 타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반대로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을 소망하면서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 그 삶을 우리에게 기대하고 계시고 요구하고 계신다.
이 말씀을 기억하면서 빚진 자로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저와 우리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두 번째 우리가 생각할 것은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광을 위한 고난을 감당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광을 위한 고난을 감당해야 한다.
다시 오늘 본문으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앞서 전반부에서 채무자, 빚진 자의 정체성에 대해서 이야기한 파울은 이제 이어지는 14절 이하의 말씀에서 두 번째 정체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 먼저 15절에서 16절 말씀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5절에서 16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이 말씀을 조금 더 쉽게 풀어서 보면은 우리가 받은 이 성령은 두려움에 빠지게 하는 영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앞서 우리가 빚진 자라는 정체성을 같이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래서 빚진 자인과 동시에 또한 주인과 종의 관계에 대해서도 같이 생각을 해볼 수 있죠.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이다.
그렇다는 것은 나의 참된 주인은 하나님이다. 라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빚진 자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갈 때 또한 종의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갈 때 나의 주인 대신 하나님을 오인할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마태복음 25장에 달란트를 받은 세 종의 비유를 살펴보시면 우리가 잘 아는 비유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주인이 타국에 가면서 세 명의 종에게 각각의 달란트를 맡기고 떠나갑니다.
그래서 앞에 있는 다섯 달란트 받은 종, 두 달란트 받은 종은 그 달란트를 가지고 주인에게 충성함으로써 주인을 위해서 장사하고 각각의 이혼을 남김으로써 주인에게 칭찬받지 않습니까?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종은 내가 받은 그 달란트를 어떻게 했습니까?
주인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땅에 꼭꼭 묻어두었습니다.
그런데 애초에 왜 이 종이 한 달란트를 땅에다가 묻어두었느냐 주인을 무서운 사람으로 오해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달란트 받은 종을 생각을 합니다.
내가 혹시라도 이 달란트를 사용했다가 혹은 잃어버리면 손해를 보면 이 주인이 나를 혼내지 않을 것이냐 나에게 해를 입히지 않을 것이냐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런 두려움을 가지고 적어도 이 달란트를 잃어버린 일이 없도록 아예 그러면 이걸 쓰지 말자.
그냥 묻어두자.
이런 마음으로 이 달란트를 묻어두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돌아온 주인은 이 종에게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크게 책망하면서 쫓아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서 나는 하나님을 어떤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가 물론 우리가 관계적인 면으로 보자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빚을 목숨으로 우리의 목숨을 살려주신 그런 분이고요.
또한 우리는 그런 하나님의 큰 은혜의 빚을 진 사람들입니다.
동시에 나는 종이요.
하나님은 나의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참된 주인이죠.
그런데 이 마태복음 25장에 한 날란트 받은 종이 주인을 무서운 사람으로 오해했던 것처럼 우리도 때로는 하나님을 무섭기만 한 사람, 무섭기만 한 분, 두렵기만 한 존재로 인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
물론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할 수 있어야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정말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경외해야 되죠.
그런데 우리가 자칫 그런 하나님의 인식이 자칫 왜곡이 되면 정말 무섭기만 한 분, 두렵기만 한 분으로 빠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바울은 두 번째 정체성을 이야기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로마서 8장 14절에서 17절 말씀 가운데 바울이 제시하는 두 번째 정체성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자녀이자 후사, 곧 상속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무엇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증해 주시는가?
우리가 앞서 읽어보았습니다.
로마서 8장 15절에서 16절에
1절을 보시면 우리가 어떤 영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받은 영은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이 아니다.
마치 종이 주인을 두렵게만 여기는 것처럼 우리가 받은 성령은 하나님을 두렵게만 여기는 영도 아니고 우리로 하여금 두려움에 빠뜨리는 영도 아니다.
우리가 받은 영은 양자의 영이다라는 것입니다.
양자라는 것은 말 그대로 원래는 혈육관계가 아니죠.
하지만 입양을 통해서 자식의 자격을 얻은 사람을 두고 우리는 양자라고 표현을 합니다.
그래서 비록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지만 이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서 그런 우리를 다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고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증할 수 있도록 이제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 양자의 영인 성령을 주셨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을 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당당하게 하나님을 두고 아바, 아버지 여기서 아바라는 것은 아빠라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서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것 그 힘이 바로 성령에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방금 읽은 16절의 말씀처럼 성령은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한다.
라는 것이죠.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은 동시에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냐 그것은 곧 하나님의 후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후사 그래서 17절에서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 17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입니다.
아멘 그래서 우리가 17절에 보시면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은 곧 하나님의 후사라는 것이다.
후사라는 말의 원뜻은 상속자라는 말입니다.
즉 아버지의 기업, 유업을 물려받을, 상속받을 자녀라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서 우리를 당신의 양자로 삼아주시고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기업을 물려받을 자녀라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그 기업이라는 것은 곧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바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천국의 유업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갈라디아서 4장 6절에서 7절 말씀을 보시면 찾아보겠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 6절 7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이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여기서는 바울은 교회의 성도를 가리켜서 너희가 성령을 받았다면 더는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고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 곧 천국의 유업을 받을 후사 상속자이다라는 것을 분명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후사를 받기 위해서 이런 후사로서 하나님이 예비하신 천국의 유업을 받기 위해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천국의 유업을 약속해 주셨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최종적으로 이 유업을 받기 위해서는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하나님의 후사 곧 상속자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다시 오늘 본문으로 돌아와서요.
로마서 8장 14절을 보시면 같이 읽겠습니다. 14절 읽겠습니다. 시작!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래서 14절부터 16절을 같이 묶어서 보시면 단순히 하나님은 성령을 받았다고만 해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요.
14절을 보시면 어떤 사람들을 곧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앞서 우리가 말씀을 살펴본 것처럼 성령을 받고 그 성령의 인도하심을 조차서 행하며 살아가는 사람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을 두고 바울은 이 사람들이 곧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을 하나님의 후사 곧 상속자로 여겨주시고 천국의 유업을 약속해 주신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결국 두 가지 정체성을 같이 살펴보았지만 결론적으로는 우리가 채무자로서 또한 상속자로서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무엇과 충돌이 됩니까?
내 안에 있는 육체의 소욕 다시 말하면 내 마음대로 살고자 하는 내 욕심과 충돌하지 않습니까?
물론 모든 순간 충돌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많은 순간 충돌하는 것을 우리가 또한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삶을 살아갈 때에 또한 많은 생각을 하고 많은 판단, 선택, 행동을 하며 살아가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단순히 내 마음에 떠올려지는 대로 판단하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잘 구분해야 됩니다.
지금 내 마음속에 드는 이 생각이 그 생각을 따라 내가 내린 판단과 그 판단을 따라서 행하는 행동이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성령을 쫓아 행하는 것이냐 아니면 내 마음속 저 깊숙이 있는 내 욕심을 따라서 내 마음대로 살고자 하는 내 육체의 소욕이 근원인 것인지
우리가 살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물론 내 육신의 소욕을 따라서 내 마음대로 살아가는 삶은 쉽고 편합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살아가는 삶은 쉽지 않습니다.
힘들고요.
때로는 괴로운 일도 있습니다.
계속 내 자신의 어떤 욕심과 충돌 내지 않습니까?
그런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려면 결국 내 욕심을 내려놔야 되거든요.
그런데 그 일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삶이 아무 고난 없고 그저 평탄하기만 한 길이냐 또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마지막 17절의 말씀을 보시면 굉장히 의미 있는 곤면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17절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17절 읽겠습니다.
시작!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여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조차서 다시 말하면 내 욕심을 내려놓고 내 욕심을 죽이고 정말 쉽지 않지만 힘들고 괴롭지만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그 궁극적인 목적은 결국 영생 마지막에 우리가 얻을 영원한 영광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영광을 얻기 위해서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동안 무엇도 함께 받아야 된다고요?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된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여기서 알 수 있는 한 가지 사실은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간다고 해서 고난이 없는 것이 아니다.
뒤집어서 생각을 해보면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때로는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한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 자리에 계신 우리 많은 성도인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정말로 쉽지 않지만 성령으로 기도하면서 또한 하나님께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런 삶 가운데에도 고난이 있더라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가 참 의아할 수 있죠.
아니 나는 하나님 믿는다고 믿고 살아가고 있는데 내가 나음대로 열심히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뜻을 구하면서 성령의 뜻을 따라 살아간다고 살아가는데 왜 고난이 있지?
왜 고난이 계속되지?
왜 고난이 끝나지 않지?
그럴 때 우리는 오늘 이 말씀을 생각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물론 고난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시험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어요.
하지만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가운데 어떤 고난을 만난다면 그 고난은 결코 우양이 만나는 것이 아니다.
분명한 것은 그 가운데 하나님의 선한 뜻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또 내일 안식일 시간에 예수님이 받는 시험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님도 시험 받으셨다라는 것입니다.
미리 말씀을 드리면 예수님이 왜 고난 시험을 받으셨을까?
마태봉 사장에 예수님이 마귀에게 시험 받으신 유명한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길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 예수님이 누구의 이끌림을 받아서 가셨느냐?
바로 성령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내일 저희가 자세히 살펴보고요.
그래서 결론적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가운데 때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고난을 만날 때도 있지만 그 고난은 고난으로서 끝이 아니라 그 고난 너머에 영광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우리가 고난을 만난다라는 것은 우리가 고난을 만나서 슬프고 괴로운 그 중에도 누가 함께 하신다라는 것입니까?
내 안에 성령이 함께하고요.
하나님이 함께하신다.
하나님은 나를 고난으로 밀어넣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저기 뒤에 서서 너 이제 고난 받고 와 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허락 아래서 우리가 고난을 받는다 할지라도 그 고난 가운데 하나님은 함께 하시고요.
또한 성령을 통해서 도움 주시고 역사하신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성령을 힘입어서 어떤 고난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 성령으로 말미암아서 우리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지고요.
날마다 강건해질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로마서 말씀을 통해서 그리스 안에서 성도된 우리의 두 가지 정체성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께 큰 은혜의 빚을 진 빚진자, 채무자였고요.
두 번째는 하나님의 천국의 유업을 약속받을 하나님의 자녀, 후사, 곧 상속자였습니다.
바로 웃기는 하나님께 빚진자이자 하나님이 귀한 후사, 상속자로서 오직 성령을 따라서 힘써 살아가는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의 뜻을 함께 이루어가는 우리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AI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 정리한 내용입니다. 정확한 말씀은 영상 원문을 확인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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