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건너뛰기
참예수교회 True Jesus Church

오직 방주에 있던 자만 남았더라 유바나바 목자 26.07.31

창7:17-24

설명 펼치기▼
오직 방주에 있던 자만 남았더라 (#창세기7장 17절~24절)
#창세기개론 #창세기해석 #창세기강해 #유바나바목자 #TJC대방 #TrueJesusChurch

(창7:17) 홍수가 땅에 사십 일을 있었는지라 물이 많아져 방주가 땅에서 떠 올랐고
(창7:18) 물이 더 많아져 땅에 창일하매 방주가 물 위에 떠 다녔으며
(창7:19) 물이 땅에 더욱 창일하매 천하에 높은 산이 다 덮였더니
(창7:20) 물이 불어서 십오 규빗이 오르매 산들이 덮인지라
(창7:21) 땅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육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
(창7:22) 육지에 있어 코로 생물의 기식을 호흡하는 것은 다 죽었더라
(창7:23)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홀로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만 남았더라
(창7:24) 물이 일백오십 일을 땅에 창일하였더라

#참예수교회 홈페이지 http://tjc.or.kr/

AI 설교 정리

AI 자동 정리

노아의 홍수는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계획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방주에 있던 자만이 생존했다.

본문창세기 7:17-24요한복음 3:16
  • 노아의 홍수는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계획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 이 사건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자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음을 강조한다.
  • 오늘날 신앙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야 한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본문 정리 펼치기▼

홍수의 경과

  • 창세기 7장 17절부터 24절까지는 홍수가 40일 동안 지속되었고, 물이 점점 많아져 방주가 떠오르고, 높은 산도 덮는다.
  • 홍수는 150일 동안 지속되었으며,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고, 땅에서 물이 솟아올랐다.
  • 땅 위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은 죽었고, 오직 방주에 있던 자만이 생존했다.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

  • 하나님은 육지에 있는 모든 생물과 사람을 쓸어버리셨으나, 노아와 그의 가족만이 구원을 받는다.
  • 이 사건은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계획을 보여주며,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에서 시작된다.
  • 하나님의 심판은 철저하며, 방주가 없기 때문에 노아 시대 사람들이 멸망한 것이 아니다.

노아와 구원의 의미

  •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한 의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이다.
  • 방주는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준비되었으며, 노아가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도하신 것이다.
  • 노아는 하나님의 경고를 들었고, 그에 따라 방주를 준비하여 구원을 받았다.

오늘날의 교훈

  • 성경은 인간이 자신의 경험과 지혜에만 의존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 예수님은 노아의 시대와 오늘날을 비교하며, 마지막 때에도 사람들이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 현재의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경계하고, 방주(구원)에 들어가야 한다는 교훈이 있다.
  • 신앙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야 하며, 세상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삶이 필요하다.

죄와 교만의 영향

  • 노아 시대 사람들이 멸망한 근본적 이유는 하나님 없어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한 교만 때문이었다.
  • 죄는 사람에게 하나님 없어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만들며, 이는 교만으로 이어진다.
  • 하나님의 심판은 모든 것을 덮고, 오직 노아와 방주에 함께한 자만이 구원받았다.
전사(자막) 전문▼
먼저 하나님 말씀 함께 찾겠습니다. 지금 계속 안식일 전형예배 때마다 창세기 강의를 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창세기 7장 17절에서 24절까지 말씀을 찾겠습니다.
창세기 7장 17절에서 24절까지 말씀
17절에서 24절입니다. 저와 성도님들 번갈아서 읽겠습니다. 제가 먼저 읽겠습니다.
창세기 7장 17절 홍수가 땅에 40일을 있었는지라 물이 많아져 방주가 땅에서 또 올랐고 물이 땅에 더욱 창일하며 천하에 높은 산이 다 덮였더니 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육축과 들짐승과 땅에게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 지면에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홀로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만 남았더라 물이 151일 땅에 창일하였더라 아멘 오늘 읽는 내용을 근거로 해서 오직 방주에 있던 자만 남았더라 오직 방주에 있던 자만 남았더라 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증거하겠습니다
이 제목은 23절 하반부에 보면 홀로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만 남았더라 라는 이 말씀을 근거해서 제목을 정했는데요 여기서 홀로 라는 단어가 또 혼자라는 단어로 쓰이기도 하지만 오직 하나밖에 없는 어떤 이런 의미로 쓰여진 단어였서 좀 더 우리가 이해하기 쉬운 그런 표현으로
오직 방주에 있던 자만 남았더라 라고 하는 제목으로 같이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이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우리 앞에 놓여져 있는 신앙의 여정 가운데 마지막에 놓여 있는 하나님의 심판 이 심판은 모든 일과 지금 가고 있는 그런 길이지 않습니까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았던 이 하나님의 심판 물론 천국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았지만 이 심판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이 천국이기 때문에 이 심판을 이해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미리 이미 구약에서 일어났던 하나님의 심판
이것은 우리 노아의 방주 노아의 홍수 사건을 통해서 우리가 이해할 수 있고 또 창생의 내용을 계속 읽다 보면 이 소동과 고모라성도 가만히 보면 하나님께서 이 땅을 심판하시는 그런 과정이 어떠한가 또 이 심판의 이유가 무엇인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내용을
잘 살펴볼 수 있는 내용이 또 이 소동과 고모라성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내용인데요 이 내용들을 통해서 우리 앞에 분명히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이 하나님의 심판을 이 말씀을 통해서 지혜를 얻고 이 지혜를 통해서 준비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창생 6장과 7장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왜 심판하실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그 심판 가운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 구원의 길을 준비하시는지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6장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했고 관영했다 심지어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생각과 계획까지 모든 것이 항상 항상 악했다
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런 걸 생각해 보면 여전히 이 세상에는 가능성이 있죠 그래도 세상 우리가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또 세상과 접해 사람들과 교류하다 보면 이렇게 선한 사람들이 있잖아요 아 이 사람은 참 하나님만 믿으면 딱인데 이런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여전히 하나님께서는 그래서 심판까지 이르르지 않는 아직 기회가 열려있는 때다 라는 겁니다 그런 사람을 보거든 우리는 열심히 빨리 복음을 전해야 되겠죠 그것이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또 이 성교 또 전도의 의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는 모든 생각과 계획이 다 악했다 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것을 넘어서서 하나님을 믿는 또 하나님을 아는 사람마저도 이렇게 악해져가는 물들어가는 이런 때에 대해서 말씀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6장 8자를 통해서 그러나 노아는 요아께 은혜를 입었다 라는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노아를 선택하시고 또 그런 세대 가운데 구원을 위한
방주를 예비할 수 있도록 준비할 수 있도록 이 노아라는 사람을 선택하셔서 그에게 은혜를 주셨다 라고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된다라는 것을 밝혀주고 있지요 어떤 노아의 순종 그리고 그의 신앙적 행위들 참 훌륭하지만 사실은 이 구원이라는 것은 그것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서 출발했다라는 것을 잘 말씀해주고 있는 것이 또 노아의 방주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해주는 그런 지혜입니다 그래서 방주를 노아가 만들었지만 사실은 이 방주는 노아가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설계하시고 또 이 말씀으로 준비하게 하신 하나님의 철저한 계획인 것을
잘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노아가 계속 거듭 말씀을 드리지만 노아가 훌륭한 배 만드는 사람 기술자 이래서 하나님이 노아를 선택한 건 아니잖아요 배를 잘 만드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도 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통해서 이 땅의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셨는데
이 교회를 잘 세우는 사람 훌륭한 건축가들 이런 사람들을 통해 선택 구원을 이루어 가시는 것이 아닌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비록 그 행위적으로 불안하고 부족하고 완전하지 않지만 이 사람을 선택하여 부르시고 그에게 은혜를 주셔서
그 사람들의 순종과 그 사람들의 믿음을 통해서 그 은혜를 크게 본 이 믿음을 통해서 세워져 가는 것이 또 교회이고 또 이렇게 이 자리에 그런 분들이 또 그런 제가 모여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 내용들을 잘 소개해 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을 보면 한 단계 더 나아가서
방주가 완성이 되었고 노아의 가족들도 들어가 있고 하나님께서 친히 그 문을 닫으셨다 그렇다면 이제는 오늘 본문에 보면 그 결과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 땅의 창이라였다 우리 지난주 말씀을 통해서 보았던 것은 40주야를 비가 땅에 내렸습니다 40주야라고 말하는 것은
40일 동안 밤낮으로 비가 왔다 40일 동안 비가 올 수 있죠 장마가 지면 그럴 수도 있지만 성경에서 말씀해 주고 있는 40일 동안 밤낮으로 비가 왔다 라는 것으로 설명은 부족합니다 왜냐하면 12절에 11절에 보면 노아 600세 대던 해 2월 곧 그 달 17일이라
그날의 큰 기품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 라고 되어 있거든요 무슨 얘기냐면 땅에서 솟아올랐다는 겁니다 물이 땅에서 솟아올랐다는 거예요 그리고 하늘에서 쏟아 부었다는 겁니다 하늘에서 쏟아 붓고 땅에서 솟아올랐습니다 그래서 우리 창의란 거죠 그래서 이게 어떻게 가능하냐
사실 오늘날 홍수 이후의 세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바라보는 자연으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처음에 하나님께서 천지 창조를 하실 때 처음에 홍수 이전의 자연의 상태라면 가능하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만들 때 바로 이 물층을 만들었을 때
하늘 위의 물과 하늘 아래의 물로 나누었거든요 이걸 성경에서 표현해 주고 있거든요 이것이 하늘에서는 쏟아졌고 땅에서는 솟구쳐 올랐다 이걸 통해서 이 홍수를 이해할 수가 있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 홍수가 차오른 물이 차오르는 이 일이 땅에 창의됐다라고 되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면서 물이 차오르는 순간을 경험할 때가 있죠 무슨 얘기냐면 처음에는 괜찮다고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이 정도 어려움은 견딜 수 있겠지 조금 지나면 해결되겠지 그래서 내가 준비한 게
게 있어 하면서 이 물이 차오를 때 우리의 방법들이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물이 발목까지 올라오게 되고 조금 더 지나면 무릎까지 차오르게 되고 그리고 내가 의지하던 것들이 하나씩 무너지기 시작하고 그때서야 사람들이 깨닫는 겁니다.
내가 믿고 있던 것이 정말 나를 지켜줄 수 있는가.
사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이런 경험을 많이 하거든요.
이걸 통해서 결국에 하나님의 심판 그 심판이 이 땅에 임할 때를 우리는 생각할 줄 알아야 됩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지혜와 자기의 지식으로 어떤 위험이 닥쳤을 때 그걸 준비하려고 하지 않습니까?
마치 물이 차오르는 것처럼 물이 차오르는 것 이 정도야 내 지혜 그동안의 삶의 경험을 통해서 해결해 나갈 수 있어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정도에 따라서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결국에는 우리는 두 손 두 발 들고 도저히 안 되겠구나 라는 때를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심판은 사실 그런 거죠.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내 삶을 인생을 좀 더 영위해 보고자 많은 것들을 발전시키고 또 성장시키고 또 미래를 준비해서 그것들을 영위해 가려고 노력하지만 결국엔 그것은 다 아무런 쓸모없는 무너질 때가 반드시 온다.
그게 하나님의 심판 때입니다.
어떤 사람이 큰 홍수가 난 지역에서 지붕 위에 올라가 구조를 기다렸습니다.
이 내용을 가지고 제가 이 기도에 대해서도 한번 예화를 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처음에는 작은 배가 와서 말하죠.
빨리 타세요.
우리가 구해드리겠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말합니다.
괜찮습니다.
하나님께서 구해주실 겁니다.
조금의 구조일기가 왔습니다.
밧줄을 잡으세요.
그랬더니 그는 또 말합니다.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구해주실 겁니다.
결국 그라 어떻게 됐겠어요?
그는 물에 휩쓸려 죽고 말았다.
그 사람이 문제는 뭡니까?
그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도 하나님을 믿고 아는 사람이었는데 문제는 뭡니까?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구원의 방법을 거부했다는 겁니다.
사실 노아 시대 사람들의 모습이 이와 같지 않았을까요?
그들은 방주가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120년 동안 방주를 보았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심판을 외쳤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이 계속될 거라고 생각했죠.
왜요?
그게 자신들의 경험이니까.
하지만 하나님 말씀은 사람들의 생각과 경험과 상관없이 이루어졌다는 거죠.
그래서 노아 시대에 대해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이 꼭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하고 꼭 맞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도 때로는 신앙 그리고 영원한 세계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도 간혹 보면 자신의 경험과 자신의 지혜로 하나님을 이해하려고 할 때가 정말로 많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뭐라고 말합니까?
이 세상을 창조하는 하나님 그분이 말씀하셨으니까 그 말씀을 믿으라고 하시거든요.
마태복음 14장 37절 39절 말씀을 보면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 이맘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 이맘도 이와 같으니라.
분명히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신 것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도 사실은 마찬가지다.
다르지 않다.
이렇게 말해주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마지막 우리 앞에 놓여져 있는 모든 사람이 경험할 수밖에 없는 맞이할 수밖에 없는 이 마지막 심판을 준비해야 하는 이 믿음의 교훈을 이 노아의 홍수, 노아의 방주의 사건을 통해서 배워야 된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은 뭐냐면 홍수가 있었는가? 라는 것보다 그 홍수 가운데 누가 남았냐.
왜냐하면 우리가 그 남아진 사람이 돼야 되잖아요.
그러지 않습니까?
그 성경은 분명히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홀로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만 남았다.
이렇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는 이 방주 안에 있는 자들에게만 남겨진 거예요.
그럼 하나님이 너무하신 하나님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그 하나님의 은혜는 열려져 있었어요.
모든 사람이 다 경험하라고.
모든 사람이 다 그 은혜의 혜택을 받으라고.
그런데 누가 거부했습니까?
사람들이 거부했습니다.
그걸 어떻게 합니까?
그래서 간혹 제가 교리토론을 하면서 듣는 말이 이런 말들이거든요.
어떻게 당신의 교회만 구원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라고 하는 말이에요.
그런데 성경을 찾다 보면 그렇게밖에 이해가 안 되는데 하나님의 은혜의 기회는 열려져 있습니다.
문은 열려져 있어요.
여전히 우리는 노아처럼 외쳐야 됩니다.
방주 안에 들어오셔야 된다고.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거라고.
방주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설계를 주셨고 그 설계를 가지고 그 말씀대로 만들어야 된다고.
그래야 그 심판을 견딜 수 있다고.
왜냐하면 그 심판은 하나님이 주신 심판이기 때문에 그 심판 위에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방주도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가지고 그 설계를 가지고 만들어야 되는 거라고.
그래서 그 방주 안에 들어와야 된다고.
우리는 외치는 사람이고 그 외침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의 기회는 열려져 있는 것이죠.
우리는 그걸 열심히 해야 됩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다시 또 생각해 보자는데요.
첫 번째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말씀대로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그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진다.
오늘 노아의 홍수가 시작된 이후로 물이 어떻게 이 세상 가운데 덮여갔는가에 대해서 굉장히 자세하게 이렇게 정도를 가지고 말씀해 주고 있어요.
17절 말씀을 보면 홍수가 땅에 40일 있었는지라 물이 많아져 방주가 땅에 놓여져 있었던 이 방주가 또 올랐습니다.
물이 이제 그만큼 차 올랐다는 걸 말해주고 있죠.
18절 가보니까 물이 더 많아져 땅의 창이라며 방주가 물 위를 또 다녔대요.
그리고 19절에 가진 것과 더 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물이 땅에 더욱 창이라며 이제는 방주가 물에 떠다니는 걸 넘어서서 천하의 높은 산이 다 덮였습니다.
그리고 20절에 가보니까 물이 불어서 15규비씨 오르며 그 산들의 15규비씹을 넘어서서 산들을 덮었습니다.
이게 반복되는 표현이잖아요.
물이 창이라며 물이 더욱 창이라며 산들과 높은 산들을 덮었다.
모세는 왜 이렇게 물이 차오르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굉장히 자세하게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까?
단순하게 이 홍수의 규모를 말하려고 이렇게 말하고 있을까요?
이것이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심판은 반드시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진다.
이걸 믿든 믿지 않든 이것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노아의 홍수는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이미 창세기 6장을 통해서 말씀해주고 있었습니다.
창세기 6장 17절 말씀을 보면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자가 다 죽으리라.
이미 창세기 6장에서 즉 방주가 만들어지기 전에 즉 비가 쏟아지기 전에 땅에서 쏟아오르기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는 이 심판을 말씀하셨어요.
미리 말씀하셨다는 겁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 바뀌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사람들이 안 믿고 안 믿고
믿고 더 악해져가니까 좀 유보해야 되겠다. 그런 거 아닙니다.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의 약속과 하나님의 말씀이 약해지냐. 그런 거 아닙니다.
사람들이 비운다고 해서 하나님의 계획이 멈추냐. 그러지 않습니다.
노아시대의 사람들은 말씀드렸던 것처럼 방주를 보았지 않습니까? 120년이라는 이 시간 동안에 만들어가는 모습도 보았고 그 소리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다고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나는 뭐 안 믿었으니까. 그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믿든 믿지 않든 모든 이에게 임한다.
제가 예전에 한 자매님이 공무원 고위직에 있으신 분인데 이분이 전도가 되셨습니다.
성교공부를 통해 전도가 되셨고 이분이 어느 날 제가 속해져 있는 교회의 지역에 발령을 받으셔서 교회를 나오 셔서 본인이 직장에 소위 말하는 성교공부팀을 만들어가지고 전도를 해보고 싶다고.
그런데 그래서 제가 가능하겠냐고.
그래서 일단은 목자님이 우리 교회가 아니라 말씀을 먼저 공부를 가르쳐주면 그다음에 나중에 그것이 믿어지면 이렇게 기회가 되지 않겠냐.
그래서 그러자고.
그래서 제가 성교공부를 일주일에 두 시간씩 가서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신앙생활의 목적.
이것부터 시작을 해서 하나씩 하나씩 우리 교리를 꺼냈죠.
그리고 그러면서 잘 됐습니다.
이분이 워낙 고위직이다 보니까 부하직원들이 관심이 있어서 잘 됐는데 어느 날 갔더니 한 분의 표정이 별로 안 좋아요.
그래서 왜 그런가 했더니 알고 보니까 이분이 우리 상사분이 다니는 교회를 안 거죠.
그래서 교회를 검색을 해본 거예요.
우리 참여수교회.
아 이단인데?
이렇게 된 겁니다.
그러면서 이제 안식일 문제 그리고 교회관에 대해서 끊어놓고 이야기를 하기 시작해서 제가 이제 뭐 어떻게 하 겠습니까?
이제 다 꺼내놨죠.
다 꺼내놓고 마지막 말씀드렸던 게 뭐냐면 하나님의 말씀이 선생님이 믿지 않는다고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아 니다.
어떻게 하겠냐?
결국에는 이 상황까지 오게 됐다면 이제는 선생님한테 공이 넘겨진 겁니다.
말씀을 가지고 판단해 보셔야 됩니다.
본인이 안 받아들인다고 해서 안 받아들였기 때문에 이것은 나와 상관없는 말씀이 절대 되지 않습니다.
자 이런 말씀을 남기고 그냥 왔습니다.
어떻게 했을까요?
안 오더라고요.
그래서 4주인가 5주인가 갔다가 이제 마쳤던 기억이 있는데요.
간혹 우리가 그렇게 생각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그럴 때가 많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경험이 마치 내 운명 내 삶을 내 앞을 개척할 수 있는 것처럼 판단한다라는 겁니다.
비가 온 적이 없는데 어떻게 홍수가 난다라는 말인가.
세상이 이렇게 평안한데 어떻게 심판이 있을 수 있는 것인가.
이 세상에 수 없는 교회들이 있는데 수 없는 방주가 있는데 이것이 다 하나께서 만든 방주가 아닐 수 있다고 어떻게 장당할 수 있는가.
결국에 무엇이 옳았냐.
사람들의 생각이 아니라 말씀이 옳은 겁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그것이죠.
사람이 눈에 보이는 것을 사람들은 믿으려고 한다.
경험할 수 있는 것.
또 계산할 수 있는 것.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
이걸 가지고 믿으려고 하죠.
그런데 믿음은 내가 보는 것.
내가 믿는 것보다 하나님 말씀을 더 신뢰해야 하는 것.
이게 더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이브리 기자가 계속해서 말씀해주고 있는 것.
그것이지 않습니까?
히브리서 11장 실제를 말씀해 보면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의함으로 방주를 예비했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가 보지 못했다는 것은 뭡니까?
경험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경의했어요.
하나님을 두려워했다는 겁니다.
하나님 말씀을 두려워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순종했습니다.
그래서 순종했습니다.
노아는 아직 홍수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을 들었기 때문에 준비했고 그 믿음은 모든 것을 다 이해한 다음에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신뢰하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
그게 믿음이잖아요.
흥미로운 것은 노아의 홍수가 성경 안에서 발견되는 이야기는 아니잖아요.
그래서 오늘날 노아의 홍수 사건이 전 세계적인 사건인 것에 대한 증거들이 참 많습니다.
그중에 문학적인 소양으로만 이해를 하면 전 세계 여러 민족과 문화권에서 대홍수에 대한 설화 전승이 약 200개, 300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그중에 조금 넓게 잡은 연구에 보면 400개 이상의 홍수 전승이 있다고 합니다.
그게 다 육대주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가보면 길가메시 서사시라는 게 있는데 홍수 이야기입니다.
성경의 노아 홍수와 시대적으로 굉장히 가까운 지역에 굉장히 너무나 닮아져 있는 그런 스토리를 가지고 기록해주고 있는 설화이고요.
그리스에 가면 데우칼리온 이야기라고 해서 인간의 타락 때문에 신들이 홍수를 보내고 소수의 사람이 살아남는 내용.
굉장히 비슷하죠.
인도에 가보면 만우 이야기가 있습니다.
큰 홍수가 홍수전에 신의 경고를 받고 배를 준비합니다.
중국에 가면 고대 대홍수 전승이 있는데 특히 우의 치수 이야기가 있대요.
우의 치수.
홍수에 대해서 그대로 스토리가 비슷하게 남아져 있습니다.
아메리카 원주�에게 가보면 여러 부족이 있는데 큰 홍수 후에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는 그런 전승이 남아져 있고 오세아니아 지역에 가보면 대평양 여러 섬 지역에서도 이런 비슷한 스토리를 가진 대홍수 전승들이 발견되고 있고 한국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 가지 홍수 설화들이 있어요.
목도령 설화도 있고 제주도에 가면 홍수 설화가 또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비슷한 스토리를 가진 그런 설화들.
그리고 고고하게 보면 에베레스트 산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고 일컬어지는 에베레스트 산의 해양 심해에서 발견되는 조개 화석들이 발견되지 않습니까?
어떻게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가?
라는 거죠.
물론 다시 말씀드리면 우리 믿음이라는 것이 이런 고고학 자료 이런 것이 과학 위에 세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믿음을 세워야 된다라는 거죠.
그런데 하도 사람들이 안 믿으니까 하도 이것이 이야기라고 말하니까 이미 이 세상에는 홍수에 대한 전 세계적인 사건이라는 것이 여러모로 증명할 수 있는 일들이 너무나 많은데 이런 부분에서 너무나 안 믿으니까 이런 이야기도 해보는 거죠.
성경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어떤 교훈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서 행하신 일을 기록한 것이다.
이게 또 노아의 홍수 심판 이야기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오늘 이걸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 될까요?
노아 시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경고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괜찮다 라고 하면서 세상 사람들하고 똑같은 삶을 살아가면 안 되지 않느냐라는 겁니다.
마지막 시대를 예수님께서는 노아의 때와 비교하고 있고 비슷하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번에 우리 학생부 영원회가 지난주에 있었는데요.
굉장히 힘들었댑니다.
왜 힘들었답니다.
단절을 단절을 많이 시켰거든요.
물론이고 스마트폰을 3박 4일 동안 아예 못하게 했으니까 뿐만 아니라 화장도 못하게 했습니다.
아예 화장도 못하게 했고 다 지우게 했습니다.
그리고 반바지도 안 된다.
치마도 안 된다.
너무 고리타분하죠?
그래서
저희는 문화를 접근하는, 문화는 사람들의 삶의 성향으로 나타나는 것들이잖아요. 그래서 이것을 어디까지 우리가 되고 안 되고를 정해야 되냐. 사실 끝이 없어요. 문화라는 게. 어디까지 되고 어디까지 안 되고.
어디까지가 보수적이고 어디까지가 개방적입니까?
사실 끝이 없어요. 그래서 더 이상 이대로 가면 안 되겠다고 판단해서 우리 교육 방침을 그렇게 정하자 해서 다 이렇게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선크림도 색이 들어가 있는 선크림은 금했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쓸까요? 애들이 이제 목자님 하고 면담을 신청하는 일이 벌어지고 그래서 제가 느끼는 것이 이 세상에 그만큼 너무나 쉽게 허락하고 허용하고 있는 시대죠. 우리 어린아이들이 그러는데 어른들은 어떨까요?
당장 집에 가서 텔레비전 2% 2% 이 드라마는 보지 마세요. 라고 교회에서 정해주면 여러분 어떨까요?
그리고 집에 이 물건 저물건은 좀 버리셔야 됩니다. 하면 어떻게 될까요?
제가 이제 말씀드리려고 하는 것은 그만큼 우리는 참 경각심이 많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그냥 어느 정도 적당하게 타협해서 극당하게 그래도 저 사람보다는 내가 좀 신앙적이지.
그래도 저 사람보다는 내가 좀 덜하지 않나. 그래도 저 사람보다는 내가 좀 착하지 않나?
이런 생각 가지고 살아간다는 거죠.
우리가 사람들과 비교해서 내 신앙을 생각해 보면 대단한 사람 같죠. 우리가.
우리 믿음이 대단한 사람 같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저녁 예배까지 나오시니까 얼마나 대단합니까?
그래서 성경을 읽지 않습니까?
행사도 보내고.
저는 우리 성도님들 아이들 행사 보내는 걸 보니까 대단하다.
특히 서울에서 아이들을 이렇게 4일씩 학원으로부터 자유를 허락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압니다.
요즘 다 선행하고 학원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게 하는 세대에 우리가 살고 있으니까 이해합니다.
그래서 대단하다.
그래서 세대의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보면 대단한 사람 같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 말씀으로 기존에 보면 은혜밖에 구할 게 없습니다.
사실은.
안 그런가요?
그래서 믿음의 사람의 말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면 반드시 이루어진다.
라는 믿음을 가지고 내 삶을 정리해 봐야 됩니다.
그리고 여전히 이 세상에 끌려가는 나의 어떤 모습이 있다면 최선을 다해서 그것을 좀 끊어내려고 힘써야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한 심판을 믿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죠.
태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서 경고를 주고 있습니다.
경고예요.
경고.
이렇게 살아가라고 말아 살아가는 삶을 향해서는 그렇게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이 방주를 통해서 구원한 노아의 식구들처럼 너도 그런 은혜 가운데 살아갈 수 있다고 말씀하실 것이고 그렇지 못한다면 방주 밖에 있는 사람의 모습이 우리들의 모습으로 그려질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두 번째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세상의 모든 피난처는 하나님의 심판 앞 에서 반드시 무너진다.
라는 겁니다.
21절부터 22절에 보면 앞선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이 사람들의 생각과 상관없이 반드시 이루어진다.
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사람들은 노아의 경고를 믿지 않았습니다.
방주가 만들어지는 그 오랜 시간 동안에 방주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말씀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듣지 않았죠.
그런데 그들은 자신들의 살아온 방식이 계속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겠어요?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들의 생각보다 높다.
21절 22절 보겠습니다.
창세기 7장 21절 22절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육축과 들짐승과 땅에 키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 육지에 있어 코로 생물의 기식을 호흡하는 것은 다 죽었더라.
모든 다 굉장히 사실 엄숙한 말씀이잖아요.
다 죽었다.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 다 죽었다.
일부 사람을 말하지 않습니다.
특정한 지역만 심판이 임한 것이 아니다.
반복해서 모든 생명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새, 육축, 들짐승, 땅에 키는 것, 모든 사람.
왜 이렇게 자세하게 이걸 강조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처절한가.
이건가요?
사실은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철저한가.
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생각해낼 것은 노아 시대의 사람들이 멸망한 이유는 방주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에요.
다시 말씀드리면 방주가 없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에요.
그래서 원망할 수도 없어.
사람들이.
분명히 약을 줬잖아요.
이 약을 먹으면 산다.
약을 줬는데 약을 안 먹어요.
그럼 그럴 것 죽었습니다.
그러면 약을 안 먹어 죽은 사람이 원망할 수 있어요?
약을 안 먹은 사람은 안 돼.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방주박 밖에 있는 어떤 것도 절대 안전하지 않습니다.
생각해보면 사람들은 나름대로 자신을 지킬 방법을 찾았을 겁니다.
물이 조금 차오를 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었을 거예요.
조금 높은 곳에 올라가면 되지 않겠는가.
언덕에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물이 더 차오르는 거죠.
더 높은 곳을 찾았을 겁니다.
마지막에는 가장 높은 산을 찾아 올라가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성경은 뭐라고 말합니까?
물이 땅에 더욱 창일함에 천하에 높은 산이 다 덮였더니 .
사람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가장 높은 곳.
사람이 위기가 생기면 계속 올라가지 않겠어요?
그런데 그 높은 곳도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절대로 피난처가 될 수 없다라는 겁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의 삶에도 동일하게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죠.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지켜줄 도구를 찾습니다.
어떤 사람은 돈이고 어떤 사람은 능력이고 어떤 사람은 관계와 지위일 수 있지 않겠어요?
물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 속에 살아가면서 이런 부분들을 아무 쓸모없으니까 이걸 다 버리고 살아라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이게 사람의 삶에 필요하죠.
그런데 그것들이 우리의 구국적인 구원을 이뤄낼 수 있는가?
절대 그럴 수 없다는 겁니다.
아무리 많은 재산이 있어도 죽음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
나사로가 죽을 병에 걸렸습니다.
그런데 그 육신이 살았죠.
오늘날 과거로 생각해 보면 마땅히 죽어야 될 사람들이 의학이 발달함을 통해 살아갑니다.
그래서 더 이상 그 암도 두렵기만 하는 병은 아닌 시대가 되어 가잖아요.
소위 말하는 생명을 정복하는 사망을 정복하는 시대.
이렇게 말하기도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것이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사람들이 살려고 물이 차오르게 되면 물의 위기가 없게 되면 사람들은 살려고 조금씩 조금씩 높은 곳을 열심히 땀을 올라갈 겁니다.
최고로 높은 경직가를 오를 수 있어요.
그런데 하나님의 심판은 그걸 덮죠.
바벨탑처럼.
바벨탑이 사실 그런 교훈이잖아요.
10편 기자는 이렇게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10편 49편 6절에서 7절에 보면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풍부함으로 자긍하는 자는 아무도 결코 그 형제를 구속하지 못하며 저를 위하여 하나님께 속전을 바치지 못한다.
어떤 사람의 방법, 어떤 사람의 속전, 어떤 사람의 재물로도 절대로 인간이란 존재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절대로 구원할 수 없는 것이다.
그걸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당시에
그런데 노아시대의 사람들이 단순하게 그냥 그들의 악한 행동 이것만이 아닙니다. 그 근본적인 문제는 뭡니까?
그들은 마음속에 가득 찬 자신감은 뭐냐면 하나님 없이도 난 잘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에요.
하나님 없이도 안전하고 하나님 없이도 미래를 준비할 수 있고 하나님 없이도 하나도 불편한 게 없어. 아마 여러분들이 만나는 많은 사람들이 그런 생각이죠. 나는 하나님 없어도 난 편하게 살아갈 수 있는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데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데 그런데 홍수가 시작되면 그들이 생각했던 모든 건 다 무너지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이게 뭡니까? 죄의 결과입니다. 죄는 사람에게 하나님 없어도 괜찮다. 이걸 우리는 뭐라고 말합니까? 교만 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교만이 죄예요.
그래서 누가 보금 12장 20절에 보면 하나님은 이러실 때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내 영혼을 도로 찾으리 니 그러면 내 예비한 것이 네 것이 되겠느냐.
그것이 어찌 보면 심판대 앞에서 하나님 없어도 괜찮다라고 여기며 살았던 모든 이들의 고백 아닐까요?
우리가 그런 고백을 하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성경은 마지막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는 것은 23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지면에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세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홀로 즉 오직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만 남았더라.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의 은혜입니다.
오직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만 남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대 그 심판을 지난 이후에 벌어진 일이라는 사실을 품명 우리에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방주에 있던 자들을 끝까지 남기시는 분이다.
오늘날 이 말씀을 우리가 마음가운데 새긴다면 마땅히 우리는 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이 말씀이 어떤 말씀인지를 마음속 깊이 새겨야 됩니다.
이미 성경을 통해서 노아의 홍수 심판 이 사건을 우리에게 전해주신 이유는 이것이 우리에게 경고가 되고 더 나아가서 이것이 우리가 이 길을 걸어가는 것이 얼마나 합당한 일이고 잘한 일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이곳에서 벗어나지 않고 이 안에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 뜻 가운데 머물러 있을 수 있는가.
이걸 고민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더 이상 세상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사람답게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백성답게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 방주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 붙잡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우리의 고민이 되어야 됩니다.
세상 사람들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잘 살아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라면 우리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신 것을 가지고 그 뜻에 합당하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우리.
이게 심판을 경고받은 우리 신앙인들의 삶 아니겠습니까.
보쪼록 이 말씀 꼭 마음 가운데 붙잡고 우리 신앙의 여정 가운데 이 말씀이 결국 내 삶 가운데 어디에서도 어떤 유혹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참된 능력이 이 말씀 가운데 나올 수 있는 저와 이름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추천드립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들으신 말씀 생각하시면서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의 신앙의 태도에 꼭 힘이 되고 또 도움이 되는 말씀이 될 수 있기를 위해서 기도하고 아� �러 기도할 때 육신의 질병과 고통가우고 계시는 성도인들 많이 계십니다.
이분들의 하나님의 은혜와 또 능력이 함께 해주시기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아울러 우리 교회 건축을 위해서도 계속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AI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 정리한 내용입니다. 정확한 말씀은 영상 원문을 확인해 주세요.

공유

XFacebook
YouTube에서 보기

관련 지교회

대방교회

이 영상은 대방교회 채널의 콘텐츠입니다.

같은 채널 다른 영상

대방교회 채널 최신순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