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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예수교회 True Jesus Church

이방인의 죄(2) 20

장종규 · 롬1:24-32

제작일 2026.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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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24-32는 이방인의 죄와 하나님의 심판, 그리고 예수님의 구원을 설명하고 있다.

본문로마서 1:24-32
  • 로마서 1:24-32는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고 우상을 숭배하게 되는 과정을 설명한다.
  • 자기 마음의 욕망대로 살면 점점 더 부패하고 악해지며,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
  •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죄를 대신해 죽으심으로 구원을 이루셨으며, 이것이 바로 복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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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의 죄와 하나님의 심판

  • 로마서 1:24-32는 이방인의 죄를 설명하고 있다.
  •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 두셨다.
  • 이는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고,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게 되는 결과이다.
  •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말씀을 거부하면, 결국 우상을 숭배하게 되며 거짓된 삶을 살게 된다.
  • 자기 마음의 욕망대로 살면 점점 더 부패하고 악해지며, 결국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
  • 동성애와 같은 타락한 성적 욕망도 이 과정에서 나타난다.
  • 하나님을 따르지 않으면, 돈, 쾌락, 명예 등에 미혹되어 고통을 받게 된다.
  • 이러한 삶은 결국 어리석음과 미혹으로 이어지며, 마지막에는 후회와 심판을 받게 된다.

순리와 영리의 차이

  • "순리"는 자연스러운, 정상적인 상태를 의미하고, "영리"는 비정상적인 상태를 의미한다.
  • 성적 욕망이 점점 타락하여 동성애로 이어지는 것은 비정상적인 욕망의 결과이다.
  • 타락한 욕망은 양심을 거스르고, 사람을 고통과 악순환에 빠뜨린다.
  • 이러한 타락은 결국 "사망"으로 이어지며,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이방인의 모습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삶과 예수님의 구원

  • 이방인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자기를 섬기는 삶을 살며, 우상을 숭배한다.
  • 하나님을 섬기는 삶은 자기를 섬기는 삶과 정반대이며,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한다.
  • 하나님께서 정하신 죄는 사형에 해당하며, 유일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죽음이다.
  • 예수님께서는 우리 대신 죽으심으로 구원을 이루셨으며, 이것이 복음이다.
  •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유는 인간의 죄 때문이다.
  • 바울은 인간의 죄를 드러내면서도 하나님의 구원의 뜻을 강조한다.
  • 복음은 죄 가운데 있었던 인간의 자아를 인정하고, 그 구원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 이러한 과정을 통해 예수님의 복음을 더욱 깨닫게 된다.
전사(자막) 전문▼
성경 말씀 로마서 1장을 보겠습니다.
로마서 1장 24절에서 32절까지 말씀 제가 읽겠습니다.
로마서 1장 24절에서 32절입니다.
1장 24절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저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깁니다.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영리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 듯하며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 뜸에 상당한 봉을 그 자신에게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며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시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근수근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악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저희가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아멘 바울사도는 로마서에서 보금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금입니다 보금이라는 뜻은 기쁜 소식인데요 바울사도는 이 기쁜 소식을 설명하기 위해서 모든 사람이 죄 가운데 있다라고 하는 것을 증거하게 됩니다
그래서 먼저는 이방인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의 죄에 대해서 이렇게 증거를 했었죠 지난 시간에 말씀이었고요 오늘 본문 역시 계속해서 그 이방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그런 죄에 대해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서 이방인의 죄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면서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어디에 대한 교훈들이 무엇인가 생각하고 또 교훈과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24절 말씀 제가 다시 읽겠습니다 24절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버려 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내버려 두시는 경우가 있다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버려 두사 이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내버려 두신다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내버려 두신다라고 말씀하시냐면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버려 두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하여금 그 자신의 마음의 정욕대로 마음대로 그 정욕대로 행하도록 그냥 내버려 두시는 그런 경우가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마음의 정욕대로 행하도록 내버려 두게 되면 그러면 여기 말씀처럼 더러움에 이렇게 처하게 된다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람이 자신의 마음의 정욕대로 이렇게 행하게 되면 그리고 그것을 자기 원하는 대로 하게 되면 이와 같이 더러움 가운데 처하게 된다라는 그런 말씀이십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사람의 마음에 대해서 이렇게 부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예림의 17장 9절 말씀에 마음물보다 심히
거짓되고 부패한 것이 마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다 보니까 사람이 자기 마음 속에 있는 이런 정욕이죠 욕망이죠 이것을 따라서 마음대로 마음대로 하게 되면 그러면 점점 부패하게 되고 그리고 점점 거짓된 그런 상태로 갈 수밖에 없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 결코 좋은 게 아니라라는 것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자기 있는 마음 그대로 따라서 하는 것이 결코 좋은 것이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해 보게 되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마음의 정욕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시는 그런 경우가 있다라는 것입니다 언제입니까 그럼으로 라고 하는 것은 그 앞에 있는 말씀을 이어받은 것이요 그럼으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에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버려 두사라는 것은 그 앞에 있는 상황과 연결되는 겁니다 그 앞에 있는 상황을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알만한 것을 저에게 보이셨다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만물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분명히 보여 알게 됐다 알게 하셨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하나님을 알 수 있게 하셨다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분명히 알게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그런 자들에 대해서 그런 자들이 바로 이렇게 될 거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자기 마음에 정욕대로 하도록 그냥 내버려 두신다라는 것입니다 그럼 그렇게 하나님께서 내버려 두게 되면 그건 결국은 점점 이렇게 부패하게 된다라는 거죠 그래서 이건 결코 좋은 게 아니라 이거는 재앙 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저주받는 바로 그런 상황
이라는 거죠 10편 8, 7편 12전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 마음에 강팍한 대로 버려두어 그 의미대로 행케하였다 하였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에 강팍한 대로 행하도록 그냥 내버려 두셨다라는 것입니다 마음대로 행하도록
강팍한 마음대로 행하도록 하나님께서 그냥 그냥 버려주셨다라는 것입니다 언제요?
내 백성의 내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하나님 말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데 그 말씀을 듣지 않고 계속 거부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알고 그들이 마음대로 행하도록 그냥 내버려 두신다는 것입니다 그럼 그렇게 되면 오늘 말씀처럼 점점 더러움에 처하게 되는 거죠
점점 부패하게 되고 점점 악해지는 그런 상태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바로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강팍하게 하셨다라는 그 의미가 바로 이런 뜻이죠 애구방했던 바로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고의적으로 강팍하게 한 게 아니라 바로가 강팍하게 하도록 하나님께서
그냥 내버려 두셨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냥 내버려 두시니까 바로가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 백성들에 대해서 악을 행하게 되죠 그러면 그럴수록 하나님의 심판은 더욱더 이제 커지게 되고 분명하게 되고 이제 나중에 그 애굽이 멸망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들어야 된다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데 그 말씀을 우리가 계속해서 거부하고 듣지 않는다고 한다면 이렇게 하신다는 겁니다 내버려 두신다는 마음대로 행하도록
결국 그것이 말씀드린 것처럼 복이 아니라 화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25절입니다 25절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곳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성경은
이 저희가 저희라고 하는 것은 바로 앞에 나오는 바로 그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저이요 그런데 25절에서는 그 저희를 가리켜서 이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꾼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방금 말했던 것처럼 이들은 위에서 말한 그런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해서 듣지 않은 그런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꾼다는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한다는 겁니까?
피조물을 조물조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게 된다 바로 우상숭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계속해서 하나님은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게 될 때 그들은 결국은 이런 우상을 숭배하는 그런 상태까지 가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가리켜서 성경은 즉 우상을 숭배하는 것을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상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은 없는 거거든요 우상이라는 뜻으로 우상으로 하는 것입니다 우상으로 하는 것을 숭배하는 것을 숭배하는 것입니다 우상으로 하는 것을 숭배하는 그 의미인데 우상으로는 바로 그렇게 거짓 것으로 숭배하는 것입니다 우상으로는 숭배하는 것을 숭배하는 것입니다
우상으로는 결국은 우상으로 하는 것입니다 우상으로는 우상으로 하는 것입니다 우상으로는 우상으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정하지 않는 그런 삶을 살아갈 때 우상을 섬기게 되는데 그 우상을 섬긴다고 하는 것은 결국은 거 짓 것을 따라가게 된다는 뜻입니다. 거짓된 것을. 거짓에 속한 것을 따르게 되고. 그러면 결국은 점점 거짓에
속하게 되는 거죠.
그러면 그런 삶을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자기도 알지 못하는 가운데 점점 거기에 거짓된 것을 따라가게 되고 마 치 그 거짓된 것이 진짜인 것이냐 이렇게 생각하면서 가게 될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상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처럼 중요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처럼 그 섬김의 대상 하나님 처럼 섬김의 대상이 되는 것이 다 우상인데요.
이렇게 우상을 따라가는 그런 삶을 살게 되면 이런 거짓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가령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처럼 이렇게 쫓아가는 것. 예를 들면 돈, 명예, 건강, 기타 등등.
이런 것들을 하나님처럼 따라가는 그런 삶을 살게 되면요.
거짓에 속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점점 본인이 거짓된 것에 이렇게 미혹된다는 것입니다.
진짜가 아닌데 참된 것이 아닌데 마치 그것이 참된 것인 것처럼 본인이 거기에 뭔가 속으면서 살아간다는 거예요.
디도 3장 3절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여, 순종치 않은 자여, 속은 자여, 각색 정역과 행락의 종로로 탄 자여 라고 말씀하십니다.
각색 정역이라는 것이 자기 욕심을 따라갔다는 뜻이고 각색 정역, 각색 정역, 각색 정역, 각색 정역, 행락의 종로로 탄 자여, 각색 정역이라는 것이 자기 욕심 을 따라갔다는 뜻이고 각색, 행락이 뭡니까? 결국은 즐기는 거 아니겠습니까?
쾌락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런 것들을 따라갔다는 겁니다.
그럼 이런 것들을 왜 따라갔다는 거예요?
이런 걸 따라가게 되면 그러면 자신에게 좋을 것 같아서 자신이 행복하게 될 것 같아서 이걸 따라갔다는 겁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걸 가르쳐서 속았다는 것입니다.
그걸 따라가게 되면 정말로 행복한 삶을 행복하게 될 거라고 생각을 하고 따라가는데 아니라는 것입니다.
거짓된 거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오늘날 하나님의 따라가는 그 모든 어떤 그런 대상들이 있다고 한다면 다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속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늘 말씀처럼 그런 것들이 결국은 거짓된 것에 속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디모덴조 6장 10절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돈을 사랑하미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 자기를 찔러또다.
돈을 사랑하는 것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에서 떠나게 되고 많은 근심으로 자기를 찌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거를 돈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그런 걸 사모하게 되죠.
그러면 그것을 더욱더 쫓아가게 되는데 문제는 그렇게 되면 될수록 더 자기를 찌른다는 겁니다.
자기를 찌른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스스로를 찌른다는 겁니다.
그런 삶을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고통이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왜 고통이 있는 삶은 왜 스스로가 그걸 쫓아가고 그걸 사모하게 되는 걸까요?
그게 바로 미혹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어리석은 그런 삶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삶을 살아가는 것은 분명히 어리석은 건데 그런 삶을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스스로가 고통이 되는데 그런데 사람들은 오히려 그거를 더 쫓아간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그거를 사랑하고 그걸 사모한다는 거예요.
왜 이런 일이 생긴다는 것입니까?
미혹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섬기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처럼 그 어떤 것을 따라가는 그 대상이 있다고 한다면 그럼 결국은 다 이것이 우상이 되는 것이고 우상을 섬기는 그런 삶을 살아간다고 한다면 이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이렇게 거짓된 것에 속해서 그 가운데서 미혹을 받게 된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겁니다.
그래서 그 과정 속에서 모른다는 거예요.
그러다 나중에 알게 됩니다. 마지막에.
비로소 마지막에 알게 되고 후회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뭐냐면 그 마지막에는 심판이니까요.
26절입니다. 26절입니다. 26절 말씀.
26절.
26절.
이를 이를 이루어 나아야 하나님께서 저희로 이루어 나아야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워 욕심에 내어 버려주셨으 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영리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들로 이루어 나아야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워 욕심에 대해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워 일
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 때문에 상당한 보험을 그 자신의 받았느니라.
이를 이루어 나아야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워 욕심에 내어 버려 두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부끄러운 욕심이라는 겁니다.
부끄러운 욕심이 뭘까요?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 주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영리로 쓰며 이건 동성애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는 이성 간의 이성에서의 어떤 그런 관계를 말하는데 여기 말씀을 보게 되면 이성이 아니라 동성이죠.
동성이 동성을 향해서 이런 그런 음욕을 갖게 되고 그리고 그것이 불일 듯 일어나는 어떤 이런 것은 결코 하나님께서 생각하신 그 창조의 모습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걸 동성애라고 말하죠.
성경은 이 구역성경에서는 이루어진다.
동성애를 가입되 동성애를 하나님께서 가증이 여기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있는 사람은 반드시 죽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레이기 말씀을 보게 되면 이런 것들이 왜 일어나게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까?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버려 두셨으니 부끄러운 욕심, 이런 상태에 계속 머물게 될 때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버려 둔다는 것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에 정욕대로 내어버려 두신다 이런 표현이지 않습니까?
그 마음에 자기 마음에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될 때 점점 어땠습니까?
점점 부패하게 된다고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그런 가운데 있을 때 여기 보면 부끄러운 욕심을 점점 부끄러운 욕심대로 점점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부끄러운 욕심이라는 것은 바로 타락한 어떤 성적인 욕망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런 상태가 되면 점점 이렇게 타락한 어떤 성적인 욕망을 추구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 결국은 여기 말씀처럼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이와 같은 악한 그런 성적인 범죄까지 이르게 되는 것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걸 가리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순리대로 쓸 걸 바꿔 영리로 쓰며 순리라고 하는 것은 이제 말 그대로 자연스럽 어떤 그런 것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게 아니라 영리라는 겁니다.
이거는 뭔가 정상이 아닌 거죠.
순리라고 하는 것이 뭔가 정상적이라고 한다면 영리라고 하는 것은 비정상이라는 것입니다.
결국은 이와 같은 상태에 있을 때 점점 비정상적인 그런 모습으로 된다라고 말씀하세요.
특별히 이런 어떤 성적 욕망이라는 것입니다.
결국은 사람의 마지막이 타락할 때 타락의 마지막은 이런 성적으로 타락하게 되는 것을 알 수 있고 그리고 그것이 동성애라고 하는 그런 상태가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상세히 보게 되면 소동과 고모라성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도 바로 이 동성애가 이 소동과 고모라에 만연되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오늘 말씀해 보면 그런 어떤 이런 욕망들이요.
27절 말씀하게 되면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 듯한다라고 됐 습니다.
음욕이요.
이게 정말로 어떤 불같이 일어나는 그런 상태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어땠습니까?
처음에는 부끄러운 욕심이 생겨요.
이제 이게 말했던 타락한 성적 욕망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어떤 그런 하나님을 섬기는 이런 삶 가운데 계속해서 있지 않게 될 때 결국은 자기 욕망을 따라가는 그런 삶을 살게 되면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은 그런 정상적인 욕망이 아니라 비정상적인 그런 욕망을 갖게 되는데 그게 성적인 타락된 그런 욕망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이 점점 커지게 되는 거죠.
그래서 이제 동성애로 이어지게 되고 그리고 그런 동성애의 상태에서 서로 향해서 음욕이 불일 듯하게 되는 정말 완전히 타락한 그런 상태까지 가게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정말 타락한 그런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만약에 이런 상태가 된다면 여기 해당되는 그 사람은 결코 행복할 수 없죠.
왜냐하면 사람은 양심이라는 게 있습니다. 양심.
아무리 악한 사람도 양심이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자기 마음 가운데 그래서 여기 말씀은 부끄러운 욕심이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부끄러운.
본인이 느끼기에 수치스럽다는 것입니다.
안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런 마음이 그런 수치스러운 마음이 계속해서 생겨나게 된다고 한다면 본인은 괴롭겠죠.
양심이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욕심이 욕망이 계속 일어나는 겁니다.
그러면 그런 욕망을 이제 채우려고 하겠죠.
어떻게든 그걸 채우려고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럼 이제 그 욕망을 이제 어떻게든 채우게 되면 이제 그 욕망은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더 커지게 될 거라는 겁니다.
그러면 더 커진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더 많이 그런 욕망을 더 따라가는 그런 삶을 살게 될 것이고 그러면 더 악한, 더 부끄러운 이런 삶을 살아가게 되면서 이제 이게 계속 악순환의 반복이 되는 거죠.
결국은 이런 악한 욕망의 종이 되는 그런 상태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욕망이 막 부릴 때 일어나는 어떤 그런 가운데서 마치 이제 갈증을 느끼고 그 갈증이 더욱더 커지는 그런 상태인 것처럼 그러면 이런 상태가 되면요 이제 정말 불행한 그런 상태가 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니 사망을 낳느니라 라는 말씀처럼요 이 욕망이라고 하는 것은 계속 커지게 됩니다.
이런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은 이런 악한 욕망도 이런 악한 욕망은 계속해서 커지게 되는 거죠.
그러면 이제 그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 열매가 더욱더 많아지게 될 것이고 더 커지게 될 것이고 그러면 이제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이 되는 거예요.
결국은 사망에 이르게 된다라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성경은 이방인의 모습이 바로 이렇게 된 이런 상태가 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방인.
결국 하나님은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을 알지만 그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께 순중하지 않으려고 하는 그런 가운데 있을 때 바로 이와 같은 상태가 되게 된다라고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들이 다 이렇게 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요 그런 가운데 지속될 때 그리고 그런 가운데 더 스스로의 욕망을 더욱더 추구하는 그런 상태가 된다면 이렇게 될 거라고 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거죠.
그러면서 성경은 27절 끝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희의 그릇 때문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의 받았느니라 결국 이와 같은 상태가 되면 그 자신의 이런 그릇된 즉 잘못 행하는 것에 대한 합당한 보응을 그 자신의 받았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받았다라고 하는 시제가요 헬라우에는 현재 진행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말은 뭐냐면 계속해서 진행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가 되면 그 보응이 그 대가가 그 사람이 계속해서 이렇게 임한다는 뜻입니다.
결국은 이런 상태가 될 때 이런 상황이 있을 때 그 자신이 계속 고통 가운데 있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공의 하나님께서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그런 죄악된 그런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은 결코 그것을 방관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자신이 계속해서 고통을 당하는 그런 상태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28절입니다.
28절에서 31절 말씀 읽겠습니다.
28절 28절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며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이,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근수근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을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악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랑 또한이라고 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이어서입니다.
그 앞에 상황과 연결되는 거죠.
그러면 위에 있는 그와 같은 상태가 될 때 28절에서는 또한 그들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두기를 싫어한다는 겁니다.
당연하겠죠.
그런 상태에서 하나님 두기를 마음에 하나님 두는 것을 싫어하게 되는 겁니다.
왜냐하면 이미 그 마음에는 우상이었습니다.
우상이 있습니다. 자신이 쫓아가는 그 우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우상이 마음에 있을 때 당연히 하나님을 그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게 되는 거죠. 문제는 그럴 때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버려 두신 다고 말씀하십니다.
상실한 마음이라고 하는 건요. 바르지 못한 마음, 합당치 못한 마음, 타락한 그런 마음이라고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결국은 합당하지 못한 마음을 갖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합당하지 못한 마음입니다.
합당하지 못한 마음이 있다 보니까 합당하지 못하게 행하는 거죠.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들로 하여금 합당한 그런 삶을 살기를 바라시려는 건데 그런 합당치 못한 그런 삶을 살아가게 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되면 결국은 합당하지 못한 열매를 맺게 되는 거죠. 합당하지 못한 열매.
히브리서 6장 7절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땅이 밭 가는 자들의 쓰기,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만일 가시와 엉겅키를 내면 버림을 당 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람이라.
하나님께서는 합당한 열매를 맺기 바라신다는 겁니다. 합당한 열매를 맺도록 하여금 계속해서 은혜를 주신다는 거죠.
마치 농사를 지을 때 비가 내리면 그 비를 통해서 합당한 열매가 맺어지고 그 합당한 열매를 통해서 농부가 기뻐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사람들로 하여금 합당한 일을 행하도록 하여금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신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당하지 못한 열매를 맺게 되면 그 마지막은 불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심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합당한 일을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합당한 열매를 맺으려면 합당한 일을 해야 되고 합당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합당한 마음을 가져야 되는데 오늘 말씀 보게 되면 합당한 마음을 갖지 못하게 된다면 그럼 합당한 일을 하지 못하게 되고 합당하지 못한 열매를 맺어가게 된다는 거죠.
어떨 때라는 겁니까?
마음의 하나님 두기를 싫어할 때라는 것입니다.
마음의 하나님 두기를 싫어할 때 그래서 마음의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하나님을 두돌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그래야 합당한 마음이 생깁니다.
그래야 합당한 일을 하게 되고 합당한 열매를 맺게 되는 거죠.
우리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우리 싫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에베 3장 17절에 말씀하신 얘기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으로 믿음을 가질 때 우리가 믿음 안에 있을 때 주님께서 우리 마음에 거하게 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을 가질 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거하시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는 반드시 믿음을 가져야 됩니다.
믿음으로 생각하고 그리고 믿음을 따라 생각하고 믿음을 따라 행하도록 하고 하는 그런 삶을 살아갈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계시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 마음에 계실 때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합당한 마음을 주신다는 거예요.
우리로 합당하게 행할 수 있는 그 마음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믿음이 필요합니다.
내가 믿음을 갖고 있으면 내가 믿음 안에 있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합당한 마음을 주신다는 거예요.
우리가 주신다는 거예요.
우리에게 주신다는 거죠.
그러니까 하나님께 합당한 일을 행하게 되는데 그 반대인 경우에 다시 말하면 우리의 마음이 합당한 마음이 없을 때 우리는 그렇게 행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내가 삶 속에서 하나님 앞에 합당하지 못한 그런 어떤 가운데 있다고 생각되신다면 빨리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내가 회복해야 됩니다.
내가 지금 믿음으로 생각하고 있고 내가 믿음을 따라 생각하고 내가 믿음을 따라 행하려고 하는지를 살펴서 내가 그렇지 못하다고 한다면 빨리 이렇게 믿음으로 전환시켜야 됩니다.
믿음을 따라 생각하고 믿음을 따라 행하도록 하려고 해야 됩니다.
그러면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즉 주님께서 우리 마음에 거하신다고 말씀하세요.
그러면 그때 합당한 마음이 우리 마음에 생깁니다.
10편 119편 11절에서는 내가 죽게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요.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둘 때 우리가 범죄하지 않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말씀을 우리 마음에 두어야 된다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우리 마음에 두어야 돼요.
하나님의 말씀.
마음이 두려면 내가 말씀을 귀로만 들으시면 안 됩니다. 말씀을 귀로 듣고 그 말씀을 내 마음에 새기도록 하 셔야 됩니다. 그래야 말씀이 내 마음에 기록이 되고 내 마음에 두게 되는 거죠.
저는 말씀을 내 마음에 새기도록 하기 위해서는 새기는 건요. 이거는 한두 번 되는 게 아니죠. 마치 어딘가 에 뭔가를 새기기 위해서는 계속 뭔가 파고 새기고 하는 그런 작업이 들어가는 것처럼 하나님 말씀을 내 마음에 새기려면 말씀을 두려면 말씀을 계속 반복적으로 생각하고 말씀을 따라 행하려고 하고 그런 가운데에 비로소 말씀이 내
마음에 새겨지게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결국은 말씀이 내 마음에 두는 것이고 그럼 결국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계시게 되는 그런 상태가 되면서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합당한 마음을 주시는 거죠.
하나님께 합당한 일을 행할 수 있는 그런 마음들을.
오늘 본문에는 이방인에 대해서 계속 말씀하십니다. 이방인의 죄. 하나님을 믿지 않은 그런 사람들의 어떤 그런 죄에 대해서 말씀하시는데요.
보면 공통죄이 뭡니까? 하나님을 믿지 않은 사람들의 성경은 어떤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우상승배하는 자들로 말씀하십니다. 우상승배하는 자들이요.
결국 성경은 하나님을 안 믿는 자들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냐면 우상승배하는 자들이라고 말씀하고 있다는 것 입니다.
당연하죠.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두 종류로 보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고 하나님을 안 믿는 자들이죠.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백성인이고 하나님을 안 믿는 자들이 이방인들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 이방인들 가리켜.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자들은 이제 우상을 승배하는 그런 자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우상을 승배한다라고 하는 것이 자기를 위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었죠.
이 우상승배의 본지는 자기를 위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10개명의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성경이 말씀하시는 이방인이라고 하는 이 사람들의 모습이 어떤 거냐 이들이 우상승배하는 사람들인데 결국은 이들은 자기를 위하는 사람들이다라는 것입니다.
자기를 섬기는 사람들이 라는 겁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를 섬기는 사람들이 이방인이라는 거예요.
그리고 그게 우상승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삶의 결과가 아까 말했던 이런 거라는 겁니다.
자기를 섬긴다라고 하는 게 바로 우상승배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방인이 다른 게 아니라요.
자기를 섬기는 게 이방인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섬기는 게 뭡니까?
자기를 위하는 겁니다.
가장 먼저 자기를 위하는 겁니다.
가장 1순위가 자기라는 거예요.
이게 이방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럼 이방인의 반대가 뭡니까? 하나님을 섬기는 거지 않습니까? 그럼 하나님을 섬긴다는 뜻이 뭐예요? 이방인 의 반대입니다. 나를 섬기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거라는 겁니다.
하나님을 가장 우선으로 섬기고 하나님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 그런 삶을 살아가는 게 바로 하나님을 섬 기는 것이고 이게 하나님의 백성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이방인의 이 삶의 결국이 이와 같은 이런 불행하고 그리고 죄 가운데 있다� ��는 말씀 아니겠습니까?
결국은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삶을 살게 될 때의 삶은 결과는 이렇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세상에 이런 사람들의 모습이 이렇게 되는 이유는 바로 자기를 섬기는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 이라는 것이고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그런 자들이라는 거죠.
그럼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자기를 섬기는 삶이 아닌 것이고 자기를 섬기는 자와는 정반대의 삶이 하나님을 섬기는 그런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늘 하나님을 섬긴다라고 하는 것은 말씀드린 것처럼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이어야 된다는 겁니다 .
그리고 그럴 때 비로소 이방인의 삶과의 정반대가 되는 삶.
즉 이런 죄 가운데 가하고 점점 그 죄 가운데 들어가는 그런 삶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거룩한 그런 삶을 살아가는 이런 하나님의 백성의 합당한 삶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다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32절입니다. 32절 말씀.
저희가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는 이라 성경은요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 즉 29절, 30절, 32절에서 말씀하는 이 구체적인 바로 이와 같은 어떤 일들을 행하는 겁니다.
이런 일들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라는 이 말씀 보면 여기에 해당하는 사람은 사형 하나님께서 사형이라고 정하셨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 지금 해당되는 이 죄를 범한 가운데 있을 때는 사형이라고 하나님께서 정했다는 겁니다.
자, 그럼 보면 구체적으로 나열된 죄들 가운데는 아, 정말 이건 사형에 해당되는 그런 죄들도 있어 보이는데 그런데 어떤 죄는 오, 이게 사형에 해당되는 죄인 거야?
라고 생각되는 그런 것들도 있죠.
예를 들면 29절에 보면 수근수근한 자입니다.
수근수근한 자예요.
그리고 30절에 말씀하게 되면 자랑하는 자입니다.
부모를 거역하는 자입니다.
31절에 보면 우미한 자입니다.
우미한 자, 어리성은 자.
이들이 하나님의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이 정하심에 해당되는 이런 죄라고 말씀하세요.
무슨 뜻입니까?
여기 해당되지 않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다 여기 해당된다는 거예요.
그럼 결국은 사형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어떤 그 공의 원칙들을 한다고 한다면 여기에 해당되는 죄를 범한 사람은 다 사형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이런 가운데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런 가운데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죽는 겁니다.
왜냐하면 왜냐하면 이제 재판을 받았습니다.
사형이라고 하는 그런 죄를 이제 선고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사형죄, 사형을 이제 사형이 집행되는 것을 기다리는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그 가운데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있다 한다면 이제 거기서 죽는 겁니다. 죽음이 나오는 거죠.
죽으면 이제 더 이상 그 죄값을 물을 필요가 없으니까요.
마찬가지로 세상에 모든 사람이 다 죄 가운데 있고 죄 가운데 있다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죄 가운데서 결국은 하나님의 어떤 그런 영원한 형벌이라고 하는 그런 사형이죠.
영원히 죽는 하나님과 영원히 단절되는 그런 다시 말하면 지옥의 형벌을 피할 수가 없는데 그 가운데서 유일하게 그 방법 거기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죽는 겁니다. 죄 가운데서 죽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것을 위해서 세상에 오셨고 죽으셨다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죽어주셨다라고 말씀하시고 이것을 가리켜 구원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이걸 가리켜서 복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통해서 우리가 구원받게 되고 또한 구원받은 삶을 살게 되고 이제 또한 영원한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 라는 것이 바로 복음이라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얻게 된 그 복음이라는 거죠.
그래서 왜 예수님께서 아니 왜 하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이렇게 십자가에서 죽으셨는지 이제 바로 그 이유가 바로 우리 사람들의 우리의 죄 때문이다 라는 것을 이제는 성경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죄들에 대해서 이제 바울사도는 계속해서 이제 증거하면서 한편으로는 한편으로는 한편으로는 우리 사람들이 얼마나 죄 가운데 있는지를 드러내고 또 한편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하나님의 그 극률하심 하나님의 이 구원하시려는 그 하나님 뜻이 얼마나 또 큰 것인가를
또한 동시에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복음이라고 하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우리에게 알게 해줍니다.
이런 시간들을 통해서 더 복음을 이해하게 되고 이 복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가 죄 가운데 속해 있었던 그런 자아였다는 것을 우리가 인정해야 된다라는 것입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예수님의 복음을 더욱더 깨닫게 되니까요.
그러면 찬송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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