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교회01
더 나은 믿음으로 건너가라 안식일 저녁예배
유요한 · 히1:1-2
제작일 2026.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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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믿음으로 건너가라 (히 1:1-2) 2026.07.31 안식일 저녁예배 유요한 목자님 (히 1:1-2) [1]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2]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http://tjc.or.kr
AI 설교 정리
설교는 히브리서 1:1-2를 바탕으로 말세와 예수님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신앙의 성장과 변화를 다룬다.
본문히브리서 1:1-2
- 설교는 히브리서 1:1-2를 바탕으로 말세와 예수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 신앙의 성장과 변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인도하신다는 점이 강조된다.
-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게 드러나며, 신앙의 중심은 예수님에 대한 깊은 이해와 신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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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와 찬송
- 10:00에 찬송 377장이 시작되며, 1~3절을 부른 후 간주를 듣고 4~5절을 부른다.
- 찬송 489장과 342장이 차례로 소개되며, '주의 힘을 입어 주시겠네' 등의 가사가 나온다.
- 찬송 후 '아멘'이 반복되고, 예배 준비를 위한 박수가 이어진다.
설교 내용
- 히브리서 1:1-2를 바탕으로 '더 나은 믿음으로 건너가자'는 주제로 설교가 시작된다.
- 아브라함의 신앙은 '건너가는 사람'으로 표현되며, 신앙의 성장과 변화가 강조된다.
- 하나님은 구약 시대에는 선지자들을 통해, 신약 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말씀을 전하셨다.
- '말세'는 예수님의 오심이 시작된 마지막 시대를 의미하며,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이다.
-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전달하신 분으로, 하나님과 직접적으로 하나이시다.
-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며, 신앙의 중심은 예수님에 대한 깊은 이해와 신뢰이다.
- 하나님은 신앙의 더 깊은 곳으로 나아가라고 말씀하신다.
기도와 마무리
- 성령의 충만과 진리의 깨달음을 간구한다.
- 기도와 안수를 요청하며, 예수님 이름으로 마무리한다.
- 예배가 끝나고, 여름방학 기간임을 언급하며 박수장 자매와 하진의 방문을 환영한다.
전사(자막) 전문▼
이 시각 세계였습니다. 이 시각 세계였습니다. 이 시각 세계였습니다. 이 시각 세계였습니다. 이 시각 세계였습니다. 이 시각 세계였습니다. 이 시각 세계였습니다. 이 시각 세계였습니다. 이 시각 세계였습니다. 이 시각 세계였습니다. 이 시각 세계였습니다. 이 시각 세계였습니다. 이 시각 세계였습니다. 이 시각 세계였습니다. 이 시각 세계였습니다. 이 시각 세계였습니다. 이 시각 세계였습니다. 이 시각 세계였습니다. 이 시각 세계였습니다. 이 시각 세계였습니다. 감사합니다. 한글자막 by 한효정 한글자막 by 한효정 한글자막 by 한효정 한글자막 by 한효정 한글자막 by 한효정 한글자막 by 한효정 한글자막 by 한효정 한글자막 by 한효정 한글자막 by 한효정 한글자막 by 한효정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찬송 드리겠습니다. 첫 찬양은 찬송과 377장입니다. 1, 2, 3절 하시고 간주 듣고 4절, 5절 이렇게 하시겠습니다. 한글자막 by 한효정 예수님의 주님의 주님 주시느라 의지하고 순종하는 자의를 예수 안에 즐겁고 복된 길이로다 남의 짐을 지고 슬픔 위로하며 추가 상금을 주시겠네 주를 의지하며 순종하는 자를 항상 축복해 주시리라 의지하고 순종하는 길을 예수 안에 즐겁고 복된 길이로다 우리 받은 것을 주께 다 드리며 그 신 사랑을 깨닫겠네 주를 의지하며 순종하는 자를 은혜 풍성 깨어시리라 의지하고 순종하는 길을 예수 안에 즐겁고 복된 길이로다 주의 힘을 입어 말씀 잘 비우고 주를 모시고 살아가세 주의 힘을 입어 주시겠네 주의 힘을 입어 주시겠네 주의 힘을 입어 주시겠네 주의 힘을 입어 주시겠네 주의 힘을 입어 주시겠네 주의 힘을 입어 주시겠네 주의 힘을 입어 주시겠네 주의 힘을 입어 주시겠네 주의 힘을 입어 주시겠네 주의 힘을 입어 주시겠네 주의 힘을 입어 주시겠네 주의 힘을 입어 주시겠네 주의 힘을 입어 주시겠네 주의 힘을 입어 주시겠네 주의 힘을 입어 주시겠네 주의 힘을 입어 주시겠네 주의 힘을 입어 주시겠네 주의 힘을 입어 주시겠네 아멘 다음 찬양은 찬송가 489장 찬양 드리겠습니다 찬양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약한 마음 낙심하게 될 때에 내려주신 주의 복을 세어라 주의 크신 복을 내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보아라 그 신복을 내가 알리라 받은 복을 내가 알리라 신복을 세어보아라 주의 그 신복을 내가 알리라 세상 근심 걱정 너를 누르고 십자가를 등에 쥐고 나갈 때 주가 내게 주신 복을 세어라 두려움 없이 항상 찬송하리라 받은 복을 세어보아라 그 신복을 내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보아라 주의 그 신복을 내가 알리라 세상 권세 너의 앞길 막을 때 주만 믿고 낙심하지 말아라 천사들이 너를 보호하리니 염려 없이 앞만 보고 나가라 받은 복을 세어보아라 그 신복을 내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보아라 주의 그 신복을 내가 알리라 아멘 마지막 찬양으로 저도 344장을 준비했는데요 똑같은 곡이어서 342장 찬양 드리시겠습니다 마지막 곡입니다 어려운 일 당할 때 나의 믿음 적은 나 의지하는 내 주를 더욱 의지합니다 세월 지나갈수록 의지할 것뿐일세 아무 일을 만나도 예수의 의지합니다 성령께서 내 맘에 밝히 비춰주시네 주신의 인도하심 따라서 주 만 의지합니다 세월 지나갈수록 의지할 것뿐일세 아무 일을 만나도 예수 의지합니다 밝을 때의 노래며 얻을 때의 기도와 위태할 때 도움을 죽게 간구합니다 세월 지나갈수록 의지할 것뿐일세 아무 일을 만나도 예수 의지합니다 생명을 쓸 동안에 예수 의지합니다 천국 올라가도록 의지할 것뿐일세 세월 지나갈수록 의지할 것뿐일세 아무 일을 만나도 예수 의지합니다 아멘 아멘 아멘 이상으로 찬송 마치겠습니다 경건한 예배를 위해서 마음 준비하시면서 함께 목도하겠습니다 박수 박수 박수 박수 박수 박수 박수 박수 박수 박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무더운 한주를 보내시느라 우리 성부님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복되고 거룩한 안식을 통해서 영육간에 참된 쉼을 얻는 복된 날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 시간 예배도 찬송으로 또 기도로 또 말씀을 통해서 주님께 영광 돌리고 또 은혜받는 시간 될 수 있도록 다같이 성령의 인도를 구하겠습니다.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려옵나이다.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르바이트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음성 아르바이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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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은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지 않습니까? 믿음의 사람이라는 것은 어떤 사람인가? 바로 건너가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익숙한 자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 자리에 멈춰있는 것이 아니라 건너가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이 이와 같아야 됩니다. 처음 예수님을 알고 하나님을 믿게 된 그 자리에 가만히 머물려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제는 건너가야 됩니다. 염려해서 신뢰로 건너가야겠죠? 그리고 자기 중심적인 삶에서 하나님 중심적인 삶으로 건너가야 됩니다. 또 어린 신앙에서 미성숙한 신앙에서 성숙한 신앙으로 건너가야 되고요. 우리가 끊임없이 이렇게 건너감을 통해서 변화하고 성장해야 됩니다. 그래서 이번 히브리서 강의를 통해서 우리가 더 나은 믿음으로 건너가자. 더 나은 믿음으로 건너가자라는 주제를 가지고 히브리서 말씀을 쭉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 히브리서를 공부하게 될 텐데 저도 공부해야 되고 저도 이제 말씀을 전하려면 먼저 공부를 해야겠죠. 저도 공부하고 여러분들과 나누면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더 깊은 신앙으로 함께 건너갈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먼저 우리 1절 말씀을 같이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히브리서 1장 1절 말씀 1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옛적의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히브리서 말씀을 보시면 어떻게 시작하는 것을 볼 수 있냐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라는 거예요 이 점은 우리가 주목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침묵하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무 말씀 없으신 하나님이 아니라 어떤 분이라는 거예요? 말씀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만약에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고 한다면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알 수 있을까요?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절대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또 하나님이 어떤 것을 기뻐하시는지 또 하나님이 어떤 것을 싫어하시는지 또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또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이런 것에 대해서 우리가 알 도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신앙이라는 것은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을 우리가 스스로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에 대해서 들음을 통해서 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위해서 말씀하십니다 세상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창세기부터 하나님께서는 이런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처음에 말씀하시죠? 말씀을 통해서 세상을 만드십니다 빛이 있으라 하니까 빛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것을 우리가 알고 있죠 그리고 그렇게 만든 세상 가운데에서 아담과 하오가 범죄하고 타락하게 되지 않습니까? 그때 아담과 하오가 죄를 짓고 하나님을 피해서 숨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먼저 아담과 하오를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시죠?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먼저 죄인에게 말씀을 하십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항상 먼저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먼저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분이죠 그래서 히브리서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라는 이야기를 먼저 합니다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셨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조금씩 조금씩 조금씩 그리고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말씀하셨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다양한 방법으로 말씀하셨죠 때로는 예언을 통해서 말씀하시고 때로는 꿈을 통해서도 말씀하시고 때로는 비유를 통해서도 알려주시기도 하고 때로는 개인의 삶을 통해서도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또 때로는 나라의 역사를 통해서도 말씀을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런 일들을 통해서 우리가 깨달을 수 있도록 조금씩 조금씩 차근차근 알려주신다라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알아나가게 됩니다 길의 인도함을 받게 된다라는 것이죠 이것은 마치 어떤 것 같냐면 이렇게 한번 생각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예배를 마치고 나면 우리가 차를 타고 집에 돌아가지 않습니까? 지금 깜깜한 밤이니까 시동을 켜고 어떻게 해야 돼요? 라이트를 이렇게 탁 켜야 됩니다 라이트를 탁 키면 앞이 탁 보이죠? 그런데 이 앞길이 교회에서 출발할 때 집까지 가는 길이 한 번에 다 보이지 않습니다 라이트를 킨다고 해서 그 빛이 집 문 앞까지 탁 펼쳐지지 않죠? 우리 바로 앞길을 비춰줍니다 그럼 우리가 그 빛을 따라서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좀 앞으로 나가면 또 앞이 비춰지고 앞으로 나가면 앞이 비춰주고 그래서 굽이굽이 집을 향해서 나아가게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는 거예요 특별히 구약시대, 옛적이에요 구약시대에는 이렇게 선지자들을 통해서 또 아브라함에게, 또 모세에게, 또 다윗에게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뜻을 보여주셨다라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부족해서가 아니라 끝을 몰라서가 아니라 사람을 인도하시는 방법입니다 차근차근 알아 나가게 하시죠 그런데 히브리서에서 이제 그 모든 게시를 완벽하게 보여주셨다라는 것을 이야기를 합니다 2절의 말씀을 보시면 오늘은 앞부분만 볼 텐데요 2절의 말씀을 보시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하나님께서 먼저 말씀하셨죠 그리고 2절에 보시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라는 것입니다 아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라는 그런 의미입니다 이 말씀이 아주 신기한 말씀인데요 1절에서 하나님께서 옛적에 구약에는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셨다라고 설명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제는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해서 말씀하신다라는 것입니다 아들을 통해서 말씀하신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그냥 시간이 흘렀다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완벽하게 말씀하셨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완벽한 게시를 우리에게 주셨다라는 그런 표현입니다 그런데 그 앞에 눈에 띄는 표현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무엇이냐면 이 모든 마지막 날이라는 뜻입니다 이 모든 마지막 날에는 이라는 말이죠 마지막 날에 아들로 예수님을 통해서 말씀하셨다라는 거예요 마지막 날에 아들을 통해서 말씀하셨다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날이 어떤 날이라는 겁니까? 어려우신가요? 벌써부터 어려우면 안 됩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마지막 날에 아들을 통해서 말씀하셨다고 했어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고 한다면 그날이 언제예요? 마지막 날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말씀하신 그때가 바로 이 세상의 마지막 때라는 것입니다 마지막 날이라는 거예요 이 마지막 날을 우리가 두 글자로 뭐라고 표현합니까? 말세라고 표현하죠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세에 오셨다라는 의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 중에 하나가 말세라고 이야기를 하면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것들이 있습니다 뭘까요? 지진이 나고 전쟁이 나고 기근이 생기고 말세에는 이런 혼란스러운 날이야 그것이 말세야라고 생각을 하죠 맞습니다 하지만 이 말세가 먼 미래에 오는 그런 미래의 날이 아닙니다 여기에 보시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예수님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마지막이라는 이 말이 에스카토스라는 단어로 되어 있는데 이런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단어가 마지막이라는 뜻입니다 최후 혹은 끝이라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이 단어가 이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게시록에 가면 요한 게시록에 가면 어떻게 번역이 되냐면 예수님께서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그러죠 시작과 끝이라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여기서 나중이 이 마지막 때입니다 같은 단어예요 같은 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이 마지막이고요 그것이 이제 끝이죠 끝을 이야기합니다 끝 그리고 나래 근데 이 나래라는 이 단어가 원문에는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하루가 아니라 여러 날들이라는 거예요 마지막 날들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라는 것입니다 왜 복수를 사용했을까요? 이것은 이 말세가 하루에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떤 여러 날들, 하나의 시대를 의미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신 때가 이 세상의 마지막 날들이라는 의미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예를 들어서 이런 거예요 예를 들어서 여러분들 드라마 좋아하시죠? 벌써 막 절레절레 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얼굴이 막 웃음이 피어오르는 분들이 있는데 어떤 드라마가 재밌습니까? 어떤 드라마 좋아하세요? 아니에요? 드라마가 보면 보통 여러 부로 되어있지 않습니까? 회차가 여러 개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서 16부작이다 그러면 16회에 하나의 이야기가 쭉 이어집니다 드라마를 보면 전체를 놓고 보면 이 전체에 흐름이 있지 않습니까? 이야기의 시작이 있고 그리고 그 이야기가 점점 쌓여 나가서 어떤 중요한 사건이 나오고 그리고 그 이야기가 해결이 되면서 마무리가 됩니다 그래서 이 시작과 어떤 중간과 끝이 쭉 연결이 됩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16부작이라고 하면 16회가 마지막 회죠 이것을 우리가 최종회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그 많은 이야기들 가운데 마지막 회가 있죠 그런데 이 마지막 회 안에도 보면 그 마지막 회를 보면 여기 안에도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그래서 16화 마지막 최종회를 틀면 이야기가 시작이 되어서 그 가운데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오고 사건들이 나오고 그리고 마지막에 짠 하고 엔딩 마지막 장면을 나오는 것을 통해서 이 드라마가 이렇게 딱 끝나게 됩니다 그래서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오신 이 때는 마지막 끝에 있는 날들이라는 거예요 이것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사건들이 있는 날들 가운데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예수님 이후에 예수님이 오신 이후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바로 이 마지막 회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말씀하시는 때가 바로 마지막 회가 상영되는 그런 시기라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지금 이 마지막 회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 회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신 이후를 이 세상의 전체적인 역사를 쭉 놓고 봤을 때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고 했을 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때가 바로 최종회입니다 마지막 회가 이제 시작이 된 거예요 그때에 이제 여러 가지 일들이 또 있습니다 그 안에 여러 일들이 일어나게 돼요 어떤 일들이 있을까요? 어떤 일들이 있습니까? 우리 사도행전 2장 17절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이런 일들이 마지막 회 안에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하지만 아직은 엔딩은 아니에요 아직 딱 끝난 건 아닙니다 우리는 이제 마지막 회 안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죠 사도행전 2장 1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예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오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이것은 이제 요엘 선지서에 있는 내용을 베드로가 인용을 한 것이죠 여기 보시면 말세예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세예가 바로 에스카토스 아까 그 단어가 나옵니다 마지막 날에 이런 일이 있을 거라는 거예요 이 일이 어떤 일입니까? 오순절날 이른비 성령이 강림하고 초대 교회가 세워지는 이 때이죠 이때 베드로가 요엘서를 인용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지금이 바로 이 말세다 구약의 선지자가 예언한 이 말세가 이때다 라고 베드로가 이야기를 한 것이죠 또 고린도전서 10장 11절의 말씀을 보시면요 고린도전서 10장 11절 말씀을 보시면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여기서 바울사도가 우리가 말세를 만났다 라고 표현을 합니다 그래서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에게 우리가 지금 말세를 살고 있다 마지막 회를 보고 있다 라고 이야기를 한 겁니다 또 요한일서 2장 18절의 말씀을 보시면요 요한일서 2장 18절의 말씀을 보시면 사도 요한이 이야기를 하죠 아이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라 적 그리스도가 이르겠다함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 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 사도 요한이 우리가 지금 마지막 때를 살고 있는 것을 안다 최종의다 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세를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 말세가 오지 기다린 게 아니라 우리가 지금 어느 때로 살고 있는 거예요? 마지막 때 이 말세를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완전한 엔딩 장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아니 옛날부터 계속 말세다 말세다 한 거 아닙니까 지금 누구예요? 베드로도 그렇고 사도바울도 그렇고 예수님도 그렇고 지금 2000년 전에 일인데 그때부터 말세다 말세다 그러고 또 옛날에도 사람들이 옛날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도 아이고 말세다 말세야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언제가 말세냐? 지금도 그냥 말세라고 말만 하는 거 아니냐? 이렇게 생각을 할 수가 있죠 그런데 자긴 그냥 기분에 따라서 아니 그냥 말세다 저 꼴을 보니까 말세다 이것이 아니라 기준이 있어야 됩니다 성경은 우리가 마지막 때를 살고 있다고 이야기하죠 예수님이 오시고 예수님이 오셔서 말씀하시면 이때가 바로 마지막 회다 라고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도 이제 정말 끝 마지막 회 가운데서도 끝부분이지 않습니까? 그 마지막 때가 되면은 그때의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다 라고 설명을 합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죠 말세의 끝부분이 있습니다 그때가 언제냐? 이 말세의 끝부분이 있는데 그때가 바로 언제냐면은 늦은 비 성령을 통해서 이 땅에 참교회가 세워지게 되면은 그때가 이제 끝입니다 마지막 회의 끝부분이 된다라는 것이죠 요한계시록 7장 2절 3절 말씀을 찾아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7장 2절 3절 말씀 제가 읽겠습니다 또 봄에 다른 천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대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내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가로돼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헤하지 말라 하더라 이것은 이제 사도 요한이 개시로 본 내용이죠 사도 요한이 당시에 자기 이후로 자기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 그 시대 이후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 본 것입니다 앞으로에 일어날 일이라는 거예요 사도 요한을 기준으로 해서 앞으로의 일 어떤 일이 있게 됩니까? 천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와서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치죠 도장을 이렇게 탁 탁 찍는 그 일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라는 거예요 이 인을 찍는 것은 어떤 일을 이야기합니까? 성령을 받는 것입니다 어디에 나옵니까? 에베소서 1장 13절의 말씀을 보시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그러죠 약속의 성령으로 인을 이렇게 친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 일은 말세, 마지막 날들 가운데서도 마지막 부분, 그 끝부분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시는 일입니다 성령을 부어주시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이 게시록의 시대입니다 여러분들이 전에 요한 게시록 말씀을 배우셨을 텐데 배우신 말씀을 기억을 해보시면 이 때가 언제냐면 첫 번째 인이 떼어지고 흰말이 등장하는 때입니다 바로 늦은 비 성령으로 이 땅에 참 교회가 세워지는 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천사가 성령을 붓고 그들이 교회를 이루는 말세에 늦은 비 성령이 내리는 이 때를 이야기하죠 그래서 이 일이 일어나면은 아, 말세구나, 마지막 날이구나 라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대로 사도 요한 이후에 시간이 이제 2000년 가까이 흘러서 1917년에 늦은 비 성령이 내려서 참 예수교회가 세워지는 것을 통해서 이 말씀이 이루어졌죠 그래서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입니다 마지막 말세 가운데서도 끝, 말세를 이야기합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말세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이야기를 해야겠죠 마음대로 이야기를 하면 안 되는데 그래서 우리는 말세 가운데 끝부분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이제 정말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삶이 되어야 됩니다 정말 끝이 일을 얻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가 하루를 살면서 우리가 직장에서 일을 하면서도 그렇고 또 학교에서 공부를 하면서도 그렇고 또 가정에서 생활을 하면서도 그렇고 예수님께서 곧 오신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모든 것이 끝난다 라는 그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이 말세를 살아가는 성도들의 그런 삶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말세에 하시는 일이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이것이 다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세에 하나님께서 하신 큰 일이 뭐라는 거예요? 바로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통해서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을 통해서 말씀하신다는 것이죠 이것이 말세의 시작입니다 이것이 말세의 핵심입니다 그래서 말세에 여기서 전쟁이 나고 핵전쟁이 나고 이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말세에 가장 분명하고 가장 밝은 빛으로 우리에게 다 이렇게 앞길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죠 예수님이 오셔서 명확하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오셨을까요? 예수님이 왜 오셨을까요? 이것은 마치 이것과 같습니다 한 집에 아빠가 예를 들어서 먼 나라로 술장을 간 겁니다 배 타고 몇 개월 동안 나간 거예요 우리 교회도 그런 분들이 계시죠? 아빠가 멀리 술장을 나갔습니다 집에는 어린 자녀가 있겠죠? 그래서 아빠가 연락을 합니다 아빠가 전화도 하고 문자도 보내고 카톡도 보내고 영상통화도 하고 이렇게 하지 않습니까? 자녀는 그것을 통해서 아버지가 잘 계시는구나 또 아버지가 아버지의 사랑을 그것을 통해서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빠가 딱 돌아온 거예요 현관문을 딱 열고 아빠가 왔습니다 그러면은 와 아빠가 왔다 이제 아빠를 진짜 만날 수 있는 것이죠 그렇다고 한다면 문자가 잘못된 겁니까? 문자가 틀린 겁니까? 아니면 전화, 영상통화가 아무 의미가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마치 이것과 같다는 거예요 아빠가 직접 오게 되면 모든 것이 명확해진다는 것입니다 가장 분명한 것이라는 거죠 그래서 구약의 선지자들 또 예언들 이런 것들은 마치 하나님의 편지와 같습니다 글로 이렇게 보내준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메시야가 올 것이라는 것을 기다리게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편지가 아니라는 거예요 예수님이 직접 이제 띵동하고 현관문을 열고 딱 이제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장 14절의 말씀을 보시면 말씀이 육신에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심에 그러잖아요 그 말씀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하시지 않습니까? 그 말씀이 육신에 되어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게 되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책으로 온 것이 아니라 글로 온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서 직접 오신 것이죠 그래서 예수님께서 빌립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요한복음 14장 9절의 말씀을 보시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나를 본 자가 하나님 아버지를 본 것이다 라고 말씀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에 대해서 그냥 설명하시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을 전하는 분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 자신이죠 하나님 그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가장 명확하게 오셔서 우리에게 보여주셨다라는 거예요 이것을 히브리서에서 아들을 통해서 말씀하셨다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마지막 날에 아들을 통해서 말씀하셨다라고 표현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종종 우리가 하나님 저에게도 말씀 좀 해주세요 제가 하나님 말씀 한번 들어봤으면 좋겠어요 그러잖아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말씀을 다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책으로 전해진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이죠 바로 예수님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은 모호한 것을 그냥 쫓아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신비한 체험을 해야 되는 게 아니에요 바로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분명히 알아가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더 분명히 알면 알수록 하나님의 마음을 더 깊이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고 알게 되면 우리가 더 많이 사랑할 수 있게 되겠죠 비로소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이 히브리서의 시작은 우리를 히브리서는 우리를 건너가게 해주는데 그 시작에 있어서 우리를 예수님께로 이렇게 딱 인도를 합니다 그래서 선지자를 보지 말고 율법을 보지 말고 혹은 뒤에 나오지만은 천사를 보지 말고 바로 예수님을 봐라 예수님을 봐라 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히브리서가 우리에게 열어준 첫 번째 문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우리에게 더 열심히 믿어라 더 열심히 봉사해라 이런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히브리서는 우리에게 먼저 이야기를 합니다 첫 번째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는 거예요 두 번째로 마지막 때에 아들을 통해서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래서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에 대해서 더 깊이 알아가게 되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님에 대해서 더 분명히 알게 하기 위해서 다른 선지자를 보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완벽하게 보여주시는 방법이죠 그래서 하나님 자신이 육신으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에 대해서 더 분명히 알아가야 됩니다 하지만은 지식적으로 아는 것에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정작 성경에 대한 지식은 쌓여가는데 예수님에 대해서 아는 깊이가 자라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것저것 들은 것은 많아지는데 예수님에 대해서 명확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어떠십니까? 여러분 어떤 것 같으세요? 그래서 신앙의 성장은 얼마나 많이 아느냐가 아닙니다 신앙의 성장은 얼마나 교회를 오랫동안 왔다 갔다 했느냐 그게 아닙니다 바로 예수님에 대해서 얼마나 뚜렷하게 보느냐입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얼마나 바르게 아느냐라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이것을 사모해야 됩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더 깊이 알기를 더 명확하게 알기를 우리가 사모해야 됩니다 마지막으로 빌리포서 3장 10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빌리포서 3장 10절 말씀 빌리포서 3장 10절 제가 읽겠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의 참여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라고 이야기합니다 바울 사도의 말이죠 바울 사도가 위대한 인물이지 않습니까? 누구보다 복음을 많이 전하고 아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가 뭐라고 이야기하면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의 참여함을 알려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에 대해서 여전히 더 알려한다는 거예요 내가 더 예수님에 대해서 알려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에 대해서 바울보다 더 많이 알까요?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는 더욱더 깊이 알기를 사모해야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평생 동안 알아가도 다 알 수 없는 분입니다 우리가 히브리서 강의 설교 얼마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1년이 될 수도 있고 2년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좀 긴 호흡으로 히브리서 말씀을 쭉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이 은혜를 좀 체험을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성령에 대한 지식이 조금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에 대해서 내가 좀 더 깊이 알게 됐다 예수님에 대해서 더 신뢰하게 됐다 내가 더 예수님을 사모하게 되었다 라는 그런 단계로 나아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가 히브리서를 배우는 목적입니다 여러분 마지막으로 한번 머릿속으로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높은 산을 오를 때 높은 산을 오를 때 어떤 사람이 제일 위험할까요? 이제 막 등산을 시작하는 사람일까요? 아니면 꼭대기에 거의 다다른 사람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냐면 중간에 멈춰버리는 사람입니다 중간에 멈춰버리는 거예요 그리고 이제 다 왔다 난 이제 다 왔다 라고 생각을 하고 짐을 풀어버리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더 이상 올라갈 수 없습니다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겠죠 그래서 우리의 신앙이 이와 같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이만큼이면 됐다 나는 다 이르렀다 라고 이 자리에서 멈춰버리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건너와라, 더 깊은 곳으로, 더 높은 곳으로 건너와라 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히브리서를 통해서 건너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더 깊은 믿음으로, 더 순전한 순종으로 우리가 건너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앞으로 히브리서를 쭉 배우게 될 텐데 이제 우리 모두가 멈춰있는 신앙이 아니라 신앙의 더 깊은 곳으로 건너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수님에 대해서 더 명확하게, 더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해 주시기를 간절히 예수님의 이름으로 추간합니다 함께 묵도하겠습니다 찬송하겠습니다 찬송가 506장 하시겠습니다 찬송가 506장 하시겠습니다 찬송가 506장 하시겠습니다 찬송가 506장 하시겠습니다 찬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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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안수 받기 원하시는 분들은 앞에 나와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나이다 한글자막 by 한효정 한글자막 by 한효정 한글자막 by 한효정 한글자막 by 한효정 한글자막 by 한효정 한글자막 by 한효정 한글자막 by 한효정 한글자막 by 한효정 한글자막 by 한효정 한글자막 by 한효정 한글자막 by 한효정 한글자막 by 한효정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이마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이룡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죄를 사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예수님 이름으로 안식일 저녁여배 마치겠습니다 여름방학 기간이라서 계속 아이들이 있고요 오늘은 우리 박수장 자매랑 하진이 왔네요 박수로 환영하겠습니다 반갑습니다 우리 일어나서 다 같이 인사하시겠습니다 우리 일어나서 다 같이 인사하시겠습니다 우리 일어나서 다 같이 인사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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