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교회01
참예수교회 기본신앙 23.
김승도 · 마3:15-16
제작일 2026. 8. 22.
AI 설교 정리
세례의 올바른 방법과 교리적 논의, 그리고 유머의 역할에 대해 설명함.
- 유머를 통해 부흥회에서의 퀴즈와 반응을 설명함.
- 세례는 죄사함을 받는 중생의 예식이며,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받아야 함.
- 참예수교회는 한 분의 하나님을 강조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라고 주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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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의 역할
- 2.5와 3의 유머스러운 대화를 통해 유머를 소개함.
- 부흥회에서 진행된 유머스러운 퀴즈와 그에 대한 반응을 설명함.
세례의 교리적 논의
- 세례는 죄사함을 받는 중생의 예식이며,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흐르는 물에서 받아야 함.
- 침례가 세례의 올바른 방법이라고 주장함.
- 일반 교회는 정례(물 찍기)를 시행하며, 이는 역사적 기원과 신학적 근거를 갖고 있음.
- 정례는 결례(예식)의 일종으로 간주되며, 세례와는 의미적으로 차이가 있음.
참예수교회의 신앙관
- 참예수교회는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으며, 세 분의 하나님보다는 한 분의 하나님을 강조함.
-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영원한 세계에서 유일하신 한 분이시며, 아버지, 아들, 성령은 구속사 안에서 각자의 사명을 수행하는 역할이다.
-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 아들, 성령의 이름을 모두 지니고 있으며, 그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세례의 역사적 관행
- 신약 시대에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으며,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는 것은 기독교 역사에 무효가 될 수 있다.
-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통해 이루어지며, 그 이름 이외에는 죄사함이 불가능하다.
- 성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선포함으로써 이루어져야 하며, 이는 죄사함의 유일한 길이다.
전사(자막) 전문▼
하리루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말씀 증가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에 들어가기 전에 잠깐의 유모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어느 날 2.5가 길을 가다가 3을 만났습니다 아 형님 누구신가 저 2.5입니다 어 그래 웬일이야 앞으로 제가 형님을 깍듯하게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아 그러면 그렇게 하지 늘 그냥 만날 때마다 형님 형님 하는데 어느 날 2.5가 3을 만났는데 아 그냥 어이 동생 오랜만이야 어디 요즘 잘 지내는가 그렇게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아니 어저께만 해도 형님이라고 그러더니 왜 이렇게 또 카카를 시켜서 나를 그렇게 깎아 내리는가 그랬더니 아 그러자는 오늘 점을 빼고 왔다고 그래서 어쨌든 바뀌어서 바뀌어 버렸어요 두 번째 조크 어느 교회에 부흥회가 열렸는데 그 부흥회 목사님이 퀴즈를 내기를 세상에서 제일 차가운 바다가 어떤 바다인지 아십니까? 그러니까 썰렁해 그러더래요 어떤 신도분이 그래서 아 맞았다고 썰렁해 제일 차가운 바다라고 그래 얘기를 했는데 그러면 세상에서 제일 뜨거운 바다가 어떤 바다는지 아십니까? 그러니까 말을 잘 못 이렇게 대답을 못 하더래요 그래서 세상에서 제일 뜨거운 바다는 사랑해라고 그러니까 아 그렇구나 그래 그 어떤 자매가 그 얘기를 듣고 내 집에 가서 우리 남편을 좀 잘 얘기를 해봐야 되겠다 생각을 하고 똑같이 가서 질문을 했어요 여보 여보 여보 여보 세상에서 제일 차가운 바다가 어떤 바다는지 알아? 썰렁해 썰렁해 당신 제발 좀 썰렁하지 좀 말아 그러면 세상에서 제일 뜨거운 바다가 어떤 바다는지 알아? 무뚝뚝해 아니 여보 여보 내가 이렇게 막 애교를 막 부리잖아 막 이럴 때 당신이 나한테 뭐라고 해줘야 돼? 어? 어? 그러니까 어휴 열받아 재밌습니까? 저도 한동안 웃고 왔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우리는 사랑해라고 하는 이 그물을 던져서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고 또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져서 또 전도의 사명을 다하고 하나님의 귀한 자녀로서 살아가야 될 줄 믿습니다 자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이 참예숙의 기본신앙 세례의 방법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55페이지인데요 우리는 지금까지 세례의 효력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다면 오늘 이 시간에는 세례를 어떤 방법으로 받아야 되느냐 이 문제를 놓고 같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자 먼저 전문을 여러분들과 함께 읽겠습니다 55쪽 세례의 방법 전문을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우리 같이 읽겠습니다 세례는 죄사함을 받는 중생의 성녀이며 반드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흐르는 물에서 베풀며 세례를 받는 자는 머리를 숙이고 전신이 물에 잠기는 침례를 받아야물 믿는다 자 여기서 이제 핵심은요 침례고요 그 다음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침례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자 이 두 파트를 놓고 하나씩 좀 걸러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참예숙에는 침례를 이야기합니다 침례 그런데 일반적으로 모든 다른 교회는 세례를 받을 때 정례를 행한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례의 방법에 대해서 일반 교회의 견해는 각자 또 어떤 특색을 갖고 있는데 왜 이렇게 각각 특색을 갖고 있냐면 세례의 죄사함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그 방법도 역시 제각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통 성부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요 침례가 아닌 정례를 시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례라고 하는 것은 이렇게 찍어준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적자는 이렇게 찍을 적자입니다 이렇게 물을 찍어서 이렇게 물을 찍죠 물을 찍어서 이렇게 줍니다 그것을 바로 정례라 이렇게 우리가 부르는데요 정례가 왜 이렇게 시행이 됐느냐고 하는 것은 역사적 기원을 갖고 있는데 AD 약 250년 정도에 천주교 로마의 주교였던 노바테안이 병약자들에게 처음으로 실시를 했고요 그 후에 반론이 제기되자 다시 침례를 행했습니다 그러다가 1311년 이탈리아 라벤나 회의에서 제228대 교황 클레멘트 오세가 천주교 지도자 회의를 통해서 침례를 공식적으로 정례로 바꾸게 됐죠 그리고 1500년대 1600년대에 있었던 루터의 종교개혁 그것에도 불구하고 천주교의 유전이 그대로 답습되어 오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이 정례를 시행하는 그들 나름대로의 신학적인 근거는 어디에 있느냐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서 세례편 페이지 308쪽을 보시게 되면 제3항에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교제가 있으시면 함께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제3항 우리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세례받는 사람을 물속에 반드시 잠기게 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 사람 위에 물을 붓거나 뿌려서 세례를 집행하여도 정당하다라고 하면서 그 근거로 마가복음 7장을 들고 있는데 마가복음 7장뿐 아니라요 여러분들 교제에 나와 있는 누가복음 11장 마태복음 15장 이런 것을 쭉 보시게 되면 예수님 당시에 구약시대의 구약시대의 결례의 율법을 따라서 손을 씻고 음식을 먹어야 되는데 손을 씻지 않고 먹는 제자들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고 예수님께 하나의 질문을 던지는 이런 식의 구절이 여기에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련의 성경들을 보시게 되면 손을 씻지 않았다라고 하는 씻는다라고 하는 동사가 세례를 주다라는 박티조 동사로 되어 있기 때문에 오늘날 세례도 구약의 결례와 같이 단순히 물을 몸에 뿌린다든지 이런 방법을 써도 아무 상관이 없다라고 보는 것이죠 이렇게 보는 이유 중에 하나가 우리가 말씀드렸듯이 일반 교회의 세례는 큰 의미가 없어요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이고 세례는 하나의 외적인 증거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꼭 침례로 행한다든지 아니면 꼭 정례로 행한다든지 상관없다. 침례로 행하려면 하고 정례로 행하려면 해라. 왜냐 그것은 외적인 그런 형식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본질적인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사함 받고 구워놓는 것이니까 상관이 없다. 라고 이렇게 얘기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이 주장하는 세례는 하나의 결례의 일종으로도 볼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문제는 이 결례라고 하는 단어는 카다리스모스이고 세례라고 하는 원어는 박티스마이기 때문에 원어상으로 엄연히 확연한 차이를 가지고 있죠. 그래서 원어상으로 볼 때의 세례가 결례일 수 없고 결례가 세례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결례를 집행하는 방법이 박티조라고 하는 동사를 쓰고 있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서 손을 씻는다든지 잔과 주발과 상을 씻는다든지 이렇게 씻는다라고 하는 이 동사 씻는다라고 하는 동작을 나타내는 그 동사가 박티조라고 하는 박티스마는 물에 잠긴다라는 그런 의미인데요. 물에 완전히 잠금 그런 뜻이에요. 그럼 동사는 박티조 해서 물에 잠그다, 물에 잠기다 이런 뜻이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결례라고 하는 이 예식을 행하는 동사가 물에 잠긴다라는 박티조 동사를 쓰고 있으니까 세례도 박티조 아니냐. 그러니까 세례가 바로 결례다라고 입구를 시켜버리는 것이죠. 그래서 세례가 결례 일종으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거두절미하고 지금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결례는 결례이고 세례는 세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례에도 박티조가 됐다면 박티조적 결례를 행한 것이고 세례에 박티조라고 하는 동사를 썼다면 박티조적 세례를 행한 것이죠. 다만 문제는 결례는 결코 세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의미적으로는 카다리스모스 박티조라고 하는 큰 차이를 가지고 있고 행하는 그 동작이 유사하긴 하죠. 박티조라고 하는 완전히 잠긴다라는 동사를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완전히 잠긴다라는 동사를 쓰고 있다고 하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해서 세례를 결례로 본다라고 하는 것은 얼마나 신학적인 수준이 얕은지 이거를 우리가 알 수 있는 거거든요. 예를 들어서 여러분 이 뚜껑이 있지 않습니까? 이거는 사람이 아니죠. 이거는 물건이죠. 그런데 예를 씻을 때 우리가 물을 뿌려서 씻으면 그거는 물을 뿌려서 결례를 행한 것이고 예를 씻을 때 물 속에 완전히 잠가서 깨끗이 씻는다라고 하면 얘는 박티조적 결례를 행한 것뿐이죠. 그렇다고 얘가 세례를 받은 것입니까? 아니죠. 얘는 얘 나름대로 물에 완전히 들어갔다 나왔을 뿐이죠. 그러니까 물에 완전히 들어갔다 나온 박티조적 결례라고 우리가 보는 것이고 사람이 세례를 받는 것은 결례가 아니라 죄를 씻는 그런 예식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어떻게 죄를 씻는 이 예식인 세례를 결례로 볼 수 있다는 얘기입니까? 그럴 수 없죠. 동작이 같은 박티조라 하더라도 의미가 여기는 잔과 주발이나 손이나 이런 단지 외형적인 더러움을 씻어내는 빨고 씻는 그런 행위이고 여기는 죄를 사하는 그런 박티조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장을 여러분 이렇게 많이 제가 써놨지만 결론은 그것이다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정례라고 하는 것은 바로 여기에서 나왔다는 거예요. 그래서 물을 뿌리기도 했다는 거예요. 얘를 씻는데 물을 이렇게 뿌려서 뿌려서 이렇게 수건으로 닦아내는 그런 식의 어떤 결례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세례도 역시 물을 뿌려서 죄를 씻을 수 있다고 보는 거예요. 여러분 정말 그럴까요? 세례도 죄를 씻어갖고 세례도 물을 튕겨서 물을 뿌려서 우리의 죄를 씻을 수 있을까요? 만약에 그렇다면 우리 예수님께서 본을 보이실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례 요한에게 가서 뭐라고 얘기했는지를 우리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마태복음 3장을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3장을 보겠습니다. 15절 16절 함께 읽겠습니다. 마태복음 3장 15절 16절 여러분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예수님께서 대답하여 가라스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대.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세.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해 임하심을 보셨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원래 우리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기 때문에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었고요. 그래서 세례 요한에게 오는 예수님을 세례 요한은 내가 감당할 수 없다.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되는데 어떻게 당신이 나에게 세례를 받습니까? 라고 세례를 못 주겠다고 얘기했어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구태여 세례를 받으시려고 한 것은 세례의 모범을 보이시기 위해서 세례를 받으셨다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어요. 예수님은 회개할 일이 있습니까? 세례 요한의 세례는 회개를 위한 세례잖아요. 그런데 예수님은 회개할 일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세례를 받아야 됩니까? 라고 하는 문제. 또 하나는 예수님은 죄가 없습니다. 세례 요한의 세례가 죄사함이 있는 세례라고 할지라도 그래서 예수님이 죄사함을 받기 위해서 세례를 받았다라고 유추한다 할지라도 본질적으로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잖아요. 그러니까 이렇게 번거로운 일을 하실 필요가 없어요. 그러면 왜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셔야 됐습니까? 굉장히 중요한 말씀이 들어있는 거죠.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마치 조교가 훈련병들에게 총검술은 이렇게 하는 거야. 그러면 조교는 총검술에 대해서 이미 익히 알고 있어요.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는 아주 능통한 사람이에요. 그렇게 모범을 안 보여도 조교는 총검술을 할 수 있다 없다.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모범을 보입니까? 제가 83년도에 군에 들어갔는데 25사단 사단 교육대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아주 똑똑한 조교예요. 그리고 굉장히 정직하고요. 올곧은 조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총검술을 잘 아는지 내가 뿅 갔어요. 정확하면서도 절도가 있고요. 동작 하나하나가 완벽했어요. 제 기억으로는 지금 그래요. 그래서 진짜 조교다. 그런데 그때 이 사람 계급이 상병이었어요. 대단했죠. 그런데 그 많은 훈련병들 앞에서 조교했죠. 총검수를 보인 이유는 뭐예요 내가 FM이다 찌를 때 이렇게 하고 뺄 때 이렇게 해라 돌려 칠 때는 이렇게 하고 앞으로 칠 때는 이렇게 하는 것이다 이거를 보여준 거예요 너희도 이와 같이 하라는 거거든요 그래서 그 생각이 떠오르는 거예요 예수님은 총검수를 할 필요도 없고 완벽한 분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십니까? 이와 같이 하라는 것입니다 이거는 세례의 방법의 모범을 보였다라고 난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왜냐하면 본질적 의미는요 예수의 세례와 세례의 세례는 하늘과 땅 차이거든요 그러니까 본질적 의미로 내가 받아야 되겠다라고 봤다면 예수님은 세례의 세례를 받을 필요도 없고 받았어도 안 되죠 무의미한 세례를 왜 받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와 같이 하여라고 하는 이 폼은 내가 어떻게 어떤 폼을 갖고 어떤 형태를 갖고 세례를 받는지를 너희가 봐라 이와 같이 해야 모든 의미를 이룬다라고 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걸 그렇게 봐요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와 같이 해야 모든 의미를 받으십니까? 6절을 보시게 되면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세 이 동작을 제가 영어성경이나 원어성경을 찾아보니까 물가에서 물 밖으로 올라오는 그게 아니에요 물 속에 N입니다 그러니까 물 안에 있다가 물 밖으로 인투 인투 그 다음에 업 그래서 물 속에 완전히 들어간 것이죠 그것이 인투입니다 그것이 N이라고 하는 전치사거든요 그래서 완전히 들어간 그 상태에서 물 속으로 머리를 쳐들고 올라오다라고 하는 업! 이라고 하는 전치사를 또 쓰는 거거든요 그래서 이거는 분명한 예수님께서 침례 박티스마에 대한 모범을 보여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뒤로 모든 제자들이 다 침례를 행한 것입니다 정례를 행한 기록이 없단 말이에요 그러면 왜 정례를 행했다고 제가 설명했습니까? 205년 250년 천주교 주교인 노바티안이 병약자를 위해서 그렇게 했다는 거예요 병이 들어서 물 속에 들어가기가 어려워요 특히 겨울 같은 경우에는 얼음을 깨고 들어가야 되는데 그 병약자를 물 속에 집어넣는다는 것이 위험스러워요? 안전해요? 위험스럽단 말이야 그러니까 에이 뭐 꼭 그렇게 해야 돼? 물을 찍어줘도 되는 거야? 라고 주교니까 그걸 결정한 거예요 그래서 정례가 처음 시작이 됐는데 반발을 받았다는 거예요 반발을 받고 다시 침례를 행했다는 것은 원래는 침례였는데 정례로 행했다는 것을 반증해 주는 것이고 그래서 1311년 이전까지 침례를 행했다는 거예요 지금도 개신교 안에는 그래도 양심 있는 교파는 침례를 행하는 교파가 있지 않습니까? 그 의미가 죄를 사하든 사하지 못하든 그간 관계없이 세례를 받는 방법에서 침례를 고수하고 있는 교파가 있다는 거예요 개신교에서 그럼 왜 그 교파는 침례를 주장하고 있을까요? 다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역사성을 따져서 정확한 세례의 방법을 성경에서 찾고 행하는 것이죠 나는 그런 분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어요 더 나아가서 세례의 의미를 발견하고 올바른 세례를 행하는 이런 대혁신의 회개가 앞으로 각 개신교 자체 안에서 일어나기를 기대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례의 첫 번째 방법은 침례다 라고 하는 것을 말씀드릴 수 있는 거죠 두 번째 방법은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그런데 일반 개신교에서는 누구의 이름으로 세례를 줍니까? 성당도 마찬가지죠 또 일반 교에서도 마찬가지죠 일반 개신교에도 마찬가지죠 누구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느냐? 성부 성자 성신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느라 이렇게 하죠 성부가 제일 위에 있습니다 그 다음에 성자는 오른쪽이죠 성부 성자 성신의 이름으로 이게 뭡니까? 도대체 성부 성자 성신의 이름이 어디 나온다는 것입니까? 마태복음 28장을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9절 찾으셨습니까? 다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그랬어요 누구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그랬어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그랬죠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의 이름으로 세례를 줘야 돼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줘야죠 그게 맞습니다 라고 얘기를 하면 그 말도 맞지만 반드시 우리가 검토해야 될 부분은 있다는 거예요 그 부분을 검토해서 정말 맞다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줘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럼 아버지는 누굽니까? 성부죠 아들은 누굽니까? 성자 성령은 뭡니까? 성신 그렇게 부른 겁니다 성경 어디에도 성부, 성자, 성신이라는 말은 없어요 그거를 만든 거예요 그럼 만드는 성부, 성자, 성신이 아버지, 아들, 성령이냐? 그건 맞는 얘기예요 아시겠죠? 문제는 아버지, 성령, 성부, 성자, 성신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는 것이 그것이 맞느냐 맞지 않느냐라는 부분 을 얘기해야 돼요 여러분 이 근원은요 이 근원은요 이 근원은요 삼위일체에서 나온 용어입니다 성부, 성자, 성신 이게 아버지 하나님, 아들 하나님, 성령 하나님 하나님이 몇 분이라는 거예요? 한 분이시지만 하나님은 한 분이시라는 걸 인정합니다 그렇지만 한 분 하나님 안에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이 따로 있다는 거예요 헷갈리죠? 어찌 됐든 삼위일체 따라서 하세요 삼위일체 다시 한번 삼위일체 오후 시간에는 공부하는 시간이니까 좀 느슨하게 좀 얘기를 해도 괜찮아요 그래서 이 삼위일체는 오늘날 모든 천주교나 개신교도 다 삼위일체를 믿습니다 아시겠죠? 이거를 갖다 신관이라고 그래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냐라고 하는 그 문제를 놓고 하나님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이라고 그렇게 믿는다는 거예요 누가? 성당도 그러고 개신교도 그러고 모든 교회가 다 삼위일체를 믿는다는 거예요 그럼 우리 교회는 무엇을 믿습니까? 독일하신 하나님 따라서 독일하신 하나님 또는 유일하신 하나님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은 세 분의 하나님이 아니라 한 분의 하나님을 한 분의 하나님만 믿는 거예요 그러면 예수는 누구고 성령은 누구냐 한 분의 하나님이 시대를 따라서 역사하셨다는 거예요 구약시대에는 한 분의 하나님이 역사하셨고요 신약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로 오셔서 역사하셨고 부활 승천하신 이후로는 지금 이 교회시대에는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분이시다 이렇게 얘기할 뿐입니다 그러나 그러므로 이 구속사 안에서 보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있는 것은 틀림이 없어요 그가 하고 있는 사역의 성격상 아버지의 사역, 아들의 사역, 성령의 사역이 따로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셋이 있는 건 맞아요 그러나 정말 하나님이 셋이기 때문에 세 분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셋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분의 하나님이 내가 어떤 사명을 갖고 하느냐에 따라서 아버지의 사명이 있고 아들의 사명이 있고 성령의 사명이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본질적으로 우리 하나님은 이 구속사의 시간을 뛰어넘은 영원한 세계 속에 계신 유일하신 한 분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영원한 세계 속에서는 아버지, 아들, 성령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죠 그래서 신과는 구속사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관점으로 해석이 돼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 땅에서 지금 이루어져 가고 있는 구속사 안에서 보면 아버지의 사명, 아들의 사명, 성령의 사명이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언제 끝납니까? 예수 제림 때 끝납니다 그러나 영원한 세계 속에서 지금은 지금도 영원한 세계 속에서는 유일하신 한 분의 하나님만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는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가 마태봄 28장을 해석하다가 얘기가 이렇게 나왔잖아요 그러면 다시 마태봄 28장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겠죠 자,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라고 말씀했을 때에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셋이라고 한다면 첫째, 이름이라고 하는 네임이라고 하는 이것이 네임스라고 하는 S가 붙어야 돼요 복수가 돼야 됩니다 그런데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셋이로 표현되어 있지만 이름은 단수형을 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네임으로 그러면서 아버지, 아들, 성령 그 앞에는 토 라고 하는 정관사, 도가 붙어 있습니다 도파더, 도선, 도홀리스프릿 이렇게 돼 있어요 그 아버지, 그 아들, 그 성령의 이름으로 이렇게 돼 있는 거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그 아버지가 누구냐 그 지시하는 그 아버지가 누구냐 그 아들이 누구냐 그 성령이 누구냐라고 하는 것을 찾아가 볼 필요가 있겠죠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는 거예요 그 자신이라는 거예요 또 아들이면서 그 다음에 예수 그리스도는 또한 성령이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성부, 성부, 성령으로 세례를 주라고 했지만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몇 구절을 찾아보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 사도행전 2장 38절 보겠습니다 시작 베드로가 가로대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누구의 이름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어라 왜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주지 않았습니까 제자들은 성부가 예수님이시고 성자가 예수시고 성령이 예수시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그렇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계속 세례를 주고 있지 않습니까 사도행전 8장 보시겠습니다 16절 16절 시작 4등전 8장 16절 시작 예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라라 또 찾아보겠습니다 4등전 10장을 보겠습니다 4등전 10장 48절 4등전 10장 48절 시작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하니라 저희가 베드로에게 수일도 유하기를 청하니라 베드로가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명하여 누구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그랬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그런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줘야 되는 것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은 이름일까요 아니면 대명사일까요 Father Son Holy Spirit 이게 이름입니까 아니면 누구를 지칭하는 대명사입니까 황은숙 자민입니다 음 뭐예요 이름이에요 무엇을 지칭하는 대명사예요 그렇지 김승도 또 누구누구 각자 이름이 있죠 그런데 아버지 아들 성령은 이름이에요 아니면 누구를 지칭하는 거예요 누구를 지칭하는 거야 누구를 지칭하는 겁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거야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이름이에요 아버지의 이름이에요 정말 그럴까요 요한복음 17장 요한복음 17장 아버지의 이름이 무엇인가를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7장 6절 보시겠습니다 시작 세상 중에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11절 11절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해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12절 내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 내게 해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계속 나오지 않습니까 여러분 예수님에게 해주신 아버지의 이름이 뭐죠 예수입니다 예수 이외에는 하나님 아버지께 받은 이름이 없어요 그러니까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은 뭐예요 예수입니다 이것이 구속사 안에서 주신 유일하신 아버지의 이름이에요 그러면 본질적으로 아버지의 이름은 있을까요 없을까요 본질적으로 아버지의 이름은 없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아니 사람들이 날더러 당신 네가 믿는 신의 이름이 뭐냐고 묻는다면 내가 뭐라고 물어봐야 됩니까 그러니까 나는 이름이 없는데 자꾸 물어보니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여러분 스스로 있는 자라고 하는 게 동사입니까 아니면 명사입니까 동사예요 동사는 이름이 아니에요 명사가 이름이죠 그래서 이미 구약시대부터 하나님은 나는 이름이 없다 자꾸 네가 그러는디 나는 이름이 없어 그 얘기를 해오다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예수 그리스로 오셨을 때에 그지않은 그때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신 유일한 그 이름이 예수 그리스도예요. 아시겠죠? 그것은 구속사 안에서 얘기하는 아버지의 이름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계속 지금 사도행전 10장을 찾아봤고요. 그 다음에 19장을 또 보시겠습니다. 사도행전 19장 5절 보시겠습니다. 사도행전 19장 5절 보시겠습니다. 읽겠습니다. 시작.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자, 더 찾을까요? 아, 찾지 말라고요. 시간이 다 돼가는데 목자님 뭐 더 안 하셔도 충분합니다. 그렇군요. 네, 맞습니다. 자, 그러면 사도행전 22장을 하나 더 찾고 마칠게요. 사도행전 22장 16절 시작. 이제는 왜 주자느냐. 이러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그러므로 신약 시대에 예수님께서 부활승천하시기 전에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난 그 이후에 제자들이 만약에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지 않았다면 이건 엄청난 대신이죠. 기독교 역사가 완전히 무효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을까요? 안 주었어요. 그렇다면 기독교 역사가 무효일까요? 그럴 가능성이 있죠. 그러나 사실은 그럴 가능성은 제로입니다. 그럼 뭘 얘기하는 걸까요? 오히려 제자들은 일관되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라고 하는 이 구절과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이 구절을 우리는 조화롭게 조 화를 이룰 필요가 있다는 거예요. 도대체 뭐가 다르지? 뭐가 같은 거야? 뭐가 문제야? 이런 고민을 해봐야 될 거 아니에요. 그런 고민을 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는 것을 부인한다면 문제는 상당히 크죠. 말씀드렸듯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명사가 아니다. 무엇을 지칭하는 것인데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다라고 하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반드시 줘야 할 중요한 이유가 뭐냐? 사도행전 4장 12절 사도행전 4장 12절 아주 기초적인 말씀이지만 이 말씀을 꼭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인간의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죄사함을 얻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이외에 그 어떠한 것도 우리 죄를 사할 수 없습니다. 목자님 그러면 일반교에서 예수를 믿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믿지 그럼 누구의 이름으로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예수님 영접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한 행위를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거듭났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사함 받고 그런 거 아닙니까? 죄하지 마세요. 그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여기는 성례라고 하는 이 문제를 얘기하고 있잖아요. 성례에 대한 문제를 얘기하고 있잖아요. 일반적 믿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그 차원이 아니라 성례를 행할 때에 그 이름이 죄를 사한다라고 하는 사실을 얘기하고 싶은 거거든요. 여러분 사도행전을 보고 마치겠습니다. 사도행전 사도행전을 보고싶은 것 같습니다. 사도행전을 보고싶은 것 같습니다. 사도행전을 보고싶은 것 같습니다. 사도행전을 보고싶은 것 같습니다. 사도행전을 보고싶은 것 같습니다. 사도행전을 보고싶은 것 같습니다. 사도행전을 보고싶은 것 같습니다. 사도행전을 보고싶은 것 같습니다. 사도행전을 보고싶은 것 같습니다. 사도행전을 보고싶은 것 같습니다. 사도행전을 보고싶은 것 같습니다. 사도행전을 보고싶은 것 같습니다. 사도행전을 보고싶은 것 같습니다. 사도행전을 보고싶은 것 같습니다. 오케이 이 구절을 못 찾았으면 굉장히 땀 흘릴 뻔했는데 갑자기 성령께서 도와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도행전 10장 43장 사도행전 10장 43절 사도행전 10장 43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저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뭐를 받는다? 죄사함을 받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의 이름을 힘입어 받는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힘입어 받는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힘입지 않으면 결코 죄사함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선포도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 라고 선포해야 되는 거예요. 그러면 이 안에 있는 로고스 이 말씀이 레마 되어 가지고 선포됨으로 그 죄를 사하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 천지를 창조하실 때 우리 하나님께서 아무 선포 없이 생각으로만 졌습니까? 아니면 빛이 있으라라고 선 포했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에요. 그러니까 꼭 선포를 하지 않아도 생각으로 모든 우주만물을 지을 수도 있는 완전한 능력이 있는 분이신 줄로 믿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빛이 있으라. 궁창위의 물과 궁창아래의 물로 나뉘어라. 해와 달과 별들이 있어라. 각종 과실을 맺는 나무가 있어라. 이렇게 선포했잖아요. 그래서 하나님 안에 있는 저장되어 있는 이 로고스는 그 자체로 능력이 있지만 그 하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유일한 그 말씀, 이 존재적 말씀은 그 자체로 능력이 있지만 이 능력 있는 말씀이 하나님의 입을 통해서 오픈되고 튀어나오는 레마적 로고스로 되지 않습니다. 그 자체로 능력이 있어라. 그게 하나님의 유일한 그 자체로 능력이 있어라. 그 자체로 능력이 있어라. 그래서 하나님의 유일한 그 자체로 능력이 있어라. 그래서 하나님의 유일한 그 자체로 능력이 있어라. 그래서 하나님의 유일한 그 자체로 능력이 있어라.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까? 여자야 네 병에서 노임을 받을지어다. 그렇게 우리 예수님께서 아무 선포 없이. 오케이. 다음. 오케이. 그렇습니까? 그러므로 죄를 사암받는 이 포인트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선포해야 되는 이유가 반드시 시세자의 입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튀어나와야 돼. 선포돼야. 선포된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하지 않으면 죄사함이 없게 되는 거예요. 성부 성자의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것은 무효인 것입니다. 묵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안식일 오후에 이렇게 열렬하게 당신이 가르쳐주신 말씀을 배우고 또 배우고 있습니다. 하나님 멋저록 저희들이 배우고 또 가르침을 받은 대로 독도 진리에 굳게 서서 우리 개인의 믿음을 견고하게 세우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시고 이 믿음으로 온 세상 만민에게 바른 복음을 전해서 죽어가는 영혼들을 구원하니에는 이런 일에 우리가 충성을 다하고 헌신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고루가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기도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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