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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예수교회 True Jesus Church

성령을 좇아 행하라 20

정호민 · 롬8:1-11

제작일 2026.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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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참예수교회의 안식일 저녁 예배에서 찬양과 성경 말씀을 바탕으로 한 설교가 진행되었으며, 교회 소식 및 기도 요청 등이 이루어졌다.

본문로마서 8:1~11
  • 수원 참예수교회에서 안식일 저녁 예배가 진행되었으며, 찬송가와 성경 말씀을 중심으로 예배가 이루어졌다.
  • 예배 중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와 성령의 역할에 대해 설명하며,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또한 교회 소식, 기도 요청, 예배 일정 등이 안내되었으며, 예배가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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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개요

  • 안식일 저녁 예배가 진행됨
  • 찬송가 186장, 5장, 464장, 183장이 반복적으로 언급됨
  • '은혜의 찬양 59장'이 오랜 시간 반복됨
  • 참예수교회(수원)의 예배 진행
  • 화면에 찬송가 목록과 예배 관련 정보 표시
  • '아멘',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등의 표현 사용

설교 내용

  •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단순한 세례를 넘어, 성령을 통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자를 의미함
  • 로마서 8:1~11에 따르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성령의 법을 통해 정죄받지 않음
  •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지 않지만, 성령의 생각은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며, 성령의 생각을 따라 살아가야 함
  • 성령은 연약함을 도우며, 죄의 문제 극복에 필수적임
  • 성령의 생각을 따라 행하는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와 정죄의 해방을 이끄는 핵심임
  •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되며, 사망으로 이어지고, 성령의 생각은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며, 생명과 평안을 가져옴
  • 성령은 육신의 악한 마음을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도록 도와줌
  • 성령의 충만과 기도는 악한 생각을 이기고,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에 중요함

교회 소식 및 기도 요청

  • 정원희의 건강 회복을 위한 기도 요청 (정원희는 병원 퇴원)
  • 안산교회에서 여름 성료학교 개최 예정
  • 교회 교육(아동부, 청년부, 소그룹) 강조
  • 성도 건강, 군대 복무, 장기 불출석 성도, 구도자 및 전도대상자 기도 요청
  • 교회 성업 및 열린 예배 안내
  •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가 반복적으로 언급됨
  • 예배 종료 및 인사 요청
  • 7월, 8월 예배 일정, 새생명날기, 특별헌금 등 안내됨
전사(자막) 전문▼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안식일 저녁 찬양 드리겠습니다.
첫 찬양으로 찬송가 186장 하겠습니다. 찬송가 186장입니다.
찬송가 186장입니다.
찬송가 186장입니다.
찬송가 186장입니다.
찬송가 186장입니다.
찬송가 186장입니다.
찬송가 186장입니다.
찬송가 5장 찬송가 5장 찬송가 5장 찬송가 5장 찬송가 5장 찬송가 5장 찬송가 5장 찬송가 5장 찬송가 5장 찬송가 5장 찬송가 5장 찬송가 5장 찬송가 5장 찬송가 5장 찬송가 5장 찬송가 5장 찬송가 5장 찬송가 5장 찬송가 5장 찬송가 5장 63.
찬송가 464장입니다
찬송가 464장입니다 세상 친구들 너를 버려도 예수를 함께 동행함으로 주의 은혜가 충만하리네 주의 영원한 팔 의지해 주의 영원하신 팔 함께하사 항상 나를 흔드시니 어느 곳에 가든지 우동하지 않으며 주의 팔을 의지하미라 나의 믿음이 연약해져도 미래의 믿음이 연약해져도
미래의 믿음이 연약해져도 미래의 믿음이 연약해져도 미래의 믿음이 연약해져도 미래의 믿음이 연약해져도 미래의 믿음이 연약해져도 미래의 믿음이 연약해져도 미래의 믿음이 연약해져도 미래의 믿음이 연약해져도 미래의 믿음이 연약해져도 미래의 믿음이 연약해져도 미래의 믿음이 연약해져도
미래의 믿음이 연약해져도 미래의 믿음이 연약해져도 미래의 믿음이 연약해져도 미래의 믿음이 연약해져도 미래의 믿음이 연약해져도 미래의 믿음이 연약해져도 미래의 믿음이 연약해져도 미래의 믿음이 연약해져도 미래의 믿음이 연약해져도 미래의 믿음이 연약해져도 미래의 믿음이 연약해져도
미래의 믿음이 연약해져도 미래의 믿음이 연약해져도 미래의 믿음이 연약해져도 우리 영원하신 팔 함께하사 항상 나를
웃듯이 어느 곳에 가든지 우동하지 않으리 주의 발을 의지하기라
네, 다음은 은혜의 찬양하겠습니다.
은혜의 찬양 59장입니다.
은혜의 찬양 59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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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자막 by 한효정 한글자막 by 한효정 우리의 그리스도의 삶을 함께 상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계속해서 율법의 한계 그리고 내 스스로의 힘으로는 이런 문제를 극복할 수 없다라는 것을 밝혀왔었죠.
그런데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어떤 사람들인가 우리가 바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보통 통상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라고 한다면
어떤 사람을 생각하게 될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세례받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우리 로마서 6장 3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로마서 6장 3절 읽겠습니다. 시작!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주구심과 합하여 세례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저희가 지난 시간 로마서 6장의 말씀을 나누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세례받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특별히 3절에서 여기서 합하다라는 단어는 원어로 전치사라고 말씀을 드렸고요.
어디어디 안으로 들어간다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쉽게 정리하면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받는다라는 것은 즉 세례를 통해서 그리스도 예수 안으로 들어간다라는 의미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원래 그리스도 예수 밖에 있던 사람들이었죠.
예배소서 2장 12절의 말씀을 참고해 보시면은 마치 우리는 이방인처럼 그리스도 예수 밖에서 아무 소망도 없이 하나님도 없이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우리가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능력을 의지하여서 세례받을 때 그리스도 예수 밖에 있던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으로 들어온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죄로 인해 그리스도 예수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던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그와 함께 죽고 그와 함께 부활함으로 그의 안으로 들어간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1차적으로 믿음 안에 있는 즉 믿음으로 세례받은 성도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6장 3절과 함께 갈라디아서 3장 26절 27절 말씀을 같이 보시면은 제가 바로 읽겠습니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야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믿음으로 말미야마라는 것은 27절의 말씀과 연결해서 보면 믿음으로 세례를 받은 것을 말합니다.
믿음으로 세례를 받음으로 말미야마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라는 것입니다.
이 말을 반대로 뒤집어 보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받기 전에는 그리스도 예수 밖에 있었다라는 것이죠.
그런데 이제 세례를 통해서 그리스도 예수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믿음으로 세례받은 우리 모든 성도 여러분들은 영적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절에서 언급하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를 단순히 세례받은 성도라고만 규정하는 것은 다소 한계가 있습니다.
왜 그러느냐?
우리가 로마서 6장 7장의 말씀을 앞서 쭉 살펴보았었죠.
그래서 믿음으로 세례받은 성도라 할지라도 율법만으로는 죄의 문제를 완전히 극복할 수 없다.
그래서 6장에서 바울은 세례받은 성도는 더 이상 죄의 아래 거하며 죄의 종로를 타지 말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뜯어보면 세례받은 성도라 할지라도 죄의 아래 거하면서 죄의 종로를 타는 삶을 살 수도 있다라는 것이죠.
또한 로마서 7장에서는 율법의 한계에 대해서 다시 한번 언급하면서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지만 그 자체만으로는 죄의 문제를 완전히 극복시킬 수 없다.
성도를 변화시킬 수 없다라는 것을 분명히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세례받았다고 할지라도 죄사함을 받는 것은 틀림없지만 그 자체로 죄를 지을 가능성이 전혀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세례를 통해서 죄의 문제, 율법으로 인한 정죄에서 완전히 자유를 얻는 것은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 1절의 말씀을 보시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라고 말하고 있죠.
지금까지 바울이 말한 것과는 조금 상반됩니다.
분명 세례받은 성도는 죄의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누구를 가리키느냐?
그래서 이어지는 2절에서 바울이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2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습니다.
여기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무엇을 언급하고 있습니까?
생명의 성령의 법.
여기서 어떤 단어가 눈에 들어오십니까?
바로 성령이라는 단어가 눈에 띕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 말씀을 통해서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는 율법의 한계로 인해서 속에서 내적 갈등을 겪고 이로 인해 이중적인 자아가, 이중적인 상태가 드러난다고 살펴보았습니다.
그래서 두 개의 자아, 두 개의 섬김, 그리고 두 개의 법이 있었죠.
그래서 우리가 로마서 7장 22절 23절을 보시면 쉽게 말해서 성도 안에 두 가지의 법, 하나님의 법과 그리고 죄의 법이 서로 충돌한다라는 것입니다.
나는 내 속으로는 신앙적 양심으로는 하나님의 법,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를 원하지만 내 안에 있는 죄, 죄성, 죄악이 나를 계속해서 죄의 법 아래로 끌고 온다라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가 서로 충돌이 된다라는 것이죠.
그래서 율법만으로는 또한 성도의 어떤 스스로의 능력만으로는 죄의 문제를 완전히 해소할 수 없다.
우리가 극복할 수 없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우리의 연약함을 돕기 위해서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주셨다라는 것입니까?
바로 성령을 주셨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차근차근 말씀을 보겠습니다만 로마서 8장 26절을 보시면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고요.
우리의 연약함을 돕는 영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4장의 말씀을 보시면 이 성령을 두고 보혜사라고 표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보혜사라는 것은 쉽게 말해 돕는 자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돕기 위해서 성령을 주셨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힘만으로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하나의 기준법, 율법만으로는 우리가 온전히 죄의 문제를 극복할 수는 없지만 이제 그런 나의 연약함을 돕기 위해서 성령을 주셨고요.
우리가 이 성령을 힘입어서 나를 그동안 올감해던 죄와 사망의 법에서 즉 죄의 문제로부터 우리를 도와줄 수 있다.
우리를 우리로 하여금 이 문제를 극복하게 할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 3절을 보시면 3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의 죄를 정하사 율법은 연약한 육신을 입고 죄의 종로를 타는 우리에게 완전한 자유를 줄 수 없지만 그것을, 그 일을 누구는 할 수 있다고요?
하나님은 할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이제 하나님께서 진이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고요.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셨다.
그래서 말씀을 3절을 보시면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의 죄를 정했 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자기 아들 곧 예수 그리스도를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죄 있는 모양이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가 있다라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 없으신 분이죠.
그런데 여기서 죄 있는, 즉 사람들은 다 죄를 가진 육신이 있지 않습니까?
그와 같은 육신으로 오셨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우리와 똑같은 육신을 잊고 우리와 똑같은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라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최근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도 우리와 같은 육신을 잊고 있기 때문에 고난 앞에서 두려움을 느꼈 고 또한 그 죄로부터 피하고 고통하고
그런 죄의 유혹을 받으셨다라고 우리가 나누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고난, 두려움, 유혹에도 예수님은 결코 죄를 범하지 않았다라는 것이죠.
내가 두렵다고 해서, 내가 유혹을 받는다고 해서 그 길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셨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끝내 우리의 죄를 위해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십자가 위에서 대신 죽으셨다라는 것이죠.
그로말미암아서 우리를 향해서 우리에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고요.
더 나아가서 이 과정을 통해서 이제 예수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울 성령을 주셨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죽으심은 죽으심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서 부활하고 부활함으로 하늘에 올라가셔서 그 하늘에서 이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습니까?
그 성령의 역할 중에 하나가 바로 우리의 연약함을 돕는 데에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내 안에 있는 죄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내 힘만으로는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율법만으로는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하나님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서 우리가 극복할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4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4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육신을 줬지 않고 그 영을 조차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입니다.
아멘 그래서 우리는 내가 가진 힘만으로는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룰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연약하기 때문이죠.
또한 우리 안에 여전히 죄의 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그런 율법의 요구들을 이루어 갈 수 있는가?
바로 영을 조차 행함으로 여기서 말하는 영은 무엇을 가리킬까요?
곧 성령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시 오늘 첫 번째 교훈으로 돌아와서 1절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제함이 없다라고 나누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누구인가?
결국 하나님께서 주신 성령으로 그 성령을 조차 행하는 자가 바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말씀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9절의 말씀을 같이 참고해서 보시면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라고 말하고 있죠?
이 말을 뒤집어 보면 그리스도의 영이 있으면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있으면 그리스도 안에 속한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을 받은 그리스도의 사람으로서 그 성령을 의지하여 죄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라는 것인데요.
중요한 것은 사절과 같이 받는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성령을 받았다고 해서 그냥 내가 성령을 받았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더 이상 정죄함을 받지 않고 죄의 지배를 받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조차 뭘 해야 된다고요?
행해야 된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 교훈의 핵심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정죄함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죄의 문제에 더 이상 휘둘리지 않고 죄에서 참된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을 받아야 되고요.
또한 그 성령을 조차서 행해야 된다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열쇠가 있다라는 것이죠.
그래서 여기서 두 번째 교훈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면 지금 내가 성령을 조차 행하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냐.
두 번째 교훈은 우리는 성령의 생각을 따라 행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생각을 따라 행해야 한다.
오늘 본문 말씀 5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5절 읽겠습니다. 시작!
육신을 쫓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쫓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아멘 여기서부터 두 가지가 서로 대조가 됩니다.
하나는 성령을 조차 행하는 것 또 다른 하나는 육신을 조차 행하는 것 이 두 가지가 서로 대조가 됩니다.
사람은 평소에 많은 생각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우리가 그것을 의식하지 못할 뿐이지 사람은 언제나 늘 생각이라는 것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우리 성도 여러분도 한번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곰곰이 한번 짚어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가운데 24시간을 살아가는 가운데 어떤 생각들을 하면서 살아왔는가 한번 시간적 여유가 되면은 그 생각들을 한번 다 적어보세요.
다 적을 수 없을 만큼 하루에도 수만 가지 생각을 하면서 하루를 보내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 될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 생각의 방향대로 결국 우리는 살아가게 된다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냥 아무 뜻 없이 그냥 아무 의미 없이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라고 여길 수 있지만 결국 그 생각 생각 생각이 모여서 우리 삶의 방향을 결정한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또한 우리가 살아가게 된다.
세상에서도 쉽게 말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5절 말씀을 보면은 결국 그 생각의 방향은 두 가지로 나뉘어진다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수만 가지 생각을 하지만 두 가지 종류로 나뉘어진다라는 거예요.
첫 번째는 육신의 생각이고요.
두 번째는 영의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5절에서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육신을 쫓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쫓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한다.
이 말을 그냥 그대로 보면은 육신을 쫓아서 살아가는 사람은 그 길을 따라가면서 육신의 일을 생각한다는 것이 아니라 뒤집어서 육신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은 결국 그 생각대로 육신을 쫓아서 살아가게 된다라는 것입니다.
또한 영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 성령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은 그 생각을 따라 성령을 쫓아서 살아가게 된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육신의 생각이고 무엇이 성령의 생각이냐 여기에 대해서 7절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 7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7절 읽겠습니다.
시작!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습니다.
여기서 육신의 생각의 대표적인 특징을 알 수 있습니다.
중간부터 보시면은 육신의 생각은 무엇에 굴복치 않는다고요?
무엇을 굴복치 않아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않는다.
굉장히 중요한 개념입니다.
우리가 하루를 살아가면서 수만 가지 생각을 하게 되죠.
그런데 그 생각을 하나하나 두고 한번 따져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생각은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는 생각인가?
다시 말하면은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말씀에 부합하는 생각이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것을 기준으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생각들이 육신의 생각이냐 아니면 성령의 생각이냐라는 것을 우리가 구분지어 볼 수 있습니다.
한번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우리가 또한 예배 시간을 통해서 또는 내가 묵상하는 성경 말씀을 통해서 많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배우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서 설교 시간에 설교자가 말합니다.
요한복음 13장 34절 35절의 말씀을 들어서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전개하면서 이제 마태복음 5장 44절 너희 원수를 뭐해라고요?
사랑해라.
그리고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해서 기도해라.
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한 것처럼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된다는 것은 우리가 그런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랑을 실천해야 된다라는 의미이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은 당신에게 죄를 범한 마치 원수와도 같은 그 사람들을 사랑하셨습니다.
내 목숨을 내어놓기까지 사랑하셨잖아요.
그래서 그 사랑으로 우리가 서로가 서로에게 사랑을 실천해야 된다.
그래서 이 말씀을 확장해서 내가 사랑하고 싶은 사람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할 수 없는, 사랑하기 싫은 그런 원수와 같은 사람도 사랑해야 된다.
그런데 이 말씀을 들을 때에 내 마음이 콕 하고 찔립니다.
왜 찔릴까요?
내 주변에 사랑하기 싫은 사람이 있거든요.
내 마음으로 미워하고 원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말씀을 들을 때에 마음이 찔리면서 어떻게 반응하느냐 나는 그렇게 하기 싫은데 아니 내가 사랑해야 되는 사람 사랑해야 되는 건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내가 저 사람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냐 아니 이 사람이 나한테 어떻게 했는데 아니 이런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이 사람을 사랑할 수 있냐 그런 마음으로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보통 생각이라는 것은 생각에서 그치지 않죠 결국 생각은 자라고 자라서 그 사람의 삶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그런 생각이 드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굴복하지 않죠 하나님의 법과 같은 말씀에도 내가 복종하지 않아요 그러면 그때 내게 드는 그런 생각들이 어떤 생각이라는 것입니까?
육신의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육신의 생각 또 반대로 생각을 해보면 내가 살아가는 가운데 많은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어떤 생각이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지 않아요 예를 들어서 내가 하루하루 열심히 장사에서 일을 합니다 그런데 상황을 보니까 내가 안식일에 교회 나오지 않고
장사에서 돈을 벌면 두 배, 세 배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것 같은 거예요 그런데 그때 드는 생각이 어떤 생각이라는 것입니까?
육신의 생각이라는 거죠 아니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잖아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그래서 우리가 내가 살아가는 가운데 내 마음속에 드는 여러 가지 생각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육신의 생각의 핵심은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말씀보다
내 뜻이 내 생각이 내 욕심이 앞선다에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육신의 생각이냐?
우리가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분명히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아요 그런데 그 뜻보다, 그 말씀보다 앞서는,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래서 결국 그 뜻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굴복하지 않는 모든 생각이 바로 육신의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반대로, 반대로 성령의 생각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방금 읽은 7절의 말씀을 뒤집어서 보면 더 이해할 수 있겠죠 하나님의 말씀을 굴복하지 않는 생각이 육신의 생각이라면 성령의 생각은 어떤 생각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있는 그대로 복종하는 생각 그래서 반대로 생각하면 됩니다 내 뜻, 내 생각, 내 욕심을 다 내려놓고요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는 생각 복종이라는 것은 내 뜻이 앞서지 않습니다 마치 종이 주인에게 순종하고 전적으로 복종하는 것처럼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전적으로 따르는 것 그것이 복종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성령이 우리에게 주는 생각은 성령의 생각이라 하면 바로 하나님의 뜻에,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는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그리고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말씀에 순종하게 하는 그런 역할을 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말씀 찾아보겠습니다
에스겔 36장 26절 27절입니다 에스겔 36장 26절 27절 말씀입니다 에스겔 36장 26절 27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여기서 말하는 신 영는 다 영을 말하는 거죠 하나님이 장사 주실 성령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27절을 보시면 하나님이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서 너희로 내 무엇을 행하게 한다고요?
내 윤례를, 내 법을, 내 말씀을 행하게 하겠다라는 것입니다 성령이 내 안에 내주하여서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라는 것입니다 물론 여전히 내 안에는 육체의 소욕, 욕심, 죄성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될 두 가지가 충돌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성령은 그런 나의 악한 마음까지도 변화시켜주는 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서 읽어본 26절을 보면은 새 영을,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어서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준다라고 하지 않 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때도 사람마다 저마다의 반응은 다 가지각색입니다 마치 식뿌리는 네 가지 밭의 비유처럼 똑같은 씨앗이 뿌려져도 그 땅의 상태에 따라서 열매가 맺어지고 안 맺어지고 그 결과가 다르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비유의 첫 번째 비유를 보면은 길가지 않습니까?
길가라는 것은 사람들이 오고 가면서 단단하게 다져진 땅이죠 그래서 그 땅에는 씨앗이 떨어져도 뿌리를 내릴 수가 없습니다 말씀의 열매가 맺어질 수가 없는 것이죠 딱딱한, 딱딱해진, 교만해진 사람의 악한 마음을 말합니다 그런데 성령은 그런 악한 마음을, 굳은 마음을 부드러운 마음으로 변화시켜주는 영이고요
그 마음으로 말미암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말씀을 지킬 수 있도록 해주는 그런 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오늘 본문으로 돌아오시면은 결국 우리 안에 있는 생각은 이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성령의 생각이냐 하나님의 말씀에 반하고 굴복하지 않는 그런 육신의 생각이냐
하지만 분명한 것은 육신의 생각은 육신의 일을 좁게 하죠 성령의 생각은 성령을 좁게 합니다 그로 인한 결과가 무엇이냐 우리 6절에서 8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래서 7절 말씀을 다시 보시면은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라고 하죠 결국 육신의 생각을 따라 육신을 조차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원수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당연한 일이죠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6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까지 보겠습니다 결국 육신의 생각을 따라 육신을 조차 행하는 사람 내 뜻을 따라서 내 뜻을 우선순위 삼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 사람의 그 끝은 무엇입니까?
사망이라는 것입니다 그럼 반대로 성령의 생각은 성령을 조차 행하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다시 우리가 7절에 말씀해 보시면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 반대로 보면은 성령의 생각은 하나님과 화목하게 한다라는 것입니다 원수와 반대되는 개념이죠 그럼 알미암아서 다시 6절을 읽어보겠습니다 6절을 읽겠습니다 시작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입니다
결국 영의 생각, 성령의 생각을 따라 성령을 조차 행하는 사람의 그 끝에는 영원한 생명이 있고요 그 과정에 그 끝에 평안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내 머릿속에 드는 어떤 생각을 가볍게 여기서는 안 되겠습니다 대표적으로 예를 들어보면 요한복음 13장 2절에서 가련유다가 어떤 생각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정확히는 마귀가 어떤 악한 생각을 그 마음에 넣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찾아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3장 2절입니다 요한복음 13장 2절 말씀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련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만 본다면 그냥 가련유다는 가만히 있었는데
평소에 선한 마음으로 늘 착한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마귀가 나쁜 생각을 예수를 팔려는 악한 생각을 쭉 하고 집어넣었다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단은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그냥 사단이 절대적인 의지를 가지고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을 악하게 변화시킬 수가 없어요
사단은 늘 틈을 파고드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가려두다가 지금 사단이 마귀가 이런 악한 생각을 집어넣었다는 것은 이미 그의 마음 속에 많은 틈이 있다는 것을 판증합니다 그 틈이 어디에 있었느냐 요한복음 12장 1절에서 6절 말씀을 보시면 1절에서 3절 말씀을 보시면
마리아가 지극히 비싼 향유를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지극한 헌신의 자세이죠 그런데 이 모습을 부정적으로 바라본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일까요? 바로 가련유다입니다 그래서 가련유다가 이런 말로서
5절 말씀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이 향유를 어찌하여 300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이 말씀만 보면 지금 가리온 유다가 가난한 사람들은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아니 이 비싼 돈을 이 비싼 것을 왜 여기에 씁니까?
차라리 돈으로 팔아서 그걸로 가난한 사람들 도와주면 좋지 않습니까?
말만 떼고 보면 그럴 듯한 말이죠. 그런데 가리온 유다의 속내는 무엇이었습니까?
6절 말씀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이렇게 말하면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오 저는 도적이라 돈계를 막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가미러라.
가리온 유다의 마음속에는 어떤 생각이 있었습니까?
진짜로 그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 돈을 내가 훔칠 수 있을까?
다시 앞선 말씀과 같이 보면 가리온 유다는 돈계를 맡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고요.
그 전에 거기 안에 있는 공금을 훔쳤다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가리온 유다의 마음속에는 이미 욕심이 가득했다라는 거예요.
그래서 요한복음 13장 방금 읽은 그 말씀과 연결해서 보면 사단은 그 마음의 틈을 봤다라는 것입니다.
그 마음의 틈으로 이제 더 큰 욕심 예수를 팔아서 더 큰 돈을 얻고자 하는 그런 욕심을 넣었다.
악한 생각을 넣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서 잘 생각해 봐야 됩니다.
내가 평소에 하는 그 많은 생각이 모든 생각이 전부다 하나님이 주시는 선한 생각이 아닐 수도 있다.
오히려 내 그 마음의 악함을 틈타서 마귀가 악한 생각을 넣을 수도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말로 조심해야 됩니다.
내가 살아가는 가운데 정말로 많은 생각을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보통 생각이라는 것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갑니다.
그런데 보통 우리가 부정적인 생각을 할 때 그 부정적인 생각이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을 우리가 경험하지 않습니까?
그럴 때 우리가 정신을 반짝 차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아! 이 생각은 하나님이 주신 생각이 아니다.
내 마음의 악함을 틈타서 지금 사단이 악한 생각을 넣어주고 있는 거다.
우리가 이것을 잘 구분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그냥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게 돼요.
그런데 우리가 우리의 욕심이 연약하지 않습니까?
그랬을 때때로 마음의 틈이 생기고요.
그 틈을 타서 사단이 악한 생각을 넣어줍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걸 구분하지 못하고 그냥 생각의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면 결국 그 생각대로 그 악한 생각대로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우리를 돕기 위해서 그런 우리의 연약함을 돕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주셨다라는 것입니까?
성령을 주셨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으로 기도하고 성령으로 말씀 읽고 성령으로 살아가는 것이 정말로 중요합니다.
우리가 늘 말씀을 나누고 예배 드릴 때 우리가 기도해야 된다.
우리가 성령을 열심히 기도해야 된다.
성령의 충만을 구해야 된다라는 많은 말씀 나누지 않습니까?
우리 성령의 인도를 잘 알고 있습니다.
열심히 기도해야 된다.
그런데 왜 그게 중요하느냐?
우리가 매일 항상 기도함으로 성령 충만으로 무장되어 있지 않으면 사단은 반드시 그 틈을 노립니다.
앞서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쑥 보았잖아요.
내가 가진 힘만으로는 죄에 대항할 수 없습니다.
죄의 문제를 극복할 수가 없어요.
그 연약함을 돕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을 주셨는데 어쩌면 우리는 그냥 그 성령을 보물단지처럼 그냥 한쪽에 잘 모셔만 듣고 저거 많지 바라보면서 내가 성령을 받았지.
정작 그 성령으로는 기도하지 않고 말씀 묵상하지 않고 그 성령의 뜻대로 살아가지 않는 그런 모습이 우리 안에 있지 않았는지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우리가 마지막 나눌 교훈은 성령을 쫓아 행하는 그리스도인은 영적 생명을 얻는다라는 것입니다.
성령을 쫓아 행하는 그리스도인은 영적 생명을 얻는다.
우리 8절 말씀 오늘 본문입니다.
8절 읽겠습니다.
시작!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는 이라.
위에서 쭉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육신에 있는 자들이라는 것은 육신 안에 속한 자들을 말합니다.
조금 더 풀어서 말씀드리면은 육신의 일을 생각함으로 육신을 쫓아 행하는 사람 그 사람들을 가리켜서 육신 안에 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고요.
반대로 성령의 일을 생각하여서 성령을 쫓아 행하는 사람은 결국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령 안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육신 안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하나님과 원수된 관계로 사망으로 나아간다라는 것입니다.
9절 읽겠습니다.
시작!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이 있어야지만이 반드시 그리스도 안에 속한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앞서 사절의 말씀과 같이 생각을 해보았죠.
우리가 성령을 받은 것만으로 안심할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은 성령을 조차 행해야 된다.
우리가 성령으로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내게 주신 생각대로 살아야 되고요.
또한 성령의 충만함으로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을 깨닫고 말씀을 내 삶 속에 적용해야 됩니다.
결론적으로 성령을 조차서 살아가야 된다라는 것입니다.
그리 할 때에 비로소 우리에게 영적인 생명이 허락된다라는 것입니다.
우리 10절 11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또 그레이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해 죽은 것이나 영은 의유를 인하여 산 것입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레이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그래서 10절 11절을 요약하면 결국 그레이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있으면 우리가 우리 몸은 죄로 인해서 죽겠지만 우리의 영은 그 의유를 인하여서 우리가 성령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서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생명을 허락받는다는 거예요.
또한 11절에서도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레이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면 그 영으로 말미암아서 우리의 죽을 몸도 살리시자.
그래서 우리가 영적으로 생명을 얻고 또한 장차 영적으로 부활한다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제목은 성령을 조차 행하라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성령을 강구하고 성령을 받습니다.
중요한 것은 성령을 받음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
제가 지난주에 지난주 토요일부터 화요일까지 학생부 영은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고등부 책임이자 또 강사로서 천안교회에 가서 영은혜를 같이 치르고 왔는데요.
최근 들어서 영은혜 동안 학생들이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 물론 성령을 받지 않은 친구들도 그런 경향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성령을 받은 학생들이 간구하지 않는다.
물론 개인 개인 전체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개인 개인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어떤 모습을 보면 과거에 비해서 성령을 받은 학생들이 어떤 간구함이 많이 보이지 않는다.
라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때로는 어떤 학생은 그냥 성령을 받았는데 그 자리에 앉아서 그냥 가만히 있습니다.
기도하는 시간인데 기도하지 않아요.
그래서 그 모습을 보면서 또한 오늘 말씀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 계신 우리 많은 성도님들은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 또한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정말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정말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 내 안에 성령이 충만해져야 됩니다.
그래서 내가 지금 성령을 조차도 살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 를 점검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말씀을 통해 살펴본 것처럼 지금 내가 살아가는 가운데 하루를 살아가는 가운데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그 생각이 육신의 생각이냐 성령의 생각이냐 우리가 한번 점검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분명한 것은 내 어떤 생각이 하나님의 말씀에 반하고 굴복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성령의 생각이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생각이 아니라는 것은 곧 육신의 생각이라는 것이죠.
그리고 그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않고요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시고
결국 그런 나를 사망으로 인도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생각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의 삶에는 참된 평안이 없습니다 6절에서 우리가 보지 않았습니까?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다 반대로 말하면 우리가 육신의 생각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은 그 삶 속에 참된 평안이 없습니다 늘 그 마음에 불안이 가득하고 두려움이 가득합니다 지금 우리 성도인들 살아가는 삶은 어떤 삶이십니까?
그 마음 속에 참된 평안이 가득 넘쳐나는 그런 삶이십니까?
아니면 그 마음 속에 불안이 가득한 두려움이 가득한 그런 삶이십니까?
간절히 바라오기는 우리 모든 성도인들이 정말로 그 신앙의 삶이 평안하고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기대의 여정을 따라서 우리가 사망에서 생명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 마지막으로 갈라디아서 5장 16절 읽고 오늘 말씀 마치겠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6절 말씀 같이 읽겠습니다 16절 읽겠습니다 시작 내가 이루는 너희는 성령을 조차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아멘 바라오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령을 조차 행하며 죄에서 참된 자유를 노리는 그런 저와 우리에게
예수 우리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함께 찬양하시겠습니다 찬송가 172장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빛늘에 마린 불같이 지느린 나의 영혼 지느린 주님의 허락한 성령 간절히 기다리네 3절 하시겠습니다 찬송가 172장입니다
찬송가 172장입니다 찬송가 172장입니다 찬송가 172장입니다 찬송가 172장입니다 찬송가 172장입니다 찬송가 172장입니다 찬송가 17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7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4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찬송가 183장입니다
아멘 네, 시간 들으신 말씀 기억하면서 함께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 더불어서 우리 지현 자매님과 정원희의 건강과 회복을 위해서 기도 부탁을 드립니다 또 감사하게도 정원희가 오늘 날짜로 이렇게 병원에서 퇴원을 했다고 합니다 물론 또 앞으로 또 매료의 진료가 많이 예정이 되어 있지만
또 그 모든 과정 가운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또한 그 건강을 회복해야 해서 정원희가 주안에서 밝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기를 같이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더불어서 내일 오후부터 일요일까지 안산교회에서 여름 성료학교가 있습니다 그래서 수원, 안산, 평택, 인천 우리 아동부 아이들이 함께 모여서
여름 성료학교 행사를 하게 되는데요 모쪼록 이 행사를 통해서 우리 아이들이 말씀을 올바로 배우고 믿음이 자랄 수 있기를 더불어서 또 많은 아이들이 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귀한 성룡을 받을 수 있기를 이 시간 같이 한 마음으로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한글자막 by 한효정 함께 주기도 문하겠습니다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이상으로 오늘 저녁 예배 모두 마치겠습니다 우리 일어나서 함께 인사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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