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영성 유바나바 목자 26.08.29
요15:4-5
제작일 2026.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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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의 영성(예수님을 닮아가는 교사) (#요한복음15장 4절~5절) #교사훈련학교 #TJC교회교육 #TJC대방 #TrueJesusChurch (요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요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참예수교회 홈페이지 http://tjc.or.kr/
AI 설교 정리
교사훈련학교에서 진행된 찬양예배에서 교사의 영성과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본문요한복음 15:4-5고린도후서 5:14-15
- 교사훈련학교에서 진행된 찬양예배는 '교사의 영성'을 주제로,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 예배에서는 예수님의 사랑과 구원의 은혜, 그리스도의 희생과 부활에 대한 찬양이 이루어졌으며, 교사의 영성은 예수님과의 깊은 교제와 관계에서 형성된다.
- 교사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영적인 성품을 통해 학생에게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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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개요
- 진행 장소: 참예수교회(True Jesus Church)
- 주제: 교사의 영성(예수님을 닮아가는 교사)
- 성경 구절: 요한복음 15:4-5, 고린도후서 5:14-15
- 찬양곡: "주의 사랑 우리 안에",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교사의 영성의 중요성
- 교사는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야 하며, 예수님의 사랑, 궁휼, 겸손, 인내, 온유 등의 성품을 가져야 한다.
- 교사의 영성은 하나님과의 깊은 연결과 기도, 그리고 예수님과의 관계에 기반한다.
- 교사의 사랑은 학생과 사역자 간의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죄를 덮는 힘이 있다.
교사의 태도와 행동
- 교사는 아이들의 행동 뒤에 있는 영혼을 이해하고, 감정이 아닌 의지적인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
- 교사는 문제 있는 아이들을 기다리고, 인내하며, 성장에 대한 기대를 가져야 한다.
- 교사의 권위는 예수님의 겸손과 인내가 모델이 되어야 한다.
교사의 실수와 회복
- 교사는 완전할 수 없으며,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 교사의 실수를 아이들이 보고 화를 내는 경우, 교사는 이를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
- 교사의 자존심을 세우기보다는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영성 관리와 성장
- 영성 관리는 말씀 읽기, 기도, 자기 성찰, 동역자와의 교제, 회개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 교사는 무너졌을 때도 하나님께 돌아가고 회복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 교사의 영성관리는 지속적인 노력과 관리가 필요하며, 완벽함보다는 회복과 성장이 중요하다.
교사의 헌신과 격려
- 교사로서의 헌신과 희생에 대해 칭찬하고, 지치지 말고 사명을 감당하라고 격려한다.
-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칭찬이 더 크다고 강조한다.
- 교사들이 예수님의 성품을 실천하고, 이를 통해 아이들에게 예수님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바람을 표현한다.
전사(자막) 전문▼
할렐루야, 아멘.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교사훈련학교 준비하면서 같이 찬양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 찬양으로 주의 사랑 우리 안에 박수치며 찬양하겠습니다. 주의 사랑 우리 안에 주의 사랑 우리 안에 주의 열정 우리를 향해 아낌없이 주셨네 주의 사랑 우리 안에 주의 열정 우리를 향해 아낌없이 주셨네 한 번 더 찬양합니다. 주의 사랑 사랑 우리 안에 주의 열정 우리를 향해 아낌없이 주셨네 주의 사랑 우리 안에 주의 열정 우리를 향해 아낌없이 주의 열정 우리를 향해 주의 열정 우리를 향해 열방위에 열방위에 쏟으신 그 사랑 우리 오늘 우리 오늘 노래한 이 은근의 손격을 치며 찬양해 주의 열정 우리를 향해 주만이 우리의 목적이 주의 사랑의 손격을 치며 찬양해 그 소리 저 찬양해 저 찬양해 저 찬양해 오늘도 다 쓸미시니 주의 열정 우리를 향해 주의 사랑의 손격을 치며 찬양해 주의 사랑 주의 사랑 우리 안에 주의 열정 우리를 향해 아낌없이 주셨네 주의 사랑 우리 안에 사랑 우리 안에 주의 열정 우리를 향해 아낌없이 주셨네 열방위에 쏟으신 열방위에 쏟으신 그 사랑 오늘 우리 노래한 이 은근의 손격을 치며 찬양해 지금 여기 계시네 주의 열정 우리를 향해 주의 열정 우리를 향해 그 소리 외쳐 그 소리 외쳐 찬양해 오늘도 다 쓸미시니 주머니에 참 기쁨 손뼉을 치며 찬양해 손뼉을 치며 찬양해 지금 여기 계시네 주머니에 우리의 목걸이 치네 큰 소리 외쳐 찬양해 외쳐 찬양해 외쳐 찬양해 외쳐 찬양해 우리도 다 쓸미시네 주의 열정 우리를 향해 주의 열정 우리를 향해 주의 열정 우리를 향해 나를 향한 주님의 사랑 나를 향한 주님의 사랑 그 누구도 바꿀 수 없네 나의 영혼 언제나 주를 원해 나를 향한 주님의 사랑 나를 향한 주님의 사랑 그 누구도 바꿀 수 없네 나의 영혼 언제나 주를 원해 주의 권세와 주의 권세와 능력이 영원 영원 너네 주의 권세와 능력이 영원 영원 그 누구도 바꿀 수 없네 나의 영혼 언제나 주를 원해 나를 향한 주님의 사랑 나를 향한 주님의 사랑 그 누구도 바꿀 수 없네 나의 영혼 언제나 주를 나를 향한 주님의 사랑 그 누구도 바꿀 수 없네 나의 영혼 언제나 주를 원해 주의 권세와 주의 권세와 능력이 영원 영원 영원 영원 그 누구도 바꿀 수 없네 나의 영혼 언제나 주를 원해 주의 권세와 주의 권세와 주의 권세와 능력이 영원 영원 영원 영원 도록 내 삶에 언제나 나 이끌어 주소서 주의 권세와 주의 권세와 능력이 영원 영원 도록 내 삶에 언제나 나 이끌어 주소서 나를 향한 나를 향한 주의 권세와 능력이 영원 그 누구도 바꿀 수 없네 나의 영혼 언제나 주를 원해 나를 향한 나를 향한 나를 향한 주님의 사랑 그 누구도 바꿀 수 없네 나의 영혼 언제나 주를 원해 원해 아멘 솔직히 얘기하면 오늘의 이 찬양예배는 제가 교회 교육 2월 LT 때 제가 지각을 하는 바람에 하지 못했던 찬양예배입니다. 그래서 주제가 어떻게 하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준비했던 교회 교육의 기도 제목 서로 사랑하는 교회 교육 주제 내용으로 준비했던 찬양예배인데요. 우리 앞에 있는 성경 구절 먼저 한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사랑이 우리를 강건하시는 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를 강건하시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그 그리스도의 사랑은 구절에 나와 있는 것처럼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바로 그 사랑입니다. 오늘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 아주 피곤하실 텐데도 앉아서 목소리를 높여 찬양하고 또 하루 가운데 힘든 사역들도 많았을 텐데 그 모든 것을 여러분들이 소화해 주심은 바로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건하기 때문이지요. 맞으시죠? 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의 사랑 다시 같이 찬양하도록 하겠습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함께 찬양하겠습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나 같은 죄인 살리신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님을 불러와 주신 주님을 불러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관념을 얻었던 이 큰 죄악에서 큰 죄악에서 번지신 주님을 주신 주님을 주신 주님을 주신 주님을 고마워 저는 믿음 이 시간 주님을 주신 주님을 주신 주님을 주신 주님을 주신 주님을 주신 주님을 주신 주님을 주신 주님을 주신 주님을 주신 주님을 주신 주님을 주신 주님을 주신 주님을 주신 주님을 주신 주님을 주신 주님을 주신 주천여 주천여 내 생명 다해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오늘의 장자 분양의 인도의 그 신이 거기서 우리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이대로 이처럼 밝게 살면서 주천여 나리라 주천여 주천여 주 찬양 네 마음 다해 주 찬양 주 찬양 네 생명 주 찬양 주 찬양 주 찬양 네 마음 다해 주 찬양 주 찬양 네 생명 다해 그 사랑 그 사랑 날 위해 죽으시니 날 위해 다시 사시니 예수의 그리스도 다시 오실 그 사랑 죽음도 생명도 천사도 하늘의 어떤 관세도 끊일 수 없는 영원한 그 사랑 내 수 그리스도의 사랑 함께 찬양 함께 찬양 찬양 아버지 사랑 내가 노래해 아버지 사랑 내가 노래해 아버지 사랑 내가 노래해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내가 노래해 그 사랑 편함 없으신 거짓 없으신 성실하신 그 사랑 사냥 사냥 사냥 갈대 꺾지 않으신 사냥 사냥 갈대 꺾지 않으신 꺼져가는 등 끌뛰지 않는 그 사람 변함없이 신 고질없이 신 성실하신 그 사람 사랑 그 사람 그 사람 날 위해 즐기신 날 위해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 다시 오실 그 사람 죽음도 생명도 찬사도 하늘의 어떤 것에도 끊일 수 없는 영원한 그 사람 예 그 사람 그 사람 날 위해 즐기신 날 위해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 다시 오실 그 사람 죽음도 생명도 찬사도 하늘의 어떤 것에도 끊일 수 없는 영원한 그 사람 예수 우리 앞에 있는 성경 고자를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사랑할 수니 사랑의 허다한 죄를 덜 내리라 우리가 사랑할 일이 참 많이 있습니다 그쵸? 서로 사역자들 간에 또 선생님이 학생을 또 학생이 선생님을 그리고 또 학생의 학부모를 교사가 사랑해야 할 일도 있습니다 근데 우리가 말 그대로 사랑스러워서 사랑을 한다기보다는 정말 우리가 사랑해야 할 일이 참 많이 있는 것 같지요 그래서 지치는 순간들도 많고 또 때로는 갈등의 상황 속에서 복잡한 마음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한 때에 우리가 방금까지 찬양했던 그리스도의 사랑을 생각하신다면 우리가 또 못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나를 사랑해 주신 그 사랑 힘입어서 우리 옆에 있는 형제 자매 그리고 나에게 맡겨진 어린 양들 사랑할 수 있는 우리 모든 교회 교육 인원들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사랑 그 좁은 길 함께 찬양하겠습니다 사랑 그 좁은 길 누가 그 길을 가려나 겸손 그 이름 없는 길 누가 그 길을 사랑 그 좁은 길 사랑 그 좁은 길 누가 그 길을 가려나 겸손 그 이름 없는 길 누가 그 길을 가려나 누가 주의 마음 알아 자매의 눈물 닦아주며 누가 형제의 혐을 사랑으로 덮고 누가 주의 누가 주의 마음 알아 절망의 가진 영혼 찾아 위로 예수님 이로 사랑으로 가는 사람 사랑 그 좁은 길 누가 그 길을 가려나 겸손 그 이름 없는 길 누가 그 길을 사랑 그 좁은 길 누가 그 좁은 길 누가 그 길을 가려나 누가 그 길을 가려나 겸손 그 이름 없는 길 누가 그 길을 누가 주 영광 위해 누가 주 영광 위해 스스로 나아가 겸손 그 길을 가려나 즐거이 포기야 누가 주 영광 위해 내 자유를 내 자유를 내 자유를 내려놓은 사랑 그 좁은 길 누가 그 길을 가려나 사랑 그 좁은 길 누가 그 길을 가려나 겸손 그 이름 없는 길 누가 그 길을 가려 사랑 그 좁은 길 누가 그 길을 가려나 사랑 그 좁은 길 누가 그 길을 가려나 사랑 그 좁은 길 누가 그 길을 가려나 겸손 그 이름 없는 길 누가 그 길을 가려나 사랑 그 좁은 길 누가 그 좁은 길 우리는 그 사랑 배워가네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시 그 사랑 닮아가리 주님의 사랑으로 주님의 사랑으로 묶어진 우리 서로의 아픔도 나눠앉아 주님이 보이신 그 사랑의 길 함께 걸어가 한 번 더 찬양하겠습니다 사랑은 주님께로 사랑은 주님께로 날 위암고 우리는 그 사랑 배워가네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시 우리 그 사랑 닮아가리 주님의 사랑으로 주님의 사랑으로 묶여진 우리 묶여진 우리 서로의 아픔도 남아앉아 주님의 사랑으로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의 길 사랑이 없는 모든 것 사랑이 없는 모든 것 밑에 음으로 찬양하겠습니다 울리는 괭관이 같은 날 사랑의 길 사랑의 길 사랑의 길 사랑한 죄를 넘는 그 중지를 사랑해라 사랑한 주님께로 사랑한 주님께로 날 미안고 우리는 그 사랑 배워가네 우리는 죽기까지 사랑하시 그 사랑 닮아가리 사랑한 주님께로 사랑한 주님께로 날 미안고 우리는 그 사랑 배워가네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시 그 사랑 닮아가리 사랑이 없는 모든 것 사랑이 없는 모든 것 울리는 그 말이 같은 것 사랑이 너도 한 죄를 넘니 그 중지를 사랑해 그 중지를 사랑해 사랑은 주님께로 날 미안고 우리는 그 사랑 배워가네 우리는 그 사랑 배워가네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시 그 사랑 닮아가리 사랑은 주님께로 사랑은 주님께로 사랑은 주님께로 날 미안고 사랑은 주님께로 날 미안고 사랑은 주님께로 날 미안고 사랑은 주님께로 날 미안고 우리는 그 사랑 배워가네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시 그 사랑 닮아가리 우리를 죽기까지 우리를 죽기까지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시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시 주님의 사랑 닮아가리 사랑은 주님께로 날 미안고 사랑은 주님께로 날 미안고 사랑은 주님께로 날 미안고 사랑은 주님께로 날 미안고 사랑은 주님께로 날 미안고 사랑은 주님께로 날 미안고 사랑은 주님께로 날 미안고 사랑은 주님께로 날 미안고 고등학교 시작하기 전에 같이 성령으로 기도하고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늦은 시간이지만 하나님께서 저희의 마음과 눈과 귀를 열어서 오늘 전해주시는 말씀 잘 들을 수 있도록 같이 영으로 기도하겠습니다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오늘 안식일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고 축복 주시길 원합니다. 꼭 그렇게 되길 원합니다. 아멘. 여러분들의 이 수고를 저는 100% 몰라도 하나님은 120% 알 거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언제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한 수고를 우리는 80%라도 알아주면 정말로 좋은 거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은 120% 이상 알아주시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우리의 작은 헌신도 하나님은 크게 보시는 분 이니까. 그런 분이 우리 하나님이시잖아요. 그래서 저는 우리 교사들이 정말로 애를 많이 쓰는 일이다. 온전히 다른 사람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이잖아요. 사실은 그렇거든요. 사람을 위해서 사역을 감당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서 여러분의 이 수고가 반드시 하나님께서 기억해 주시는 그런 수고인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우리가 아무리 신앙이 깊고 높아도 내 수고를 나만 안다라는 것에 지침이 있습니다. 좀 많이 힘들죠. 그리고 나의 수고를 나만 알다 보니까 또 이것을 좀 더 성숙하고 좀 더 거룩하게 하나님 앞에서 끌어올려 가는 것이 또 쉬운 일은 아니에요. 그래서 내가 좀 더 하나님께 바른 교사가 돼야지 하나님께서 좀 인정해 주신 교사가 돼야지 라는 것이 때로는 수고와 연관되어서 나만 아는 수고일 땐 힘들더라고요. 그런데 하나님이 120% 알아주신다라는 것이 여러분의 신앙에서 좀 여러분의 동력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왜냐하면 제가 좀 그러거든요. 저는 사람의 어떤 것보다 더 중요한 게 하나님께서 알아주실 거다. 이게 너무 크다 보니까 그러려고 많이 애쓰는 것 같아요. 이것마저 없으면 참 힘들 것 같다 생각이 들기도 해요. 왜냐하면 아까 얘기했던 것처럼 더 하려고 하지 않죠. 이 정도면 되지 이런 생각이 많을 텐데 우리는 하나님께서 알아주실 거다. 이 믿음이 큰 우리한테는 힘이 되는 것 같아요. 저는 여러분들이 좀 그런 믿음을 가지고 교사 직분을 감당했으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실제로 여러분들 스스로 뿐만 아니라 여러분들의 수고를 여러분들이 맡은 아이들도 알아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아이들을 맡기는 부모님도 잘 안 알아줄 때가 있습니다. 그렇죠? 그래서 그런 가운데 필요한 게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수고를 120% 알아준다. 이 믿음이 꼭 저는 필요한 일이다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꼭 여러분들 그런 믿음 가지고 열심히 앞으로도 애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하루 종일 이렇게 사역하고 쉴 수 있는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또 강의를 들어야 되는 것이 얼마나 힘들겠어요. 하지만 힘을 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좀 더 하나님 귀히 여기는 또 기뻐하시는 그런 교사가 되기 위해서 또 우리에게 필요한 일이 있을 테니 이걸 같이 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는데 이번에 같이 살펴볼 내용은 교사가 가져야 될 영성입니다. 영성은 말 그대로 말하면 우리가 영적으로 가진 성품이죠. 영적으로 가진 성품 또 이거를 우리가 실제 사역할 때 나타나는 걸 보면 또 우리 마음의 성품 마음이 나타나는 그런 성품들을 우리가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그 영성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닮아가는 교사가 돼야 된다. 그러니까 우리가 교사 영성에 가장 중요한 목표는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는 것이고 예수님의 영성을 가지는 것이고 그 예수님의 마음과 영성을 가지고 우리가 맡은 우리 사역자들의 대상되는 그런 아이들을 대하는 그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이 영적인 성품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 영적인 성품을 또 하나님께서 받으시기 때문에 그래요. 제가 자주 말씀드리지만 인간이란 존재는 눈에 보이는 육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육신이 옷 같은 거라면 그 옷 안에 진짜 우리의 몸이 있잖아요. 그런데 실제 나는 이 옷이 아니라 우리 몸인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시는 것은 우리 영적인 성품, 우리 영적인 나의 모습 이걸 보시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영성은 교사들만이 가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가져야 될 또 갖고야 될 그런 것이 영성이죠. 그리고 그 모델은 계속 얘기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이걸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영적인 성품이 예수님을 닮아가는 영적인 성품이 되려면 이게 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요한복음 15장 4절 5절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닮아가는 예수님을 닮아가는 영성을 가지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예수님께 달려있는 겁니다. 연결되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독립적으로 우리 힘으로 절대 될 수 없어요. 그리고 그렇게 해서만이 우리의 영적인 성품의 열매가 맺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하신 거예요. 물론 이 말씀을 여러 상황에 우리가 적용해 활용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때로는 교회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하고 또 교회가 연결되어 있지 않을 때 떨어진 교회는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도 하지만 사실은 우리의 모든 성도들이 예수님께 달려있지 않으면 결코 예수님을 통해서 얻어지는 이 귀한 영적인 성품의 열매를 맺을 수가 없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어떻게 해야 되냐 이런 거에 대해서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거죠. 그럼 먼저 교사는 무엇으로 아이를 가르치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우리들이 아이들을 무엇을 가르치는가를 생각해 보면 너무나 쉬운 답들이 있잖아요. 우리는 아이들한테 이렇게 성경을 가르치고 또 기도하는 법도 가르치고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하는 법도 가르치고 또 찬양하는 법도 가르치고 또 이렇게 십계명 이런 것들을 아이들한테 가르치지 않습니까? 그래서 여러분들이 열심히 준비해가지고 아이들한테 가르치는 것은 너희 성경 이렇게 읽어야 돼 성경은 이렇게 유익이 있어 기도는 이렇게 하는 거지 또 찬양은 이렇게 하는 거야. 예배 왜 그렇게 똑바로 안 드려? 이렇게 똑바로 드린다는 건 이런 거야. 이런 거 우리 열심히 가르치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이런 부분에서 이거는 가장 겉으로 드러나는 가르침입니다. 사실은. 그래서 여러분들이 저도 그런 모습이 굉장히 신경이 쓰이죠. 제가 예전에도 교사 교육할 때 말씀을 드렸지만 저와 여러분들은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다. 라고 말씀을 드렸죠. 왜냐하면 저도 영적인 양식을 공급하는 즉 가르치는 사람이기 때문에 가르치는 입장에서 가장 고민스러운 일이 뭐냐면 아이들에게 미치는 내 영적인 성품들. 이것이 내가 가르치는 일에 얼마만큼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거든요. 여러분 모습에 지금 제가 어떻게 미칠지 모르겠지만 저는 엉망이었던 사람입니다. 모르겠습니다. 제가 하나님 믿기 전에는요. 이렇게 말하면 제가 쌈 일도 많이 하고 제 등치가 원래 컸습니다. 우리 중학교 때 정말 많이 싸우기도 하고 지금은 욕을 들어도 듣는 것조차도 이게 어색하지만 그때는 뭐 욕을 달고 살았으니까 그랬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저를 전도하려고 매일 점심시간 때마다 선배하고 또 친구가 왔었거든요. 저 전도하려고 그 앞에 대고 제가 욕을 했던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러면 안 올 것 같아서 그렇게 욕하고 애들 때리고 그런 모습을 보여주면 얘는 안 되겠다 싶어서 안 와야 되잖아요. 원래 그러면 그리고 성질도 엄청 급해요. 그래서 제가 지금은 말투가 많이 느려졌습니다. 이제 느려진 이유가 있는데 제가 성질이 워낙 급해가지고 말이 막 뒤에 말이 앞으로 나오고 이런 말이 너무 많았어요. 그런데다가 제가 발음이 부정확하니까 마음이 급한데 말은 해야 되고 그럼 어떻게 돼요? CP죠. 말이 CP고 이런 일들이 너무 많아가지고 이게 내가 안 되겠다. 고민을 너무 많이 했었거든요. 성질이 급해요. 성질이 급하고 다른 사람 가만히 일하는 것을 못 지켜봅니다. 내가 하고 말지. 이런 게 너무 많고 그래서 성질이 굉장히 못됐어요. 여러분 지금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하나님 믿으면서 이런 것들이 너무 그래서 대학교 때만 해도 저 무서워한 사람 정말 많았거든요. 그래서 못된 정말 무서워했습니다. 특히 자매들이 저 진짜 싫어했어요. 왜냐하면 제가 집행부를 했었는데 자매들은 좀 늦게 자오기도 하고 그렇잖아요. 그럼 딱 11시에 취침 시간이다. 그러면 11시에 자매반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기 시작합니다. 잘하고 눈을 두드립니다. 잘하고 그리고 10분 지나서 또 또 이야기 소리 난다. 그럼 또 두드립니다. 그걸 제가 잘 때까지 아무 소리 안 날 때까지 그거 하고 잘해서 그리고 제가 이 대방교회가 기억이 많이 나는데 예전에는 한 달씩 당기시나 그랬어요 대방교회에서 그리고 대방교회에 당기시나고 정말 어렵게 시간 내서 왔거든요 왔는데 뒤에서 자는 거죠 그러면 제가 그때 반장이어서 일어나서 서 있으라고 했어요 그리고 그때 당시에는 한 달씩 당기시라고 하니까 놀러 왔어요 서울에 놀러 그러면 어떻게 하냐면 그때 당시에는 5시까지만 수업이 있었습니다 저녁에는 자율학습 조치 한 달 동안 하니까 그리고 4시까지 수업 듣고 저녁에 나가는 거야 그런 청년들이 있었어요 그러면 밤 늦게까지 와서 놀다가 자는 거죠 이제 와서 자면 그런 애들 불러서 집에 가라고 했어요 집에 가라고 왜 여기 와있냐고 다 공부하는 사람들이 그런데 왜 방해돼요 왜 여기 있냐고 그랬었습니다 정말 그랬었어요 제가 화가 나서 그래서 제가 많이 다녀오신 건데 그러니까 용납을 잘 못했어요 그래서 제가 제일 신학을 해야 되겠다라고 생각했을 때 그때 당시에 이게 문제인지 몰랐어요 그런데 신학을 하고 나서 드는 생각이 이게 너무 부족하니까 그래서 제가 이것을 삭힌이라고 어떻겠어요? 제가 위계양을 두 번 알았습니다 이게 이제 제가 삭혀야 되잖아요 이 성질을 삭혀야 되잖아요 그래서 위계양을 제가 두 번 알았어요 그래서 여러분 위계양이 뭔지 아세요? 위계양을 그냥 내버려두면 위암이 되는 거예요 위가 아프다 이게 위의 아픈 걸 내버려두면 위염이 되고 위염을 방치하면 위계양이 되고 위계양을 방치하면 거기에 암이 생깁니다 이런 과정이거든요 제가 이제 사실은 위계양이 생긴 거는 제 성질머리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금은 많이 이제 물론 달라졌겠죠 그랬지만 제일 걱정이 그거였어요 제가 열심히 성도들을 가르치지만 결국에는 성도들을 가르치는 것은 이런 것만이 아니죠 아이들은 정말 우리가 가르치는 것만 배우냐 그렇지 않습니다 뭘까요? 교사의 반응 교사의 반응이라는 것은 아이들에 대한 여러분들의 반응을 배웁니다 여러분들의 말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가르치는 아이들에 대한 반응을 배워요 이 선생님이 나를 사랑하냐 안하냐 내가 이런 행동을 했을 때 선생님이 어떻게 내게 반응하느냐를 배워요 그리고 선생님이 드리는 예배를 배웁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하는 사과를 배워요 이런 상황에서는 선생님이 이렇게 사과할 줄 아시는구나 사실 이것은 우리가 성품을 통해서 나타날 수 있는 일들이거든요 그래서 이 선생님을 통해서 배우는 게 뭐냐면 신앙 생활이라는 것은 이런 거구나가 말을 통해서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의 모습을 통해서 배운다 저는 얼마나 걱정이겠어요 그래서 그런 부분에 있어서 걱정이 많았고 기도도 많이 했고 그래서 제가 계속 지향했던 게 뭐냐면 나는 보자기 같은 사람이 돼야 되겠다 이제 그런 생각을 한 거죠 예전에 보자기 같은 거에 대해서 관용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그 얘기를 했던 것 같아요 보자기는 참 특이합니다 우리가 드는 가방은 모양이 정해져 있잖아요 그래가지고 그 모양에 따라서 그에 맞는 것을 넣어야 되지만 보자기에는 모양이 없습니다 어떤 것이든 그냥 쌓으면 되는 게 보자기잖아요 그런데 이제 사실 우리의 성품이라는 것이 무엇을 지향해야 되냐면 우리 예수님처럼 아까 우리 사총부 성경군부도 그런 얘기를 했는데 하나님의 사랑의 특징이라고 제가 하나님의 사랑의 규격을 얘기를 했잖아요 사실 무한대거든요 예수님의 사랑의 크기는 무한대 같은 거예요 그러니까 그런 사람이 돼야 되겠다라고 고민을 한 거죠 물론 여전히 부족하고 그렇지만 왜냐하면 우리가 가르치는 것 이상으로 우리가 가르치는 대상은 우리의 지금 이 모습을 배우, 말을 배우는 게 아니라 우리의 영적인 성품을 배워가기 때문에 그렇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교사인가 A교사와 B교사가 있어요 어떤 교사는 성경직식도 풍부하고 분반 준비도 철저히 잘하고 말도 잘하고 순발력도 좋고 그런데 성격이 맨날 혼내고 맨날 때리고 맨날 그래요 예를 들어서 이렇게 한 거예요 극단적인 표현이니까 이해해 주세요 여러분들은 그런 사람 없지만 그런데 성경직식도 부족하고 말도 잘 못하고 해요 그러면 교사로서는 저거 치명적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실수를 기다릴 줄 알아 그리고 약속도 잘 지켜 그리고 어떤 것을 내가 잘못했을 때 사과할 줄 알아 그런 선생님을 보니까 보게 되는데 여러분은 어떤 교사인가요? 그래서 저는 여러분들이 열심히 아이들에게 가르칠 걸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러분이 가진 영성이 어떠한가에 대한 고민을 해야 된다 그러니까 우리가 자칫 잘못하면 자꾸 여러분이 해야 될 것을 준비하는 데 급급하거든요 그런데 사실은 영적인 성품은 그릇 같은 겁니다 우리가 그릇에 안에 열심히 뭔가를 담아내는데 만약에 여러분이 영적인 성품이 잘 갖추어 있지 않는 성경 지식은 다 빠져나가는 지식이에요 효력이 나타나지 않는 지식일 때가 너무 많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릇이 여러분 영적인 성품이 잘 갖춰진 그 안에 아이들이 가르칠 지식들을 담아내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것을 보면 우리는 어떤 교사인가 사실 교사는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인 동시에 자신이 믿는 복음을 단순히 말이 아니라 삶으로 보여주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교사라는 정의를 다시 한번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교사는 열심히 뭔가를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것만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교사는 그냥 막 무조건 시키기가 어려운 거예요 반드시 영적인 성품을 갖춘 신앙을 갖춰야 됩니다 이게 굉장히 중요하죠 그래서 여러분들이 교사 교육을 받는다라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받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도구 즉 그릇으로서의 여러분 닦아가는데 그 중에 중심에 바로 영성이 있습니다 성이 그래서 교사 영성 교사 영성이라는 것은 뭘까요? 우리 에베소서 4장 13자로 같이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하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상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우리가 마땅히 교사 영성으로 갖춰야 될 것은 뭐냐면 예수님이 가지신 그리스도라는 모양에 충만하게 다다라 가는 거예요 그래서 실제 여러분이 예수님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닮아가야 됩니다 성경에서 나타난 예수님이 하는 행적들 예수님이 하신 말씀들 이거 배우는 거 중요하지만 그것만 그것 이상으로 중요한 건 뭐냐면 그런 예수님을 배워가야 닮아가야 되는 거예요 닮아가야 되는 거예요 물론 우리가 아무리 힘쓰고 노력한다 할지라도 예수님처럼 될 수 있을까요? 저는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여기서 말해주고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장상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러야 된다라고 하는 그 방향성 중요하지만 이럴 수 있을까? 이런 생각도 들지만 중요한 건 뭐냐면 정말 그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그 방향성을 가지고 우리는 계속해서 힘써야 된다 그게 교사의 영성이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교사의 영성이라는 것 영성이라는 것의 모델은 당연히 누굽니까? 예수 그리스도라 그래서 아까 얘기했던 것처럼 교사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을 닮아가는 사람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사람이다. 그래서 영성은 그 교사 영성은 뭘까요? 그러기 때문에 이런 하나님 바로 예수님과의 관계에서 그 예수님을 닮 은 성품 그 성품을 가져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이걸 저렇게 표현한 거죠. 영성이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는 거다. 예수 님을 닮아가야 된다. 그래서 교사 영성은 그냥 되지 않습니다. 누구를 닮아간다는 것은 그냥 되지 않아요. 그래서 예수님과의 깊은 관계가 형성이 돼야 돼요. 우리가 깊은 관계, 즉 깊은 교제의 관계가 형성되지 않고 닮아갈 수 있냐? 안 됩니다. 정말 그래요. 그래서 닮아간다는 것은 참 독특해요. 무슨 얘기냐면 여러분 나중에 부부도 있지만 부부가 결혼을 하게 되면 처음에는 정말로 달라서 싸웁니다. 결혼은 환상 같은 게 아니에요. 결혼을 하면 진짜 진짜 진짜 많이 싸웁니다. 왜 싸울까요? 달라서 싸워요. 달라서. 그래서 제가 우리 신혼부부 힘들어하는 신혼부부들한테 얘기하는 건 싸우는 이유는 틀려서가 아니라 달라서 그렇다. 계속 그 얘기를 강조하거든요. 정말로 달라. 너무 달라. 그런데 이게 정말 신기한 게 뭔지 아세요? 시간이 가면 갈수록 물론 어떤 한계 정말 확 커져 있었던 그 시기가 있지만 그걸 넘어서면 점점점점 줄어갑니다. 줄어가는 이유 중에 하나는 서로 용납해져가지고 그래서 제가 이제 사실은 결혼은 고치는 게 아니에요. 용납하는 겁니다. 고치려고 하니까 싸우는 거예요. 우리 결혼한 지 얼마 안 되는 친구분들 있죠? 우리 형주 선생님 유진자매도 있네요. 결혼은 고치는 게 아니야. 용납하는 거예요. 용납해야 돼. 안 고쳐져요. 그렇습니다. 용납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알아가는 겁니다. 이해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나중에는 어떻게 되는지 아세요? 비슷해져요. 그래서 이신전심이라는 게 그냥 되진 않아요. 깊은 교제 속에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부부니까 그렇게 그 세월을 견디면 닮아가는 거거든요. 그런데 여기 우리 예수님을 닮아간다는 것은 그냥 아 예수님 닮아야지 닮아야지 이뤄서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의 깊은 교제를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 예수님의 영성 그것이 우리의 영성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땅히 예수님이 우리의 교사로서의 모델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가진 어떤 성품들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돼요. 그래서 우리가 먼저 닮아야 되는 것이 예수님의 사랑이죠. 그래서 이걸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의 사랑 사랑받는 사람이 사랑할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의 사랑을 여러분들이 많이 받아야 돼. 받는다라는 것이 어떤 새로운 예수님의 사랑을 쟁취하고 받아내고 이런 걸까요? 그러지 않습니다. 제가 가끔 말씀을 드리지만 은혜는 은혜는 개발하는 개발이라기보다는 뭐가 좋을까요? 발명하는 게 아니라 발견하는 겁니다. 무슨 얘기인지 이해 돼요? 예수님의 사랑은 새로운 게 아니야. 원래 예수님은 우리를 죽도록 사랑해요. 원래. 그런데 우리는 그걸 모르니까 그 깊은 교제 가운데 예수님의 사랑을 발견해 가야 돼요. 깨달아 가야 된다. 그러려면 예수님의 사랑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돼요. 제가 사정부 때도 공부 때 그렇죠? 묵사 많이 해야 된다. 예수님의 사랑에 대해서 이런 말씀을 드렸는데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받은 사람이 사랑할 줄도 알아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3장 1절이 아까 우리 사정부 성격 공부 내용이죠. 예수께서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그까지 사랑하신다. 그래서 이런 사랑이 반드시 내가 이런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내가 내게 맡겨진 사람들에 대해서도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래서 이런 우리반의 말썽꾸러기 있죠? 여러분 또 오르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이 또 오르는 말썽꾸러기를 여러분 어떻게 하십니까? 방인화냐 또 훈육하냐 아니면 끝까지 그래도 사랑으로 이 아이를 하려고 어떻게 해서든 품어보려고 하느냐. 여러분 이 끈기는 어디에서 오냐. 저는 예수님의 사랑에서 온다고 믿어요. 그냥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힘으로는 안 돼. 그리고 또 예수님이 가진 성품은 뭐냐면 예수님의 궁율이죠. 궁율은 아시는 것처럼 불쌍히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문제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영혼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태복음 9장 36절 말씀에 보면 무리를 보시고 민망이 어기시니 저희가 목자 없는 양같이 고생하며 유리합니다. 예수님께서 무리를 보시면서 민망이 어긴 가장 큰 이유는 뭐냐면 여기에 예수님의 감정이입이 들어간 거예요. 목자 없이 양같이 그렇게 고생하고 그를 책임져주는 사람도 없고 이런 모습에 양이 너무 불쌍한 거야. 그래서 그런 문제 있는 아이들을 볼 때 우리가 어떻게 여기냐. 저 아이는 집중력이 너무 나빠. 이렇게만 볼 것이냐. 이 아이가 이런 문제가 드러나고 있으면 도대체 저 아이의 마음이 도대체 어떤가. 그래서 여러분이 봐야 되는 것은 영혼 뒤에 있는 행동 뒤에 있는 영혼을 볼 줄 알아야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게 뭐냐면 예수님 우리를 보는 국민이 여기시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겸손이죠. 그래서 가르치는 사람도 낮아져야 됩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2장 5전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 다음에 우리 아시는 것처럼 예수님이 그 겸손을 어떻게 보여주셨는가. 원래 예수님은 하늘의 하나님이셨음에도 불구하고 이 땅의 피조물로 강등되신 스스로 강등되신 그 예수님에 대해서 말씀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아이들아 저런 아이들한테도 저런 아이들한테도 야 기도해 말씀 읽어야지 예배 잘해야지 뭐 이렇게 말하기는 쉽죠. 그래서 먼저 여러분들이 좀 해야 되는 것은 제가 먼저 하겠다는 심정이 있어야 돼요. 그래서 권위는 원래 낮아지는 데 생기는 거다. 선생님으로 인정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그렇게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그런 사람이 되어야지. 예수님의 예수님의 인내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인내. 이 예수님의 인내는 교사자에게 정말로 중요한데 왜냐하면 인내는 교사로서 어디에 쓰일까요? 바로 성장을 기다리는 능력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기다리는 것을 잘 못하거든요. 요한복음 21장 15절에 보니까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러실때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내 어린 양을 먹이라. 이 예수님의 말씀은 바로 베드로에게 기대하는 거잖아요. 정말 예수님께서 맡기신 양들을 치고 먹이는 일 그걸 맡기시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당시에 베드로는 실패한 사람이었어요 예수님 부인이 세 번 그걸 떠나버린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그런 실패한 베드로에게 와서 저 말씀을 하시고 그 앞날을 기대한 거잖아요. 물론 예수님께서 그 앞날을 아셨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사실은 우리가 맡은 아이들에 대한 마음도 사실 실망이 아니라 기대를 가지고 아이들한테 해야 된다. 그 가운데 필요한 건 뭐냐면 있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제일 힘든 것 중에 하나가 이런 거죠. 성장하지 않는 아이들. 아이들은 절대로 우리가 원하는 만큼 성장하지 않아요. 그러면 다시 곱씹어 생각해 보면 나는 하나님이 원하는 만큼 성장하고 있는가? 그걸 고민을 보세요. 그럴 때 가 있어요. 그러면 막 부끄러워지잖아요. 그렇죠? 지구멍이라고 들어가고 싶고. 그러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해야 될 일이 있습니다. 아이들 향해서 우리가 해야 될 일은 바로 우리는 열심히 씨앗을 심고 기다리는 사람이다. 기다리는 사람이다. 이걸 잊지 않아야 된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교사의 영역에 있어서 우리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이죠. 그러면 교사가 구체적으로 가져야 될 성품, 영적인 성품은 뭐냐? 아까 얘기했던 것처럼 빌립보서 2장 5절 말씀을 근거하면 예수님의 마음이 곧 교사의 성품이 돼야 된다라는 겁니다. 그게 뭡니까? 바로 이 사랑이죠. 포기하지 않는 마음. 사랑. 바로 포기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고린대원서 13장 7절의 말씀을 보면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딘다. 바로 사랑이 가진 특징이죠. 그래서 교사의 사랑은 감정이 아니다. 이거 헷갈리면 안 됩니다. 교사의 사랑은 감정이 아니에요. 그래서 제가 한번 말씀드렸는지 모르겠지만 예전에 한 교사가 있었는데 이 교사는 사랑이 정말로 많아. 그래서 거의 아이를 안고 곧 이 아이를 이렇게까지 품고 그런 교사가 없어요. 그런데 재미있는 게 뭔지 아세요? 남자아이한테만 그래요. 여자아이는 옆에서 뭐 하는지 아세요? 구경하고 있어요. 자기도 안 끼고 싶어가지고. 여자아이는 별로 안 좋아해. 남자아이는 너무 좋아해가지고 끼고 살고. 또 교회 오면 선물 사오는데 남자아이들 그만 사와요. 그러니까 이 선생님의 사랑이 있죠. 그런데 이 선생님은 이 사랑을 감정으로 사랑해요. 정말 이 남자아이가 좋으니까. 이게 희한하죠. 그런데 우리가 하는 사랑은 의지적인 사랑이어야 돼요. 그래서 비록 감정적으로 마음이 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을 사랑해야 됩니다. 우리 아이들은 다 그렇잖아요. 예를 들면 여러분은 아마 말을 못해도 여러분이 가르치는 아이 중에는요. 정말 마음이 가는 아이들도 있어요. 부모님이 들으면 서운하겠지만. 이게 사람이 그렇습니다. 우리가 감정이라는 걸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정말 마음이 많이 가는 아이들이 있어요. 그러면 그 아이만 사랑해야 돼요? 만약 우리가 감정으로 사랑해야 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 아이만 사랑해야 됩니다. 그런데 교사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에요. 교사는 의지적으로 사랑해야 되는 거예요. 마음이 안 가. 마음이 안 가도 더 손이 가고 더 그 마음을 표현하려고 해야 되고 이게 의지적으로 해야 돼요. 의지적으로. 그래서 이거 알아야 돼요. 전대로 교사들은 감정으로 사랑하면 안 돼. 그러면 선생님들이 이제 학부모들이 막. 왜냐하면 감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표가 나거든요. 그래서 저 사람이 이런 얘기 하지 말라고 그러는데 어떤 얘기냐면 이런 말이 있어요. 감기 든 사람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숨길 수가 없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세요? 감기 든 사람은 감기 든 사람은 감기 든 사람은 감기 든 사람은 기침이 나니까 아무리 내가 감추려고 해도 기침을 참을 수가 없잖아요.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은 태가 나. 표정에서 태가 나고. 그렇잖아요. 그래서 저는 이런 여러분들의 감정적인 사랑을 바꿔야 됩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사랑하셨죠? 그래서 의지적인 사랑을 하셔야 됩니다. 교사가 가져야 될 사랑이라는 영성이죠. 그리고 교사는요. 국률이 있살입니다. 국률이라는 것은 아이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마음. 아이의 입장에서. 자꾸 우리가 아이들을 혼내는 이유는 선생님의 입장에서 아이를 바라보니까 그렇죠. 너 이것도 못해. 이렇게 조용히 해줘야지. 왜 이 시간에 예배 안 드리고 뭐해. 왜 이렇게 소리 질러. 우리가 소리를 왜 이렇게 질러라고 말할 만한 아이들이 좀 있죠. 우리 교사 입장에서 보면 자꾸 그러죠. 그런데 아이의 입장에서 이 아이를 바라보는 마음이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골로서 3장 12절에 보면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는 자처럼 궁율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어라. 라고 말해주고 있는데 교사는 아이의 행동을 평가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이 아이가 도대체 어떤 마음이길래 이렇게 행동하는 것일까. 그래서 그 마음에 헤아리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에요. 교사는 그래야 됩니다. 그래서 많은 경우 대부분의 경우는 다 이유가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그걸 잘 캐치 못할 때가 많으니까. 그렇죠. 그래서 이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된다. 이게 교사들이 가진 궁율이라는 성품입니다. 세 번째는 온유입니다. 온유. 온유는 힘을 가지고 절제하는 능력이잖아요. 온유는 힘이 없이 주눅든 이런 사람이 아니라 힘이 있습니다. 억압할 수 있는 힘도 있어요. 하지만 그것을 사용하지 않도록 애쓰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예수님이 가진 성품이기도 하죠. 그래서 힘이 있지만 힘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 것. 즉 교사의 권위를 가지고 그 권위를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의 권위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해서 여러분 좀 고민해야 됩니다. 그래서 이런 부분들이 어렵죠. 더 나가면 인내입니다. 인내. 사람의 변화를 기다리는 능력. 그래서 여러분들이 가르치는 교실에서 문제가 만약 나타나지 않는다면 다 잘 할 수 있겠죠. 그래서 우리 목장님들 사이에서도 그런 말이 있어요. 문제 없는 교회에서 목회를 잘하는 건 너무 당연한 거다. 그렇죠? 그런데 문제 있는 교회에서 어떤 목회를 하느냐. 이게 정말 중요하다. 그런 얘기를 하거든요. 왜냐하면 실제 이게 가르치는 것과 같은 맥락에 생각해 볼 때 문제 없는 교실은 없습니다. 그 안에서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이냐. 이것이 우리에게 정말 중요하다라는 거죠. 그래서 진짜 인내는 나를 무시하는 아이 앞에 서 있는 나 교사이죠. 진짜 인내는 나를 무시하는 교사 앞에 서 있는 나. 그래서 여러분 아이들이 여러분을 무시한다고 느낄 때가 있었어요? 얘가 나를 무시하는구나. 아까 얘기를 들어보니까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교사하고 참 목자하고 닮아있다. 사이 같으니까. 목자님은 그런 목자님을 무시하는 성도들 있어요. 그런데 이거죠. 그분 앞에 내가 어떤 목회자로서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 이거에 대한 고민을 하게 돼요. 실제로. 아예 목회자를 목회자처럼 보지 않는 경우도 있어요. 그래서 무시하는 거죠. 오히려 시험하기도 하고. 그런데 그분 앞에 내가 어떻게 목회자로서 내가 해야 될 일을 하는가. 이게 진짜 목회자로서의 나하고 여러분 교사로서도 그렇습니다. 여러분 정말 교사로서 내가 진짜 하나님이 내게 맡겨 나에게 맡겨진 사명은 교사다. 교사이다 라고 한다면 그냥 좋은 아이들 앞에 서 있는 여러분이 아니라 진짜 말썽꾸러기 여러분 무시하고 그런 아이들 앞에 서 있는 여러분이에요. 그게 인내입니다. 그리고 겸손이죠. 내가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는 믿음. 이게 정말 어렵거든요. 내가 틀릴 수 있다라는 것을 인정하는 믿음. 그래서 완전한 교사는 없어요. 다만 그 실수를 사과하는 교사가 되어야 됩니다. 내가 잘 몰랐다. 그래서 지금은 저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궁금한 것은 물어보세요. 그리고 꼭 한마디 붙이는 건 내가 모르는 것은 다 제가 공부해서 가르쳐 줄게요. 이렇게 얘기를 하거든요. 왜냐하면 제가 다 할 수 없잖아. 그러니까 교사들도 완전할 수 없고 교사들도 실수하지 않을 수 없어. 그런데 중요한 건 뭐냐면 그런 실수를 했을 때 여러분이 나타나는 반응이에요. 아이들은 그런데 오히려 그걸 본단 말이에요. 그러면 아이들 장난꾸러고 치고 이러면 화가 나고 화가 표출될 수도 있죠. 그러면 그 화를 그냥 얼렁뚱땅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 미안하다. 아까는 갑자기 선생님이 화내면 안 되는데 화를 냈네. 미안해. 이런 사과를 할 줄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아이들은요. 그런데 아이들은요. 그런 선생님을 더 친근해요. 그러니까 여러분들 쓸데없는 자존심 세우고 저도 보면 자존심이야. 그러니까 우리가 완전할 수 없다라는 건 인정해야 돼. 그러면 실수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그 실수를 감추려고 또 인정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얼마나 이게 꼴불견인지 아세요? 제가 그런 저의 모습을 보니까 꼴불견이더라고. 여러분 그런 거 있잖아. 어른이 돼서 어릴 때 코 찔찔 흘릴 때 실수했던 걸 생각나면 여러분 막 창피하잖아요. 그럴 때 없어요? 저는 그런 데가 워낙 많아가지고 막 창피하잖아요. 그런 적 없어요? 저는 그런 게 있거든요. 목혈라가 돼서도 목자님인 제가 목자가 돼서도 성도들한테 실수한 게 있었고 그 실수를 아닌 척 더 세게 나갔던 적이 있어요. 정말 부끄러운데 가끔 제가 기도할 때 그런 게 생각날 때가 있어요. 갑자기 기도하다가도 지구멍에 들어가고 싶을 때가 있거든요. 그러거든요. 그런 중에 하나가 뭐냐면 쓸데없는 자존심 세울 때야. 아이들 앞에서. 그 아이들 앞에 뭐라고 내 자존심 세워서 뭐 하겠다고 이럴 때가 있는 거죠. 사과하라는 거예요. 사과할 줄 알아야 돼요. 사과한다는 것은 내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고 잘못을 인정한다는 것은 나도 완전하지 않는 사람인 걸 인정하는 거예요. 이해되죠? 사과를 두려워하지 말아라. 특히나 애들한테도 미안하다고 할 줄 알아야죠. 그런데 제일 안 되는 사람이 사실은 배우자인데 배우자한테 사과하는 게 제일 어렵잖아요. 결혼한 사람들 아닌가요? 지윤쌤? 아닌가요? 저만 그런가? 네. 그런데 그것도 생각해 보면 정말 뭐 별거 아닌 거예요. 뭐 한다고 내 아내한테 이게 자존심을 세우겠다고 뻣뻣하게 고개 들고 말아앉고 있을까 이 생각이 들 때가 많거든요. 진짜로 우리의 올바른 신앙을 가져야 돼요. 왜냐하면 우리는 완전하지 않다. 완전하지 않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진짜 교육은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그 교사를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거다. 라는 겁니다. 그 다음에 마지막 교사의 영적 성품은 충성입니다. 이거 저는 중요하다고 생각이 돼요. 충성이라는 말은 어떤 올인하는 것 이렇게 생각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충성의 오원을 보면 변하지 않는 겁니다. 변하지 않는 겁니다. 변하지 않는 겁니다.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황에 따라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에요. 사람이 애들이 보고 있으면 잘하고 애들이 보지 않으면 안 하고 이게 아니라는 거예요. 변하지 않는 겁니다. 이게 충성이에요. 예수님께 하는 것도 상황에 따라서 변하는 것이 아니라 올곧게 계속해서 그 하나님 앞에 계속해서 그 자세로 해당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이것이 쉬운 일이 아니야.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형편에 따라서 하나님께 하는 것도 많이 변하거든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숙복도 주시고 은혜도 주시고 그러면 막 시간도 주시고 그러면 막 자라잖아요. 그런데 갑자기 이런 것들이 다 끊기는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거짓말처럼 이런 것들 하나씩 하나씩 다 뒤로하고 내 자세가 변하는 거죠. 이거는 충성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맡은 자들한테 하나님께서 가장 귀하게 보시는 것은 충성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아니하고 이 일을 맡긴 일을 하는가. 그래서 여러분들은 특히나 하나님도 보시지만 반말도 아이들과 듣고 낱말도 아이가 듣는 거죠. 아이들이 다 보죠. 그렇습니다. 그래서 아이도 학부모도 교회도 다 알아주지 않을 때 우리는 어떤 자세냐. 그럼에도 다음 주 만날 아이들을 위해서 우리는 준비하는 교사가 돼야 된다라는 겁니다. 저는 이런 교사가 갖춰야 될 영적인 성품들이 중요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왜냐하면 이런 성품들은 내가 갖춰가는 것이고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하드웨어 같은 거거든요. 이걸 내가 갖추고 있으면 정말로 많은 것들이 여러분들이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들이 실제 고민하지 않을 일이 되는 거거든요. 그런데 이런 부분들이 여러분이 준비 안 돼 있고 내가 안 돼 있으면 자꾸 흔들릴만한 일이 너무 많이 생겨요. 때로 우리 교사로서 우리는 낀 사람들이잖아요. 낀 사람들. 그러니까 꼈다라는 건 뭐냐면 아이와 학부모 사이에서 낀 사람들. 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특히 교회에서 다 같은 시각으로 성도들을 서로 봐줬으면 좋겠는데 아이들도 성장해 가는 사람이고 성장해 가는 사람이라는 것은 완전하지 않다는 거잖아요. 그러면 학부모들은 교사도 완전하지 않다라는 것을 이해해줘야 되거든요. 그런데 교사를 그렇게 또 보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자꾸 교사 때로 실수할 수도 있는데 이걸 지적하기도 하고 또 그런 경우가 있죠. 그런데 교사도 똑같은 입장으로 학부모를 봐야 됩니다. 학부모는 완전한 사람들이 아니에요. 완전한 신앙인이 아니라고. 그래서 많이 불안전한 또 흔들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것에 우리의 충성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저는 생각해요. 그것에 그것 때문에 여러분의 사역과 사명이 흔들리면 안 된다고 생각이 돼요. 그래서 그런 부분에서 여러분이 이런 이 성품들을 갖춰가면 가장 먼저는 여러분에게 좋아요. 바다 같은 사람 거기에는 웬만한 바람으로 흔들리지 않거든요. 그래서 이것이 예수님께서 보여준 성품을 가지고 우리가 볼 수 있는 건데 바울 사도가 보여준 교사 영상을 크게 세 가지로 우리가 구분해보면 첫째는 바울 사도의 눈물입니다. 바울 사도가 보여줬던 사랑. 세 번째는 바울 사도는 끊임없이 본인이 되는 삶을 살아가려고 했어요. 그래서 사도행전 20장 31절에 보면 내가 3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라는 걸 통해서 더불어 자랑스럽게 자랑스럽게 말을 안 좋은 표현으로 가 아니라 진짜로 이 에베소 성도들이 알 거다 할 만큼 눈물을 흘리면서 목회를 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어요. 바울 사도는 눈물로 가르치는 교사였다. 그리고 바울 사도가 보여줬던 사랑 내가 너의 영혼을 위해서 내 자신 까지 허비했다. 얼마만큼 희생을 가지고 우리 교회를 섬겼는지를 알 수가 있죠. 그리고 삶으로 가르치는 교사였습니다. 사실 이 말을 제가 이 말을 언제 한번 교육때 말을 했던 것 같아요. 쉽게 쓰시는 말이 아니에요. 특히나 이 바울사도가 보여주고 있는 영성에서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도 나를 본받으라. 이런 말 여러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도 못하겠어 저런 말을. 그러니까 바울사도가 얼마만큼 진심을 다해서 저 삶을 살아가려고 애썼는지를 알 수가 있어요. 그래서 저는 삶으로 가르치는 교사가 되어야 된다는 것이 바울사도가 보여주고 있는 교사의 큰 세 가지입니다. 그래서 이 영성, 교사가 가져야 될 영적인 성품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복자님 이게 알겠어요. 이거 나한테 있어야 되는 것도 알고 있는데. 그런데 이게 마음같이 안 돼요. 그럼 어떻게 해야 됩니까? 관리를 해봐야 되겠죠. 요한복음 15장 4절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여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제일 중요한 건 뭐냐면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은 지속적으로 내가 가진 영성에 대해서 관리를 해야 돼요. 관리를. 관리가 뭐냐면 농사짓는 것처럼 씨를 뿌리고 또 씨가 싹이 날 수 있도록 물을 주고 거름을 주고 또 해가 너무 많이 쬐면 그 해를 가려주고 하는 일을 해 나가는 거예요. 그리고 싹이 나면 그 싹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또 그 싹이 자라면 가지가 되어서 큰 나무가 될 수 있도록 나무가 되면 나무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계속해서 관리하는 겁니다. 관리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것은 그냥 되어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에게서 여러분의 영성은 관리를 해야 되는 대상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관리를 해야 될까요? 첫 번째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마치 하나님께 머무르는 것과 같아요. 제가 아까 얘기했던 것처럼 하나님 예수님과 함께 달려있지 아니면 붙어있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다고 했 잖아요. 말씀은 그 예수님과 연결되어 있는 머무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5장 4절 내 안에 가라 나도 너희 안에 가리니라는 그 말씀처럼 열매 맺기 전에 예수님께 붙어있어야 되고 예수님께 붙어있는다라는 것은 우리가 말씀 읽는 목적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거는 부끄러워해야 돼요. 우리가 말씀 읽는 목적이 여러분 분반 공부 공과 공부에만 목적이 있다면 이건 정말 큰일 나는 거예요. 여러분이 말씀 읽는 목적은 예수님께 붙어있으려고 해요. 예수님께 붙어있으려고 해요. 그래서 여러분 영성관리는 그래서 열심히 말씀을 읽으라는 거예요. 그래서 어찌 보면 영성관리법이 너무나 당연할 수 있지만 이 당연한 것이 안 되는 때가 너무 많으니까. 오늘은 말씀이다. 그럼 당연히 말씀 다음에 뭐가 나올까요? 기도가 나오겠죠. 그렇습니다. 기도는 내 마음을 하나님께 계속 열어놓는 것 같아요. 그래서 여러분이 하나님과 계속 소통을 한다는 것은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마가복음 1장 35절에 예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여전히 계속해서 공생기간에 하셨던 습관은 기도를 통해서 하늘과 하늘 앞에 자기 마음을 열어놓은 거였 어요. 그러면 예수님에게도 이렇게 기도가 필요했다면 여러분은 용관이 통표예요? 이런 말 아세요? 용관이 통표라는 말? 저희 때 썼다 말인데. 뭐 여러분 대단하다고 기도를 안 하냐 이 말이 내 말이에요. 뭐 대단하냐고. 예수님이 기도가 필요했다면 우리는 더 기도해야 되는 사람이잖아요. 우리는 얼마나 더 기도가 필요하냐 이 말이에요. 나를 위해서 또 아이들을 위해서 얼마만큼 더 기도가 필요하겠냐. 예수님도 저렇게 기도하는데 심지어 미명에 날도 밝기 전에. 그래서 새벽 기도의 모범은 예수님이에요. 예수님이 새벽에 가서 예수님이 한적한 거 못해가지고 예수님 기도하셨죠. 그래서 여러분에게 있어서 이 말씀과 기도는 정말로 중요한 여러분의 영성을 관리하는 도구입니다. 말씀으로 붙어 있어야 되고 또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소통 열어놓는 여러분 마음의 창구가 되어야 된다라는 거죠. 그리고 여러분 이것을 보고 또 하나 생각해야 되는 것은 정기적인 여러분의 영성을 확인해야 됩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들이 밴드를 통해서 관리를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렇죠? 그런데 그 밴드를 통해서 관리할 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영성도 여러분 스스로 관리표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예를 들면 저런 질문들이죠. 나는 이번 주에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만났는가? 기도보다 걱정을 더 많이 하지는 않았는가? 아이들을 어떤 눈으로 보았는가? 화를 절제하지 못한 순간은 없었는가? 누군가를 마음속으로 판단하지는 않았는가? 내 말과 행동이 일치는 했는가? 아이들을 위해서 실제로 내가 기도했는가? 내가 예수님을 닮아가고 있는 부분은 무엇인가? 내가 가장 변화되어야 될 부분들은 무엇인가? 이것들은 제가 그냥 쭉 순번을 해봤지만 어쨌든 여러분들 스스로 때로는 저런 질문지를 만들어 봤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할 수 있으면 제일 안 되는 것부터. 매번 확인을 최소한 저런 시간으로 내가 가장 안 되는 것을 먼저 매주 5분이라도 좀 생각해 보는 시간을 확인하는 시간을 가져봤으면 좋겠다. 그런데 저런 것을 해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여러분 교제를 할 줄 알아야 됩니다. 무슨 얘기냐면 믿음의 동역자들과 영적인 교제. 옆에 있는 여러분 함께 교사를 맡고 있는 사람들이죠. 우리 바울사도도 참 동역자들이 많았고 이걸 같이 공유하는 삶을 살았던 것을 알 수가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나의 동역자 하면서 거론하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바울사도는 많은 동역자들 서신서들마다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걸 알아야 돼요. 우리는 함께 동역하는 사람들이에요. 때로는 함께 동역하기 때문에 함께 일하는 사람이고 함께 일한다는 것은 같이 고민할 수도 있는 일이라는 거죠. 그래서 이런 말 있지 않습니까?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같이 가면 멀리 간다. 우리가 변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진 소임을 한나라까지 해야 되는 일이라면 우리 옆에 있는 분들과 함께 함께 동역해야 된다. 그래서 나의 동역자들은 바로 옆에 있는 교사들이 바로 이 동역자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교사의 영성관리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건 뭐냐면 회계입니다. 회계예요. 회계를 여러 가지로 물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교사에게 있어서 저렇게 표현하고 싶어요. 무너졌을 때 다시 돌아오는 능력. 제가 왜 이런 얘기를 하냐면 저도 많이 무너져 봤거든요. 또 안 됐구나. 또 왜 난 이것밖에 안 되는구나. 왜 이렇게 나는 성에 화를 잘 낼까. 왜 속이 뒤틀려가지고. 그럴 때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화가 나가지고 제가 장이 두 번 정도 꼬여가지고 병원도 간 적도 있어요. 어떤 말을 들어가면 화가 나가지고. 정말로. 정말로. 그냥 하는 얘기가 아니라 제가 이제 어떤 신앙적 어떤 문제 때문에 대화를 하러 갔는데 어떻게 저런 얘기를 할 수 있어. 정말로 내가 배운 신앙이 같이 완전히 끝에 있는 표현들을 해버리니까 제가 화가 나가지고 제가 화가 나니까 장이 꼬이더라고. 정말로. 장이 꼬여가지고 병원을 갔다니까요. 주삼아였다니까. 그게 두 번이었어요. 제가 참 못됐죠? 그런데 그러고 나면 아픈 것도 아픈 것이지만 내가 그것밖에 안 되는 사람인구나 때문에 더 무너지는 거야. 나는 안 되는 사람인가 보다. 이렇게 안 바뀌나? 이것밖에 안 되나? 이런 부분도 포용하지 못하는데 내가 누구를 포용하겠다고 하는 건가? 목회자로서 부끄럽고 이럴 때가 있단 말이에요. 그러면 우리는 답이 있죠. 회개해야 되죠. 하나님 앞에 나와서 회개해야 됩니다.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그래서 영성관리는 완벽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무너졌을 때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는 거예요. 계속해서 돌아 오는 겁니다. 포기하지 않고. 그래서 나의 영성이 부족함을 느낄 때 다시 일어서는 교사가 영적으로 건강한 교사예요. 저는 여러분들이 좀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나는 이것밖에 안 돼요. 다 이것밖에 안 돼요. 그런데 우리는 끊임없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예수님의 영성. 그 영성을 내가 교사로서 닮아야 된다는 것을 믿는다면 이걸 열심히 그 영성을 가지려고 해야 되고 힘쓰고 노력하고 때로는 이것이 잘 되면 그걸 통해 더 한 단계 한 단계 계속 예수님을 닮아가려고 그 방향성을 가지고 나가야 되겠지만 혹은 그렇지 못하는 내 기대대로 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다시 일어서요. 다시 시도하고. 만약 그렇게 간다면 우리도 정말 많이 변해갈 겁니다. 제가 목요일날 아침에 모친들 성격 공부를 하거든요. 한 12, 13분 정도 오세요. 그 가운데 제가 질문을 하시라고 하면 어떤 분이 어떤 질문을 하셨냐면 목자님 제가 신앙생활한 지가 50년인데 왜 이렇게 나는 믿음이 안 큰지 모르겠어요. 왜 이렇게 믿음이 안 되는지 모르겠어요. 왜 이렇게 나는 안 변해요 목자님. 아무 쓸데없어요. 제가 성격 공부해서 아무 쓸데없어요. 이런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70대신 분이 그런 얘기를 하신다니까 여러분. 그런데 그 옆에 있던 어떤 분이 아휴 나도 그런 줄 알았어. 그런데 이분이 30년 만인가 40년 만에 동창회를 가셨대요. 그러니까 요고 동창회인가 가셨대요. 그런데 이제 요고 때는 정말로 착하고 순진하고 이런 친구들이었지 않겠어요. 그런데 요고 동창회를 갔는데 왜 이렇게 애들이 나쁘대요. 말을 해도 왜 저렇게 말을 하는지. 행동을 해도 저렇게 행동을 하는지. 도저히 내가 교회에서는 보지 못하는 모습들을 거기서 보는 거죠. 그러면서 느꼈다는 거예요. 아 나도 나도 모르게 내가 변했구나 이런 생각을 했다는 거예요. 이해 돼요? 나도 나도 모르게 내가 성장했구나. 나도 나도 모르게 내가 이 변화에서 성숙해 갔구나. 이런 생각을 했다는 거예요. 저는 정말 그렇다고 생각이 되거든요. 여러분들은 세상에 있는 누구보다도 달라요. 정말로 달라요. 그래서 제가 우리 교회 청년들을 보면서 한편으로 정말 감사한 것은 뭐냐면 정말 많이 세상의 친구들과 다르다는 겁니다. 가치관도 다르고 행동하는 것도 다르고 생각하는 것도 다르고 말하는 것도 달라요. 저는 거기에 그것이 얼마나 고귀한 일인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제가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실망하지 말고 지치지 말고 좀 나갔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으로 해보는 거죠. 마지막 파란색 박스 안에 있는 내용 같이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예수님 안에 거하는 교사에게 예수님의 성품이 나타나고 예수님의 성품을 가지고 교사 그렇죠. 예수님의 성품을 가진 교사의 삶인데 제가 오타가 났네요. 아이들로 예수님을 보게 한다. 정말 그렇습니다. 여러분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여러분의 영적인 성품을 잘 들여다보시고 그 영적인 성품을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닮아가려고 했으며 또 때로 이것이 실패한다 할지라도 계속해서 여러분을 영성 관리를 통해서 점검하고 또 확인하고 이걸 통해서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그런 여러분들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겨주고 싶은 말은 이미 충분히 수고했다. 여러분 교사로서 정말 많이 썼고요. 여러분에게 들려지는 칭찬보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시는 칭찬이 훨씬 더 클 거예요. 그러니까 지치지 말고 무너지지 말고 더욱더 이 교사의 사명을 기쁨으로 감당하는 저와 우리 교사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추천드립니다. 함께 묵도하겠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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