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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예수교회 True Jesus Church

기도하게 하시는 하나님 유바나바 목자 26.08.01

왕하19:8-19

제작일 2026.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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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게 하시는 하나님 (#열왕기하19장 8절~19절)
#히스기야 #안식일예배 #유바나바목자 #TJC대방 #TrueJesusChurch

(왕하19:8) 랍사게가 돌아가다가 앗수르 왕이 이미 라기스에서 떠났다 함을 듣고 립나로 가서 왕을 만났으니 왕이 거기서 싸우는 중이더라
(왕하19:9) 앗수르 왕이 구스 왕 디르하가가 나와서 더불어 싸우고자 한다 함을 듣고 다시 히스기야에게 사자를 보내며 가로되
(왕하19:10) 너희는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이같이 말하여 이르기를 너의 의뢰하는 네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앗수르 왕의 손에 붙이지 않겠다 하는 말에 속지 말라
(왕하19:11) 앗수르의 열왕이 열방에 행한바 진멸한 일을 네가 들었나니 네가 어찌 구원을 얻겠느냐
(왕하19:12) 내 열조가 멸하신 열방 곧 고산과 하란과 레셉과 들라살에 있는 에덴 족속을 그 나라의 신들이 건졌느냐
(왕하19:13) 하맛 왕과 아르밧 왕과 스발와임성의 왕과 헤나와 아와의 왕들이다 어디 있느냐 하라 하니라
(왕하19:14) 히스기야가 사자의 손에서 편지를 받아보고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서 그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펴놓고
(왕하19:15) 그 앞에서 기도하여 가로되 그룹들의 위에 계신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천하 만국에 홀로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조성하셨나이다
(왕하19:16)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여호와여 눈을 떠서 보시옵소서 산헤립이 사신 하나님을 훼방하러 보낸 말을 들으시옵소서
(왕하19:17) 여호와여 앗수르 열왕이 과연 열방과 그 땅을 황폐케 하고
(왕하19:18) 또 그 신들을 불에 던졌사오니 이는 저희가 신이 아니요 사람의 손으로 지은 것 곧 나무와 돌 뿐이므로 멸하였나이다
(왕하19:19)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이제 우리를 그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그리하시면 천하 만국이 주 여호와는 홀로 하나님이신줄 알리이다 하니라

#참예수교회 홈페이지 http://tjc.or.kr/

AI 설교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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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와 믿음의 중요성, 희승이하의 기도 사례를 통해 기도가 믿음을 성장시키는 방법임을 강조함.

본문왕하19:8-19
  • 기도는 문제를 하나님께 가져가는 것에서 시작되어 믿음을 성장시키는 과정임.
  • 희승이하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며 믿음을 드러냄.
  • 기도의 목적은 시간이 지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로 바뀌는 성숙한 믿음을 보여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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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중요성

  • 기도는 문제를 하나님께 가져가는 것에서 시작되며, 믿음을 성장시키는 방법임.
  • 희승이하는 위기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기도하며 믿음을 드러냄.
  • 하나님은 시험을 통해 믿음을 테스트하고, 기도를 통해 그 믿음을 강화하게 하신다.

기도와 믿음의 성장

  • 기도는 단순히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성숙하게 만드는 과정임.
  • 믿음이 성장하면 기도의 목적도 자신의 문제 해결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는 것으로 바뀐다.
  • 예수님의 기도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기도의 성숙

  • 기도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데 있어야 성숙해진다.
  • 희승이는 아수르 왕의 문제를 하나님께 나누며,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보여달라고 기도했다.
  • 감사기도 또한 성숙한 믿음을 보여주는 예로 강조됨.

교회 관련 일정

  • 2026년 예수 제재삼기 전도운동이 진행 중이며, 이번 달은 증거의 달로 전도에 적극 참여할 것 요청.
  • 오늘 오후 3시 목양시에서 정기 임원회의 개최.
  • 오늘부터 내일까지 대방교회에서 아동부 여름 성경학교 진행.
  • 내일 오후 5시 대전교회 학생부가 대방교회 방문 예정.
  • 신도 분반 마치고 청소에 적극 참여할 것 요청.
전사(자막) 전문▼
할렐루야 거룩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안식일 오전 하나님 말씀 증거하겠습니다.
먼저 우리 하나님 말씀 11기 하 말씀 찾겠습니다.
11기 하 19장 8절에서 19절까지 말씀인데요.
오늘 이 시간에는 14절부터 19절 말씀을 저와 송도님들 번갈아서 읽겠습니다.
11기 하 19장 14절부터 19절 저와 송도님들 번갈아 읽겠습니다.
제가 먼저 읽겠습니다.
14절 희승이하가 사자의 손에서 편지를 받아보고 요하의 전에 올라가서 그 편지를 요하 앞에 펴놓고 요하에서 요하의 하여 제 불교를 위해 계신 사자의 하나님 요하여 주님 성함께 불러오는 하나님이시다.
주께서 순지를 조성하셨나이다.
요하여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요하여 눈을 떠서 보시옵소서 산해립이 사신 하나님을 회방하려 보낸 말을 들으시옵소서 요하여 박수의 여하니 하여 그를 여하여 불장을 하시게 하시오.
또 그 신들을 불에 던져 싸우니 이는 저희가 신이 아니오 사람의 손으로 지은 것 곧 나무와 돌 뿐임으로 멸 하였나이다.
우리 하나님 요하여 원컨대 이제 우리를 그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그리하시면 천하 만국이 주 요하는 홀로 하나 님이신 줄 압니다.
아멘.
오늘 여기 있는 내용 8절부터 19절에 있는 말씀을 통해서 기도하게 하시는 하나님.
기도하게 하시는 하나님이나 제목 가지고 하나님 말씀 증거하겠습니다.
오늘 안식일에도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인들에게 크신 은혜와 축복을 더해주는 그런 안식일 되길 원합니다.
특별히 오늘 날씨가 굉장히 더워서 땀도 많이 나는 그런 안식일인데요.
또 아침에 이렇게 교회에 올라오시는 성도인들이 한결같이 오늘 왜 이렇게 덥대 오늘 왜 이렇게 덥대 이러시� ��서 그 땀을 흘리시면서 오시는 모습을 보면서 참 대단하시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어떤 성도님은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여기가 천국이네 이런 분도 있죠.
물론 교회가 천국이기도 하지만 밖에 날씨와 에어컨 바람이 있는 교회 안이 너무나 차이가 있으니까 이런 생각에 보면 오늘 안식일이 아니면 그냥 집에 에어컨 쐬고 앉아서 그냥 시원하게 수박 화채나 드시면서 쉬고 있는 것이 훨씬 좋으실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안식일이 소중하다.
또 하나님 말씀 듣는 것이 더 귀하다.
오늘 이 시간이 하나님 것이기에 마땅히 하나님 것은 하나님께 돌리는 것 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나오는 것이 바로 우리 성도인들이 가진 또 하나님께서 귀하게 보시는 믿음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믿음 가운데 크신 은혜와 축복을 반드시 더해 줄 거라고 믿습니다.
자주 말씀드리지만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축복을 담는 그릇 같다.
그래서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고 싶으면 큰 믿음을 가지시면 됩니다.
큰 믿음을 갖는 것이 하루아침에 되는 건 아니죠.
우리가 열심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우선순위인 것을 알아가는 것 그것이 내 삶의 태도로 나타나는 것 이러면서 점점 우리의 믿음도 커져가는 것입니다.
오늘 안식일에 그런 꼭 귀한 안식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우리 옆에 있는 성도들과 함께 오늘 오시느라 정말 고생하셨다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축복의 메시지 서로 나누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옆에 있는 분들 얼굴 보시면서 환한 미소로 인사하겠습니다.
할렐루 반갑습니다.
오늘도 참 잘 오셨습니다.
오늘도 축복 갖고 은혜받는 안식일 되세요.
우리 서로 사랑하는 안식일 됩시다.
사랑합니다.
아멘 우리의 표현은 하면 할수록 느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우리 교회 성도님들에게 이렇게 인사를 부탁드릴 때 마지막에 여기까지 오늘따라 왜 이렇게 얼굴이 아름답습니까 라고까지 마음 다해서 하시는 것을 제가 본 기억이 있습니다.
꼭 그렇게까지 갔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시간에는 희승이하의 기도에 대해서 같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앞서서 두 시간에 걸쳐서 희승이하에 대해서 같이 살펴봤고 오늘 시간에는 희승이하의 인생에서 굉장히 그 믿음이 잘 드러나고 있는 것이 기도라는 걸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성경에 많은 기도로 대표되는 인물들이 있지만 그 중에 한 인물이 바로 희승이하라는 사람이고 희승이하가 만났던 어마어마한 어찌 보면 개인적인 일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 인생을 또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었기 때문에 그가 왕으로서 있었던 그 이스라엘 남유다에 있었던 엄청난 위
험 위기 그런 문제 그런 가운데 그가 이 모든 것들을 어떻게 극복했는가 바로 이 기도를 통해서 이런 문제를 극복해 나갔는데 희승이하는 그 기도가 단숨에 생겨진 믿음 또 기도가 아닌 것을 우리가 알 수 있는데 사실은 기도도 커져가는 것입니다.
어느 할머니가 손자와 대화를 했는데 이 손자가 교회를 열심히 나오니까 이렇게 물었습니다.
얘야 너 기도하냐? 라고 물으니까 이 아이가 교회 열심히 나오니까 선생님들한테 뭘 배우겠어요?
기도에 대해서 배우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손자가 이렇게 자신 있게 얘기했습니다.
네 할머니 저 매일 기도해요.
그랬더니 할머니가 손자한테 물었습니다.
그래? 그러면 어떻게 기도하는지 한번 말해봐.
라고 기도 제목을 얘기해 보라는 거죠.
그때 손자가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이렇게 기도 제목을 말했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빠 월급 많이 오르게 해주세요.
하나님 우리 엄마는 제가 좋아하는 맛있는 음식을 많이 하게 해주세요.
그리고 제가 갖고 싶은 것은 꼭 살 수 있도록 용돈 많이 하나님 주세요.
이렇게 기도한다고 할머니한테 얘기한 거죠.
이 기도 제목을 들으니까 할머니는 흐뭇했습니다.
그래도 기도를 하고 있다는 것.
심지어 구체적으로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 참 예뻐가지고 더 나아가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얘야 그러면 하나님께 감사기도도 해야지 했더니 이 손자가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직 안 돼요.
하나님이 들어주셔야 감사하죠.
이렇게 얘기를 했다는 거죠.
아이의 순수함이기도 하지만 사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기도라는 것도 단계가 있다라는 걸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어쩌면 이 아이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은 달라는 기도.
달라는 기도를 우리는 참 많이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 이것도 주셔야 됩니다.
하나님 저것도 주셔야 됩니다.
하나님 이 문제 있으니까 이것도 고쳐주셔야 됩니다.
하나님 가운데 내 마음이 이러니까 내 마음도 고쳐주셔야 됩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 원하는 기도를 참 많이 하지만 신앙 생활을 함연할수록 또 기도의 경험을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들은 생각은 뭐냐면 감사기도가 얼마나 소중한가.
하나님 이것도 해주세요.
라는 기도도 우리에게 필요하지만 이 모든 것들을 하나님이 들어주실 걸 믿습니다.
라는 이 성숙한 기도가 하나님 옆에 얼마나 기쁨이 되는 기도인지를 우리는 알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 어린아이들은 이걸 아냐 라는 거죠.
물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피로를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아픔도 외면하는 분이 아니죠.
그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입니다.
저도 우리 성분들이 비하면 오래지는 않지만 신앙 생활하면서 기도에 대해서 많은 나름대로의 경험이 있는데 제가 이제 고등학교 때부터 교회를 나오기 시작했는데 그 처음에 어머니가 교회를 한번 다녀와라.
괜찮다.
물론 어머니의 피로에 의해서 저는 교회에 보낸 거지만 어쨌든 그렇게 교회를 나오게 되었는데 교회를 열심히 다니니까 피박이 시작이 되어서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가 교회를 못 나가게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마음에 괴로움이 생기지 않습니까?
이미 그러기에는 어머니 말을 듣기에는 또 아버지 말을 듣기에는 하나님을 이미 알아버렸고 또 그런 부분에서 제가 이것이 피박이다라고 생각을 드기 시작하니까 너무 마음이 괴로운 거죠.
그래서 이제 그런 괴로움이 있을 때마다 제가 찾았던 곳이 이제 교회 이제 밤에 몰래 와가지고 혼자 이제 몰래 울면서 이제 기도하기도 하고 그게 너무 귀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교회에서 행사가 있어가지고 쌍치기도서를 봤는데
쌍치 기도소가 참 상골이지 않습니까? 쌍치가 고향이신 분도 계시는데. 교회에서 행사가 있어서 갔는데 그것이 너무 좋은 거예요. 그때부터 어떤 생각이 들기 시작했냐면 쌍치 기도소니까 이곳에서 와서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어주실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학기 중에 힘든 일이 생기면 나 방학 가면 쌍치 기도소 가야 되는데. 이런 소원이 생기는 거죠.
부모님이 이렇게 핍박이 클수록 아버지가 저녁 예배를 갔다 오면 문을 잠그고 못 들어오게 하셨어요.
그는 문 앞에 앉아서 어느 세월에 이런 삶을 탈출할 수 있을까 그러면서 쌍치 기도소 언제 가나 이런 생각을 하는 겁니다.
방학이 되면 계획을 세우고 쌍치 기도소를 가죠. 남원 시에버스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순창시 터미널까지 가서 거기서 또 버스를 타고 쌍치면을 가면 쌍치면에서 금성리이잖아요. 맞죠?
금성리까지 한 시간 정도 걸어야 돼요. 거기를 걷는데 왜 이렇게 행복합니까? 와 이제 내가 쌍치 기도소 드디어 쌍치 기도소 간다.
그 한 시간을 걷는 것이 너무 행복해가지고 그 기대에 부풀어서 쌍치 기도소 들어가서 기도하기 시작하면 그렇게 행복한 거예요.
자랐다. 애썼다. 내가 네 마음을 안다. 네가 얼마나 수고했을지 얼마나 고생했을지 내가 너를 안다.
그렇게 하나님 말씀하시지는 않았지만 기도 가운데 그런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러면서 제가 이제 기도에 대해서 배워가지 않았습니까?
하나님 우리 아버지 좀 어떻게 좀 해주세요. 우리 어머니 좀 어떻게 해주세요.
이런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다가 하나님 저 이 모든 것 좀 이겨낼 수 있도록 힘 좀 주세요.
이런 기도로 바뀌어 갔던 기억들이 있어요.
그래서 언제나 이제 이런 일들이 생길 때 이제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이유들이 달라지고 또 제목들도 달라 지고 또 기도의 응답이라고 하는 것도 달라지는 상황은 전혀 변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를 통해서 얻 어진 새로운 힘, 새로운 용기, 새로운 담대함.
상체 기도를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왜 이렇게 힘이 생기고 또 용기가 생기고 담대해지는지 이게 이제 기도의 능력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기도라는 것이 마치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는 것처럼 처음부터 그렇게 기도가 힘이 생기는 건 아닙 니다.
조금씩 조금씩 내 기도의 모습도 변해가고 기도의 능력도 변해가고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되겠다라는 이유들도 점점 달라져 가지 않습니까?
희승이하도 사실은 그렇습니다.
지난주에 오늘은 희승이하가 시험을 만나게 되었고 이 큰 시험을 통해서 엄청난 믿음이 생겼다라는 것을 우리가 배워가지 않았습니까?
희승이하는 아수르의 공격 어마어마한 그 큰 공격 가운데 있었던 희승이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희승이하의 믿음을 흔드는 큰 시험이었다라는 겁니다.
정말 하나님이 너를 도울 수 있느냐? 네가 믿는 하나님도 다른 나라의 신들과 다르지 않지 않느냐?
라는 그런 희승이하가 어릴 때부터 믿었던 그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흔들어 놓는 그런 영적인 공격이 있었다� ��는 겁니다.
그 시험을 위해서 처음에 희승이하의 연약한 믿음 가운데 있었던 희승이하의 믿음은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하나님 말씀을 듣고 나간 것이 아니라 그 위협이 무서워가지고 그가 요구하는 것을 은과 금을 다 그들 에게 주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승이하는 이 모든 과정 가운데 성숙해갖고 성장해갖고 심지어 오늘 본문의 내용을 보면 이런 위기 앞에 누구 앞에 달려가게 됩니까?
하나님 앞에 달려가서 이걸 아래는 이 기도의 모습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만듭니다.
바로 믿음을 성장하게 만드는 그런 일인 거죠.
그래서 우리가 문제라는 것만 크게 봐가지고 우리가 당한 시험을 괴로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문제라는 것은 바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내게 우리의 믿음의 성장을 위해서 허락하신 시험이라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되고 이 시험이 닥칠 때 이 시험을 극복할 수 있는 그런 방법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슥이야가 선택하는 기도처럼 기도라는 방법을 우리에게 주셔서 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믿음을 하나님께 나타내 보아라 라고 말씀해 주고 있다는 겁니다.
오늘 우리는 이슥이야의 기도를 통해서 성장한 믿음은 어떻게 기도하게 되는지 그리고 우리의 기도는 어떻게 더 성숙해 가야 될 것인지를 같이 생각해 보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오늘 이슥이야의 기도를 같이 보도록 하겠는데요.
첫 번째 기도에 대해서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기도의 시작은 문제를 하나님께 가져가는 것입니다.
기도라는 것은 사실은 무엇이냐면 우리가 당하는 삶의 문제를 하나님 앞에 가져가는 거예요.
그게 기도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이슥이야의 기도는 평안한 상황에서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믿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던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
이거로 바로 그 기도가 시작이 되었다라는 겁니다.
우리 8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11기야 19장 8절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랍사게가 돌아가다가 아수르 왕이 이미 라기스에서 떠났다함을 듣고 림나로 가서 왕을 만났으니 왕이 거기서 싸우는 중이더라.
앞에서 아수르 왕의 신화 랍사게는 예루살렘 성 앞에서 하나님을 조롱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그들은 유다 백성에게 말을 통해서 그들의 믿음을 열심히 흔들어놨습니다.
너희가 의지하는 하나님을 믿지 말라.
하나님이 너희를 아수르 왕의 손에서 절대로 구원하지 못한다.
말씀드렸던 것처럼 그의 목적은 단순하게 그냥 항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신앙을 흔들어놓는 그들의 힘의 원천을 흔들어놓는 일이었죠.
우리 신앙인들의 힘의 원천은 하나님께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 시험을 잘 생각해봐야 되는데 우리 신은 이 힘의 근원이 어디에 있느냐?
사실은 우리 시험이라는 걸 그걸 정의할 때가 참 많습니다.
그걸 흔들어놓거든요.
때로는 어떤 사람은 우리 힘의 근원을 돈의 뿌리를 놓고 있으면 그것이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사람에게 있으면 그것을 흔들어 놓는 거죠.
그래서 지난주에 말씀을 드렸지만 시험을 만나다 보면 내가 내 삶의 근원을 어디에 두고 있었는가를 발견하게 된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스라엘에게서 힘의 근원은 사실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잖아요.
그러니까 하나님과 유대인 이스라엘 백성 간에 연결되어 있는 이 관계를 흔들어 놓는 일.
참 똑똑합니다.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히스기아와 백성들의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무너뜨리는 것.
그런데 랍사개가 돌아갔다고 해서 그 위기가 끝난 것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아수르 왕 사네림은 다시 히스기아에게 편지를 보내서 히스기아를 압박하기 시작합니다.
10절 보겠습니다. 19장 10절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너희는 유다왕 히스기아에게 이같이 말하여 이르기를 너의 의뢰하는 내 하나님이 예루살림을 아수르 왕의 손에 붙이지 않겠다는 말에 속지 말라.
사네림은 히스기아가 믿는 하나님을 공격하고 있는 거죠.
너희 하나님이 정말 너를 지킬 수 있느냐?
다른 나라의 신들도 아수르 앞에는 아무것도 가지 못하고 다 무너졌는데 너희 하나님은 다르겠느냐? 라고 끊임없이 그 믿음을 흔들어 놓고 있다라는 겁니다.
히스기아는 정말 큰 시험에 당한 거죠.
그래서 우리가 시험을 만나면 정신을 차려야 됩니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돼요.
단순히 아픈 것이 문제가 아니에요 사실은.
단순히 통장에 돈이 줄어드는 게 문제가 아닙니다.
단순히 주식이 엄청 떨어지는 게 문제가 아니에요.
그게 문제가 아니라 그걸 통해서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흔들어 놓는 게 문제라고.
그게 제일 큰 문제입니다.
이게 진짜 시험이에요.
그래서 이것은 히스기아에게 정말로 큰 시험이 있고 눈앞에 있는 강한 아수르 군대가 그 눈앞에 있었고 손에는 하나님을 모욕하는 편지가 들려 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합니까?
이때 히스기아는 뭘 선택했을까요?
읽었던 11개 19장 14절 보겠습니다. 14절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희승이하가 사자의 손에서 편지를 받아보고 요호와의 천에 올라가서 그 편지를 요호와 앞에 펴놓고 이 한 장면 이 사실 오늘 본문의 중심과도 같은 역할이죠.
희승이하는 그 편지를 들고 사람 앞에 가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신하들과 의논해서 어떻게 이 문제를 극복해야 될까라고 해결책을 찾지 않았어요.
그는 요호와의 전에 올라갔습니다. 그 편지를 하나님 앞에 펼쳐놓았습니다. 하나님 이것이 지금 우리나라 앞에 놓여진 현실입니다.
하나님 이것이 우리를 지금 흔들어 놓고 있는 두렵게 하는 문제입니다.
희승이하는 문제를 하나님 앞에 보여드렸죠.
여기서 우리는 기도의 시작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기도는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외면하는 것이 아니에요.
기도는 내가 할 수 없는 문제를 하나님 앞에 가져오는 겁니다.
하나님 앞에 가져오는 거예요.
이 모습은 희승이하에게 일어난 어떤 믿음의 변화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처음에 살펴보았던 말씀.
열한기와 18장에서 아수르가 처음 공격해왔을 때 그 엄청난 위기와 위협 가운데 희승이하가 대처했던 방법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는 거죠.
우리 18장 14절 보겠습니다.
열한기와 18장 14절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지난번에 이 말씀 가지고 제가 의심했다고 말씀드렸죠.
이 말씀은 사실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 하는 고백이다.
하나님 나를 떠나셔서 내가 범죄해야 했습니다.
나를 떠나주세요. 내가 범죄했어요.
이건 사실은 예수님께서 베두로를 선택했을 때 나는 죄인으로서이다. 나를 떠나셔서 베두로가 예수님 앞에 그렇게 얘기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 희승이하는 누구한테 그 말을 하고 있냐면 바로 아수르의 왕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아수르 왕이 공납금을 바치라고 명령하죠.
은 30달란트와 금 30달란트 이에 대해서 희승이가 어떻게 했어요?
그걸 자기의 전 재산에 은을 바치고 심지어 여우와의 천 성전의 기둥에 있는 금을 베껴가지고 그걸 드리지 않습니까?
믿음의 시험을 지나면서 희승이하는 변했다는 거예요.
사람의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했던 이 희승이하가 사람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또 닥쳤을 때 하나님께 이제는 가져가야 된다.
그래서 같은 아수르의 위험 앞에서 반응이 달랐다.
전에는 아수르 왕에게 갔지만 이제는 희승이하가 누구한테 갑니까?
하나님 앞에 가는 겁니다.
상황이 변한 것이 아니라 희승이하의 믿음이 달라진 거예요.
믿음이 성장하면 사실 이 문제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를 가지고 누구에게 나가느냐 대상이 달라지는 거예요.
우리도 삶의 문제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가정의 문제도 있고 자녀의 문제도 있고 건강의 문제도 있고 앞날에 대한 염려도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누구에게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죠?
그렇지 않습니까?
마음이 답답하면 가까운 사람을 찾는 거죠.
우리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위로를 받기도 합니다.
그래서 교회 가운데서도 신도회가 하는 역할이 참 크다고 생각이 됩니다.
신도회 안에서 내 문제도 내 문제 그의 문제도 내 문제 처럼 서로 나눌 때가 참 위로가 될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갈라자스 6장 2절에 보면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었던 서로 사랑하라는 말이 서로의 짐을 나눠짐을 통해서 때로 이 사랑을 실천하는 일이 되기도 하지 않습니까?
저는 이것을 무시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돌아봐야 되는 건 뭐냐면 나는 뇌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문제를 만났을 때 가장 먼저 누구에게 그 문제를 가져가느냐 이걸 돌아봐야 된다는 거죠.
제가 이런 우스갯소리를 한 형제님으로부터 들은 기억이 있는데 어느 날 한 형제님이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옆집 아주머니를 만난 거죠.
옆집 아주머니가 나를 잘하는 것처럼 안녕하세요 하면서 인사하면서 이렇게 얘기하다는 것 요즘 많이 힘드시죠?
회사 일도 그렇고 집안 일도 걱정이 많으시죠?
라고 하면서 우리 집안 일들을 회사에서 내가 고민한 일들을 줄줄줄 얘기하더라는 거예요.
깜짝 놀라가지고 아니 어떻게 우리 집 사정 그렇게 잘하세요?
라고 말했더니 아니요 우리 사모님이 다 우리 와가지고 얘기하시더라고요.
그렇게 얘기하더라는 거죠.
우리 집 얘기를 왜 옆집 아주머니한테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럴 때가 있죠.
우리 집의 문제를 옆집에 가서 이야기할 때 당황스럽게 당황스럽게 있습니다.
이걸 좀 생각해 볼 때가 있는데요.
우리가 어떤 상황이 생기게 되면 정작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의 문제를 제대로 펼쳐놓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오히려 사람한테는 열심히 내가 이런 일이 생겼고 이런 문제가 생겼는데 어떻게 되냐 라고 물을 때는 참 많은데 하나님 앞에는 정작 내 문제를 내려놓지 못할 때가 정말 많다라는 거죠.
희승현은 달랐다는 겁니다.
아수르 왕의 편제를 사람 앞에 펼쳐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나와서 펼쳐놓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었을까요?
이제는 안 거죠.
사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아수르 왕이라는 어마어마한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는 그 위기 앞에 위협 앞에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분이 하나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믿음이라는 것은 그렇게 생겨져 가는 것입니다.
우리 아직 세례받지 못한 분들 이 가운데도 여러 가지 있지 않습니까?
믿음 생활이라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어떤 존재 앞에 인생의 문제를 맡기기도 합니다.
그걸 같이 공유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걸 통해서 같이 해결을 받으라는 그런 해결책을 찾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이냐면 이 모든 것으로 해결책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런 문제가 닥쳤을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온다는 거예요.
그게 뭡니까?
기도입니다.
기도의 시작은 이런 문제가 닥쳤을 때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 그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이 가장 먼저 이 기도의 시작이다.
라는 것을 잘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10편 55편 22절 말씀 찾겠습니다.
10편 55편 22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내 짐을 요호와께 맡겨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
하나님께 이 모든 것을 맡기는 것 하나님의 화로 우리를 붙들어주시고 의인이 흔들리는 것을 저한테 용납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말씀해주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삶에 생기는 이 문제들을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이 기도의 시작이라고 먼저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두 번째 기도의 성장이라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 이게 필요하다는 겁니다.
희승이하는 아수르 왕의 편지를 하나님 앞에 펼쳐놓았고 또 더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가져오는 것을 넘어서서 기도의 성장은 그 문제를 이제는 하나님께 맡기는 거다.
맡기는 거다.
15절 보겠습니다.
11기와 19장 15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여기서 희승이하가 하나님께 나아가자마자 아수르의 상황을 먼저 말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하나님 이거
이것이 어렵습니다. 하나님 이것 좀 해결해 주세요. 하나님 이 상황을 바꿔주셔야 됩니다. 라고 말하지 않았 다는 거예요.
가장 먼저 그게 한 것이 무엇이냐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먼저 펼쳐놓고 있습니다. 하나님 여호와는 주는 천 하 만국의 홀로 하나님이십니다.
어제 홀로라는 말을 바꿔서 오직이라는 말로 바꿔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오직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에 신이라고 하는 이들이 참 많지만 내가 하나님 옆에 나와서 하나님께 이렇게 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홀로 하나님은 하나님밖에 없기 때문에 라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신뢰를 담아내고 있다라는 겁니다 .
희승이야는 아수르 왕의 크기를 먼저 바라보지 않았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크기. 하나님이 어떤 분이냐.
눈앞에는 아수르라는 거대한 제국이 있었지만 희승이야가 바라본 하나님은 그보다 크신 분입니다.
아수르가 섬기는 우상이 아니라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오직 한 분 하나님.
그 하나님을 크게 본 고백이 바로 이 찬양의 고백이죠.
희승이야가 문제를 맡길 수 있었던 이유는 거기에 있습니다.
찬양의 고백이 하나님의 고백이 하나님과 비교할 수 없는 강한 군대가 있어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 하나님.
돌아가서 16절에 보니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16절 같이 읽겠습니다.
11개와 19장 16절 시작.
희승이야는 하나님께 상황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정보를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맡기는 것이죠.
하나님 이 문제는 제가 감당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고 하나님께서 판단해달라고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
기도의 성장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믿음이 어린 사람들은 계속해서 기도하면서도 자신의 문제를 붙잡고 살아갑니다.
무슨 얘기냐면 기도는 하는데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내가 해결하려고 하죠.
하나님께 맡깁니다.
하나님께 맡깁니다. 라고 말하면서도 계속 걱정하고 계속 계산하고 계속 내 방법을 찾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기도하면서도 끊임없이 끊임없이 근심하는 일들이 참 많습니다.
기도하면서도 기도하면서도 그러고 있다는 거죠.
그런데 믿음이 성장하면 다릅니다.
기도하면 기도하는 대상인 하나님을 신뢰하는 거죠.
왜냐하면 그 하나님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고 하나님이 들으시고 하나님이 일하실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런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거죠.
풍랑 가운데 제자들은 두려워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서는 배 안에도 주무시지 않았습니까?
왜 그랬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상황을 보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믿음, 신뢰.
이게 그 믿음 아닙니까?
마태봉 8장 2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데 아주 잔잔하거들.
무슨 얘기입니까?
예수님은 풍랑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보는 것.
우리가 기도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까?
상황 앞에 하나님 옆에 나왔다면 우리는 기도하면서 상황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이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보는 것.
어떤 아들과 아버지가 길을 걷고 있는 거죠.
그런데 아들이 무거운 가방을 들고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안쓰러워가지고 이렇게 얘기합니다.
너무 무거우니까 나한테 좀 줘라.
그래?
그러면서 아들이 아빠한테 이 가방을 맡겼습니다.
그런데 아빠가 가방을 맡았으면 이제 마음 놓고 아빠가 들고 갈 수 있도록 해줘야 되잖아요.
그런데 가방끈을 붙잡고 놓지 않는 거예요.
이거 놔도 돼.
야 내가 들고 있으니까 놔도 돼.
그러고 하는데도 여전히 이 자기 가방이니까 그 붙잡고 그 염려를 놓지 않는 거죠.
사실은 우리가 그럴 때가 많다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러면 맡겼잖아요.
그러면 더 이상 그 기도에는 염려가 없어야 되지 않습니까?
근심이 없어야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그렇지 못할 때가 참 많습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가장 먼저 하나님께 나와왔으면 이제는 성숙하게 기도할 줄 알아야 됩니다.
내가 하나님께 기도했다면 이제는 그 하나님 앞에 이걸 맡길 수도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베드로서 5장 7절에 보면 너희 염려를 다 죽게 맡겨버려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십니다.
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어떤 문제가 발생하고 상황이 벌어지게 되면 이것은 하나님 옆에 가지고 나와야 되겠다라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그 염려마저도 맡겨라.
맡겨라.
이 희승이 할 기도는 단순히 하나님 이 문제를 해결해 주세요.
하나님은 천하 만국의 홀로 하나님이시라고.
하나님이 이 모든 상황을 다스리시는 분이라고.
이것이 희승이하가 하나님께 기도한 성숙한 성장한 기도의 모습이다라는 겁니다.
세 번째는 바로 기도의 성숙에 대해서 또 생각해 볼 수 있는데 기도의 성숙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믿음입니다.
희승이하가 하나님 앞에 아수르 왕의 편지를 펼쳐놓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에 대해서 고백합니다.
주는 천하 만국의 홀로 하나님이시다고.
주는 천지를 지으신 분이라고.
근데 이 기도가 한 단계 더 성숙한 모습을 또 보여주고 있는데 단순히 하나님 우리를 구원해달라고 하는 것을 넘어서서 그의 기도의 마지막 목적지를 보면 자신의 안전만을 말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17절 보겠습니다.
17절.
열한기와 19장.
17절.
18절 보겠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요하여 아수르 열왕이 과연 열방과 그 땅을 황폐케 하고 또 그 신들을 불에 던져 싸우니 이는 저희가 신이 아니여 사람의 손으로 지은 것 곧 나무와 돌 뿐임으로 변하였나이다.
아수르의 말을 인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말 안에는 하나님 사실 아수르가 많은 나라를 무너뜨린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 안에는 믿음이 있다는 것을 현실을 보지 않는 것 믿음이 있다는 것이 현실을 보지 않는 것 이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의 크기를 인정하지 않는 것 그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믿음은 현실이 없는 것이 아니라 현실보다 하나님을 더 크게 보는 것 이것이 믿음이다.
그러면서 19절 말씀 보겠습니다.
19절.
19절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우리 하나님이 요하여 원컨대 이제 우리를 그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그리하시면 천하 만국이 주 요하는 홀로 하나님이신 줄 알리이다.
아니라 여기서 희승야가 구원해 달라고만 말한 것이 아니라 물론 그는 살기를 원했고 또 예루살렘이 멸망하지 않기를 원했겠지만 더 나아가서 기도의 마지막의 내용을 보면 뭐라고 말하고 있냐면 그리하시면 천하 만국이 주 요하는 홀로 하나님이신 줄 알리이다.
자신의 문제의 해결을 넘어서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질 것이다.
라고 고백하고 있는 거죠.
이게 기도하는 사람의 끝 같은 어떤 기도의 성숙을 잘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처음의 믿음의 기도의 시작은 하나님 이 문제 해결해 주세요.
라고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더 나아갈 것은 이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걸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이걸 통해서 하나님을 볼 수 있도록. 그래서 믿음이 성장하면 기도의 질문이 달라집니다. 즉 하나님 제가 원 하는 것을 이루어주세요. 이렇게 시작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이렇게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하나님 이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드러날 수 있도록.
사실은 희승이야가 하나님 옆에 나와서 기도하는 마지막 종착지 같은 목적지는 그 기도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보호해 주시는 것을 넘어서서 이것을 통해서 우상을 섬기는 다른 나라가 하나님밖에 없다는 사실을 좀 보여달라고.
사실은 예수님의 기도가 그런 기도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마태복음 26장 39절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26장 39절 말씀 찾겠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마태복음 26장 39절 시작.
예수님은 자신의 고통에 대해서 하나님께 구하지 않은 분이 아니죠. 솔직하게 이야기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우리의 기도의 시작은 우리의 문제 우리의 아픔을 하나님께 솔직하게 아뢰는 것 필요한 일 입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그 예수님의 기도의 기준은 자신의 뜻이 아니었다는 거예요.
바로 아버지의 뜻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 그걸 통해서 돌려줄 하나님의 영광.
그래서 가장 성숙한 기도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 받아내는 그런 기도가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뜻 앞에 내 뜻이 내려놓아지는 일.
이게 기도입니다.
이게 성숙한 기도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도 성장해야 됩니다.
어린아이의 기도는 자기에게 피로에 의해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이것도 주세요.
하나님 이렇게도 해주세요.
그렇게 믿음이 시작할 수 있는 거죠.
하지만 하나님과 동행하는 시간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이 많으면 많아질수록 우리는 기도의 중심이 변해가야 돼요.
여전히 하나님께 달라고만 기도하는 기도가 아니라 내 이 상황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 나갈 수 있도록 이 기도가 응답이 되어짐을 통해서 많은 이들에게 이 일로 통해서 내가 높여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유익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유익이 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그런 기도의 응답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 어떻게 보면 남의 이야기 같은 기도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성숙한 기도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사람이라면 그 방향을 가지고 나아가야 된다는 거예요.
주기노문도 같은 방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실 때 우리가 마땅히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될 것들도 아래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마지막에 이렇게 말해주고 있죠.
마태고문 6장 13대를 보면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이것이 하나님께 우리가 기도하는 기도의 내용 가운데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될 돌려야 될 마지막 목적이라는 사실을 잘 말씀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내가 원하는 것만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영광이 온전히 들려질 수 있는 기도가 내 기도가 되게 해달라고 그래서 이승이하는 처음에는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기도는 점점 깊어져 가는 거죠.
점점 성숙해 가는 거죠.
문제를 하나님께 가져가는 기도에서 하나님께 맡기는 기도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이 영광이 되는 그런 기도가 되어줄 수 있도록 그 기도가 변해가야 된다. 그래서 기도의 성숙이라는 것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어쩌록 이 말씀이 우리 마음껏 새겨지는 그런 저와 여러분들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희승이하가 믿음의 시험을 지나면서 기도도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서 성장시키고 훈련시키는 이 과정 가운데 반드시 우리에게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깨달으라고 주시는 메시지는 이것이죠.
이 세상에 많은 것들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이 문제를 만나거든 하나님 옆에 나와라. 하나님 옆에 나왔다면 이제는 온전히 그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깨닫고 그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이제는 맡기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맡기는 것을 넘어서서 그 기도의 결과가 온전히 내 뜻이 내 원함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이루어지는 그 기도 가 아니라 이걸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결과가 내게 주어지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그 기도의 사람이 희승이하만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
하고 계신 것이죠.
그 기도의 사람이 저와 여러분이 되기는 그 은혜가 우리들의 있기를 우리 교회의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다 같이 묵도하심으로 말씀 마치겠습니다. 묵도하겠습니다.
할렐루야. 아민.
네 그러면은 광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로 올해도 그 1, 2, 3 운동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1, 2 , 3 운동에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2026년 예수 제재삼기 전도운동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이번 달은 증거의 달인데요. 보금을 힘써 전하는 달이 되도록 함께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로 오늘 오후 3시에 목양시에서 정기 임원회의가 있습니다. 네 번째로 오늘부터 내일까지 아동부 여름 성경학교가 대방교회에서 진행됩니다.
아동부들이 많은 은혜 받도록 함께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섯 번째로 내일 일요일 오후 5시에 대전교회 학생부가 대방교회를 방문합니다. 대방교회를 소개하고 한강에서 함께 활동할 예정인데요.
대방교회 학생부에서도 많이 참석하여 환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늘 신도의 분반 마치고 신도의 실 청소에 더욱더 힘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곳으로 광고를 마치고 인사하시겠습니다.
제가 할렐루야 하면 사랑합니다로 화답하도록 하겠습니다. 할렐루야 사랑합니다.

AI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 정리한 내용입니다. 정확한 말씀은 영상 원문을 확인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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