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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예수교회 True Jesus Church

2026.8.22일 안식일 오후예배 나사로를 통해 본 인생 찬송_349, 493장

제작일 2026. 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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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로와 부자의 이야기를 통해 육신의 삶과 죽은 후의 운명, 그리고 믿음과 회개의 중요성을 다룬다.

본문베드로전서 3:14누가복음 16:19-31
  • 나사로는 육신의 삶에서 고통을 받았지만 죽은 후 하나님의 품에 들어간다.
  • 부자는 풍요로운 삶을 살았지만 죽은 후 음부에서 고통을 받는다.
  • 믿음과 회개는 영원한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이다.
본문 정리 펼치기▼

나사로와 부자의 이야기

  • 나사로는 거지로, 헌대를 앓으며 부자의 문 앞에서 배를 충족하려 했으나 개들이 그의 상처를 핥는 등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 부자는 육신의 삶에서 풍요롭게 살았지만, 죽은 후 음부에서 고통을 받는다.
  • 나사로는 죽어서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고, 부자는 음부에서 고통을 받았다.

육신의 삶과 죽은 후의 운명

  • 육신의 삶에서의 행위와 죽은 후의 운명은 서로 다르다.
  • 죽음 이후의 삶은 육신의 삶에서의 행위와 믿음에 따라 결정된다.
  • 성경은 육신의 삶에서의 재산이나 지식이 죽은 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음을 강조한다.

믿음과 회개의 중요성

  •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증거이며,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삶은 믿음으로 이루어진다.
  • 회개는 예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을 때 이루어지며, 이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순간이다.
  • 나사로는 회개한 삶을 살았으며, 그의 삶은 오늘날 신앙생활하는 자의 모습과 같다.

고난과 의로운 삶

  • 고난은 하나님의 뜻을 배우고, 영생을 얻는 계기가 될 수 있다.
  • 의로운 삶은 베드로전서 3장 14절에 따르면, 의를 위해 고난을 받는 삶이다.
  • 성도는 세상에서 고난을 받으면서도 믿음을 지키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예수님의 목적

  • 예수님은 모든 사람이 그의 길을 걷기를 원하신다.
  • 첫째 부활은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는 순간 참여하게 되며, 이는 예수님과 함께 죽고 다시 살아나는 의미이다.
  • 하나님의 위로는 육신의 고난을 통해 경험되며, 믿음을 끝까지 지키는 자는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간다.
전사(자막) 전문▼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하나님 말씀 증가하겠습니다.
먼저 성경말씀 같이 보시겠습니다.
누가복음 16장 19절부터 31절까지 있는 말씀입니다.
성경말씀 누가복음 16장 19절부터 31절까지 있는 말씀입니다.
잘하셨으면 같이 보시겠습니다.
제가 공독해 드리겠습니다.
한 부자가 있어 자색옷과 고운 개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 헌대를 아르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며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대를 핥더라.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드며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가라 가로대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국률이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아브라함이 가로대 예 너는 살았을 때 내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가로대 그러면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징거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아브라함이 가로대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가로대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가로대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십니다
우리 본문에 있는 말씀을 통해서 나사로를 통해 본 우리 그의 인생 그가 어떤 삶을 살았거든 그를 통해서 일어나는 우리 그러한 일들을 같이 한번 살펴보면서 우리 나사로가 남의 모습이 아니라 저희들의 모습일 수도 있다라고 하는 것이다 남의 인생이 아니라 나의 인생일 수도 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은 세상을 살면서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 구단히 노력하시죠 자기 이름이 그만큼 소중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 이름이 기억되기를 원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 있는 말씀을 보시면 한 부자가 나오고 또 한 거지가 나오는데 이 부자는 어디?
이름이 없습니다 이 거지는 어디?
나사로라고 하는 이름을 가졌어요 왜 세상에서 생각하는 것과 우리 선정의 입속이 다를까요?
육신을 위한 삶과 어디?
우리의 믿음을 가지고 사는 삶은 어디?
다르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거듭나면 어디?
물과 영으로 거듭나면은 저희의 이름이 지금 어디에 기록되어 있어요?
통사무소에 기록되어 있는가요?
아니면 하늘에 기록되어 있는가요?
하늘에 기록되어 있음을 우리는 저를 믿어요 하늘에 있는 것은 어디?
그 책의 이름이 생명책이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우리 선정의 보면 생명책이라고 하는 이름이 있죠 우리 교회 거기에 내 이름이 기록된 또 그 위에 어디?
나사로의 이름 또한 어디?
기록되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면 본문에 있는 말씀을 통해서 어디?
우리가 하나님께서 특별히 하시는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어디?
보여주는 것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본문에 있는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시라고 하는 것을 알 수 있을까요?
나사로는 사랑하고 부자는 미워하는 하나님이세요?
아니면 하나님은 어디?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실까요?
세상에 있는 동안 부자나 나사로나 똑같이 사랑합니다 그러나 어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는 일은 어디?
별개의 문제라고 하는 것이죠 우리 세상에는 한 수십억의 인구가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래서 어디?
모든 사람이 어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 것은 아니죠 또 무엇 때문에 그래요?
뭔가 기준이 있을 거 아니에요 하나님은 공의로 어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 것은 아니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 것은 아니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 것은 아니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 것은 아니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 것은 아니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 것은 아니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 것은 아니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 것은 아니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 것은 아니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 것은 아니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 것은 아니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 것은 아니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 것은 아니죠?
죽음 이후의 삶을 생각하고 사는 사람은 어디?
우리 세상을 살아도 다르게 산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러한 삶의 기준의 모습을 말씀하고 있고 우리 여기에서는 이렇게는 표현을 안 했습니다 천국과 지옥이라고는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저희들은 어디?
믿고 산다라고 하는 것이죠 오늘 그것을 이 나사로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데 이 부자와 나사로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데 우리 오늘 이 시간에는 나사로를 중심으로 나사로에 서 있는 우리 그러한 상황들을 보면서 그의 인생은 이러한 인생이었다 이러한 결과를 낳았다라고 하는 것을
같이 한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 첫 번째로 나사로는 어떤 인생의 삶을 살았는가요?
우리 귀천한, 귀천한 인생을 살았는 나사로입니다 우리 20절, 21절에 있는 말씀 보시면 나사로의 형편이 어떠했는가요?
우리 그를 칭하기를 이렇게 칭했습니다 거지, 거지 우리 주위에도 그러한 분들 계시죠?
그런데 그러한 분들의 삶은 어떠한가요?
극도 없이 어디?
참 남에게 어디?
국어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그것을 어디?
무시하고 멸시할 우리만은 아니다라고 하는 것이죠 그의 삶도 어디?
우리 나사로와 같이 세계의 기회가 있다면 어디?
보금을 얻을 수 있는 그러한 기회가 있다면 그것도 하나 어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신분인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러한 어디?
삶을, 기회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 주위에 있는 분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우리 그러한 상황이 안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에 있는 말씀을 통해서 이 나사로는 어디?
한 거지라고 표현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육신을 보면 어디?
육신의 몸은 어떤 모습이었는가요?
헌데를 아르며 헌데를 알았다 이 알았다라고 하는 것은 어디?
자기의 몸의 상처로 인해서 어디?
고통을 받고 있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 우리 21절에 있는 말씀 보시면 어디?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을 해불리려고 어디?
부자의 상 밑에 현재 놓여있는 모습 그런데 그 옆에 어디?
개들이 그 헌데를 핥더라 그랬습니다 개들이 와가지고 그 헌데를 핥았다라고 하는 것은 어디?
그 상처가 심했다라고 하기보다는 어디?
우리 아프리카에 있는 현상들을 보여주는데 보면 파리가 몸에 달라붙어도 어디?
기운이 없어가지고 파리 쫓을 힘도 없는 경우도 많이 있는 것 같아요 우리 그러한 모습이 참 이렇게 영상이 됩니다 우리 나사로의 모습이 바로 그러한 모습이다라고 하는 것이죠 우리는 이 상황들을 볼 때 그는 어디?
누군가 한 사람 어디?
그를 친절하게 또 그를 따뜻하게 하되 사랑으로 보살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라고 하는 것이죠 우리 그러한 삶을 살아오지 못했던 것 같아요 우리 나사로의 형편이나 상황에 비슷한 사람들은 많이 있었던 것 같아요 38년 된 병자도 있었고 어디?
또 우리 충충병을 앓은 사람도 있었고 또 어디? 안준뱅이도 있고 우리와 같이 우리 주위에도 많은 어려운 사람들이 있었다라고 하는 것이죠 그들 옆에는 어디? 도와주는 사람이 있었고 또 이렇게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런데 오늘 본문에 있는 사람은 어디?
혼자인 모습 도와주는 이웃이 없는 우리 그러한 모습 그러면서도 어디?
그의 몸에 난 성처라든가 또 그의 형편이라든가 우리가 일하는 것을 보면 참 안타까운 그런 인생을 살아간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육신의 삶은 어디?
한마디로 보면 세상에서는 어디?
한편으로 보면 실패했다라고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어찌 보면 저희들의 인생 또한 그러한 마음까지 그러한 상황까지는 이루지 않았지만 우리의 삶이 정말 그러한 삶이었을까요?
그런데 우리 육신의 삶과 우리 두 번째 모습을 보면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의 육신의 인생을 비록 인천한 그러한 인생을 살았다 할지라도 우리 두 번째는 그에게 어떤 인생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가요?
우리 24절, 25절에 있는 말씀 보시면 22절, 23절에 있는 말씀 22절, 23절에 있는 말씀 한번 보시겠습니다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추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됨에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그랬습니다
우리 나사로의 인생이 이제는 어떤 인생으로 변화됐어요?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 인생으로 변화됐다고 합니다 그의 인천한 인생과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 그 인생 사이에는 뭐가 있어요?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이 놓여있는 것 같아요 죽는 것 좋아하시는 분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어디?
한 번 죽을 수밖에 없다라고 하는 것이죠 그러나 그 후의 인생은 어디?
내 몫이 아니라 하나님의 몫인 것 같아요 우리 나사로도 어디?
그 인생이 어디?
참 빈천한 몸으로 육신을 마감을 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죽음 이후에 어떠한 일들이 그에게 이루어졌다고 말하고 있는가요?
이 나사로가 죽어서 아브라함의 품에 뭘 가지고 갔어요?
우리 인생도 그렇죠 뭘 가지고 갈 수 있을까요?
내가 지금까지 쌓아놓은 내 지식을 어디?
가지고 가가지고 어디?
하늘에서 쓸 수 있을까요?
내가 세상에서 모은 우리 그러한 걸 가지고 어디?
하나님의 앞에 가가지고 어디?
많은 사람들에게 인심 쓰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요?
아무리 세상에서 성공했다 할지라도 우리 그러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아요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던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게 우리의 인생이라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 나사로는 무엇 때문에 어디?
어떻게 살았기에 그는 세상에서는 빈천하게 살았지만 지금은 어디에 가 있어요?
아브라함의 품에 그랬습니다 곧 이 아브라함의 품에 있다라고 하는 것은 어디?
우리가 영적으로 어디?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었다라고 말할 수도 하죠 아브라함의 은혜 가운데 어디?
거했다라고 또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어디?
죽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우리는 이러한 일에 대해서는 어디?
조금 의문을 가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죽을 때 자 우리 22절에 있는 말씀 보시면 아브라함을 누가 받들어갔다 그랬어요 천사 천사를 보셨어요?
그러나 우리 천사가 어디?
존재함을 우리는 어디?
알고 계시죠?
천사가 실제로 나의 삶 속에 어디?
내 필요한 것을 채워지지는 못하지만은 이 천사들이 어디?
어떻게 나사로를 알고 그를 받들어서 어디?
아브라함의 품으로 인도에 있을까요?
참 우리는 그것을 보면 어디?
성경은 세상에 있는 삶과는 어디?
다른 것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 같아요 현실 세계에서는 어디?
불가능한 일이 어디?
민원하고 있다라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믿음 하면은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는데 이 믿음은 어디?
보이는 것 가지고 또 세상의 과학으로 증명되는 것 가지고 어디?
나타날 수 있을까요?
믿음은 뭐라고 그랬어요?
11에서 11장에 있는 말씀 보시면은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증거 사랑하는 것들에 대한 믿음 그랬습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그러한 것들이 어디?
내가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어디?
그대로 어디?
이루어진다 라고 하는 것이죠 그러니 예수님께서 저희들 지금 하늘로 올라가셔서 저희들을 위해서 초소를 예비하고 있다 그랬는데 우리는 어떤 초소가 저를 위해서 예비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여러분들을 위해서 어떤 초소가 예비되는지는 우리가 상상할 수는 없죠 그렇다 지금
초소를 예비하고 어디?
그것이 완성되면 어디?
다시 오셔가지고 저희들 어디?
빌려 올려간다고 그랬습니다 우리는 이것이 어디?
저희들의 믿음이 아닌가요?
우리 오늘 이 나사라고 어디?
죽었습니다 그러니 거지의 상태에서 죽음을 당하면은 주의 몸은 어떻게 처리될까요?
고문에 있는 말씀을 보면 어디?
개들도 어디?
그들의 헌대를 하쳤다라고 하는 것을 보면은 아무 누구도 어디?
그를 돌봐줄 사람이 없다면은 귀의 시신은 어디?
아마 버리워지지 않았을까 또 혹시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어디?
그를 땅에 묻어졌다 할지라도 버리워진 무덤이 되지 않을까 그런데 어디?
그러한 말씀에 기록된 것이 아니라 지금 어떤 말씀으로 기록되어 있어요 이 지는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 하는 거죠 그러나 이 나사로의 어디?
그의 삶은 천사들이 그를 받들어갈 만큼 공개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 저희들이 어디?
나사로라면은 나사로와 같은 어디?
공개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아브라함의 품은 어디?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우리 그러한 곳이기도 하죠 그래서 우리 이현세와 어디?
하나님의 나라는 어디?
하나님의 나라는 어디?
하나님의 나라는 어디?
하나님의 나라는 어디?
하나님의 나라는 어디?
하나님의 나라는 어디?
하나님의 나라는 어디?
하나님의 나라는 어디?
하나님의 나라는 어디?
하나님의 나라는 어디?
하나님의 나라는 어디?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똑같이 이루어질까요?
우리는 그러지 못함을 말씀하고 있죠 우리 나사로를 보면은 현재의 불행이어든 안내의 영광으로 드러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품에 갈 수 있는 들어가는 우리 그 인생을 보면서 어디?
그가 어떻게 해서 갔을까요?
아마 이 결론은 나중에 나오는 것 같아요 우리 세 번째로 세 번째로 이 나사로의 인생을 우리 이와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25절에 있는 말씀 보시면은 나사로는 어디?
25절에 있는 말씀 다시 한번 보시면은요 아브라함이 가로대에 예, 너는 살았을 때 내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그랬습니다 그런데 우리 마태복음에 있는 말씀서니까요 어떤 사람이 위로를 받을까요?
한번 찾아보시겠습니다 마태복음 5장에 보시면은 어떤 사람이 위로를 받는다고 했어요 나사로는 이러한 삶을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자 우리 3절부터 이렇게 쭉 한번 보시면은 어떤 사람이 위로를 받는다고 했어요 4절에 있는 말씀 보시면은 애통하는 자는 복이 난이 어디?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며 그렇습니다 우리 나사로의 애통이 어떠한 애통일까요?
하나님은 상한신명을 받으신다 그랬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는 어린 그 기도를 받으신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기도가 간절히 기도한다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내 믿음이 살아있다라고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의 기도소리는 어디?
물론 기도소리가 우리의 기도를 대변하진 않지만은 그 기도소리가 어디?
힘이 들어가 있느냐 어찌 보면 들어가 있지 않느냐 하는 것은 어디?
우리 스스로가 느껴지는 것 같아요 물론 기운이 없어가지고 기도에 힘도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디?
간절함이 없음으로 어디?
우리의 기도는 어디?
점점 약해질 수 있다라고 하는 것이죠 그런데 이 간절함이 정말 내가 필요해서가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을 향한 내 기도이냐 라고 하는 것인 것 같아요 왜 이 하나님은 나사로를 위로했을까요?
그는 액통에서만 하는 것 있을까요?
네
그는 세상에 있는 동안 우리 이렇게 성경을 말씀하고 있던 부자에게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내 좋은 것을 다 받았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좋은 것을 다 받았으면 그는 그걸 가지고 어떻게 해야 돼요?
우리 19절에 보면 그랬습니다. 날마다 코아로이 연락했다 그랬습니다. 다 저것을 입고 고운 새 옷을 입고.
곧 이 말씀은 무슨 의미예요? 하나님께서 자기의 백성이 고통받으라고 괴로움 당하라고 하는 하나님은 아니실 것 같아요.
그러나 이 부자에게 내 좋은 것을 받았으면 그걸 가지고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사로를 위한, 나사로와 같은 사람을 위한 삶을 살라라고 하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 19절에 있는 말씀을 보시면 자기를 위한 삶을 함께 살지 않았는가 싶어요.
우리 28절에 있는 말씀을 보시면 그 형제들이 다섯이나 있었다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 부자는 어디예요? 그것에서 고통을 받으면서 이 형제들을 생각했습니다.
그걸 보면 그의 형제들과는 함께 세상에 좋은 것을 가지고 어디예요?
같이 누렸을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은 추측해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 나사로는 육신의 가운데 있으면서 어디예요?
많은 고통을 당하셨다 했다라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이 고난이 어디예요?
그냥 고통을 당하는 것만으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에서 위로를 해 주실까요?
우리 성경에 있는 말씀 보니까, 우리 10편에 있는 말씀 보니까요.
10편 119편 71절에 이런 말씀이 있죠.
10편 119편 71절에 고난을 당하는 것은 내게 유익이라 그랬습니다.
우리 고통당하고 싶으신 분 안 계시죠?
저도 안 그랬습니다.
그러나 내가 유익되었던 것은 이 어려울 때 어디예요?
누구를 생각했을까요?
누구를 생각했을까요?
부모를 생각하고, 조상을 생각하고, 내 형편을 생각하고, 그러면 이 고난을 당할 때 어떤 생각이 드시던가요 ?
그런데 그때 어디예요?
하나님을 생각한다면 우리의 마음은 어떠할까요?
지금 여기 119편 71절에 있는 말씀 보시면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그의 일배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그랬습니다.
그는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어디예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알았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 또한 어디예요?
고난을 당하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살면 어떻게 할까요?
남의 것, 훔치는 것, 어려울까요?
요즘은 CCTV가 많이 있어도 어디예요?
농촌에 보면 많은 농산물을 잊어먹더라고요.
마음 먹으면 어디예요?
아무리 CCTV가 있다 할지라도 부자들 집 또한 어디예요?
쉽게 열릴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나사로는 아마 병들어가지고도 몰아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고난을 당하면 어디예요?
이와 같이 악을 행할 수도 있다고 하는 것이죠.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그 말씀 가운데 그 아는 삶은 어디예요?
그 고난을 이기기 위해서 얼마나 더 속을 했을까?
괴로워했을까? 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우리 예수님께서도 이러한 말씀을 했어요.
마가복음 10장 29절 30절에 있는 말씀을 보시면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마가복음 10장 29절 30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에게 이루느니 나와 및 고금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네나 어미나 아기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다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대나 받되 희망을 겸하여 받고 내세의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는 이라 그랬습니다.
주와 대, 그 보금을 위해서, 위에서는 어디예요?
때로는 이러한 일들도 생긴다고 하는 것입니다.
형제와 대, 원수될 때도 있고 어디예요?
아비와 싸울 때도 있고 또 내 전토를 어디예요?
가지고 다투는 있을 때도 있고 그런데 이런 일을 당하는 것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죠.
30절에 핍박을 겸하여 받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어디예요?
이러한 고난을 겪으면 어디예요?
내세의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어디예요?
하나도 없다라고 하는 것이잖아요.
우리 세상에 있는 것을 가지고 어디예요?
그걸 가지고 끝까지 쟁취하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것을 버리고 어디예요?
믿음을 지키라 라고 하는 것이죠.
물론 내 것이면 가져와야겠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어디예요?
많은 것을 내가 책임을 지고 어디예요?
맡아서 행하게 하거든요.
하나님도 이 부자를 어디예요?
그냥 그를 나쁜 사람으로만 흔한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세상에서 그에게 많은 것을 주었으면 그것을 가지고 어디예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한다면 어디예요?
우리 그것이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죠.
그렇지만 그러한 삶을 살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 본문에서 비율의 이유가 같이 말씀한 것이고 그러나 나사로는 어디예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는 어디예요?
자기의 형성 가운데서도 고난을 당하면서도 어디예요?
애통하는 고통을 당하는 그 삶을 살았기야 돼?
하나님께서 어디예요?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어디예요?
위로를 받는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이 어떠한 삶이 되기를 원해요?
복을 주시고 지켜주기를 원하잖아요.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시는 자가 그랬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디예요?
평강을 주시고 어디예요?
안식을 주시기를 원한다 그랬습니다.
은혜를 주시기를 원한다 그랬습니다.
그 하나님의 뜻에 확장한 삶을 살지 못함으로 인해서 지금 구단은 어디예요?
한계 위로가 아니라 어디에 가 있어요?
엄두에 가 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나사를 통해서 위로가 있어도 육신의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위로가 있는 그 삶을 살았다라고 하는 것이죠.
또 그의 삶을 어디?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면서 어디?
그의 믿음을 지킨다라고 하는 것은 그가 어디?
이런 삶을 살았다라고 하는 것인 것 같아요.
의로운 삶을 살았다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떠한 의로운 삶이요?
우리 성경 말씀으로 이렇게 보면은 베드로전서 3장 14절에 있는 말씀 보시면은 이런 말씀 있죠?
베드로전서 3장 14절 그러나 하죠.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어디?
복이 있나?
의로운 삶을 살았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의를 위해서 고난을 받는데 우리가 조금 더 나아가면 어디?
하나님 앞에 나오는 많은 사람들이 어디?
그런 삶 가운데 놓여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 요한계시록 20장 4절부터 6절까지에 있는 말씀 보시면은 우리 이러한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호자 앞에 하나님과 더불어 대 천년 동안 왕로를 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랬습니다.
천년 동안 왕로를 단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우리 일반 교회에서 주장하는 천년왕국이 아니라 영원히 하나님의 나라에서 어디?
하나님의 보호자 앞에서 어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산다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 앞에 나오는 사람들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4절에 있는 말씀 보시면은요.
4절에 있는 말씀 보시면 있습니다.
5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있죠.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서 목대임을 당한 자 그랬습니다.
또 짐승과 대 우상에게 경비하지 않고 이마의 손과 그의 손에 그 표를 받지도 않냐는 자들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지금 어디?
살아서라고 표현했죠.
살아서.
우리 여기서 살아서라고 하는 것은 어디?
그냥 살아있는 삶을 그대로 유지한 것이 아니라 어디?
이미 육신은 어디?
죽었는데 영혼이 어디에 가 있어요?
낙원에 가있던 영혼들이 어디?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그때 어디?
살아서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말씀을 우리 5절에 있는 말씀 보시면 이런 말씀이었죠 이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냐 하고 말하고 있는데 첫째 부활에 참여한다 그랬습니다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사기까지야 되요 사지 못하더라 그랬습니다 그러면서 인어대 첫째 부활이라 그랬습니다
여러분들은 첫째 부활에 참여하셨어요?
언제 우리가 첫째 부활에 참여하시는가요?
언제 참여하셨어요?
우리가 세례받을 때 어디예요?
예수님의 첫째 부활에 참여하시죠?
세례를 받음으로 인해서 어디예요?
믿고 세례를 받는다는 구원을 얻을 것이며 그랬습니다 세례받은 사람은 어디예요?
구원을 얻었기에 이제 생명 가운데에 놓여있는 모습입니다 죄사함을 받는다고 어디예요?
죄사함을 받음으로 인해서 어디예요?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음으로 인해서 어디예요?
우리가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우리가 믿을 수 있어요?
우리 성경 말씀 로마서에 있는 말씀 한번 보시겠습니다 3절부터 5절까지 있는 말씀만 보겠습니다 로마서 6장 3절부터 5절까지 있는 말씀 제가 공독해 드리겠습니다 같이 한번 주의깊게 보시기 바랍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 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도 또한 그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합니다.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지라 그랬 습니다.
지금 여기는 무엇을 말씀하고 있어요? 세례를 말씀하고 있는데 세례의 의미를 제사함의 의미가 아니라 이제 다시 어디 예수님과 함께 죽었다가 다시 사는 그런 의미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어디 실제로는 어디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죠. 3일 만에 어디 다시 살아나셨죠. 그런데 그것을 누가 아셨다고 그랬어요?
하나님께서도 예수님께서도 예수님께서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그랬습니다. 누구에게도 그러한 일이 일어난다고요?
저희에게도 그러한 일이 일어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예수님의 죽으신의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된다 그랬습니다 .
이것이 어디? 첫째 부활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첫째 부활은 죽은 이후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첫째 부활은 언제 일어나요?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의 복음을 통해서 어디?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예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음으로 인해서 어디?
첫째 부활에 참여한다고 하는 것이죠.
이 위로가 어디? 우리가 지금 이 나사로가 아브라함의 품에서 어디?
하나님의 위로를 받고 있는 모습이라고 하는 것이죠.
우리는 세상에서 어디? 우리 신앙생활한다고 마음이 힘들고 어려운 그 길을 걸어가고 있지만 하늘에서는 어디? 하나님의 위로가 기다리고 있다고 하는 것이죠.
또 우리 한 가지만 더 보시면 어디? 우리 30절에 시간이 조금 지났는데요.
한번 보시겠습니다. 우리 30절에 있는 말씀 한번 보시겠습니다.
이 나사로의 인생. 그는 어떤 인생을 살았는가요?
30절 가로래 그렇지 아니하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다.
그랬습니다.
나사로의 인생은 어디? 회개한 인생이라.
라고 하는 것이죠.
나사로가 언제 회개를 했을까요?
우리는 언제 회개를 해요?
성경은 언제 회개하는 게 진정한 회개라고 그랬어요.
너희는 각각 회개하려 예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그랬습니다.
이 회개를 할 때는 사실은 언제예요?
베드로가 이 말씀을 한 때는 그런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에게 어디? 복음을 전할 때 그랬습니다.
그 복음이 어디? 그 안에 들어가서 어디?
그의 마음을 찔려서 깨닫게 할 때.
이 복음이 어디? 한 귀로 죽고 한 귀로 흘려버리는 삶이 아니라 한 귀로 죽고 어디? 더럽기가 있어가지고 그 말씀을 어디? 깨달아서 그가 어디? 회개하고 예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어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그 상황이 어디?
지금 나사로의 그 모습이 어디?
오늘 저희가 여기 앉아있는 내 모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왜 하셨을까요?
우리 거기에 누가 같이 갔다 그랬죠?
누가 죽었다 그랬죠?
이 부자. 그런데 이 부자는 어디로 갔어요?
아브라함의 품이 아니라 지옥. 고통을 받는 중에.
그래서 이 아브라함이, 아니 아브라함이라는 우리 이 부자가 아브라함에게 이런 요구를 합니다.
24절에 있는 말씀 보시면 그가 얼마나 큰 고통을 당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좀 손가락에 물을 찍어서 내 혀에 닿게 해서 좀 시원하게 해달라고 그러죠.
그러면서 고민이 하나 있습니다.
청이 하나 있습니다.
그러면서 청을 합니다.
우리 27절에 나사로를 집에 좀 보내서 28절에 뭐라고 그랬어요?
형제가 5명이 있습니다.
저들에게 고급을 좀 중가하게 해달라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뭐라고 말해요?
31절에 그랬습니다.
죽었다가 살아난 이 나사로가 가서 전한다 할지라도 어디 현재 그들 가운데 주위에 모세와 선지자들이 어디 많이 있다라고 하는 것이죠.
그들을 통해서 지금 보금이 전파되고 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말을 듣지 않는데 나사로의 말이라고 어디 듣겠느냐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이에요?
우리 오늘날 이 시대에도 어디 오늘날 이 시대에도 많은 모세와 선지자들이 존재합니다.
어쩌면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어디 저일 수도 있고 여러분들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 구자의 어디 다섯 천조와 같은 많은 사람들의 세상에 있다라고 하는 것이죠.
그런데 그들은 어디 아무리 보금을 이야기해도 어디 소개해도 지금 뭐라고 이야기하는가요?
많은 사람들이 그건 나와 나에게 어디 맞지 않는 말이다 라고 하는 것이죠.
또 세상의 지식을 가지고 어디 그 말씀을 필터링해서 격 걸러서 듣다 보니까 어디 불합리한 말이다 증명되지 않는 말이다 성장에 있는 말씀들은 어디 증명되지 않는 말씀들이 어디 많이 있다라고 하는 것이죠.
그러나 몸을 쬐다고 하지 않는가요?
또 다른 신들이 어디 미혹되어 가지고 어디 예수님을 믿는 이 보금을 어디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들이 다 많이 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 중에 한 사람이 누구였다고요?
구자 그런데 그 말씀을 듣고 어디 그 말씀을 처음부터 깨닫지는 못했지만 그 말씀이 어디 내 마음이 와서 어디 회개를 하고 세례를 받고 구원받는 자가 되었다면 어디 어쩌면 그의 인생은 나사로의 인생과 같다라고 하는 것이죠.
구자는 부자와 이 다섯 성제는 회개하지 안 할 수도 있지만 나사로만큼은 어떻게 했다고요?
이 보금을 통해서 회개했다라고 하는 것이죠.
회개하지 않으면 어디 하나님의 영광이 들어올 수 없다라고 하는 것이죠.
그의 이름이 어디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요?
반드시 어디 물부가 성령으로 거듭나는다라고 하는 것이죠.
또 우리 그 믿음을 끝까지 어디 지키지 않으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마태복음 우리 24장에 있는 말씀 보면 마지막 때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요?
한란이 있고 그렇습니다.
지진이 있고 희박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로 하여금 이런 한란이 고통을 어디 끝까지 이기라고 말씀하고 있죠.
마태복음 24장 13절에 있는 말씀 보시면 이 세상은 어디 재난이 시작되지만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랬습니다.
의리나사로는 어디 비록 그의 형편은 어려웠지만 그의 믿음을 끝까지 지키는 자요 어디 그 끝까지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어디 이 복음이라고 하는 것이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것을 끝까지 지키는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게 되고 또 하나님의 위로가 함께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그의 가는 그 길이 어디 여러분들의 길이 되거든요 또 저희들만의 길이 아니라 어디 예수님께서는 어디 이 땅에 오시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어디 그 길을 가기를 원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단행에 다 할 수 있는 우리 성도님들 대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지혜가 부족하고 또 우리가 할 수 있는 힘이 없다 할지라도 어디 우리는 때로는 일해야 하는 것 같아요 구해야 하는 것 같아요 지식이 없으면 지식을 구하고 능력이 없으면 능력을 구하고
내가 전하지 못하면 어디 내 옆에 있는 사람을 기초조사라도 어디 그를 통해서 하게 하고 우리 이러한 수고와 노력은 필요한 것 같아요 우리 이러한 모습을 통해서 저의 신앙과 저희들의 신앙과 하나님의 교회가 더욱더 통황될 수 있는 이렇게란 길을 걸어갔으면 합니다
이러한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리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 되시기를 우리의 저녁으로 기원합니다 목도하시고 마치겠습니다

AI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 정리한 내용입니다. 정확한 말씀은 영상 원문을 확인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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