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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예수교회 True Jesus Church

전도서 개론

김승도 · 전12:13-14

제작일 2026. 8. 28.

AI 설교 정리

AI 자동 정리

전도서의 주제와 솔로몬의 삶, 그리고 허무함에 대한 교훈을 다룬 내용입니다.

본문전도서 12:13-14
  • 전도서는 솔로몬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쓴 글로, 모든 것이 허무하다는 주제를 다룹니다.
  • 허무함은 세상 사람들과 성도 모두에게 존재하며,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극복할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을 경애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라고 명확히 제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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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의 개요

  • 전도서는 솔로몬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쓴 글로, 허무함에 대한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 전도서의 주제는 '모든 것이 허무하다'는 인생의 허무를 다룹니다.
  • 전도서는 이스라엘과 이방인 모두에게 적용 가능한 보편적인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솔로몬의 삶과 실패

  • 솔로몬은 풍요롭고 지혜로운 왕이었으나, 쾌락과 허무에 빠져 진리를 찾기 위해 자신의 경험을 기록했습니다.
  • 솔로몬의 실패와 후회는 그의 가정, 통혼, 우상 숭배 등 여러 사건과 관련이 있습니다.

허무함과 극복 방법

  • 허무함은 세상 사람들과 성도 모두에게 존재하며, 성도의 허무는 '상대적 허무'로,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극복할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삶을 살아가면, 순간순간의 허무를 극복할 수 있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을 경애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이 사람의 본분이며, 이는 허무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전도서의 결론

  • 전도서 12장 13절-14절에서 '하나님을 경애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라고 명확히 제시됩니다.
전사(자막) 전문▼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한글자막 by 한효정 한글자막 by 한효정 한글자막 by 한효정 한글자막 by 한효정 한글자막 by 한효정 한글자막 by 한효정 한글자막 by 한효정 한글자막 by 한효정 한글자막 by 한효정 한글자막 by 한효정 한글자막 by 한효정 한글자막 by 한효정
한글자막 by 한효정 오!
바치고 싸움터로 나가세 원수들은 이미 예수의 손에 하나 없이 패하고 주의 군기만이 영광스럽게 온누리에 빛나네 나가세 나가세 주 예수만을 위하여 목숨까지도 버치고 싸움터로 나가세 다음 찬양 37장입니다.
주 예수 이름 높이요 다 찬양하여라 다 찬양하여라 금별 유관을 들여서 만유의 주를 찬양하세 찬양 찬양 찬양 만유의 주 찬양 주 예수 당한 고난을 못 잊을지나 못 잊을지나 내 귀한 법에 바쳐서 만유의 주를 찬양하세 찬양 찬양 찬양 만유의 주 찬양 만유의 주 찬양
이 지구 위에 고하는 온 집하족석들 온 집하족석들 그 크신 위협 높여서 마녀의 주를 찬양하세 찬양 찬양 찬양 마녀의 주 찬양 주 믿는 성도 다 함께 주 앞에 엎드려 주 앞에 엎드려 무궁한 노래 불러서 마녀의 주를 찬양하세 찬양 찬양 찬양 마녀의 주 찬양
다음 찬양 233장입니다 황무지가 장미꽃같이 피는 곳을 볼 때에 구속함에 노래 부르며 거룩한 길 다니리 거기 거룩한 그 길에 검은 구름 없으니 남과 같이 맑고 밝은 거룩한 길 다니리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그의 영광 볼 때에 모든 괴로움 잊어버리고 거룩한 길 다니리
거기 거룩한 그 길에 검은 구름 없으니 남과 같이 맑고 밝은 거룩한 길 다니리 땅에 샘물 터지고 사막에 불을 흘러 기쁨으로 찬양 기쁨으로 찬송 부르며 고룩한 길 다니리 거기 거룩한 길 다니리 거기 거룩한 그 길에 거룩한 그 길에 검은 구름 없으니 낮과 같이 맑고 밝은
고룩한 길 다니리 거기 악한 짐승 없으니 두려울 것 없게 했네 거기 악한 짐승 없으니 거기 악한 짐승 없으니 거기 악한 짐승 없으니 거기 악한 짐승 없으니 거기 악한 짐승 없으니 거기 악한 짐승 없으니 두려울 것 없게 했네 거기 악한 짐승 없으니 두려울 것 없게 했네
고룩한 길 다니리 거기 거룩한 그 길에 검은 구름 없으니 남과 같이 맑고 밝은 고룩한 길 다니리 거기 죄인 전혀 없으니 거기 죄인 전혀 없으니 고룩한 짐승 없으니 고룩한 짐승 없으니 고룩한 짐승 없으니 고룩한 짐승 없으니 고룩한 짐승 없으니 고룩한 짐승 없으니
고룩한 짐승 없으니 고룩한 짐승 없으니 고룩한 짐승 없으니 고룩한 짐승 없으니 고룩한 짐승 없으니 고룩한 짐승 없으니 고룩한 짐승 없으니 고룩한 짐승 없으니 고룩한 짐승 없으니 고룩한 짐승 없으니 고룩한 짐승 없으니 고룩한 짐승 없으니 고룩한 짐승 없으니
고룩한 짐승 없으니 고룩한 짐승 없으니 고룩한 짐승 없으니 다음 찬양 138장입니다.
찬양 138장입니다.
찬양 148장입니다.
찬양 148장입니다.
찬양 148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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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이름 쓰리 십자가 십자가 내가 처음 볼 때에 나의 맘에 큰 고통 사라져 오늘 믿고서 내 눈 밝았네 참 내 기쁨 영원하도다
다음 찬양 383장입니다
성도는 신앙 지켰네 이 신앙 생각할 때에 기쁨이 충만하도다 성도의 신앙 따라서 죽도록 충성하겠네 목중에 매인 성도나 영심은 자유원 없네 우리 도고 난 받으면 죽어도 영광 되도다 성도의 신앙 따라서 죽도록 충성하겠네 신앙 봄받아 원수도 사랑하겠네 인자한 언어 행실로
이 신앙 전파하리라 성도의 신앙 따라서 성도의 신앙 따라서 죽도록 충성하겠네 마지막 찬양 200장입니다 마지막 찬양 200장입니다 성도의 신앙 따라서 성도의 신앙 따라서 성도의 신앙 따라서 성도의 신앙 따라서 성도의 신앙 따라서 성도의 신앙 따라서 찬송가 420장
찬송가 420장 찬송가 420장 찬송가 420장 찬송가 420장 이곳으로 찬양 마치겠습니다.
찬송가 420장 아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9월 1일 화요예배 드리겠습니다.
찬송 102장 찬송가 420장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찬송가 420장 놀라운 사랑해 주신다.
귀한 것은 없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찬송가 420장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찬송가 420장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찬송가 420장 귀한 것입니다.
옮기는 내 맘 변치 못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름 다 버렸네 저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밖에는 없네 아멘 기도하시겠습니다 오늘 또 무더운 날씨인데도 이렇게 어렵게 믿음을 갖고 나오신 줄로 믿습니다 오늘 또 귀한 시간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내일 읽고 듣고 우리가 묵상하는 하나님 말씀이지만 그러나 그 말씀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우리 하나님 말씀이시기 때문에 어제 받은 은혜가 또한 오늘 받은 은혜인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 또 변화 없이 이 말씀을 통해서 은혜 받게 하시고 깊은 그런 깨달음을 얻고 돌아갈 수 있는 시간 될 수 있도록
기도하겠습니다 예수 크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옵니다 예수 크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예수 크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예수 크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예수 크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예수 크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예수 크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예수 크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예수 크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예수 크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예수 크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예수 크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예수 크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예수 크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예수 크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예수 크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예수 크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예수 크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예수 크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예수 크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예수 크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예수 크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예수 크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예수 크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예수 크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예수 크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예수 크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예수 크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예수 크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예수 크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예수 크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예수 크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예수 크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예수 크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예수 크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예수 크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예수 크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예수 크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예수 크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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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엘레트라고 하는 히브리 성경의 제목에 따른 건데요 코엘레트라고 하는 것은 전도자라는 뜻입니다 전도자 성경개론을 시작할 때에 제가 말씀을 드리는 기억이 나는데 보통 구약의 성경들은 책의 첫머리 책의 첫머리를 제목 삼은 얘가 많다 그런 얘기를 드리는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그런 설례에 따라서 전도서 1장을 보시게 되면 다윗의 아들 전도자 설로몬 그런 말씀을 주시고 있거든요 잠깐 찾아 보시겠습니까 전도서 1장 1절을 잠깐 보시게 되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데요 전도서 1장 1절을 보시게 되면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이렇게 되어 있잖아요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을 책의 말하자면 처음 글 거기에서 제목을 따는 경우가 많은 거예요 그래서 전도자라는 말이 나오죠 이 전도자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코엘레트입니다 코엘레트 그래서 제목이 코엘레트였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코엘레트는 전도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전도하는 사람 그러면 누구에게 전도한다는 얘기냐 코엘레트의 오언을 보시게 되면 보통 지혜로운 자들 또는 지식을 탐구하는 자들 이렇게 고상한 것을 논하고자 하는 자들을 부른다는 거예요 불러서 그들을 대상으로 해가지고 가르치는 자 말씀을 전하는 자 그것이 바로 전도자예요
코엘레트예요 오케이 그래서 헬라어도 코엘레트라고 하는 히브리어를 그대로 그 뜻을 이어받아서 에클레시아스테스 에클레시아스테스라고 하는 제목을 붙였다 이 말이에요 여러분 에클레시아라는 말이 무슨 뜻이죠?
부러우심을 받아 나온 회중 우리가 교회라고 하는 말을 쓸 때에 에클레시아라는 말을 쓰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에클레시아스테스라고 하는 그 말을 쓰고 있단 말이에요 그래서 에클레시아스테스라는 것은 부러우심을 받아 나온 자들 그리고 에클레시아스테스라는 것은
불우심을 받아 나온 자들에게 대해서 말씀을 강론하는 자를 말하는 거예요.
에클레시아 스테스.
모모하는 자죠. 에클레시아는 불우심을 받아 나온 회중이죠.
이들에게 말씀을 강론하는 자 바로 스테스.
그래서 코엘레트라는 말과 에클레시아 스테스라는 말은 동일한 말이다.
무슨 말이냐.
회중에게 강론하는 자, 불우심을 받아 나온 자들에게 강론하는 자 그런 뜻이에요.
그런데 우리가 성경을 보게 되면 전도자라고 되어 있지 않잖아요.
전도서잖아요.
그렇죠.
그럼 왜 전도자라고 제목을 붙이지 않고 전도서라고 붙였느냐.
이 전도서는 전도자가 강론하는 원서의 성격을 갖고 있어요.
그러니까 그걸 뭐라고 그래.
하나의 대본이죠.
하나의 교과서죠.
그래서 전도서라고 붙였고 이것을 강론하는 자를 갖다가 전도자라고 그렇게 얘기했는데 바로 처음의 제목은 전도자였다는 거예요.
그러다가 이제 말하자면 영어 번역본이나 또 한글 번역본에서 전도자가 제목이 될 수는 없지 않느냐.
전도서라고 책이 전도서라고 책이 전도서라고 해야 되겠다라고 중의를 모은 끝에 이 전도서는 전도서로 부르고 이 전도서의 책의 내용을 갖고 전달하는 자가 바로 전도자다.
이렇게 정리를 한 거죠.
그래서 원래는 전도자였다.
책의 제목이.
그런데 그 후에 전도서라고 바뀌었다라는 말씀을 여러분들이 이해를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 다음에 책의 저자는 우리가 1장 1절을 읽었듯이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가 누구예요?
다윗의 아들은 여러 사람이었지만 예루살렘의 왕으로서는 솔로몬이었죠.
그렇죠?
그래서 솔로몬이 저자가 된다라고 하는 것이고요.
1장 18절을 보시겠습니까?
1장 18절 1장 18절 시작 지혜가 많으면 본내도 많으나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본인 자기에 대해서 얘기하는 거죠.
내가 지혜가 많았는데 많고 보니까 본내도 많더라.
지식도 많았는데 지식은 근심을 더하는 것뿐이다.
라고 얘기한 그 사람이 누구예요?
지혜의 왕 지식의 대가 곧 솔로몬.
이렇게 우리가 추측해 나가는 거죠.
이 책의 저자를.
그래서 충분히 전도서의 저자는 솔로몬이라고 하는 사실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를 제기할 수 없는 정도로 많은 근거가 남아있다고 보시는 거고요.
그래서 책의 기록 연대도 솔로몬왕의 제1기간 동안 써졌을 거 아니에요.
그렇죠.
본인이 쓴 거니까.
그러면 초기냐 중기냐 말기냐 이렇게 나눠볼 때 아마 노년기 죽음을 앞두고 쓴 내용일 것이다.
라고 추측을 해야 되겠죠.
왜냐하면 인생을 다 살아보니까 허무하더라는 걸 깨달았으니까 그 허무함의 시기가 과연 청년기냐 장년기냐 노년기냐 어느 기가 더 확실하겠어요.
노년기일 확률이 많죠.
그렇죠.
그래서 우리가 그렇게 추측해 나가는 거죠.
오케이.
자 그 다음에 이제 우리가 왜 이거를 지필하게 되느냐라고 하는 지필 동기를 이렇게 보시게 되면 이 전도서는요.
설로몬이 왕이 되고 난 그때부터 자기가 경험한 것을 진술한 거 아니에요.
그래서 내가 무엇이 쾌락인지 무엇이 행복인지 내가 한번 연구를 해보겠다.
이렇게 나가거든요.
여러분 2장 1절을 잠깐 보시겠습니다.
2장 1절 시작.
상당히 의도적인 것이 강해요.
물론 우리가 쾌락이나 또 세상에 이렇게 낙을 우리가 추구할 때도 무엇이 인생의 진정한 사는 맛인지 나 한번 알아볼 거야.
뭐 그런 생각을 갖고 우리가 인생을 즐기겠지만 근데 이 설로몬은요.
상당히 좀 철학적으로 접근을 한 것 같아요.
그래서 본인은 지혜의 왕으로서 참 아버지의 대를 이어서 성전을 건축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문화 창달에 힘쓰고 또 많은 지혜와 지식을 통해서 이제 널리 그 명성이 알려지다 보니까 많은 부를 축적하게 됐고 또 그러한 그 그러니까 말하자면 그 나라가 최고의 용성기에 접어들었고 안정기에 접어들었죠.
거기다가요.
설로몬은 이방 여인들을 아내로 삼아요.
한 여섯 이방 아내를 아내로 삼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이웃의 강대국들과 어떤 인척관계를 개혁성하게 되잖아요.
사돈관계죠. 쉽게 얘기해서.
공주를 맞이했으니까.
그러다 보니까 나라가 굉장히 안정될 수밖에 없는 그런 그 시대적인 운을 또 타고났어요.
그러고 보니까 이제는 너무 자기를 과시한 거예요.
자기를 믿은 거야.
나는 할 거 다 했다.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내가 성전도 짓고 또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여러 행정조직이나 또 이런 것들을 완비했고 또 나라를 복속시키고 그렇게 해서 내가 근동 지역에서 최고 가는 왕이 됐으니 내가 더 무엇을 이루려 라고 만족하는 순간 그는 하나님께 눈을 돌리고 감사한 것이 아니라
뭐예요.
내가 세상의 쾌락이 어떤 것인지는 내가 안 알아봤지 않느냐.
낙이 뭐고 세상의 쾌락이 뭐고 행복이 뭔지를 내가 시험적으로 알아보리라.
그렇게 해서 이제 어떻게 보면 시험에 든 거죠.
여러분 우리가 시험에 든 걸 자세히 보게 되면 나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합리적이에요.
나 이래저래 해서 내가 이룰 거 다 이루고 내가 좀 여유가 있고 시간도 있으니까 세상적으로 뭐가 행복이고 뭐가 낙인지 그거 좀 내가 좀 알아보는 게 뭐 어때?
여러분 상당히 나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일 수 있겠지만 그것이 결국은 쾌락의 그런 루프로 빠져들어가는 하나의 동기가 되는 거죠.
자 그래서 이 솔로몬이 참 이런 그 그 그 쾌락이 무엇인지 이거를 이제 작년기에서부터 노년기까지 열심히 추구해 봤다는 거예요.
그런데 내가 직접 체험해 본 결과 이 모든 것들은 다 허무한 것이고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고 바람을 잡으려고 하는 것이었다.
라고 하는 것을 이제 깨달은 거예요.
그것을 자기 어떤 그 1인칭 시점에서 자기의 어떤 체험적인 것을 논술에 나가는 그럼 대상은 누구냐 대상은 두 가지로 나오죠.
하나는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 또 하나는 이방인들에게 대해서도 얘기하고 있어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이스라엘이나 이방인들이나 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표정들
피조물이죠.
이래놓고 볼 때 이 전도서에는요.
요호하라는 말이 나오질 않습니다.
여러분들 교재도 잘 보시기 바라요.
요호하라는 말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이미 이 전도서라고 하는 내용이 유태인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다 통용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의 소외를 밝히는 그런 조금 더 보편적인 그런 광범위한 교훈으로 쓰여졌다.
그런 의도를 갖고 쓴 것이다는 것이죠.
그런데 그 내용을 보게 되면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왜 허무함을 느끼는지 또 이방인들이 왜 허무함을 느끼는지는 분명히 분간에서 쓰고 있는 것이죠.
그러면서 이 허무함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뭐냐 에 대해서도 그 정답을 얘기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그러니까 서론, 본론, 결론 해서 단락 1, 2, 3, 4 해서 그렇게 쓰는 그런 시대가 아니잖아요.
자기 붓 가는 대로 자기 붓 가는 대로 디스코스 하면 강화거든요.
장화.
그래서 말하는 거예요.
그럼 누가 말하는 거냐.
선생이 아래 사람들에게 교훈하는 그런 식의 디스코스거든요.
그래서 연설과 설교문을 합한 그런 형식으로 말하자면 일광적인 그런 권멸의 말씀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그 시대로 봐서는 어떤 정확한 단락을 구성해가지고 이렇게 논술하기는 어렵지 않았겠냐 이렇게 생각이 들기 때문에 오늘 이렇게 막 써나간 이 상황을 단락을 나누고
내용을 정확하게 나눠서 여러분들에게 소개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최대한 우리가 이해를 돕기 위해서는 결국은 좀 나눌 필요도 있고 해서 지금 이런 개론 시간을 갖는 거거든요.
그래서 다시 이제 말씀을 좀 돌려보면 우리가 이 본서를 집필하게 된 동기를 알기 위해서는 설로문이 살아온 배경과 굉장히 연관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살아온 배경이 오늘 나를 만들게 하는 거잖아요.
그와 같이 설로문이 오늘 왜 이와 같이 실패의 인생을 살고 난 이후 이렇게 철저하게 자신을 후회하는 그런 이 내용을 썼을까라고 하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그가 살아온 삶의 배경을 알아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첫째, 이 설로문의 가계도를 보게 되면 굉장히 복잡합니다.
제가 이것을 정리하려다가 아, 이거 너무 복잡하다.
이 다윗이라고 하는 인물이 여러분들 보기에 그렇게 썩 훌륭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일부 일처를 해야 되는데 뭐야?
8첩, 10첩을 거느렸어요.
뭐예요?
권부인이 8명에다가 10명의 첩을 거느렸다는 거예요.
누가?
다윗이 다윗이 그러니까 다윗의 인생이 순탄하겠어요?
아니면 순탄하지 않았겠어요?
그렇죠?
한 사람 거느리고 사는 것도 쉬워요?
쉽지 않아요?
쉬워요?
한 사람은 쉽다고요?
아, 여러분들 모두는 다 쉬운 줄로 생각합니다.
그렇죠?
일부 일처를 해야 됩니다.
그런데 일부 일처도 문제가 많아요, 적어요.
엄청 많습니다.
그런데 8첩, 10첩이니까 복잡하죠.
그중에서 이 뭡니까?
다윗이 범죄로 인해서 얻은 그 아들이 바로 솔로몬이에요.
우리 아예 아내 바세바로 인해서 얻은 아들이 첫 아들은 죽었고 그렇죠?
둘째 아들이 솔로몬이에요.
그러니 솔로몬이 어렸을 때도 왕가에서 자랐을 거 아니에요.
기가 막힌 일을 엄청 많이 본 거예요.
큰 아들이 암논이거든요.
암논이거든요.
암논.
암논은요.
둘째 부인 아히노함의 아들인데요.
아들로서는 장남이에요.
또 얘가.
그런데 압살롬이라고 하는 마아가의 아들이 셋째 아들인데 이 압살롬의 누이 동생이 다말이에요.
그런데 이 다말을 이복 형인 암논이 겁탈을 했잖아요.
이 상황도 솔로몬이 바뀌었어요 안 바뀌었어요?
그러면서 그 압살롬이 쿠데타를 일으키며 아버지가 울며 불며 그 참 피난길을 가면서 고생한 그걸 전부 겪었으니까 이 솔로몬의 정서라고 하는 것이 그렇게 안정됐다고 볼 수는 없어요.
그런데 말이죠.
어쨌든 솔로몬이 또 왕이 되거든요.
왕이 되고 난 이후에 또 손 위에 이복형인 아도니아라고 하는 이 사람 때문에 엄청 또 시달리게 됩니다.
그래서 왕권을 위해서 서로 그냥 피비린내 나는 그런 일이 일어나기 직전에 잘 또 유지가 돼서 왕위에 올랐어요.
그리고 이제는 그때부터는 승승장구예요.
성전 건축, 일천 번제, 지혜를 얻은 거 신정 왕국으로서의 왕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하나님을 경유하는 그런 신실한 삶을 쫙 살아간 거죠.
그래서 이제 말씀드렸듯이 왕권이 안정이 되고 다위세 정복사업의 후광으로 왕국의 안정과 번영이 반석 위에 누워있는 듯 하자 그만 솔로몬이 하나님을 온전히 경애하는 삶에서 벗어나서 자신을 내세우고 그리고 쾌락을 추구하는 쇄속적인 삶에 빠져들게 됐다라고 하는데요.
그 예가 뭐냐면 첫째, 통혼이에요.
혼인은 마음대로 해도 된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이 절대 이방인하고는 통혼을 하면 안 된다라고 얘기를 했지만 솔로몬이 자청해가지고 뭡니까? 통혼을 했다는 거 아닙니까?
암몬, 시돈, 애돔, 헷여인을 사랑했고요.
공식적인 아내만 공식적인 아내만 후비가 공식적인 아내거든요.
본처는 8명인데 그 외에 또 공식적으로 사랑을 하면 뭐 후비가 되잖아요.
우리 조선시대도 그렇듯이.
공식적인 아내만 700명이에요.
놀랐죠?
대단합니다.
거기다가 첩이 빈장이라고 하는데 첩이 300명이에요.
그러니까 총 몇 명을 거든인 거예요?
첩명.
저는 이해가 안 됩니다.
계산이 안 나와요.
계산이 안 나와요.
아무리 이거 계산하려고 해도 계산이 안 나와요.
그런데 이들이 왕의 마음을 돌이켰어요.
그래서 시돈에 섬기는 아스타롯이라든지 암몬의 밀곰이라든지 모하�의 근호스라든지 이런 신들을 그냥 막 가지고 들어온 거야.
통혼은 좋은데 물론 통혼도 잘못된 거지만 이방 여인들이 자기들이 섬기는 우상을 가지고 들어왔어요.
그래가지고 솔로몬이 산당을 지었잖아요.
성전에다가 이런 이방신들을 모셔놓고 아니 성전에다가 이방신들을 모셔놓고 거기서 제사를 드리는 거예요.
분양을 하면서 이게 뭡니까 도대체가.
야 이거는 뭐 거의 갈 때까지 간 거죠.
거기다가 향락에 빠졌고요.
세금을 또 너무 부과해가지고요.
그 후에 이스라엘이 분열되는 이런 데까지 가게 됐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솔로몬이 그야말로 실패를 하게 됐는데 돌이켜보면 솔로몬이 살아온 그 길이 참 만만치 않았어요.
정서적이었어요.
모든 신앙적으로나 올바르게 뿌리가 박혔다면 결코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가지고 이렇게 세속적으로 산다든지 갑자기 돌변해서 통원을 한다든지 우상을 섬긴다든지 이렇게까지 갔었겠느냐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참 우리가 살아온 삶을 돌아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살아온 예수 믿기 이전에
그런 세상적인 환경이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들어온 것이기 때문에 이제는 새로운 피조물로서 새로운 세계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우리는 시작인 거예요 지금부터 시작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는 우리가 하나님의 세계
하나님의 권세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 안에서 내가 지키고 고수에 나가야 될 하나님의 말씀의 환경 안에서 우리가 잘 섬기고 나가야지 이렇게 섬기고 나가다가 세상의 쾌락이 뭔지 행복이 뭔지 하고 내가 시험적으로 해버리라 라고 한다면 그거는 실패할 확률이 99%라는 거예요
그래서 시험적으로라도 하지 마라 반드시 거기에는 유혹이 있고 실패가 따르게 된다 라고 하는 말씀을 드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자 이렇게 해서 이제 우리가 왜 이 전도서를 쓰게 됐는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고 이 전체의 그 달락은요 크게 네 번 강화로 되어 있습니다
제1강화 제2강화 제3강화 제4강화 강화는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렸듯이 가르침이라는 뜻으로 표현을 하면 가장 쉬울 것 같아요 선생이 아랫사람에게 훈계하듯이 그것이 이제 자문에서 우리가 강화라는 말을 한번 우리가 들은 적이 있죠 그렇죠 자문은 역시 솔로몬이 쓴 것인데
왕으로서 인생의 삶의 여러 가지 격언이나 이런 금언을 가르치는 그런 타입으로 쓴 것과 같이 전도서도 마찬가지예요 그런 제4강화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강화는요
1장 12절에서 3장 15절까지입니다 그래서 제1강화에서 우리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인생의 허무가 어떤 것이 인생의 허무냐라고 하는 예를 들었어요 자 여러분 전도서의 핵심은 허무입니다 자 먼저 1장 2절을 한번 같이 찾아보겠어요 1장 2절 한번 같이 찾아주세요
1장 2절을 한번 같이 읽겠습니다 1장 2절 시작 전도자가 가로대해 헛되고 헛되면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몇 번 헛되다 그랬어요?
다섯 번 철저하게 헛된 것이죠 그래서 헛되다라고 하는 영어는요 니힐리즘인데요 니힐리즘 지금 세상은요 지금 엄청 뭔가 목적을 향해서 가고 있지만 세상 사람들의 마음에는 전부 허무하다는 것을 느끼는 거예요 그것이 절대적인 허무입니다 돈을 벌어도 자식을 잘 키워도
뭐 사업을 해봐도 아니면 높은 권좌에 올라봐도 아니면 세상의 쾌락을 자기 마음대로 취해봐도 결국 얻는 게 있어요 없어요?
없다는 거예요 그것이 본질적으로 세상 사람들도 깨닫는 허무함이거든요 그거를 절대 허무함이라고 해요 니힐리즘 그럼 오늘 예수 믿는 우리 성도들은 니힐리즘이 아니냐?
맞아요 우리 성도들도 그 테두리 안에 살고 있어요 해아래에 사는 모든 것들은 다 허무한 거거든요 우리도 해아래에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하고 있는 모든 것들도 결국은 허무한 건 사실이지만 그러나 절대 허무가 아니라 상대적 허무라는 거예요 우리의 허무는 결과적으로는 허무겠지만
그러나 그 허무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거예요 그 뭐냐? 하나님을 경애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그러면 이 허무는 언제 극복된다는 것입니까?
오늘 우리가 믿음 안에 살아가는 동안 부흔적으로 극복이 되겠지만 사실은 결과적으로는요 우리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의 인생도 허무한 거거든요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도 똑같이 불을 취해봅니다 자식을 키워봅니다 사업을 늘려봅니다 아니면 또 뭐가 있을까?
먹고 마시는데 즐거운 거에 대해서 우리가 열심히 또 노력을 해보고 세상의 쾌락도 우리가 취해보지 않습니까?
그런데 똑같이 허무한 거예요 그런데 안 믿는 자들은 절대 허무고 우리는 상대적인 허무다라고 하는 것은 상대가 있다는 거예요 우리는 허무하지만 그러나 허무의 곁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절대적으로 허무한 건 아니다 상대적으로 허무하다는 거예요
왜? 옆에 하나님이 계시니까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을 경애함 하나님을 의지함 이것이 어느 정도 캄프라치를 해준다는 거예요 언제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그리고 본질적 이 허무의 극복은 죽고 난 이후에 우리가 영원한 세계에 들어가서 영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결코 허무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우리가 정리할 수 있는 거거든요 그래서 이제 그 세 가지를 우리가 허무한 것을 얘기하고 있는데 지혜가 참 헛되다는 거예요 지혜가 헛되다 여러분 12절부터 제일 강화라고 그랬죠 인생의 허무의 예증을 얘기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 이제 인생의 허무가 어디서부터 오느냐
뭐가 인생의 허무냐 그 예를 든 건데 12절에서 18절까지가 뭐냐면요 지혜가 헛되다는 거예요 가장 지혜로운 자가 누굽니까?
본인 자신 솔로몬 아닙니까?
그런데 솔로몬이 뭐라고 그랬습니까?
여러분 13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13절 시작 마음을 닿으며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궁구하며 살핀 즉 이는 괴로운 것이니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 자 14절 시작 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 적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자 17절 보겠습니다 17절 내가 다시 지혜를 알고자 하며 미친 것과 미련한 것을 알고자의 마음을 썼으나 이것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인 줄 깨달았도다 지혜가 많으면 본대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자 이것이 이제 허무의 그 총론의
첫 번째 지혜가 헛되다 사실 오늘 이 시대만큼 지혜가 많은 시대가 어디 있겠습니까 달나라를 가고 달나라는 기본이죠 이제는 화성에 유인선을 띄워가지고 거기를 탐지해가지고 앞으로 화성에 갈 수 있는 확률도 상당히 높아졌어요 이제는 우주 여행이 대세일 가능성이 많아요
우리 시대는 아니어도 우리 후대 후대만 가더라도 그때까지 지구가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겠지만 그런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 지혜라는 게 어마어마하잖아요 그런데 이 지혜가 인간을 행복하게 해줍니까 인간을 인간답게 정말 휴머니티하게 이 세상을 정말 사랑에 넘치고
서로 돕고 서로 감싸주는 그런 휴머니티한 그런 세상이
그런 세상으로 만들어 가느냐는 거예요. 그렇지 않잖아요. 더 피곤하고 더 머리 아프고 더 괴로운 것밖에 없 잖아요. 그렇죠?
시대는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다 똑같은 거거든요.
솔로몬이 허무했던 것은 오늘도 허무한 것이고 미래도 허무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지혜가 허무하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요. 쾌락이 허무하다는 거예요.
2장 1절에서 11절까지인데요.
여기서 솔로몬이 뭐라고 했는지를 보겠습니다.
10절 11절을 보시겠습니다.
전도서 2장 10절 11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습니다.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하오던 분복이로다.
그 후에 본 적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
다 무익한 것이냐.
다 무익한 것이냐.
다 무익한 것이냐.
여러분 이렇게 무익하다라고 허무하다라고 하는 이것이 왜 이렇게 무익하고 허무하게 됐을까요?
여러분 이건 죽음입니다.
죽음.
죽음.
우리 인생에 죽음이 없다면 우리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있어요.
살만한 가치가 있어요.
그런데 죽음이라고 하는 이 깊은 수렁에 블랙홀과 같은 이 수렁에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돈 많은 사람 이나 가난한 자나 권력 있는 사람이나 아니면 빈천한 자나 성공한 자나 불행한 자나 웃는 자나 우는 자나 모두 가 다 들어갔거든요.
들어가면 끝이거든요.
이 세상에.
그래서 허무함이 생긴 거거든요.
그 외에도 모든 인간의 운명이 헛되다는 거예요.
12절에서 23절까지가 쭉 그런 말씀을 두고 있어요.
여러분 우리 인간은 다 운명을 갖고 태어났어요.
잘되는 운명 또 뭐 잘 못될 운명.
사실 우리가 운명이라고 하는 것을 쓴 단어가 하는 것은 조금 난 적합하지 않다고 보는데 뭐 학자들이 이렇게 나눴으니까 제가 말씀을 드리지만 운명이라는 것은 지극히 세상적인 단어거든요.
우리는 절대적인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는 거예요.
내가 걸어가는 것.
내가 오늘 잠드는 것.
내가 깨어나는 것.
내가 차 타고 가는 것.
내가 지금 교회 안에 앉아 있는 것.
이 모든 것들이 내 계획과 내 뜻과 내 생각대로 판단돼서 하는 거겠지만 그러나 그 모든 생각과 판단과 행동들이 역시 하나님이 주관하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운명이라고 하는 개념은 잘될 수도 있고 못될 수도 있고 그건 뭐 하나의 타고난 어떤 그 업과 같이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그러나 그것은 조금 우리 그리스도인의 용어하고는 맞지 않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고요.
어쨌든 우리 인간이 살아가면서 성공과 실패와 이 모든 것들이 서로 겹치면서 이렇게 가게 되는데 이런 것들도 다 허무하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그러면서 이러한 세 가지의 허무함에 대해서 하나님 안에서 허무의 극복이 있다라고 하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어요.
그러면 이 허무의 극복이 어떤 측면을 얘기하고 있는지를 보겠어요.
24절로 26절 보시겠습니다.
자 약간 그 뭐라 그럴까 하나님 약간 그 솔로몬은 맞배기로 이렇게 던진 그런 것 같아요.
여러분 24절 26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가운데 심령으로 낙을 누리게 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 적 하나님의 손에서 나는 것이로다 먹고 즐거워하는 일에 누가 나보다 승하랴 하나님의 그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랑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저로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에게 주게 하시나니 이것도 어때요 바람을 잡으려고 하는 것이로다 물론 결과적으로 의인을 통해서 나에게 주어지는 이 재물도 재물이겠지만 이것 또한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라는 거죠.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그렇다 할지라도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 뭔가 약간의 비전이 보이죠.
이렇게 허무함 속에서라도 하나님의 관계 안에서 우리가 허물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가능성을 주고 있는 거예요.
그게 뭐냐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가운데 심령으로 낙을 누리게 하는 것 이거는 근본적인 극복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그러나 우리가 순간순간 허물을 극복할 수 있는 그런 하나의 방편은 될 수 있는 거예요.
또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에게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신다고 그랬어요.
그래서 지혜와 지식과 희락도 그 근원이 하나님께로 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먹고 마시며 수고하고 열심히 근면하게 일하는 것 이것이 어떻게 보면 하나님으로부터는 낙이 되는 거고요.
이것이 어느 정도 인간의 허물을 극복할 수 있는 그런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는 거죠.
이런 식으로 분단을 나눠서 가게 될 텐데 12장까지 쭉 가게 되거든요.
그래서 3장은요.
하나님이 정하신 범사의 때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있어요.
천하 범사의 기한이 있다는 것이죠.
그 다음에 하나님이 주신 낙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이것이 11절에서 13절까지를 얘기하고 있거든요.
여러분 이 말씀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전도서 3장 11절에서 13절 자 우리 같이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혼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사람이 사는 동안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 내가 알았고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 또한 알았도다.
오늘 우리가 그러한 아주 단순한 그런 삶을 살고 있지만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낙의 가치예요.
여러분 보세요.
세상에 아무리 재물을 쌓고 아무리 높은 권세가 있고 아무리 모든 것을 다 누리고 가졌다 할지라도 먹고 마시며 이렇게 살아가는 일에 맛을 못 느껴 의미를 못 느껴 그러면 왜 사는 겁니까?
여러분요.
건강해서 잘 먹고 잘 이렇게 살아가는 거 여러분요.
이게 최고의 복인 줄 믿습니다.
제가 장 쪽에 문제가 있었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느끼는 것이 있어요.
사람의 행복이라는 게 다른 게 없다.
잘 먹고 잘 소화시키고 잘 뒤로 빼면 그것보다 더 성공한 사람이 없다.
제 생각인가?
정말이에요.
잘 먹고 잘 소화해내고 별 탈 없이 잘 뒤로 빼내고 건강하고 늘 즐겁고 감사하고 이렇게 선을 행하고 기쁘고 즐겁고 늘 마음이 평안하고 그런데 뭘 더 바랍니까?
그것이 천국이요?
그것이 만족이요?
그것이 평안이요?
그것이 성공이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귀한 선물을 우리에게 주셨단 말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호물을 극복할 수 있도록 이 힘으로 극복해 나가는 거예요 우리에게 이러한 힘의 원천을 줘서 가장 단순하지만 이 단순한 삶에서 오는 기쁨을 통해서 호물을 극복해 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는 거죠
그래서 그 힘으로 하나님을 경애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고 그래서 사람의 본분을 다한다면 하나님께서 더 큰 축복을 우리에게 베풀어 줄 필요가 없는 거예요 가장 큰 축복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요 결론을 읽겠습니다 전도서 12장 13절 14절
전도서 12장 13절로 14절 우리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이래 결국은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애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에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이래 결국은 다 들었어요 이 전도서를 보면 역시 설로몬은 그냥
물론 헛되게 살았지만 진짜 헛되게 살았다고 보기에는 어려울 정도로 자기의 삶을 정확하게 직시하고 있었다는 거예요 내가 왜 이렇게 허무해졌지 뭐가 나를 허무하게 맞는 거야 라고 하는 그 측면들을 아주 다양하게 분석하고 있다는 거죠 그래서 지혜가 있는 왕인 것 같아요
그리고 그것을 낱낱이 기록을 통해서 당대한 12장을 통해서 우리에게 왜 인생이 허무한지 그리고 그 허무를 어떻게 극복해야 되는지를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다는 거예요 오늘 여러분들이 전도서를 읽을 때 하나하나 의미 있게 잘 읽으시고 또 그 뜻을 잘 생각하셔서
허물을 깊이 있게 깨닫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주 철저하게 니헬리즘에 빠질 정도로 그렇게 허물을 느껴야 돼요 여러분 저는 목회자로 나온 동기가 인생이 너무 허무한 거예요 이렇게 허무한 인생을 내가 뭘 위해서 살아야지 되는가 거기에 딱 차간점이 있었어요
다 허무한 거예요 너무 허무한 거예요 공부하는 것도 허무하고요 그래서 철저하게 허무함을 느끼고 하나님을 경여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이것이 허물을 극복하는 유일한 기림을 믿으시고 열심히 조안해서 올바른 믿음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젊명의 이름으로 추원합니다
목도하겠습니다 아멘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 아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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