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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예수교회 True Jesus Church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자

이요셉 · 롬7:1-6

제작일 2026.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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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자
본문: 롬7:1-6
찬양: 91, 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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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7장은 그리스도를 통해 율법에서 해방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함을 강조한다.

본문로마서 7:1-6
  • 로마서 7장은 그리스도를 통해 율법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설명한다.
  • 율법은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한다.
  • 교회 내 율법에 대한 극단적인 관점에 대해 설명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쁨과 사랑으로 따르는 태도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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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7장의 주요 내용

  • 율법의 역할: 율법은 사람의 생존 기간 동안만 그를 주관하며, 죄를 범한 자에게 죽음을 요구하지만, 그리스도를 통해 이 요구를 이행할 수 있다.
  • 새로운 삶: 그리스도를 통해 율법에서 해방되어, 이제는 영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육신에 있을 때는 율법의 죄의 정욕에 따라 사망을 향해 열매를 맺었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한다.
  • 율법의 목적: 율법은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자'는 것이 중요하다.

교회 내 율법에 대한 극단적인 관점

  • 율법 폐기론자: 예수님께서 율법을 성취하셨으므로,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 율법주의자: 구원을 얻기 위해 율법을 모두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율법을 지키는 것은 오히려 부담이 되고 피곤하게 느껴진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태도

  • 법을 지키는 마음: 남을 해치지 않으려는 의지에서 비롯되며, 법을 많이 아는 것보다는 실천에 중점을 둔다.
  • 성경 대하는 태도: 율법을 지키려는 강박에서 벗어나, 하나님 말씀을 이해하고 따르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 기쁨과 열정: 하나님 말씀을 새롭게 받아들이는 태도는 기쁨과 열정을 동반해야 하며, 그 말씀을 사랑하고 이해하려는 마음이 중요하다.

결론

  • 우리는 이미 죽었기 때문에 율법을 어기면 죽는 것이 아니지만, 죄의 종이 되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 말씀을 기뻐하는 마음으로 사랑하며 살아가야 한다.
전사(자막) 전문▼
1절에서 6절 1절 1절에서 6절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오.
의문에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아멘 오늘 이 시간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자 라는 제목으로 로마서 7장 말씀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법칙이 있습니다.
진량 보존의 법칙, 에너지 보존의 법칙, 또 만유인력의 법칙 이런 많은 법칙이 있죠.
우리가 알든 모르든 이것이 무엇인지 알든 모르든 우리는 이 법칙 아래에서 살아갑니다.
그 누구도 이 법칙을 벗어날 수가 없지요.
뉴턴이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 법칙을 발견하기 전에는 사과가 위로 떨어졌을까요?
그렇지 않죠.
그 전에도 사과는 계속 떨어졌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알든 모르든 우리가 이것을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우리는 이 세상의 법칙을 떠나서 벗어나 서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많이 먹으면 살찌고 높은 데서 뛰어내리면 다치고 예외가 없는 거죠.
그런데 세상에 이 법칙만 있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높은 수준의 법칙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칙이 있는데요.
영적인 세계에도 법칙이 있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것 하나를 꼽으라면 무엇이 있을까요?
죄의 삭순 사망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이 법칙 아래에서 살아갑니다.
어떤 것이 그러면 죄일까요?
무엇이 죄이고 무엇이 죄가 아닌 것일까요?
그것을 구분하는 것은 성경이죠.
그래서 성경을 율법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율법이라고 그러면 되게 좀 어렵게 느껴지는데 율법을 거꾸로 읽으면 뭐가 될까요?
법률이 되겠죠.
그렇죠?
그래서 참고로 우리가 로마서를 읽으면서 생각해야 되는 게 뭐냐면 율법 그러면 자연스럽게 구약 혹은 모세의 율법 제사라든지 의식법이라든지 이것을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로마서에 있는 율법은 그런 모세의 의식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는 것입니다.
기준으로서의 하나님의 말씀을 말한다 이렇게 생각을 하셔야 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 검사 노릇을 합니다.
검사는 어떤 일을 합니까?
고발하고 지적하고 이런 일을 하지 않습니까?
이 말씀이 어떤 역할을 하냐면 하나님께 말하겠죠.
공의로 오신 하나님 저 사람이 지금 죄를 범했습니다.
그래서 법에 따라서 죽여야 합니다.
죄의 삭선 사망이기 때문에 법에 따라서 죽여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무엇이라고요?
누가 이렇게 말한다고요?
마귀가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라 율법이 이렇게 말한다는 것입니다.
율법이 그렇게 말한다는 거죠.
그래서 성경에서는 이것을 율법의 요구라고 표현을 합니다.
이 텀, 이 용어를 알아야 되겠죠.
율법의 요구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그 뜻이 뭐냐?
율법을 어긴 사람에게는 죽어라 하는 것이 율법의 요구라는 것입니다.
율법이 요구한다는 거예요.
로마서 8장 4절을 보실까요?
이 표현이 여기 나옵니다.
로마서 8장 4절 읽겠습니다.
시작!
육신을 쫓지 않고 그 영을 쫓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게 율법의 요구가 나오죠.
그래서 이 표현을 읽으면 우리가 이해를 해야 합니다.
무엇이 율법의 요구입니까?
율법은 그것을 어긴 사람에게 죽어라 하고 요구한다는 거예요.
이 법칙에서 벗어나서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내가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믿든 믿지 않든 죄의 삭순 사망이다.
라는 이 법칙을 벗어나서 나는 살아가겠다.
그럴 수가 없다는 거죠.
모든 사람은 이 법칙 아래에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로마서 7장을 읽었는데요.
이 로마서 7장은 이것과 관계된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이 율법이 우리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
그냥 죄를 안 지을 수 없으니까 적당히 지으면서 살아가야 되는 것인가?
아니면 다 지켜야 되는 것인가?
이게 생각의 조합이 맞아야 된다는 거죠.
로마서 7장은 오해도 많고 또 논쟁도 많이 되는 그런 말씀입니다.
로마서 7장에서 가장 유명한 말씀을 꼽으라면 여러분 몇 절이 생각나십니까?
종종 우리가 24절 말씀을 인용을 하죠.
아주 유명한 말씀이죠.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이 말씀이 아주 유명하죠.
보통 이렇게 이해를 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다.
정말 피곤하다는 거예요.
힘들다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로 이것을 인용하냐면 인용하냐면, 죄를 안 지으려고 해도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이 인간의 나약함에 대해서 이 말씀을 가지고 표현을 하는 거죠.
어떤 맥락에서 이렇게 이해를 하냐면, 여러분 로마서 7장을 보통 이렇게 이해를 합니다.
여러분들도 이렇게 이해하고 계신지 한번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6장에서 죄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우리가 죄에 거해서 되겠느냐? 이렇게 이야기를 했죠.
거기에 대한 답은 무엇이었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와 합하여 이미 죽은 몸이 되었다.
죄에 대해서 이미 죽었다.
어떻게 그 가운데서 더 살겠느냐?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가 되었다.
그걸 먼저 이야기했죠.
그리고 두 번째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순종하는 것의 종이 될 뿐이다.
이것을 또한 배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의의의 종으로 우리를 들이면 우리는 의의의 종이 되는 것이고 우리 자신을 죄의 종으로 들이면, 죄에 얽매 살면 우리는 죄의 종이 되는 것일 뿐이다.
이것을 우리가 배우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아무리 거듭난 자라 할지라도 죄의 종으로 살아간다면 그 사람은 결국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 죄의 종이고 결국 구원을 얻을 수 없다.
이것이 로마서 6장의 명쾌한 그런 결론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로마서 6장을 읽으면 어떤 생각을 하냐면 내가 죄의 종이 되지 말아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 거죠.
이것이 합리적인 그런 생각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생각을 가지고 살아보니까 잘 됩니까?
잘 됩니까?
잘 안 된다는 거예요.
왜 나는 항상 죄를 지으면서 살아갈까?
왜 죄를 이렇게 범하면서 살아갈까?
왜 이렇게 죄에 얽매 있을까?
그런 자기를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구나 라는 것을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렇게 표현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인간의 나약함에서 복음이 우리를 구원해 준다.
예수님께서 은혜로 우리를 구원해 주신다.
이렇게 이해를 합니다.
여러분도 이렇게 생각하십니까?
설명이 너무 길었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이 로마서 7장의 말씀을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나약함에 대한 한탄으로 이해를 하는데 그것이 정말 맞을까요?
여러분 어떻게 들으셨습니까? 이렇게 한번 생각을 해보시길 바랍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죄를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종으로서 거룩을 사모하면서 하나님을 쫓아가도 뒤돌아보면 허물이 있어요.
그것과 죄의 종로로 사는 것은 같을까요? 같을까요? 같을까요? 다를까요? 다릅니다. 그걸 구분해야 돼요.
내가 돈의 종으로 살아가고 죄의 종으로 살아가고 그렇게 얽매어서 살아가는 것과 뒤돌아보니 내가 알지 못했던 죄가 있고 허물이 있고 이것은 다르다는 거예요.
그걸 구분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이런 생각에 이렇게 7장을 읽는 것의 가장 큰 문제는 뭐냐면 말씀이 서로 모순이 된다는 거예요.
6장에서는 뭐라고 했습니까?
죄에 얽매어서 죄의 종으로 살아가서는 안 된다.
그러면 죄의 종이 될 뿐이고 그런 사람은 구원을 얻을 수 없다.
이것이 6장의 결론이거든요.
그런데 7장에서 그런데 인간은 나약하다.
그러니까 그렇게 죄를 지어도 괜찮다.
이렇게 말한다면 듣기는 좋을 수 있는데요.
말씀이 서로 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 되어버리는 거죠.
그리고 경험적으로 봤을 때 여러분 생각을 해보시길 바랍니다.
여러분께서 믿음이 충만하고 또 성명이 충만한 그런 때를 한번 생각해 보시면 그럴 때 내가 하나님 믿는 것이 기쁘고 보람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을 때 그때 항상 이렇게 오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렇게 단식하면서 신앙생활 하셨습니까?
내 죄에 대해서 그렇게 눈물을 흘리면서 신앙생활 하셨습니까?
정말 성명이 충만한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갈까요?
그래서 오늘 이 말씀을 우리가 다시 한번 읽어보고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한번 생각해 보기를 바랍니다.
우리 먼저 로마서 7장 1절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로마서 7장 1절 읽겠습니다.
시작 가장 먼저 7장을 읽으면서 먼저 봐야 하는 것이 뭐냐면 지금 이 말씀을 누구에게 하고 있느냐라는 것입니다.
6장을 읽을 때는 질문을 먼저 이해를 해야 되죠.
7장에서는 이 말씀은 누구한테 지금 하는 말이냐라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까?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한다.
누구에게 말하고 있죠?
법 아는 자들 이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죠?
대답 좀 해주세요.
빨리 넘어가게요.
누구에게 말하고 있습니까?
법 아는 자들 지금 법 아는 자들에게 내가 말한다.
라고 말하고 있잖아요.
이들이 누구이죠?
법을 아는 사람들이겠죠.
그런데 우리가 이 법, 하나님의 율법 이것을 놓고 교회를 보면 두 부류의 극단적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 율법에 하나님의 말씀에 정당한 가치를 두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치우쳐서 이쪽 저쪽에서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먼저 율법 폐기론자 쉽게 이야기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이렇게 율법에 얽매어서 이걸 다 지키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교회에 있었다는 거예요.
여러분 믿어지십니까?
예수님께서 율법을 다 성취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애써 그렇게 지킬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고린도 전서 5장을 보면 개모와 간음하고 뻔뻔히 얼굴 들고 들어온 사람이 있었죠.
그렇죠?
그런 사람들이 뻔뻔해서 그런 게 아니라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다 성취하셨다는 거예요.
그런 사람이 있었고요.
그래서 폐기하자.
우리는 그냥 사랑하면 된다.
이런 식입니다.
저 반대편에는 또 어떤 사람이 있었을까요?
율법주의자들이죠.
율법주의자들.
이것은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율법을 다 지켜야 한다.
우리가 열심히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얻지.
그렇게 지키지 않으면 구원을 얻을 수 없다.
이런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도행전 15장 1절을 보겠습니다.
사도행전 15장 1절 사도행전 15장 1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어떤 사람들이 유대부터 왔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왔다는 거죠.
뭐라고 말합니까?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이 있었죠.
갈라디아서 2장 12절을 보겠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12절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자 여기 보면 할래자들이 나오는데 이 할래자들은 누구를 말할까요?
유대인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방금 사도행전 15장 1절에서 구원을 얻으려면 모세의 율법을 다 지켜야 된다.
할래도 받고 율법을 다 지켜야 된다.
그 사람들을 할래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던지 베드로도 무서워하는 걸 볼 수 있어요.
베드로가 눈치를 보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바나바조차도 외식했다고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할래자들의 대장이 누구였죠?
2장 12절을 보시면 야고보에게서 왔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야고보.
누굽니까?
예수님의 동생이에요.
예수님의 동생.
예수님의 동생이 그러니까 야고보서를 적은 그 야고보가 이 할래자들의 대빵이었다는 거예요.
원래는 유대에서 왔다.
예루살렘에서 왔다.
이렇게 했는데 이제 야고보에서 왔다.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지금 우리 교회의 분위기랑 그때의 분위기 지금 문제와 그때의 문제가 좀 다릅니다.
그때 교회는 이 율법주의자들과 그리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굉장히 컸습니다.
굉장히 컸어요.
그래서 초대교회에서 우리가 이렇게 성경을 읽어보면 생각보다 큰 문제가 뭐냐면 고기를 먹어도 되냐 안 되냐 이 문제가 교회 안에서 생각보다 큰 문제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그 문제를 가지고 논쟁하지는 않지 않습니까?
그래서 바로 이 법 아는 자들은 교회 안에서 율법주의자를 말합니다.
율법에 매여있고 율법을 다 지켜야 천국에 갈 수 있다.
라고 말하는 자들 그런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6장, 7장은 하나님의 법을 놓고 전혀 상반된 두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거예요.
한쪽 사람들은 우리가 은혜로 구원을 얻었으니까 죄를 좀 지어도 되는 거 아니냐?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 로마서 6장의 말씀을 준 것이고 7장에서는 반대입니다.
우리가 구원업계에서는 율법을 철저히 지켜야 된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이 7장의 말씀을 주셨다라는 거죠.
자 여러분 우리와 이것이 동떨어진 이야기 같지만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엄밀하게 한번 생각해 보세요.
다 지켜야 됩니까?
다 지킬 수 없다고요?
그럼 안 지켜도 됩니까?
그것도 아니면 뭐죠?
이쪽도 아니고 저쪽도 아니면 이 말씀의 위치가 정확히 어디입니까?
그것을 지금 이야기하려고 하는 거죠.
그래서 로마서 7장 말씀은 이렇게 율법의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법을 다 지켜야 된다.
이런 사람들에게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우리 1절을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뭐라고 이야기를 하는지
1절 말씀부터 차근차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절 다시 읽겠습니다. 시작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율법이 사람의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서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법칙 아래 살아갑니다.
그것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내가 무시한다고 해서 내가 그 밖에 있는 게 아니에요.
큰 법칙이 무엇입니까? 죄의 삭순 사막이라는 것입니다.
무엇이 죄입니까? 말씀을 벗어나는 것이 죄입니다. 그렇죠?
그래서 우리는 그 법칙 아래서 살아간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다른 원칙 하나를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이 뭐냐면 율법은 사람이 살 동안에만 그를 주관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죠? 우리나라 법도 마찬가지이지 않습니까?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들은 우리 한국 사람들은 대한민국 국법의 지배를 받죠. 적용을 받습니다.
어떤 사람이 범죄를 했고 범죄를 하면 잡혀서 그에 대한 대가를 법대로 치러야죠. 그렇죠?
그런데 그 사람이 재판 과정에서 죽었어요.
그러면 어떻게 되죠?
모든 과정이 끝나버립니다.
그 사람이 어떤 죄를 지었든 모든 과정이 끝나게 됩니다.
법의 적용을 받지 않죠?
법은 살아있는 사람에게 적용을 하는 것입니다.
죽음은 법을 무효로 만들어 버리는 거죠.
이것은 이 원칙이 있다는 것입니다.
죄의 삭순 사망이에요.
율법은 죄를 정죄합니다. 그렇죠?
그런데 이 율법은 사람이 살 동안에만 적용이 된다는 것입니다.
2절, 3절 보겠습니다.
이것을 예를 들어서 적용을 하고 있습니다.
2절, 3절 읽겠습니다.
시작 남편이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임받으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났느니라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부라 이르되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케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바울사도는 이 원칙을 결혼관계를 통해서 부부관계를 통해서 설명하고 예를 들어서 말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결혼을 했다면 그것은 서로에게 속박되는 거죠.
그렇죠?
그래서 두 사람에게는 정조의 의무가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배우자가 있는데 만약에 다른 사람과 관계를 가지게 되면 그 사람을 음부라 이른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음불은 낙원 음부할 때 그 음부가 아니라 가늠한 사람 이런 뜻입니다.
그것이 곧 가늠죄가 성립한다.
그런 뜻입니다.
그렇죠?
그런데 만약에 그 남편이 죽으면 어떻게 됩니까?
그 법에서 자유케 되나니 그래서 그 이후에는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가늠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죽으면 그 법에서 풀려난다는 거죠.
그래서 고린도 전서 7장 39절에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아내가 그 남편이 살 동안에 매여 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하여 자기 뜻대로 시집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이 말씀을 통해서 법은 살아있을 동안에만 적용이 된다.
이것을 우리가 예로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7장 4절을 보겠습니다.
로마서 7장 4절 그래서 이어서 어떤 말씀이 나올까요?
읽겠습니다.
시작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르니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죽었다 이 말을 하고 있는 거잖아요.
우리가 죽었기 때문에 죄의 삭순 사망이다 라는 그런 법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언제 죽었습니까?
우리가 언제 죽었습니까?
우리가 언제 죽었습니까?
우리가 세례를 받을 때 예수 그리스도와 합하여 십자가에서 죽고 장사되었다.
다시 말해야 됩니까?
로마서 6장에 가면 이 내용이 충분히 나와 있죠.
우리가 세례를 통해서 예수님과 연합했고 같이 장사되었다.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세례를 통해서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 죽은 사람이죠.
그렇죠?
그래서 율법이 만약에 우리를 향해서 죄의 삭순 사망이다.
죽어라!
하면 우리는 뭐라고 말할까요?
죽었다! 이렇게 말하면 되죠.
그러면 됩니다.
우리는 죽었다! 이렇게 말하면 됩니다.
그렇죠?
언제 죽었냐?
그러면 언제 죽었다고 말할까요?
우리가 세례를 통해서 십자가에서 죄의 삭순을 이미 치렀다.
우리는 이미 죽었다.
이렇게 말하면 맞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 죄의 삭순 사망이다.
라는 말씀의 적용을 우리가 더 이상 받지 않는다는 거죠.
여러분 그래서 세례가 이렇게 중요한 겁니다.
세례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온전한 세례를 받는 것이 이렇게 중요한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죽은 것은 사제를 보시면 이는 있죠?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어디에 가게 된다는 것입니까?
살아나신 예수에게 가서 하나님을 위해서 열매를 맺히게 하려고 한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다만 우리가 죄의 대가를 치르지 않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이 아니라 이제는 우리가 예수님의 손이 되고 우리가 예수님의 발이 되어서 예수님의 뜻을 행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열매를 맺히고 살게 하려고 하셨다는 거예요.
그렇죠?
우리가 이것을 잊지 않고 살아가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그러면 율법은 더 이상 우리를 정죄하지 못하죠.
죽어라 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이제 율법은 필요 없는 것이 되었을까요?
율법은 이제 필요 없는 것이 되었을까요?
그렇지 않겠죠?
5절 6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5절 6절 읽겠습니다.
시작!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오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여러분 이 말씀은 우리가 설명을 듣지 않으면 제대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그런 구절입니다.
여기 5절을 보시면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읽어보면 이게 무슨 뜻이지?
이런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는 육신 안에 있잖아요.
그렇죠?
그런 뜻일까요?
사실 여기에는 번역의 문제가 있습니다.
육신에 있을 때에는 이런 말인 것 같지만 원래 번역으로는 우리가 육신에 있었을 때에는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옛날에는 육신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옛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말은 우리 지금 육체를 입고 있는 육신에 생명이 있는 이 상황을 말하는 건 아닙니다.
무엇을 말할까요? 그러면 우리가 거듭나기 전에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들으면 쉽죠.
찾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육신에 있었을 때가 언제를 말할까?
뭘 말할까?
이것은 거듭나기 전에 상황이죠.
그때는 어쨌다는 것입니까?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중의 역사에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이 말씀도 천천히 읽어보면요.
수식하는 말을 다 제외하고 우리가 거듭나기 전에 어떠했느냐 수식하는 말을 싹 제외하면 정욕이 우리로 사망의 열매를 맺게 했다.
이것이 됩니다.
이것저것 빼고 나면 핵심은 이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거듭나기 전에는
정욕, 욕심을 말합니다. 욕심이 주도하는 삶을 살았었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거예요. 이해되십니까? 그래서 지금 우리가 욕심이 주도하는 삶을 살면 안 되겠죠? 거듭나기 전에는 그랬다는 거예요. 그랬다는 것입니다.
하고 싶은 대로 살았다 이 말이죠.
그런데 여기서 욕심을 표현할 때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오늘을 보시면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 이렇게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그 전에 우리가 거듭나기 전에 우리 속에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있었다는 거예요.
여러분,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뭘까요? 때로 이 구절을 설명할 때 청개구리 본능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 율법을 들으면 그걸 어기고 싶어하는 그런 본성이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
그런데 좀 다르게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 세상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 사람들의 마음에 어떤 소원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그렇죠? 그러면 우리가 가서 당신의 마음에 있는 그 소원은 죄의 정욕입니까?
그러면 뭐라고 대답할까요?
아니요. 이거는 내 꿈이고 내 소원입니다. 이렇게 말할 거 아니에요. 그렇죠?
죄의 정욕이라고 누가 말하겠습니까? 그렇게 말을 안 하죠.
어떤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이 소원. 가지고 싶고 되고 싶고 먹고 싶고 하고 싶고 이 소원.
이것이 꿈일까요? 소원일까요? 아니면 죄의 정욕일까요?
그건 누가 정할까요? 율법이 정한다는 것입니다.
율법이 정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율법으로 보자면 죄의 정욕. 율법을 통해서 죄의 정욕으로 정제된 이런 것을 말한 것입니다.
그래서 네가 지금 네 마음 속에 그것이 꿈이고 소원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건 죄의 정욕이야.
라고 뭐가 말합니까?
율법이 말한다는 거예요.
율법이 그렇게 정의한다는 것입니다.
그 정욕에 얽매어서 살아갈 뿐이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거듭나기 전에는 이렇게 죄의 얽매어서 욕심이 얽매어서 자기 욕심이 시키는 대로 살아갔다라는 거죠.
그렇죠?
그런데 이제 6절을 보시면 이제는 우리가 그 얽매였던 것에서 벗어났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대하여 죽었으므로 우리가 다시 죽었다고 이야기하고 있죠.
이미 우리는 죽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율법에서 벗어났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이제 율법 안 지켜도 된다는 것입니까?
하나님 말씀 안 지켜도 된다는 것입니까?
아니에요. 율법의 기능 중에 하나가 사람을 정죄하는 기능이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이미 죽었기 때문에 율법이 그런 기능이 이제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이 율법이 모든 사람에게 가서 그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고 판단하고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은 꿈이 아니라 소원이 아니라 그건 죄의 정욕에 불과하다.
다 판단하는데 정죄하는데 우리에게는 그렇게 못한다는 거예요.
우리는 이미 죽었기 때문에.
그래서 율법에서 벗어났다.
그래서 율법에서 벗어났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이 쓸모가 없다. 그런 의미는 아니에요.
그래서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의문의 묵은 것으로 섬기지 말고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자.
무엇을 섬기자는 걸까요?
말씀을 섬기자는 것입니다.
율법을 섬기자는 거예요.
설명이 필요하죠.
의문의 묵은 것.
아무리 읽어도 이해가 안 되는 표현입니다.
의문의 묵은 것.
묵은지도 아니고.
도대체 무엇입니까?
이게 뭐냐면 무엇을 말하냐면 여러분 율법주의자들은 율법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겠습니까?
그죠?
이걸 지켜야 천국에 간다고 생각하니까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겠습니까?
그런데 그 사람들이 이걸 사랑할까요?
거기 얽매여 있겠죠.
그죠?
제가 이제 비유를 해보자면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나라 법을 지킬 때 어떤 마음으로 지키십니까?
법 많이 알고 싶으세요?
법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사이버 학교라도 좀 다니고 싶으십니까?
그러십니까?
저도 법을 지키면서 살아가지 않습니까?
제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어떤 마음이 있냐면 법을 많이 알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어요 저는 그런데 남에게 피해를 주는 건 그래도 하지 말아야 되겠다 그런 마음이 있고 사실 법을 지키는 마음이 뭐냐면 거기 한 번 엮이면 굉장히 피곤하다 굉장히 피곤하다는 거예요
그걸 알기 때문에 피하는 거죠 조심하는 거죠 제가 생각하기에 여러분도 좀 비슷할 것 같아요 제가 어느 날 운전을 하는데 어떤 아저씨가 옆에 세워진 오토바이를 탁 건드려가지고 오토바이가 확 넘어갔어요 그 순간 그 운전하는 아저씨 얼굴에서 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제가 보고 있었거든요 피곤하네 이게 어떤 일이 생길까 그 일로 인해서 많은 일들이 또 벌어질 수 있지 않습니까 성경을 대할 때 그렇게 대하는 거예요 별로 알고 싶지 않아요 별로 알고 싶지 않아요 그런데 지키면 이걸 못 지키면 마음이 찔리고 괴롭다는 것입니다
그게 뭘까요 그게 뭘까요 율법의 의문에 묵은 것입니다 율법의 얽매인 낡은 정신을 말해요 이해되십니까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제가 계속 오늘 생각을 해봤는데요 제가 여러분에게 한 가지 이런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제가 성경 공부 때 이런 질문을 해본 적이 있는데요
만약에 여러분이 이제 다시 하나님께서 리셋을 해가지고 여러분이 이제 아담이 되어서 에덴 동산으로 갔어요 여러분의 하와 함께 에덴 동산에 갔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기회를 얻는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는 선악과 나무 주변에다가 철조망을 치겠습니다
철조망을 칠 뿐만이 아니라 거기다가 백만 볼트 전류를 흘려보내겠습니다 선악과를 따먹고 얼마나 비참한 일들이 많이 생겼습니까 그래서 그런 일이 재발되는 것보다는 가다가 죽는 게 나을 것 같아요 거기다가 도움을 씌워가지고 1급 수용사 같이 철저하게 경비를 세우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얼신도 못하게 그렇게 할 것 같아요 이게 뭘까요?
이게 낡은 정신이라는 거예요 이게 낡은 정신입니다 우리가 선악과를 보면서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 나무를 보면서 하나님께서 이건 먹지 말라고 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걸 보면서 도리어 반대를 생각할 수 있어요
우리 하나님께서 이 나무를 제외하고 모든 것을 다 주셨다 그래서 나는 피조물에 불과하다 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죠?
그래서 우리가 이 하나님 말씀을 대할 때 이 말씀은 안 지키면 피곤한 것 그래서 더 알기 싫고 알면 머리만 무겁고 마음만 무겁고 그래서 이제 별로 알고 싶지 않아요 그렇게 성경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의문에 묵은 것입니다 그러면 영의 새로운 것은 무엇을 말할까요?
이 말씀은 더 이상 우리를 정지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좀 어겼다고 해서 죽어라!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러나 이 말씀이 무엇을 밝혀야 할까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나가야 되는 방향이 무엇인지 이것을 가르쳐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것을 알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에 욕심에 얽매어서 살아가기보다는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고 싶기 때문에 이것을 아는 것이 더 기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는 거죠. 하나님 말씀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는 거예요.
말씀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내 신앙을 점검해 볼 때 이것으로 점검해 볼 수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 말씀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더 깨닫기를 원하는가? 알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몰라도 상관없고 이쯤이면 됐다.
또 들으면 피곤하고 마음이 무겁기만 한가? 이것이 중요한 지표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 어디쯤에 계십니까? 말씀의 결론을 맺겠습니다.
우리는 이미 죽었기 때문에 우리가 말씀을 좀 어긴다고 해서 죽으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죄의 종이 되어서 살아가도 되느냐?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죠?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그 뜻으로 알고 우리가 더 사랑하면 그것이 정답이라는 거죠.
하나님 말씀을 영의 새로운 마음으로 섬기며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AI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 정리한 내용입니다. 정확한 말씀은 영상 원문을 확인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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