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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예수교회 True Jesus Church

간음하지 말찌니라 /

신영길 · 출20:14

제작일 2026.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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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음과 음행은 성경에서 심각한 죄로 간주되며, 교회와 가정에서 교육과 예방이 중요하다.

본문출애굽기 20:14레위기 20:14마태복음 5:27-28마가복음 7:21-23잠언 6:25예레미야 3민수기 25
  • 간음과 음행은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행위로, 심각한 영적 후과를 초래한다.
  • 성경은 이를 죄로 규정하고, 교회 내 징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 현대 사회의 기기 사용은 청소년에게 음란한 영향을 주며, 교육과 예방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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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음과 음행의 정의와 성경적 해석

  • 간음: 결혼 중인 부부가 다른 이성과 부적절한 성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하며, 십계명을 어긴 행위로 돌로 쳐 죽이는 형벌이 규정되어 있다.
  • 음행: 간음보다 더 넓은 개념으로, 유사한 성행위를 포함하며, 불사르는 형벌이 주어진다.
  • 성경 근거: 출애굽기 20장 14절, 레위기 20장 14절, 마태복음 5장 27-28절, 마가복음 7장 21-23절 등에서 간음과 음행에 대한 죄와 형벌이 언급된다.

간음과 음행의 영적 영향

  • 간음과 음행은 하나님의 진노를 나타내며, 공동체에 악한 영향을 미친다.
  • 이는 하나님의 의도에 어긋나는 행위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할 수 있다.
  • 예레미야 3장과 민수기 25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음행과 우상 숭배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했다는 언급이 있다.
  • 음행은 하나님의 무지에서 비롯되며, 전염병처럼 퍼질 수 있다.

현대 사회와 교회의 대응

  • 현대 사회에서 스마트폰 등 기기의 사용은 청소년에게 음란한 문화에 노출되는 문제가 있다.
  • 교회는 성적인 타락을 막고, 교육과 예방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 하나님과의 관계는 부부 관계와 같으며, 하나님을 버리면 영적 가늠이 발생한다.
  • 교회 내 간음죄에 대한 징계는 비공개 처리가 많지만, 하나님께는 숨기지 못한다고 한다.

마음의 정욕과 예방

  • 욕구 자체는 죄가 아니지만, 그 욕구를 채우기 위해 다른 사람을 의도적으로 보는 행동은 문제가 된다.
  • 마음에서 악한 생각이 생기면, 그것이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마음을 지켜야 한다.
  • 잠언 6장 25절에서 '눈꺼풀을 조심하라'는 것은 눈이 바람직하지 않은 것을 붙잡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의미이다.
  • '가늠'은 육체적 타락과 영적 타락 모두를 비유적으로 표현하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하는 행위이다.
전사(자막) 전문▼
할렐루야!
먼저 한 주간 잘 보내셨습니까?
네, 너무 더워서 지치셨군요.
대답할 기운도 없어요.
더워도 더워도 너무 더웠습니다.
제가 정말 태어나서 이렇게 더운 동네는 처음 살아봐요.
서울이 이렇게 더운 줄 몰랐습니다.
서울의 뜨거운 맛을 보고 있는데요.
조금씩 누그러지지 않을까 기대를 해보게 됩니다.
비록 날씨는 뜨겁지만 우리 이렇게 모여서 주의 전에 함께 예배 드릴 때 하느님께서 뜨거운 사랑으로 우리를 또 축복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우리 옆에 계신 분들과 함께 마주 보시고 인사하겠습니다.
할렐루야 반갑습니다.
반대쪽 보시고 할렐루야 잘 오셨습니다.
특별히 오늘 오후부터 아동부 여름 성경학교가 있습니다.
이 시간도 하느님께서 뜨거운 성령을 부어주셔서 우리 성령 받지 못한 아이들 또 성령을 받고 또 말씀으로 더욱 성장할 수 있는 우리 아동부 될 수 있도록 잊지 말고 기도 부탁드리겠습니다.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하느님 말씀 증거하겠습니다.
지금 함께 나누실 말씀 출애굽기 20장 14절입니다.
출애굽기 20장 14절 날씨 탓이죠? 물도 따끈따끈합니다.
출애굽기 20장 14절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간음하지 말지니라 아멘 계속해서 10개명 오늘은 7번째 개명에 대해서 함께 배우고 은혜 나누겠습니다.
간음이라는 것은 결혼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부부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이기도 합니다.
한쪽이 결혼관계 유지 중에 다른 이성과 부적절한 성관계를 맺는 것을 말합니다.
7개명은 바로 이 간음을 금지하는 것입니다.
죄라는 거죠.
우리 교회도 이 간음을 죄로 규정합니다.
그래서 제명 처리가 가능합니다.
이것이 왜 죄일까요?
결혼은 두 사람이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대부분 19장 6절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짝지어준 것을 사람이 나누어서는 안 된다라는 거죠.
이 간음의 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또한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세계연합총회 진리연구회라는 곳에서 우리의 진리를 계속 연구를 합니다.
67년도부터의 자료가 계속 쌓여 있는데요.
그 자료들을 보게 되면 초기에는 대부분 어떤 것을 다루냐면 성례에 관한 것, 세례, 세종례, 성찬 이런 성례에 관한 진리를 토론을 합니다.
그런데요.
80년대 후반부터 음행의 논제가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 교회도 이 세상에 타락한 성문화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라는 거죠.
한국에서 조사한 결과입니다.
기독교, 교회를 다닌다고 하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인데요.
결혼 전에, 이건 기혼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거겠죠.
결혼 전에 성경험이 있느냐?
교회를 다니는 청년들에게 물었을 때 결혼 전에 성경험이 있느냐?
있다!
라고 대답한 비율이 얼마나 될까요?
50%가 넘었습니다.
그것이 10년 전 자료예요.
그리고 2, 3년 전의 자료를 보게 되면 혼전순결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라고 미혼 청년들에게 물었을 때 44%만 찬성했습니다.
반대가 25%, 잘 모르겠다가 31%.
그러니까 이걸 왜 지켜야 하지?
이것을 잘 모르는 청년들이 반 이상이라는 거죠.
그러니까 절반 이상의 교회를 다닌다고 하는 교회를 다닌다고 하는 그 사람들 중에서도 반 이상은 이 가늠이 죄라는 것을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우리 10개명 안에 들어있습니다.
살인, 거짓말, 도적질과 함께 들어있는 개명이에요.
그런데 이 가늠이라는 것이 가늠죄에 대해서는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거죠.
그렇다면 이 사람들이 가늠에 대해서 이것이 죄라는 그런 의식이 전혀 없을까요?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만 다른 죄처럼 그렇게 무겁게 여기지는 않는다라는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런 인식이 우리 교회 안에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도 10년 안쪽의 일이었던 것 같은데요.
호주의 진리연구위원회의 결정에 따르면 그 조문 중에 뭐가 있냐면 유사 성행위도 음행이다.
이런 결정문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일반적인 성행위 말고 유사한 성행위도 음행이다 라고 결정을 했다는 거예요.
왜 이런 결정을 내렸을까요?
청년들이 성행위도 음행이 아니면 돼 라는 생각으로 그 직전까지 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요.
우리는 간음이 무엇인지 또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강하게 금하시는지 바로 알아야겠습니다.
우리가 간음이라는 용어의 정의를 모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분명히 죄라고 하시는 것도 알고 있죠.
그런데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다른 죄들에 비해서는 조금 더 가볍게 여기는 것 같습니다.
이거는 실질적으로 사람을 죽인다든지 때린다든지 훔친다든지 실질적인 피해를 입히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물론 다 그런 건 아니겠습니다만 그러나 성경 말씀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간음과 유사한 용어들이 굉장히 많아요.
행음, 음행, 음란, 음녀 이런 용어들 보지 않았습니까?
이 간음과 음행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간음은요. 부부 사이에만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음행은 부부 사이가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성적인 타락.
그러니까 음행이 간음보다 더 넓은 개념이겠죠.
하나님께서는 모든 죄를 싫어하시지만 특히 더 음행을 싫어하십니다.
십계명을 어기면 그 어긴 자에 대한 형벌이 어떻게 돼요?
안식이를 어겼다든지 살인했다든지 또 우상을 숭배했다든지 신접한 자라든지 어떤 형벌을 내리게 돼 있습니까?
돌로 치게 돼 있습니다.
돌로 쳐서 죽이라는 거예요.
돌로 쳐 죽인다는 것은 여러분 공개 처형을 말합니다.
몰래 데려가서 돌로 치는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죽을 때까지 돌을 던지는 것입니다.
이 처벌 규정이요.
유대인들 후대로 가게 되면 조금 더 단계를 나누어서 구체적으로 바뀌는데요.
먼저는 사람을요.
한 2미터 정도 높이 되는 곳에서 떨어뜨립니다.
그럼 어떻게 될까요?
2미터 정도면 뭐 여기 천장에서 뛰 천장이 좀 더 높구나 떨어지는 거예요.
그럼 어떻게 될까요?
뭐 어디 좀 부러지거나 좀 놀라는 정도겠죠.
그걸로 사람이
죽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내가 뛰는 게 아니라 미는 거예요.
그럼 잠깐 정신을 잃을 수 있겠죠? 그럼 그때의 큰 돌을 가져다가 갈비뼈를 내려칩니다.
그래서 어떻게 만드는 거예요?
일단 숨을 못 쉬게 하는 거예요.
물론 그 자리에서 갈비뼈를 팍 친다고 사람이 죽을 수도 있겠죠.
그런데 사람이 쉽게 죽지 않는답니다.
그리고 나서 주변 사람들이 다 작은 돌을 던져서 죽일 때까지 돌로 친다고 합니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요?
그 사람에게 범죄를 한 사람에게 그런 고통을 주는 것이고 또한 수치도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아 저렇게 심한 벌을 죄를 지으면 저런 심한 벌을 받는구나 경각심을 갖게 하는 거죠.
그러니까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 죄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게 해준다는 거예요.
그런데요 여러분 이 음행에 대해서는요 어떨까요?
레위기 20장 보겠습니다.
레위기 20장 14절입니다.
레위기 20장 14절 제가 읽겠습니다.
21장 9절 아무 제사장의 딸이든지 행음하여 스스로 더럽히면 그 아비를 욕되게 하미니 그를 불사를 지니라.
이 몇 가지 음행에 대해서는요 어떻게 하라고요?
불사를 해요.
이것이 살아있는 사람을 불로 태우는 그래서 화형일 수도 있고요.
아니면 일단 돌로 쳐 죽인 다음에 죽은 시체를 불로 태우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무엇이 됐든 이 음행에 대해서는 이런 불사름의 처벌 규정을 따로 두었다는 것입니다.
이 불로 사른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불로 사르면 그 시체를 유가족들이 장사를 지낼 수가 없어요.
망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갖출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요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 자리에서 갑자기 불로 태워 죽이는 경우가 있죠.
대표적으로 나답과 아비우가 그렇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즉결 심판이죠.
그만큼 불로 태운다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의 표시입니다.
굉장히 엄한 죄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불이라는 것은 더러운 것을 없애는 역할을 하지 않습니까?
이스라엘 공동체 내에 그런 죄를 없애야 한다 하는 그런 의미도 있는 것입니다.
이런 가늠은요 사람들이 뭐가 가늠이지?
이걸 모르거나 헷갈려서 짓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우상숭배라는 것은 조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뭐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느냐 하는 거냐면 여우와의 다른 것을 내게 있게 말지니라 라고 하셨잖아요.
딱 이것만 우상이야 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말씀드렸던 것처럼 우상은 뭐예요?
내가 마음속에서 내 삶속에서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뭐가 우상이지?
라는 것에 대해서는 내가 생각하고 묵상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거든요.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늠은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주 명확하게 구별이 되는 거죠.
그래서 이 가늠은 어떤 종류이든 또 그 대상이 누구이든 간에 다 거기에 동참한 자는 더럽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매우 싫어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땅한 이 중죄에 대해서 우리가 자녀들에게 교육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자녀 교육이 갈수록 어렵죠?
우리 집에 있는 현관문이나 방범창은 갈수록 튼튼해집니다.
갈수록 정교해집니다.
그런데요.
우리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보호장치들은요.
갈수록 허술해집니다.
왜냐하면 공격이 공격이 더 정밀하고 정밀하고 정밀하고 교묘하고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죠.
우리 아이들 우리 아동부 또 학생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태어날 때부터 아주 스마트폰과 친합니다.
친 스마트폰 세대예요.
너무나 잘 아시겠지만 이것이 지금 우리 세대의 아이들을 얼마나 그 음란한 문화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자주 노출시키는지 모릅니다.
또 세상 문화는 음란할 뿐만 아니라 반 기독교적이죠.
우리 아이들이 아무렇지 않게 보는 어떤 영상 게임 또 웹툰
또 SNS를 통해서 주고받게 되는 이미지들 말들 이런 것에 얼마나 더러운 것들이 함께 들어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이러한 세상의 문화를 통해 혹은 스마트폰이라는 기기를 통해 사단은 그 아이들을 가늠죄를 충분히 범할 수 있게끔 유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단이 들어올 수 있는 문이라는 거예요.
아무 그 방범장치가 없는 이것은요 지금만의 아주 특수한 상황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음행과 음란은요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국에서 가나한 땅으로 들어가기 전부터 문화가 되어버렸습니다.
내유기 18장 보겠습니다.
내유기 18장 그리고 20장을 보시게 되면 이런 성적인 타락 부도덕에 대해서 하지 말아라 를 반복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18장 3절 4절 함께 읽겠습니다.
내유기 18장 3절 4절 시작 너희는 너희는 그 거하던 애국 땅의 풍속을 쫓지 말며 내가 너희를 인도할 가나한 땅의 풍속과 규래도 행하지 말고 너희는 나의 법도를 조치며 나의 규래를 지켜 그대로 행하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하니라 그 다음 24절에서
27절 18장 24절에서 27절 제가 읽겠습니다.
너희는 이 모든 일로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내가 너희의 앞에서 쫓아내는 족속들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더러워졌고 그 땅도 더러워졌으므로 내가 그 악을 인하여 벌하고 그 땅도 스스로 그 거민을 토하여 내느니라 그러므로 너희 곧 너희의 동족이나 혹시 너희 중에
우고하는 타국인이나 나의 규래와 법도를 지키고 이런 가증한 일에 하나라도 행하지 말라 너희의 전에 있던 그 땅 거민이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였고 그 땅도 더러워졌느니라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있었던 애국도 그렇고 앞으로 들어가야 할 가난한 땅도
역시 이런 성적인 타락이 이미 이미 문화가 되어 있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땅이 이미 더러워졌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18장의 내용들을 쭉 보시게 되면 이 옛날에도 이렇게 타락했었다고 할 만한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근친상가는 물론이거니요 그 다음에
동성애 그리고 수간 짐승과 그런 것을 하는 수간까지도 기록이 되어 있죠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뭐예요 그러니까 3절 말씀에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너희는 나의 법도를 조치라는 거예요 그들의 문화 풍습을 조치 말고 나의 법도를 조치라 우리가 사느냐 죽느냐
라는 문제는 결국 무엇을 조치며 사느냐가 결정합니다.
이 세상은요. 분명히 갈수록 성적으로 타락할 것이고 이런 성적인 문제에 대해서 무감각해질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사단이 성적으로 계속 미혹하기 때문입니다.
왜 사단은 이 방법을 쓸까요?
효과가 너무 좋거든요.
그리고 사단은 반드시 성적인 것을 이용해서 성도들을 타락시킬 것입니다.
타락시킬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결혼을 깨는데 이것만큼 좋은 게 없거든요.
순결한 결혼을 깨는데 이것만한 게 없어요.
결혼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거잖아요.
에덴 동산에서 가장 사람들의 이상적인 상태가 언제였어요?
결혼했을 때였어요.
남자가 여자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뤘을 때 둘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을 때 이 때가 가장 평화롭고 이상적인 에덴 동산의 모습이었다는 것입니다.
사단이 이것을 매우 싫어한다는 거예요.
사단은 그래서 앞으로도 우리 안에 온전한 부부관계를 깨고 청년들의 바른 이런 성인식을 문란하게 만들 것입니다.
이 세상 문화를 이용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게시록을 보십시오.
게시록을 보면 맨 마지막에 우상 숭배자들하고 세트로 불과 유황못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누구냐면 간음하는 자입니다.
행음하는 자입니다.
앞으로 이런 자들이 반드시 있을 거라는 것입니다.
계속될 거라는 것입니다.
간음, 음행은 분명한 범죄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요.
이게 죄라는 것이 분명한데 왜 사람들은 이 간음죄에 자꾸만 빠지는 것일까요?
우리 교회의 정관을 보면 이것은 분명히 징계의 대상입니다.
제명 처리가 가능하다고 말씀드렸죠?
그런데 여러분 지금까지 신앙생활 하시면서 와 어떤 교회에 누가 이 문제로 제명 처리됐대 이거 들어본 적 있으십니까?
한국에 없어서 그럴까요?
우리가 잘 듣지 못하는 것이지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냐면 이 죄에 대한 처리 방침이 그렇습니다.
이 처리 방침이 세 가지인데요.
첫 번째는 처리하고 공개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처리하되 비공개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처리하지 않고 신도 명부에만 기록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방침이 있어요.
여기서 처리라는 것은 제명을 말합니다.
공개라는 것은 그 교회에 공문을 보내고 게시판에 게시하는 거예요.
비공개라는 것은 뭐냐면 공문은 보내는데 게시는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처리를 안 하는 것이 아니라 가늠의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라 많은 경우 비공개 처리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요.
더 우려스러운 것이 뭐냐면 징계 처리까지 갈 수조차 없는 문제 즉 드러나지 않은 문제가 많다는 거죠.
진행되고 있지만 진행되고 있지만 징계 처리할 수 없는 그러한 문제들 사람들에게는 숨길 수 있지만 하나님께는 숨길 수 없죠.
그리고 아까 읽었던 말씀처럼 땅이 더러워집니다.
땅이 더러워집니다.
무슨 뜻이에요?
살이 나면 피살당한 사람의 피가 땅으로 흘러가죠.
지난 시간에 봤습니다.
그래서 땅이 그 피를 받아서 하나님께 호소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가늠죄를 저지르면 땅이 더러워진대요.
하나님이 기억하지 않으셔도 땅이 기억합니다.
반드시 그 죄에 대해서 대가를 치른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가늠죄에 빠진 이유가 뭘까요?
마태복음 5장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5장 27절 28절입니다.
마태복음 5장 27, 28절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자, 이 말씀대로라면 가늠하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제가 질문을 하기가 좀 그렇죠?
그런데요.
원문을 보시게 되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음욕을 위해서 여자를 보는 자마다 의미가 다르죠?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은 것과 내 음욕을 위해서 여자를 보는 것 이건 다르죠?
그러니까 자기의 어떤 정욕을 채우기 위해서 다른 여자를 내가 의도를 가지고 본다 이것이 마음에 가늠하는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뭐가 문제일까요?
음욕이 문제겠죠?
이 음욕이 문제잖아요.
음욕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여기 보시는 음욕이라는 단어에 사실은 음이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그냥 욕, 그러니까 바라다, 뭔가 갈망하다 이런 뜻이에요.
음이라는 뜻의 단어는 없어요.
그런데 이것이 그러니까 어떤 욕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욕구가 잘못입니까?
욕구가 죄입니까?
그러지 않죠.
그런데 내 욕구를 위해서 뭔가 하는 것 그런데 그것이 옳지 못한 것 이게 죄라는 것이죠.
욕구는 문제가 죄가 아니에요.
그런데 내가 그걸 위해서 다른 여자를 보는 것 이게 문제라는 거죠.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될까요?
마가복음 보겠습니다.
마가복음 7장 21절입니다.
마가복음 7장 21절에서 23절 함께 읽겠습니다.
마가복음 7장 21절에서 23절 시작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흙이는 눈과 회왕과 규만과 규만과 광팬이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우리가 음란과 음란과 음란과 음란과 음란을 저지르기 되는 데에는 단계가 있습니다.
방금 읽으신 말씀 보시게 되면 음란 21절 마지막에 이 음란이 어디서 나와요?
어디서 나온대요?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이에요.
그런데 그 악한 생각이 뭐냐?
그 중에 하나가 음란이라는 거잖아요.
그죠?
그러니까 음란은 마음에서 출발합니다.
그런데 중간에 악한 생각이 있어요.
그래서 음란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런 마음이 있고 또 생각이 있다는 거예요.
그죠?
여기서 생각이라는 단어는 계획, 토론, 논의 이런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 생각은 이성적인 거잖아요.
뭔가를 계획하고 토론한다는 것은 이성적인 거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람 마음에는 별개 별개 다 들어있죠.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습니다.
사람 마음이 문제일까요?
그건 아니에요.
그런데요.
이 마음에 있던 것이 생각의 단계로 가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마음에서는 별의별 것이 다 일어날 수 있어요.
그런데 생각의 단계로 간다는 것은 뭐예요?
어? 그거 돼.
또는 야, 그거 안 돼.
라는 그 장치가, 그 작동이 생각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는 어떤 욕구 속에 어떤 욕구가 많죠?
그런데 그 욕구가 생각의 단계로 넘어와서 어떻게 하면 이걸 할 수 있지?
그런 계획을 세웁니다.
그런데 그것이 악한 것이면 그것들 중에 하나가 음란이 된다는 거죠.
그래서 내 안에 어떤 욕구가 있는 것과 내가 그 욕구를 위해서 다른 여자를 보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요.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요동케 해서는 안 됩니다.
언제 마음이 요동하냐면 이것이 생각의 단계로 가면 요동하죠.
이걸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우리 마음 가운데 나쁜 것이 왜 없겠습니까?
그런데 중요한 것은 뭐예요?
그 마음에 있던 것이 생각의 단계로 가서 구체화되지 않도록, 계획을 세우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냥 그걸 내버려 두면 그것이 가늠까지 가게 된다는 거죠.
그래서 더욱 지킬 만한 것보다 무엇을 지켜야 돼요?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그 마음에서 빠져나가서 생각의 단계로 가지 않도록 지켜야 한다는 거예요.
물론 현실에서 내 어떤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어떤 여자를 봤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을 가늠죄라고 이렇게 처리할 수는 없죠.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거예요.
그리고 내가 그 마음을 그대로 계속 내버려 두면 결국은 그런 행동까지 가게 된다는 거죠.
모든 운동에는 에너지라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그 에너지는 또 관성이 생겨요.
내가 멈춘다고 그 자리에서 탁 멈춰지지 않습니다.
계속 내버려 두면 나중에는 내가 내 의지로 멈추기가 어려워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요.
우리가 마음을 지키기 위한 실천적인 방법이 있습니다.
자먼 보겠습니다.
잠언 6장 25절입니다.
잠언 6장 25절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내 마음에 그 아름다운 색을 탐하지 말며 그 눈꺼풀에 홀리지 말라.
뭐가 중요하다는 거예요?
우리의 경험으로 알잖아요.
이미 마음에는 별게 다 있어요.
그러니까 뭘 조심하라는 거예요?
지금 이 말씀이?
눈꺼풀을 조심하라는 거죠.
내 눈꺼풀에 홀리지 말라라는 말씀이 뭐냐면 홀리다라는 저 단어는 잡다라는 거예요.
내가 취한다.
그러니까 내 눈꺼풀이, 내 눈이 뭔가를 붙잡지 않도록 해라.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기회가 있으면 그럴 때마다 우리 아동학생, 청년들에게 강조하는 것이 보는 것입니다.
보는 걸 조심하라는 거예요.
우리 아이들이, 우리 학생들이 뭘 자주 볼까요?
그렇죠.
그런데요.
사람은 내가 본다고 착각합니다.
계속 보다 보면 사실은 사실은 내가 보는 게 아니죠.
나중에는 내가 보는 게 아니라 내 눈이 그거를 붙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혼내 혼내보셔서 아실 거예요.
무슨 일로 막 앉혀놓고 혼내다 보면 그 아이의 눈이 다른 걸 붙들고 있다.
다른 걸 붙들고 있다.
다른 걸 붙들고 있다니까요.
다른 걸 붙들고 있다니까요.
사람 눈이 눈이 사람 눈이 그럴 수 있습니다.
눈이 그럴 수 있습니다.
자녀분이 어린 걸 붙들고 있다.
그 아이의 눈이 붙들고 있다.
그 아이의 눈이 붙들고 있다.
그 아이의 눈이 붙들고 있다.
그 아이의 눈이 붙들고 있다.
그 아이의 눈이 붙들고 있다.
보지 말아야 할 것.
그래야 그 아이의 눈이 잘못된 것을 붙들며 살지 않을 수 있죠.
우리 아이들의 영혼을 살리는 길입니다.
마지막으로요.
성경에서 우상숭배도 가늠으로 표현하는 것 보셨습니까?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예레미야 3장 보겠습니다.
예레미야 3장 8절 9절입니다.
예레미야 3장 8절 9절 6절부터 보시면 더욱더 분명한데요.
8절 9절만 제가 읽겠습니다.
예레미야 3장 8절 9절 내게 배역한 이스라엘이 가늠을 행하였으므로 내가 그를 내어 쫓고 이온섭까지 주었으되 그 배역한 자매 유다가 두려워 아니하고 자기도 가서 행음함을 내가 보았노라 그러니까 지금 북이스라엘은 가늠을 하고 남유다는 행음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가 돌과 나무로 더불어 행음함을 가볍게 여기고 행음하여 이 땅을 더럽혔거늘 돌과 나무로 더불어 사람이 행음할 수는 없죠.
이것은 우상숭배를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혼서를 주고 내쫓아버렸다는 거예요.
그럼 이게 무슨 뜻이에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슨 관계?
부부관계라는 거예요.
이 부부관계가 우상숭배 때문에 깨져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언제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결혼했을까요?
물론 비유적인 표현입니다.
언제?
예레미야 2장 2절 보겠습니다.
예레미야 2장 2절 제가 읽겠습니다.
가서 예루살렘 거민의 귀에 외쳐 말할지니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 소년때의 우이와 내 결혼때의 사랑 곧 찌뿌리지 못하는 땅 광야에서 어떻게 나를 쫓았음을 내가 너를 위하여 기억하노라 결혼때의 사랑 언제요?
어디에서요?
어디에서 결혼때의 사랑을 나눴대요?
광야에서 광야에서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 사이에 신혼생활은 어디에서?
광야에서 결혼은 언제 했을까요?
출애굽해서 신해산에서 언약했지 않습니까?
너희들이 내 말을 들어라?
알겠습니다.
신해산에서 결혼을 했죠.
그리고 광야에서 신혼을 보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때를 너무 아름답게 기억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은 한 남자가
한 여자와 결혼하듯 한 하나님만 섬기겠다고 신의 산에서 약속했다는 거죠.
그런데 이 백성들이 다른 신을 섬겼어요.
그러니까 이것은 가늠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인 순결을 말씀하고 계신 거죠.
그런데 성경을 보시게 되면 지금 방금 읽으신 부분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 우상 숭배는 마치 가늠이나 음행과 같다.
이렇게 비유적으로 표현하신 거잖아요.
그런데 성경에 보면 분명히 우상 숭배와 음행이 다른 것인데 같이 나오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 민수기 25장입니다.
민수기 25장 1절에서 3절입니다.
민수기 25장 1절에서 3절 함께 읽겠습니다.
민수기 25장 1절에서 3절 시작 이스라엘이 시티메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합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그 여자들이 그 신들에게 제사할 때 백성을 청함해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함으로 이스라엘이 바알부올에게 부속된지라.
여하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니라.
이스라엘이 시티메에 머물러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스라엘이 바알부올에게는 반박이라는 왕이 발람이라는 선지자를 불러다가 저 이스라엘 백성 저주를 좀 해줘.
그런데 실패하죠.
그런데 발람이 뒤에 있는 이야기까지 다 읽어보시면 압니다.
발람이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25장 1절과 같은 계획을 세웁니다.
즉 모합 여자들을 데려다가 먼저 바로 그들의 신을 섬기게 한 것이 아니라 제일 첫 번째로 한 게 뭐예요?
모합 여자들을 데려다가 이스라엘 남자들과 음행하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의 모합의 신을 섬기게 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발람의 괴개가 뭐예요?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을 성적으로 타락시킨 다음에 그들을 영적으로도 타락시켰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성적인 것을 그들의 신앙을 버리는데 미끼로 사용했다는 거예요.
이 전략이 어떻게 성공했을까요?
하나님 백성에게 이 육적인 가늠은요.
하나님을 버리게 하는 미끼가 됩니다.
즉 나의 정욕을 위해서 가늠하지 말라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게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자문을 보시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자문 6장 32절입니다.
자문 6장 32절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부녀와 가늠하는 자는 무지한 자라 이것을 행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망하게 하여 부녀와 가늠하는 자는 무지한 자라요.
여기서 무지하다라는 것은 배운 게 없어서 무식하다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지식이 없다는 거예요.
가늠하는 자는 다른 지식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해서 무지하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가늠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에 대해서 몰라서 즉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고 하나님께서 무엇을 싫어하시는지 모르기 때문에 저지른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육적인 가늠이 하나님을 버리게 되는 영적인 가늠까지 가는 일은 아주 이상하지 않죠.
그래서 육적인 순결은 영적인 순결과도 연결이 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면 음행을 음행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성적으로 타락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왜 문제야?
내가 내 몸을 가지고 내 몸이 좋아하는 대로 내 몸이 즐기자는 대로 즐기는 건데 이게 뭐가 문제야?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세상 사람들의 생각과 가치관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도 넘어가 버린다는 거죠.
세상이 다 그렇게 사니까 다 괜찮다고 하니까 그렇게 속아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 속는 게 아니에요.
누구만 속아요?
무지한 사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
그런 사람이 속아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그 생각이 좋아 보이니까 그 생각에 점령당하는 것이죠.
민수기 25장에서 그 모합 사람들과 음행하고 우상숭배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결국 어떻게 죽어요?
하나님께서 연병을 내리십니다.
연병은 전염병을 말해요.
그들의 음행은 즉 하나님에 대한 무지함은 전염병과 같습니다.
선지자들도 계속 경고했던 일이고요.
그래서 개시록의 때에도 이 전염병은 또 등장을 합니다.
너무 쉽게 퍼진다는 거예요.
사람들 사이에서.
음행은 달콤하거든요.
숨길 수 있거든요.
음행과 우상숭배는요.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일입니다.
개시록의 일곱 교회 아시죠?
그 중에 두 교회가 동일한 죄로 책망받습니다.
바로 우상숭배와 음행이에요.
우상숭배와 음행.
우상숭배 곧 음행이 아니라 우상숭배와 음행이라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이 성적인 문제, 성적인 타락을 막고 금지하고 반드시 교육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반대로 성적으로 타락해도 돼.
이렇게 가르치진 않죠.
그런데요.
안 가르치면, 안 가르치면 이 가늠에 대해서 무감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전염병이기 때문이죠.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광야 생활을 신원 생활과 같이 여기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것이 부족하고 서툴렀지만 오직 그때는 하나님만 따라가며 살 수밖에 없었던 때였거든요.
광야는 딱히 눈 돌릴만한 곳이 없는 곳이었습니다.
우리 교회가 바로 그런 광야이죠.
세상을 쫓지 않고 교회 안에서 봐야 할 것을 보고 들어야 할 것을 들으므로 우리의 육적인, 영적인 순교를 지키시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복도하겠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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