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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예수교회 True Jesus Church

하나님이 다시 주신 삶의 질서 유바나바 목자 26.08.28

창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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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다시 주신 삶의 질서 (#창세기9장 1절~7절)
#창세기개론 #창세기해석 #창세기강해 #유바나바목자 #TJC대방 #TrueJesusChurch

(창9:1)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창9:2)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들은 너희 손에 붙이웠음이라
(창9:3) 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지라 채소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창9:4)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 채 먹지 말 것이니라
(창9:5) 내가 반드시 너희 피 곧 너희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창9:6)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창9:7)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편만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 하셨더라

#참예수교회 홈페이지 http://tj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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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 이후 하나님은 노아와 그의 가족에게 새로운 삶의 질서와 복을 주셨으며, 생명의 존중과 육체적·정신적 생명의 이어가기를 강조하셨다.

본문창세기 9:1-7
  • 홍수 이후 하나님은 노아와 그의 가족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명령하셨다.
  • 생명의 존중과 피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기 때문에 존중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셨다.
  • 교회와 가정은 생명을 이어가며 다음 세대를 양육하는 사명을 지닌다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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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 이후의 새로운 질서

  • 창세기 9장 1절부터 7절은 홍수 이후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의 가족에게 주신 새로운 삶의 질서에 대한 말씀이다.
  • 하나님은 노아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복을 주셨으며, 이는 창세기 1장에서도 인간에게 주어진 동일한 복이다.
  • 모든 짐승과 새, 바다의 생물은 인간을 두려워하며 인간의 손에 복종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 육식은 홍수 이후에 허락된 것으로, 이전에는 필요하지 않았다.

생명의 존중과 피의 중요성

  • 사람의 생명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기 때문에,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에 대한 보복이 따르며, 사람이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에 대한 형벌이 내려진다고 말씀하셨다.
  • 피는 생명의 상징이며, 생명을 함부로 다루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심각한 문제이다.
  • 사람을 함부로 대하거나 비난하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존재를 경시하는 행위이다.

신앙과 생명의 이어가기

  •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존재이기 때문에 존중되어야 한다.
  • 생명을 함부로 대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를 무시하는 행위이다.
  • 생명을 이어가는 것은 단순히 육신의 생명만이 아니라, 영혼의 생명과 믿음을 다음 세대에 전하는 것도 포함된다.
  • 교회와 가정은 믿음을 이어가며 다음 세대를 양육하는 사명을 지닌다.
  •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 생명의 축복을 가지고 세상에서 살아가야 한다.
전사(자막) 전문▼
오늘 안식일 저녁예배도 계속 우리 이어서 창세기에 대한 내용을 같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우리 하나님 말씀 우리 창세기 9장 말씀을 찾겠습니다.
창세기 9장 1절에서 7절까지 말씀 창세기 9장 1절에서 7절까지 말씀 저와 송도님들 번갈아서 읽겠습니다.
제가 먼저 읽겠습니다.
창세기 9장 1절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루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무릇 산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지라 채소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반드시 너희 피 곧 너희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편만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 하셨더라.
아멘 오늘 여기 있는 내용을 근거로 해서 하나님이 다시 주신 삶의 질서 라는 제목 가지고 하나님 말씀 증거하겠습니다.
하나님이 다시 주신 삶의 질서라는 제목으로 보겠습니다.
계속해서 우리 창세기의 내용을 같이 살펴보고 있습니다.
창세기의 내용을 같이 생각해 보면서 창세기가 가지고 있는 의미도 생각해 볼 뿐만 아니라 그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또 하나님의 뜻을 통해서 우리가 우리의 삶에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지 또 어떤 기준으로 살아가야 되는지가 더욱더 명확하게 또 뚜렷하게 우리 마음껏 새겨져서
우리의 삶 가운데 이 말씀이 반드시 좀 보여주고 또 나타날 수 있는 그런 삶이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우리 8장까지 내용을 같이 앞에서 살펴보고 오늘 9장의 내용 홍수 이후에 새로운 삶에 대한 내용을 오늘 본격적으로 같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이 9장 말씀은 심판이 지나가고 어떤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는 내용이 기록이 되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에덴 동사를 만드시고 그 가운데 사람을 만드셔서 하나님이 주신 그런 자연 만물을 다스리면서 그 환경 가운데 살았던 그 모든 환경은 이제 완전히 지나가고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 우리 노아 홍수 이후의 세상에 대해서 말씀해 주고 있다라는 겁니다.
그리고 사람 또한 마찬가지죠.
당시에 노아의 홍수 심판 이전에 함께 살았던 많은 사람들 그런데 그 모든 사람들은 다 심판을 받았고 이제 노아와 노아의 가족들만 남게 되어서 새로운 인류가 이 가족을 통해서 시작이 되는 거죠.
그래서 이 새로운 어떤 인류 그리고 새로운 가족으로 시작된 새로운 환경 가운데 살아가는 이 일을 통해서 생각해 볼 수밖에 없는 것은 이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가 에 대한 고민 아니겠습니까?
홍수에서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 사실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새로운 삶의 질서가 필요하다라는 거죠.
그래서 여기는 이 내용이 우리에게 또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새로운 세상을 주셨고 이 새로운 세상은 사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노아 홍수 이전의 자연환경과 이후의 자연환경이 다른데 그 이후에 주어진 환경에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그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가 그래서 오늘 본문의 내용을 보면 여러 가지 그때 당시 세상에서의 삶의 질서에 대해서 여러 가지 기록해 주고 있는 내용들이 있습니다.
물론 이 내용이 단순히 여러 가지의 규칙을 모아놓은 그런 내용만은 아니지만 그리고 마지막까지 연결되어 있는 그런 내용들을 보면 오늘날 우리가 또 어떤 기준으로 살아가야 되는지에 대해서도 잘 말씀해 주고 있는 그런 내용들이 기록이 되어 있다는 거죠.
그리고 오늘 본문의 내용 특히 1절부터 7절 내용의 내용을 보면 1절과 7절이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라는 1절의 시작 그리고 7절 마지막에 보면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편만하여 구중해서 번성하라 라는 그 말씀이 기록되어 있고 그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그 사이에 하나님께서 새로운 삶의 질서를 세워주시고 노아와 노아의 가족들에게 어떻게 살아갈 것이고
어떤 기준으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말씀을 전해주고 있다는 겁니다.
그 안에 있는 내용은 분명한 주제 제목이 있는데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다면 그 생명을 하나님께서 주신 질서 안에서 살아가야 된다.
이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명은 단순하게 살아있는 것만이 아니라 생명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기 때문에 그 생명을 살아가는 데는 하나님의 질서가 반드시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노아의 가족들을 살려주셨다면 그 노아와 노아의 가족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얻어진 그 생명을 하나님의 질서 가운데 살아가야 된다라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서 다시 좀 확인했으면 좋겠는 것은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 그것 자체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라고 믿는다면 마땅히 그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의 삶의 방식도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삶을 살아갈 줄 알아야 된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노아의 가족들에게 너희가 살아가는 새로운 세상, 새로운 생명을 가지고 어떻게 새로운 삶을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내용을 전해주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오늘 하나님께서 홍수 이외에 노아에게 가장 먼저 주신 이 말씀이 무엇인가를 같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첫 번째 오늘 본문의 내용을 통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시 살아갈 복을 주셨다라는 겁니다.
다시 살아갈 복을 주셨다.
다시 1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정상의 9장 1절 함께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노아와 노아의 가족들이 방주해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새로운 세상에 나온 노아에게 가장 먼저 하신 일은 뭐냐면 복을 주시는 일이었습니다.
복을 주시며 가라하되 그들에게 복을 주셨다라는 거죠.
복의 내용이 뭐냐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이게 복의 내용이다라는 거죠.
사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복은 참 단순합니다.
우리가 태어나서 장성하고 또 가정을 이루어서 자녀를 낳고 그 자녀가 또 다른 그런 가정을 낳고 또 다른 가정을 낳아서 하나님의 자녀들 하나님의 사람들이 이 세상에 충만하게 이루어가는 그 삶을 하나님 인간에게 주신 축복이다라고 말씀해주고 있는데 사실 이 말씀은 이번이 처음 주신 말씀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께서 이 모든 만물을 만드시고 또 그 모든 만물에게 축복하신 말씀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창세기 1장 22절에 그 말씀이 기록이 되어져 있고 또 같은 말씀이 창세기 1장 28절에 사람을 창조하신 이후에 주신 말씀으로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창세기 1장 28절을 보니까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루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이렇게 우리에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이 같은 말씀을 홍수 이후에도 새로운 인류에 시작되는 노아와 노아의 가족들에게 이렇게 축복의 말씀을 전해주고 있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비록 그 이전의 세상은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셨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생명에 대한 그런 자신의 뜻 그 뜻을 포기하지 않으셨다라는 겁니다.
처음에 인간을 만들고 또 모든 자연마물을 통해서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길 바라며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인간의 축복이라고 말씀해주고 있는데 그들에게만 준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인류, 새로운 세상에도 하나님이 똑같은 계획을 가지고 똑같은 뜻을 그들에게 주셨다라는 거죠.
그래서 죄에 대해서 심판하셨지만 생명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은 같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말씀하셨죠. 다시 살아가라. 다시 생육하고 번성하라. 이렇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
그리고 2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홍수위의 세상에서 인간과 동물이 어떤 관계 가운데 살아가는지에 대해서 말씀 해주고 있는데 2절을 보니까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이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여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들은 너희 손에 붙이웃습니다.
동물들이 사람을 두려워하게 될 거다.
이것은 원래 인간과 모든 자연의 어떤 질서를 다시 잡아주는 것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때로 우리가 세상을 살다 보면 세상에 하나님이 만든 창조물들의 질서를 헷갈려 할 때가 있습니다.
인간은 세상의 어떤 자연 만물보다 고귀한 존재이죠.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특별하게 인간을 만들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그렇게 인간을 모든 자연 만물보다 더 고귀한 존재로 특히 오늘 2절의 말씀을 보면 이들은 너희 손에 붙이웃다.
그래서 그들 손은 즉 인간의 손에 의해서 그들이 관리되고 그들의 인간의 손에 붙여졌다는 것은 또 그 다음 절에 이어서 주시는 목적이 있는 거죠.
창세기 9장 3절에 보니까 무슨 얘기입니까?
그들이 육신을 영위해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양식으로 그것을 주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내용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뭘까요?
육식이라는 것은 노아홍수 이후에 나타난 일이죠.
그럼 노아홍수 이전에는 굳이 육식이 필요하진 않았다라는 것을 알 수가 있는데 노아홍수 이후에는 지난 시간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환경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달라졌고 또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도 달라지게 된 거죠.
그래서 그런 부분에서 인간이란 존재가 새로운 세상에 살아갈 수 있도록 심지어 먹는 것도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공급해 주셨다.
어떻게 해요? 모든 동물들이 인간이란 존재를 두려워하게 만드시고 그 인간이 그것들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셨다라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런 새로운 환경을 주셨고 또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단순하게 살아남았으니까 이제 알아서 살아라.
이렇게 하지 않으셨다는 거예요.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생명을 주셨고 생명만 주실 뿐만 아니라 살아갈 수 있는 삶의 영역을 주셨고 또 먹을 수 있는 것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1절에서 3절의 중심은 여러 가지 규칙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심판 이후에 노아에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다는 거예요.
살아갈 수 있는 길을.
그래서 우리가 중요한 내용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노아에게 주어진 새로운 삶은 노아가 만들어낸 삶이 아니다.
라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겁니다.
아시는 것처럼 노아라는 사람이 그런 모든 사람이 심판받았을 때 그가 가진 어떤 뛰어난 능력과 뛰어난 자질을 통해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 생명이 보존되었던 것처럼 더 나아가서 그 생명을 계속해서 영위에 갈 수 있도록 해주신 그 길도
하나님이 열어주셨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말씀해 주십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인간이란 존재가 살아갈 수 있는 모든 환경을 내가 허락해 줄 거니까 그 안에서 내가 준 이 축복의 말을 실현하며 살아가라고.
인간에게 그렇게 축복하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새로운 삶의 시작은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습니다.
어찌 보면 이 세상에 처음에 일정부터 기록되어 있는 이 세상의 시작.
이 모든 시작은 한마디로 말하면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의 은혜지 않습니까?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모든 환경을 하나님 미리 준비해 주시고 그 하나님이 허락해 주신 그 환경 가운데 마지막 인간을 만드셔서 그 가운데 생명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고 살아갈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던 것처럼 새롭게 시작된 환경에서도 하나님께서는 같은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살아갈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다.
그래서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삶은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받은 것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도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거다.
이걸 잘 볼 수 있는 내용이죠.
그래서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절대 잊지 말아야 되는 것은 노아와 노아의 가족들만이 얻어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그때부터 이미 노아와 노아의 가족들이 살아갈 수 있는 그 환경을 마련해 주고 그 질서를 열어준 것은 노아와 노아의 가족들만이 얻어진 혜택이 아니라
우리 또한 그 환경 가운데 우리가 살아갈 수 있도록 주신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도 많은 것들을 이루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 이룸이라는 것이 내가 이루었다가 아니라 결국에 그 근원을 찾아 올라갈 수 있는 그런 믿음의 노력을 할 줄 알아야 됩니다.
결국에는 하나님이 허락해 주신 이 세상 그 질서 가운데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것이고 그렇다면 우리는 마땅하게 우리가 이 세상 살아가면서 하나님이 주신 이 생명을 유지해 가고 또 이걸 관리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건 너무나 중요한 일이지만 그 모든 노력의 출발점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과 그 기회와 환경이 있었다는 그 믿음을
우리는 놓지 말아야 된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야구부는 분명히 이렇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야구부 1장 17절에 보니까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에게로서 내려오나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특별한 은혜들에 대해서 얘기를 해주고 있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고 누리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의 출발점은 하나님이라는 거예요.
하나님께로부터 공급받지 않는 것이 없다는 겁니다.
이걸 알아야 된다는 거죠.
어느 날 한 사람이 의사에게 건강검진을 받았습니다.
특별한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듣고 그 건강검진을 받은 사람이 역시 내가 관리를 잘했지 이렇게 얘기를 했다는 거죠.
그런데 의사가 크리스찬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얘기를 했다는 거죠.
관리를 잘하신 것도 맞는데요.
건강을 관리할 수 있는 몸을 가지고 태어난 것부터 감사하셔야 될 것 같아요.
이런 얘기를 했다는 거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몸을 우리는 관리하는 거죠.
하지만 그 몸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이걸 알아야 된다는 거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삶을 잘 관리하며 열심히 살아야 되는 건 맞습니다.
그런데 그 열심히 살 수 있다는 사실부터 하나님의 은혜다.
이걸 잊지 않아야 된다.
그래서 오늘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너무나 평범하게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요즘 계속 몇 주 동안 하나님의 은혜에 또 그 은혜에 감사하는 것, 그 은혜에 보답하는 삶.
이게 자주 반복이 되어 언급이 되네요.
반복되면 하나님은 들으라고 주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왜 똑같은 말씀을 그렇게 계속 하시나.
똑같은 말씀을 이 말씀 가지고 하고 저 말씀 가지고 하고 몇 주 동안 왜 그렇게 하시나.
그러면 다 이유가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가 가진 이 생명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도 은혜이고 하루 동안 일할 수 있는 것도 은혜이고
우리 가족과 함께 식사할 수 있는 것도 은혜이고 이렇게 교회 나와가지고 예배할 수 있는 것도 은혜이고 하나 님이 우리로 안식하라고 주신 안식이를 맞이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다.
그래서 우리가 특별한 것만 얻을 때 하나님께서 복 주셨다가 아니라 오늘 살아있고 이렇게 하나님을 섬길 수 있고 또 이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인 것 이게 복이다 라는 것을 잊지 말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두 번째 또 본문의 내용을 통해서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4절부터 6절에 있는 내용이죠. 하나님은 생명을 지키는 질서를 세우셨다는 겁니다.
생명을 지키는 질서. 1절에서 3절에서는 하나님께서 홍수 이후의 노아에게 다시 살아갈 수 있는 복을 주셨 다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셨고 살아갈 수 있도록 그 생명을 영리해 갈 수 있도록 먹을 것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살아갈 자유만 주신 것이 아니라 그 자유가 생명을 파괴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생명을 지키는 질서를 세워주셨다는 거예요.
4절부터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짐승을 다스릴 수 있도록 우리에게 권위를 주셨고 또 권위를 가지고 짐승을 잡아먹을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것.
참 귀한 일이지만 그것을 우리가 남용해 가지고 마음대로 생명을 취하고 마음대로 생명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그 권한까지 우리에게 주셨냐.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4절 보겠습니다. 4절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되는 피채 먹지 말 것이냐. 3절에서는 산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 거다. 이렇게 말씀 해 주고 있는데 4절에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살아있는 동물이 우리의 양식이 되는 것. 우리의 양식이 되는 것. 그런 것 하나님이 허락해 주신 은혜
이지만 그런데 무분별하게 하지 마라.
즉 그러나 먹을 수 있지만 피채 먹지 말라. 왜 그렇습니까?
성경에는 피는 단순한 어떤 음식의 한 부분이 아니에요.
피는 우리 육신의 또 동물의 이 몸의 일부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레기세에서 보면 레기세 17장 11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라고 말해주고 있어요.
그래서 이 비슷한 말씀을 5절에도 말씀해 주고 있지 않습니까?
내가 반드시 너희 피 곧 너희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피를 어떻게 성경에서 인식하고 있냐면 피는 곧 생명이다.
이렇게 말씀해 주고 있어요.
그래서 장세 9장 4절 말씀은 인간이 동물을 먹는 것 자체를 금화하는 이걸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근원의 생명의 생명의 생명의 생명의 생명은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된다.
즉 우리가 이 동물을 잡아서 내 식물을 삼지만 즉 음식으로 삼지만 그 동물의 생명은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한테 있어요?
생명 하나님께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무분별하게 다루지 말라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먹을 수 있는 권한은 받았지만 생명을 자기 마음대로 취급할 수 있는 권한이 있냐?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그래서 3절과 4절을 함께 읽어야 되는 이유가 있는 거죠.
하나님께서 3절에서 뭘 걸 주셨어요?
그런데 4절에서는 그런데 생명을 함부로 하지는 마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을 허락하시면서 생명에 대한 경혜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함부로 하는 것은 두려워할 줄 알아야 된다.
그래서 5절에 가면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렇게 말하고 있죠.
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내가 반드시 너희 피, 곧 너희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생명에 대한 책임을 또 이어서 말씀해주고 있어요.
사람의 생명을 함부로 빼앗는 일, 하나님 앞에서는 그냥 지나갈 수 있는 일이 절대로 아니다.
라는 걸 말해주고 있습니다.
왜 사람의 생명이 귀하냐?
사람의 생명은 고귀하죠.
사람의 생명이 고귀한 이유가 뭡니까?
이 세상 자연 만물을 다스릴 수 있는 존재니까?
동물들보다 좀 더 뛰어난 지혜를 가졌으니까?
동물들과 비교되지 않는 그런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가요?
6절에 보면 인간이란 존재가 왜 고귀하냐?
그리고 그 생명을 왜 고귀하게 여겨야 되느냐?
분명히 그 이유를 밝혀주고 있어요.
6절 보겠습니다.
9장 6절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굉장히 중요한 조건이죠.
이는 왜 사람의 피를 흘리는 것이 그렇게 심각한 문제냐.
그 이유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명이 귀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뭐냐면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 자체가 대단한 회사가 아니에요 사실은.
오늘날 우리가 사람을 평가할 때 저 사람 대단한 사람이다 라고 하는 것들.
때로 돈이 많고 공부를 많이 하고 그 사람이 건강하고 사회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가 있고 우리가 이런 것들을 가지고 사람의 종기의 여부를 여길 때가 때론 있는데 성경은 절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바닷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고귀한 존재인 거다.
이렇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1절부터 3절과 4절부터 6절이 이 관계를 볼 수가 있는데 하나님께서 먼저 생명을 주셨고 그리고 그 생명을 살아갈 수 있는 먹을 것을 주셨는데 동시에 말씀하시는 것은 그 생명을 함부로 하지 마라.
왜냐하면 그 생명은 너희가 만든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었으니까.
그래서 그게 오늘 두 번째 내용의 중요한 중심이죠.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셨기 때문에 인간은 생명을 자기 마음대로 취급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이렇게 말씀해주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우리에게 좀 오늘날 살아가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죠.
우리는 이 생명의 가치를 때로 능력이나 어떤 조건으로 평가할 때가 있습니다.
어린아이는 끊임없이 도움을 받는 존재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많은 것들을 사람을 위해서 할 수 없으니까.
나이가 많든 적든 여러 가지 우리의 조건들이 있죠.
그런데 성경은 뭐라고 말합니까?
사람의 가치는 그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고귀하다.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갓 태어난 아기도 귀한 거고 나이가 많은 분들도 귀한 것이고 건강한 사람도 귀하지만 병든 사람도 귀한 거예요.
그래서 이것은 나 자신을 향한 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 나 자신을 너무나 가치 없는 존재로 여길 때가 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할까요?
나는 잘하는 것도 없고 나는 다른 사람도 부족하고 나는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그래서 제가 간혹 어르신들이 하시는 얘기를 들어보면 아, 목자님 어른들의 표현이 그렇습니다.
저는 이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교회 가서 봉사를 마음대로 할 수가 있어요.
또 교회를 마음대로 갈 수가 있어요.
건강도 또 힘도 없고 또 그렇다고 제가 밖에서 돈을 벌어서 헌금을 많이 하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 빨리 왜 하나님 안 데려가는지 모르겠어요.
이런 얘기를 이렇게 하시면서
굉장히 자신의 부족함을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정말 그런가요? 그래서 제가 그럴 때마다 말� �을 드리거든요.
가령 신방도 가고 또 여러 가지 섬김의 그것들을 나 같은 사람 뭐라고 이렇게 젊은 사람들이 했는지 모르 겠어요 라고 말씀을 드리면 집사님도 젊으셨을 때는 어르신들을 이렇게 섬기셨잖아요.
이런 말씀을 드리거든요. 젊은 사람들은 심각한 어른들을 섬기고 정작 그분이 어른이 됐으면 마땅히 섬김을 받 는 것이 당연한데 그때 되면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교회에 뭔가 이렇게 할 수 있는 것들이 없어졌다라는 걸 가지고 자기의 존재를 너무나 작은 것으로 여기면 성 경의 가치와는 좀 다르지 않습니까?
모든 생명의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서 여러 사람들이 존재 하죠.
어떤 분들은 봉사를 열심히 하는 분들도 있고 또 그렇지 못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때로는 그 이유가 환경의 이유도 있을 수 있고 때로는 믿음의 차이의 이유도 있을 수도 있어요.
그렇다고 해서 그것 자체가 그분의 존재의 가치냐?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 안에서는 모든 분들이 다 고귀한 존재, 종귀한 존재이지 않습니까?
저 사람은 꼭 교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고 저 사람은 별로 필요하지 않는 것 같아.
우리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사람을 대할 수 있나요?
절대 그러면 안 됩니다.
특히나 이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께 있고 하나님이란 존재가 인간이란 존재가 왜 고귀한 존재라고 여기는가?
자신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존재가 너희다라고 하는 그 기준으로 우리를 바라본다면 여기 있는 모든 분들이 다 귀한 분들이죠?
얼마나 소중한 사람들입니까?
그래서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신앙이라는 것은 단순히 사람을 죽이지 않는 것.
뭐 이런 것일까요?
그러지 않습니다.
사람을 함부로 무시하지 않는 것.
사람을 함부로 모욕하지 않는 것.
약한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
내가 내게 필요하지 않다고 사람의 가치를 낮추지 않는 것.
이게 다 사실 포함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둘째는 우리 마태복음 22장 39제를 보니까 둘째는 그와 같으니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 라고 말씀해주고 있어요.
하나님이 나를 고귀한 존재로 여긴다면 마땅히 옆에 있는 형제를 하나님이 얼마나 고귀한 존재로 보시는가 이 눈을 가지고 이 가치를 보고 성도를 대하는 것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이죠.
우리가 사람을 대하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야고보서 3장에 보면 말에 대해서 그 말을 나는 혀에 대해서 여러 말씀을 하고 있죠.
때로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서 내 생명을 주었다고 믿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사람을 저주하고 또 사람에게 압담을 하고 사람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합니다.
이거에 대해서 야고보서 3장 9절은 한 입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똑같은 입으로 하나님 형상을 저주 한다.
이렇게 말합니다.
이럴 수 있냐.
똑같은 셈에서 어떤 셈은 독약이 나오고 어떤 셈은 똑같은 셈에서 어떤 때는 약이 나오고 이럴 수 있냐 말 이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혀를 가지고 이 입을 가지고 우리는 성도를 존중할 줄 알아야 된다.
왜요?
그 존재는 하나님 형상을 입은 존재니까.
그렇다.
그래서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부가 서로 화가 날 때가 있죠.
또 부모와 자녀가 갈등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그 존재는 가까이는 내 아내고 가까이는 내 아내고 남편이고 내 자녀고 내 부모지만 그 존재는 어떤 존재입니까?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존재.
가장 고귀한 존재.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귀하게 귀일 줄 알아야 됩니다.
내가 행동할 때 내가 말할 때 어떤 마음으로 그를 대하는가에 대해서 분명히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 우리가 살다 보면 의견이 달라질 때도 있어요.
우리가 기억해야 될 건 무엇입니까?
저 사람은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저 사람은 가치가 없다.
는 완전히 다른 말이지 않습니까?
사실 생각해 보면 때로 우리가 사람들이 다 내 마음에 맞는 건 아니에요.
어떤 분들은 내 마음에 와닿게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항상 저분은 저렇게 내 마음을 기분 좋게 이렇게 말을 해주는 분들도 있죠.
그런데 이상하게 어떤 분들은 꼭 가시도친 것처럼 말을 하시는 분들도 있을 수 있어요.
그건 곧 내 마음에 안 들게 말하는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이 그 사람의 가치인가요?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그래서 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어요.
나와 생각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생명과 존엄을 무너뜨릴 권리가 내게 절대 없다.
왜냐하면 그 사람 역시 하나님의 형상을 지음받아 만들어진 존재이니까.
이걸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6절 말씀은 좀 더 깊은 의미로 우리가 생각해 볼 수가 있는데 하나님께서 사람의 생명을 보호하시는 이유는 단순하게 이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가 아니에요.
그 근거가 하나님의 창조에 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기 때문에 그래서 생명을 존중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를 존중하는 겁니다.
반대로 사람의 생명을 함부로 대하는 것은 하나님의 지으신 형상을 함부로 대하는 것.
하나님의 창조를 함부로 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다시 살아갈 수 있는 복을 주셨죠.
그런데 그 복을 받은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곧바로 가르쳐 주신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면 생명을 소중하게 여겨야 된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생명을 소중하게 여긴다고 말씀해 주고 있으니까 우리가 사람만 죽이지 않으면 된다.
이 얘기일까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사람을 들어 형제를 들어 나가라는 자는 연장매 뚜렛을 베고 물에 들어가는 것.
자신 생명을 포기하는 것 같다.
이게 얼마나 큰 죄인지에 대해서 말씀해 주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삶을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의 삶도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된다.
그래서 신앙은 단순하게 나는 하나님 믿습니다.
라고 생각하고 고백하는 데서 끝나지 않지 않습니까?
내 곁에 있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통해서 우리의 믿음이 나타나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는 생명을 나도 귀하게 여기는 사람.
그것이 하나님을 내가 믿는다.
라는 것이 나타나는 모습인 것을 잘 보여주고 있죠.
그리고 본문 내용을 통해 세 번째 하나님은 우리가 생명을 이어가며 살아가기를 원하셨다.
7절 보겠습니다.
7절 다시 읽겠습니다.
시작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편만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 하셨더라.
갑자기 등장하는 말씀은 1절에 이미 같은 말씀을 전해주고 있는 말씀이 등장하고 있죠.
7절에서도 다시 말씀하고 있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편만하여 그 중에 번성하라.
1절과 7절은 2절부터 6절에 있는 말씀을 감싸고 있는.
그 삶의 질서를 감싸고 있는.
그래서 마지막 계속해서 주는 말씀이 생육하고 번성해라.
그래서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단순하게 살아남아라.
이런 말씀이 아니라 생명을 이어가라.
그리고 땅에 충만하게 살아가라.
이렇게 축복을 주고 있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 말씀은 즉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말씀은 단순하게 자녀 많이 낳고 가정 빨리 빨리 이뤄서 그렇게 살아가라.
이 얘기일까요?
물론 그런 의미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질서는 우리가 잘 태어나게 되면 잘 자라서 또 가정을 이루고 그 가정을 통해서 또 다른 생명을 하나님께로 부여받는 이 연속
이 삶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질서이죠. 그런데 창세기 전체의 맥락에서 보면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하나님의 창조의 세계 안에서 생명을 이어가며 살아가는 이 사명을 주고 있습니다.
생명은 내가 생명 부여받은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또 다른 생명을 이어가고 또 이어가고 또 이어가는 처음 사람을 창조하실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창세기 1장 28절에서 주신 말씀이죠. 그런데 홍수 이후에도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폐기한 것이 아니라 심판 이후에도 하나님께서는 다시 생명을 계속해서 이어가고 이어가는 이 삶에 대해서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노아가 새로운 인류의 조상이 된 이 이후에 이 삶이 노아의 가족들만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계속해서 잘 이어가는 삶을 살아가라고 주신 거라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가족을 통해서 새로운 인류를 시작하게 됩니다. 그래서 노아의 후선을 통해서 이� �질 새로운 인류.
그래서 이것은 우리가 존재하는 것.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 것도 저는 이 말씀이 역사되어서 지금 우리가 있는 거잖아요.
이어지고 이어진 우리의 역사. 그리고 아까 얘기했던 것처럼 단순하게 이 말씀을 자녀를 많이 낳아라 라는 말씀만이 아니라 왜냐하면 요즘은 각 사람에게 주어진 어떤 삶의 형편과 또 사명이 좀 다르다 보니까 그런데 분명한 원리는 뭐냐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다면 그 생명을 다음 세대에도 잘 이어갈 수
있도록 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것은 우리가 단순하게 육신의 생명을 계속 이어가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의 생명, 우리의 믿음 또한 같은 맥락에서 성경은 계속 이어가게 양육할 때 그 믿음이 전승되고 이어지게 하라고 말해주고 있어요.
그래서 신명기 6절 6절부터 7절을 보면 오늘날 내가 내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내 자녀 에게 부지런히 가르쳐라.
믿음이라는 것은 나에게만 머물러 있는 것이 절대로 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 이것은 이어져야 된다는 겁니다.
믿음의 생명이 계속 이어져야 된다는 거예요.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줘야 될 것이 참 많지만 재산이나 집이나 교육이나 좋은 직업 이것만 물려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믿음을 이어주는 일입니다.
믿음을 이어주는 일이에요.
믿음을 이어주는 일은 생명을 우리가 계속해서 영위에 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이지 않습니까?
우리는 그 믿음을 가지고 이 신앙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니까.
이것은 가정에서뿐만 아닙니다.
바로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도 끊임없이 다음 세대, 다음 세대 이어질 수 있도록 교회는 이 일을 열심히 해야 되죠.
어린아이들도 있고 청소년들도 있고 청년들도 있는데 이 어린아이들이 청소년들이 청년들이 계속해서 이 믿음이 영이 될 수 있도록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교회가 너무나 당연하게 해야 될 그런 사명이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받은 우리의 믿음을 우리 세대에서 끝내버리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것.
이게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디모데한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디모데 호세 2장 2절에 보니까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말을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무슨 얘기입니까?
바울이 디모데에게 복음을 전하면 디모데는 그의 충성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충성된 사람들이 가르침 받았던 그 가르침을 충성된 사람들은 또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
이게 교회가 또 가정에서 계속해야 될 믿음의 전승인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우리에게 있어 실제적인 우리의 책임이죠.
이 사명감이 마땅히 모든 이들에게 반드시 있어야 됩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은 단순한 우리 육신의 생명을 넓게 넓게 그냥 많은 사람을 낳아라.
이것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창조적으로 여기는 모든 믿음의 사람들이 더 많이 세상 가운데 더욱더 넓혀진 이것을 우리는 뭐라고 말합니까?
하나님의 나라다.
하나님의 나라가 끊임없이 확장되는 이 일에 대해서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나님께서는 노아에게 새로운 인류가 시작되는 이 시점에서 바로 그 사명을 그에게 주신 것이죠.
그래서 오늘 본문의 내용을 통해서 생명의 질서를 잘 우리에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이 생명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큰 축복입니다.
그렇다면 마땅하게 이 생명의 축복을 가지고 세상 가운데 어떻게 살아가야 될 것이냐.
그리고 이 생명을 어떻게 여겨야 될 것이냐.
그리고 이 생명이라는 것을 단순 육신의 생명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의 생명이 이 세상의 영이 될 수 있도록 우리는 어떻게 해 나가야 될 것이냐.
이걸 분명히 우리에게 전해 주고 있고 우리는 그 육신의 생명 또 육신의 생명뿐이 아닌 우리의 영혼의 생명을 부여받은 사람이 우리이고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될까요?
오늘 여기 있는 말씀을 다시 마음가운데 새겨서 하나님께서 노아를 다시 살게 하셨고 생명을 지키게 하시고 생명을 이어가게 하신 그 하나님 말씀이 그에게 주어졌다면 우리에게도 그 말씀을 분명히 주어진 말씀인 줄 믿습니다.
이 말씀대로 우리가 더욱더 그 다음 세대를 이어갈 수 있도록 우리가 열심히 전하고 또 가르치고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아가는 저의 이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주건드립니다.

AI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 정리한 내용입니다. 정확한 말씀은 영상 원문을 확인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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