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들으시는 간절한 기도 유바나바 목자 26.08.08
왕하20:1-11
제작일 2026. 8. 8.
설명 펼치기▼
기도하게 하시는 하나님 (#열왕기하20장 1절~11절) #히스기야 #안식일예배 #유바나바목자 #TJC대방 #TrueJesusChurch (왕하20:1)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저에게 나아와서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처치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왕하20:2)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왕하20:3)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의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심히 통곡하더라 (왕하20:4) 이사야가 성읍 가운데까지도 이르기 전에 여호와의 말씀이 저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왕하20:5)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 일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겠고 (왕하20:6) 내가 네 날을 십오 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셨더라 (왕하20:7) 이사야가 가로되 무화과 반죽을 가져오라 하매 무리가 가져다가 그 종처에 놓으니 나으니라 (왕하20:8)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낫게 하시고 삼 일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게 하실 무슨 징조가 있나이까 (왕하20:9) 이사야가 가로되 여호와의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실 일에 대하여 여호와께로서 왕에게 한 징조가 임하리이다 해 그림자가 십 도를 나아갈 것이니이까 혹 십 도를 물러갈 것이니이까 (왕하20:10)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그림자가 십 도를 나아가기는 쉬우니 그리할 것이 아니라 십 도가 물러갈 것이니이다 (왕하20:11) 선지자 이사야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아하스의 일영표 위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로 십 도를 물러가게 하셨더라 #참예수교회 홈페이지 http://tjc.or.kr/
AI 설교 정리
히스기야는 병으로 죽을 운명이라고 알려받고 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의 간절한 기도로 생명이 연장되고 구원을 받는다.
- 히스기야는 병으로 죽을 운명이라고 선지자 이사야에게 알림받고 하나님께 진심으로 기도한다.
- 기도는 진심과 전심을 바탕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태도를 반영하며, 믿음을 통해 하나님과의 연결을 강화한다.
- 그의 간절한 기도는 하나님께 들려져, 15년 더의 생명과 앗수르 왕의 손에서의 구원을 받게 되는 계기가 된다.
본문 정리 펼치기▼
히스기야의 병과 기도
- 히스기야는 병으로 죽을 운명이라고 선지자 이사야에게 알림받는다.
- 그는 하나님께 진심으로 기도하며 자신의 정직하고 선한 행위를 기억해달라고 간구한다.
-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받으시고, 그의 생명을 15년 더 주시며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신다.
기도의 중요성과 태도
- 기도는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자가 하나님만 바라보는 믿음의 표현이다.
- 기도는 진심과 전심을 바탕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태도를 반영한다.
- 믿음은 삶의 태도로 나타나야 하며, 기도는 그 믿음을 통해 하나님과의 연결을 강화한다.
기도의 결과와 영향
- 하나님의 응답은 해의 그림자가 10도 뒤로 물러가는 징조를 통해 나타난다.
- 히스기야는 3일 후에 병에서 나와 성전에 올라갈 수 있게 된다.
- 기도의 가장 큰 열매는 문제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대하는 자세가 달라지는 것이다.
기도의 태도와 진심
- 기도는 하나님께 진심을 전달하는 간절한 순간이며, 그 태도는 우리의 믿음과 연결된다.
-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삶과 마음을 숨기지 않는 것이 진정한 기도의 태도이다.
- 간절한 기도는 감정을 하나님께 가져가는 것이며, 기쁨, 슬픔, 두려움을 모두 하나님께 드러내야 한다.
전사(자막) 전문▼
하늘 위하 거룩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안식일 오전 하나님 말씀 증거하겠습니다. 먼저 우리 하나님 말씀 함께 찾겠습니다. 11기 하 20장 말씀 찾겠습니다. 11기 하 20장 말씀 1절부터 11절까지 말씀을 저와 성도님들 번갈아서 읽겠습니다. 11기 하 20장 1절에서 11절까지 말씀 제가 먼저 읽겠습니다. 그때 희승이하가 병들어 죽게 되며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저에게 나와와서 이르되 요하의 말씀이 너는 집을 처치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11기 하 21장 1절까지 말씀 내가 내 기도를 들었고 내 눈물을 보아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3일 만에 요하의 전에 올라가겠고 내가 나를 낫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내가 나를 위하여 도구 내 지혜의 종을 가질 수 있는 양으로 이 지혜의 고아리다. 이사야가 하리라 하셨나이다. 이사야가 하로돼 요하의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실 때에 대하여 요하께로서 왕에게 한 칭조가 이마리이다. 해의 그림자가 10도를 나아갈 것이다. 이사야가 10도를 물러갈 것이다. 이사야가 10도를 물러갈 것이다. 이사야가 10도를 물러갈 것이다. 이사야가 10도를 물러갈 것이다. 이사야가 10도를 물러갈 것이다. 함께 읽겠습니다. 선지자 이사야가 요하께 강구하며 아하스의 이령표 위에 나아갔던 해의 그림자로 10도를 물러갈 것이다. 하셨더라. 아멘. 오늘 여기 있는 내용을 근거로 해서 하나님이 들으시는 간절한 기도. 하나님이 들으시는 간절한 기도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증거하겠습니다. 계속해서 히스기아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는데 이번 시간에는 히스기아의 기도에 대한 두 번째 내용을 같이 살� �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안식일 이 자리에 나오신 모든 성도님들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님들의 믿음 가운데 크신 은혜와 축복을 더 해 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요즘처럼 날씨가 더우면 진이 빠지잖아요. 그래서 하루 종일 더위와 싸우고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되는 경우도 생기게 되지 않습니까? 사실 우리가 세상을 살다 보면 우리의 마음도 또 우리의 삶이 세상에 많이 시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때로는 녹초가 되어서 도저히 어디에서 힘을 얻어야 될지를 알지 못하는 그런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그럴 때 하나님께 나와와서 새로운 힘을 또 공급받는 것이죠. 세상 사람이 있어서 생겼던 많은 어려움과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 있었다면 이 시간 하나님께 나와와서 이 모든 것에 근원되시는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힘을 주시고 새로운 능력 을 주시고 또 지금만이 아닌 앞으로 나아갈 때의 새로운 힘이 되는 그런 능력의 말씀들과 은혜를 꼭 오늘 안식일에 채워 주는 그런 은혜가 저와 여러분들에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시간에도 옆에 있는 성도들과 함께 기쁨과 사랑의 인사로 시작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옆에 있는 분들 얼굴 보시면서 환한 미소로 인사하겠습니다. 할렐루야 반갑습니다. 오늘도 참 잘 오셨습니다. 오늘 안식일도 행복한 안식일 되세요. 우리 서로 사랑하는 안식일 됩시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우리 성도님 얼굴 보는 것만 해도 행복하시죠? 네. 앞으로 대답이 더 커졌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어떤 가치가 있는 것에 따라서 우리의 반응이 달라지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내가 정말로 이것이 가치가 있다 라고 이겨지면 그걸 대하는 내가 그 가치에 맞게 달라지지 않습니까? 정말 소중한 사람, 정말 만나고 싶었던 사람, 이런 사람을 만날 기회가 생기면 우리는 뭘 합니까? 준비라는 걸 하잖아요. 그 사람을 진짜로 만나고 싶었는데 이렇게 소중한 기회가 주어졌다니. 그래서 그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옷도 준비하고 때로는 그 준비하는 과정이 좀 불편할 수 있지만 그 만남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걸 통해 기쁨이 생기고 행복이 생겨서 더 기쁜 마음으로 이걸 준비하게 되지 않습니까? 오늘 안식일에 나올 때 어떤 마음으로 나오셨습니까?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하나님을 대할 수 있는 또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그 말씀을 주시는 그 안식일, 그 예배, 그 기도, 그 찬양. 이걸 내가 만날 수 있는 기회다.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성도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다. 여러분 설렘이 있었습니까? 저는 어떤 생각이 드냐면 믿음은 반응이다. 제가 가끔 설교 가운데도 이런 말씀을 드리는데요. 믿음은 그냥 단순하게 내가 그거 믿어가 아니라 정말 믿는다면 그 믿음을 통해서 내 삶이 드러나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믿음에 대상되는 하나님이 그리고 하나님께서 내게 사랑하라고 주어진 성도를 향한 내 믿음이 있다면 그걸 그 믿음에 크게 합당하게, 그 믿음에 가치 합당하게 마땅히 우리의 삶으로 나타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게 진정한 믿음이지 않습니까? 사실 우리의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기도의 태도라는 것은 무엇이냐면 기도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내가 그 기도를 하는 내가 태도로 나타나는 거죠. 그 나타나는 태도가 오늘 말씀드리고 싶은 간절한 기도. 간절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우리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만나는 너무나 소중한 것이기 때문에 그 기도하는 나의 태도가 분명히 달라져야 된다라는 것이죠. 제가 여전히 성교 공부를 하면서 한 성도님이 제가 장난스러운 한 친구와의 일화를 통해서 복음에 대해서 내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되었는가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다라는 얘기를 하면서 이런 재미난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어떤 친구와 식사를 하고 나서 그 친구가 장난스럽게 야 나하고 행복을 주는 곳에 가자. 복권을 사는 복권 방에 가셔서 복권을 숫자를 맞춘 거죠. 내가 이거 만약에 1등 당첨되면 너하고 나하고 반반씩 나눌 거야. 이렇게 우리 믿는 분이니까 너는 그러든 말든 그래 그래. 그러고 이제 장난스럽게 지나갔다는 거죠. 그런데 며칠이 지나서 전화가 그 친구한테 온 겁니다. 그 친구한테 전화가 와가지고 야 우리 복권 당첨됐다. 뭐라고? 야 40억이야 40억. 너 20억. 나 20억. 야 복권 당첨됐다. 분명히 이것이 좀 의심스러웠지만 계속해서 확인한 거죠. 진짜야? 정말이야? 진짜야. 내가 이 상황에 너한테 장난하겠냐. 진짜야. 그런데 그것을 그 전화를 받고 20억이라는 얘기를 듣는 순간 그 마음 가운데 뭐가 생겼겠어요? 기쁨이 확 올라오는 거예요. 기쁨이 올라오면서 이걸 가지고 뭐라 할까? 너무 행복하고 너무 기쁘고 야 이 20억 가지고 내가 뭐라 할까? 너무 이제 행복한 그 마음이 막 그래서 쇼파에서 앉아가서 전화를 받았는데 쇼파에서 일어나가지고 방방 뛰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는 이 친구하고 어떻게 찾아야 되냐라고 이야기하면서 마지막에 이 친구가 야 그런데 농담이야. 하면서 전화를 끊는데 화가 나기도 하면서 한순간은 그 친구에 대한 화가 있었지 하지만 반대로 나에 대한 화가 침이 올랐다는 거예요. 이 복권이 뭐라고 나를 들었다 놨다 하는가. 참 허탈 하더라. 그러면서 그때 당시의 성격 공부의 내용이 복음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우리가 복음을 대하는 자세, 복된 소식, 기쁜 소식이지 않습니까? 이미 우리는 그 혜택을 우리가 입은 사람들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에 대한 이 복음에 대한 나의 반응은 � �뜨미지근한 거죠. 언제 내게 복음이 있었는가. 이런 생각이 들더라는 거예요. 세상의 성공에는 일이 일비. 내가 들떠다가 또 하나씩 가라앉았다가 이랬던 내가 복음 앞에서는 하나님의 은혜 앞에서는 얼마만큼 내가 반응하고 있는가. 이런 회개가 된다. 사실은 그 형제만의 이야기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 삶이 그럴 때가 정말 많잖아요. 안식일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가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안식일은 특별한 날로 주셨습니다. 특별히 거룩하게 구별되어서 주신 날이 안식일이지 않습니까? 다시 말씀드리면 기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기도의 가치를 안다면 기도하는 우리의 태도는 어때야 될까라는 겁니다. 만약에 사업이 어려워져서 부도 직전까지 간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에게 누군가가 찾아왔어요. 야 삼성의 이재용 회장님이 당신의 상황을 듣거나 직접 만나서 도움을 주고 싶대. 라고 하는 얘기를 듣는다면 그 사람은 그 만남을 어떻게 준비하겠어요? 아마 평범한 약속처럼 준비하지는 않을 겁니다. 시간을 확인하고 할 말을 준비하고 또 온 마음을 다해서 그 만남을 기다리지 않겠어요? 왜입니까? 그 사람이 가진 영향력, 능력 이걸 알기 때문에 그냥 평범한 만남은 아닐 것이란 겁니다. 또 한 사람 있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랜 시간 동안에 큰 병으로 고통을 받았어요. 여러 병원을 찾았지만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봐도 결국에는 절망이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병을 가장 잘 알고 가장 잘 치료하는 세계적인 의사가 제가 직접 만나서 치료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라고 하는 제안을 해주었다면 그 만남을 가볍게 생각할까요? 절대 그렇지 않을 겁니다. 그 한 번의 만남을 가장 소중하게 여길 것입니다. 그리고 소중하기 때문에 나는 최선을 다해서 어떻게 하면 내 마음을, 내 사정을 최선을 다해서 그 사람에게 어필할 것인가. 우리 고민하지 않겠어요? 우리의 기도는 어떻습니까? 기도의 태도라는 것은 저는 단순한 기도의 습관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가 누구를 만나고 있는지를 믿음으로 나타내는 반응이다. 우리가 만나는 분은 세상의 어떤 권력자와 비교할 수 없는 분, 바로 그 크신 하나님이시지 않습니까? 온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생명을 주관하신 하나님, 불가능이 없으신, 전능하신, 모든 것이 능하신, 바로 그 하나님 앞에 우리가 나와서 그분을 대면에 기도하는 것. 이게 우리의 기도이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기도에는 반드시 그에 합당한 기도의 태도가 있어야 되고 그 기도의 태도는 우리의 모든 사정을 다 나타내는 간절함이라는 게 있어야 된다는 것. 간절함. 예전에 제가 처음 목회를 시작할 때 어떤 형제님이 간절하게 기도해야 됩니다. 라고 물으시길래 그때는 간절하게 기도하는가에 대해서 오래 제가 목상을 안 해봐서 곰곰이 생각하면 간절하게 기도한다. 그래서 제가 어떻게 표현했냐면 간이 저리게 기도하는 거다. 제가 이렇게 대답해 드렸던 기억이 나요. 간이 저리게. 얼마나 다급하면 내 오장육부가 우울하들 만큼의 마음을 쏟아내는 것. 이라고 생각을 한다. 이런 얘기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진정한 간절한 기도는 사실은 그런 식의 기도 아니겠는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오늘 본문에 히스기아가 보여주고 있는 기도에는 그 간절함이 묻어 있거든요. 간절함이 묻어 있거든요. 그래서 오늘 시간에 히스기아가 하나님께 기도했던 이 간절한 기도. 그리고 뒤에 보면 그가 기도했던 이후에 3일 만에 성전에 올라갈 수 있다. 즉 이 병이 나을 수 있다. 실제로 낫게 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이 간절한 기도를 하나님께서 반드시 들어주신다라는 겁니다. 우리 또한 우리가 만약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해야 될 충분한 이유와 그 간절한 만한 우리의 상황이 우리에게 두어진다면 우리는 간절하게 하나님께 구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히스기아가 간절하게 기도했던 그 기도의 모습을 그 기도의 태도를 우리도 가져야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히스기아는 어떻게 간절하게 기도했을까요. 첫 번째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간절한 기도는 하나님만 바라보는 태도입니다. 하나님만 바라보는 태도입니다. 내가 하나님 밖에 없다라는 그 믿음이 그 간절한 마음이 우리의 기도의 태도로 나타내야 된다는 거예요. 히스기아의 두 번째 기도지 않습니까. 그의 인생에서 가장 절박한 순간에 들여진 기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처음의 기도는 아수르의 침략이라는 국가적인 위기 속에서 히스기아가 어떻게 하나님께 나와왔는지에 대해서 지난번에 살펴보았습니다. 그때 히스기아가 마주했던 문제는 나라의 위기였는데 오늘 본문에 보면 이제는 더 개인적이고 더 깊은 문제에 맞닥뜨리고 있지 않습니까. 바로 자신의 생명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1절에 보니까 그때 히스기아가 병들어 죽게 되었다. 단순한 병이 아니고 죽게 되는 병이었다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심지어 아무스야드 선지자 이사야가 저에게 나와 세르대 요하의 말씀이 너는 집을 처치하라. 네가 죽게 죽고 살지 못하리라. 이미 하나님께서도 그가 얻은 병은 그냥 보통의 병이 아니라 죽을 수밖에 없는 병인 것을 이미 선언되어져 있어요. 다른 성경에 보면 똑같은 상황을 네 가족에게 유언해라. 이게 결정된 거죠. 죽음이 결정된 것입니다. 히스기아는 왕이었습니다. 나라를 다스릴 권한이 있습니다. 수많은 신하들이 있었습니다. 필요하면 그 나라에서 좋은 의사들 다 뽑아가지고 올려줄 만한 권력이 있었어요. 그런데 죽음이라는 문제 앞에서 왕도 한 사람의 연약한 인간에 불과하다. 왕의 권력도 생명을 붙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의 도움도 죽음 앞에서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 나타나고 있는 모든 위기, 그 앞에 사실 죽음의 위기들에 대해서 여러 상황을 말해주고 있는데 그걸 통해서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는 건 뭐냐면 인간 아무리 많은 능력을 가지고 많은 권력을 가지고 많은 힘을 가져도 어쩔 수 없는 연약함이 인간에겐 존재하다. 그게 생명에 대한 내용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희승이하가 그 순간 보인 반응이 뭐냐? 2절을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2절 읽겠습니다. 시작! 희승이하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요하께 기도하여 가로대 이상한 행동을 하죠? 희승이하가 하나님께 기도했다.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는데 희승이하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그 기도의 믿음을 어떤 태도, 외향적인 태도로 나타나고 있어요. 그게 뭐냐면 낯을, 벽을 향해서 기도했다는 겁니다. 이 표현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표현은 사실은 그가 자신의 얼굴을 벽적으로 일부로 돌렸다는 겁니다. 일부로 돌려서 얼굴의 방향을, 벽을 향해서 돌려서 기도했다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방향을 전환한 것을 말해주고 있어요. 그래서 단순하게 희승이하가 몸의 방향을 바꾼 것이 아니라 사실은 자신의 시선과 마음을 돌린 것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냐면 그 마음의 돌림 내가 한쪽 방향 한쪽 방향만을 향해서 가겠다라고 하는 이 마음의 변화를 이렇게 외적인 변� �로 보여주고 있는 거예요. 다시 말씀드리면 이슥야는 그때까지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라를 바라보는 사람이었지 않습니까? 자신의 능력을 바라보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도움을 바랄 수밖에 없는 그런 사람이었다는 거죠. 그런데 죽음 앞에서 그가 깨달은 것이 무엇이냐면 내가 의지했던 것들은 절대적으로 나를 구할 수 없다라는 거예요. 그래서 얼굴을 돌립니다. 사람들을 향했던 시선, 자신의 방법을 붙들었던 마음, 그걸 하나님께로 돌리고 하나님께로 맡기는 그 방향을 돌리는. 이것이 이슥야의 기도의 태도였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기도는 단순히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요청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기도는 내가 누구를 바라보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믿음의 표현이다. 사실은 기도하는 것 자체가 그런 것이기도 하다라는 거죠. 그래서 기도는 제가 아무나 기도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씀을 곧장 하곤 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에 있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은 기도의 상황이라는 것 앞에서 다른 방법들을 찾기 때문에 그래요. 그런데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다른 많은 방법들을 찾는 것 대신에 하나님이란 존재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이게 기도라는 형태, 태도잖아요. 그런데 이슥야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기도할 때 다른 사람을 대한 그런 기도의 모습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앞에 내가 벽을 앞에 둬서 즉 그 앞에는 오직 아무것도 보이지 않냐는 그 하나님만 바라보며 기도했다라는 겁니다. 때로 우리가 기도할 때 입술로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마음은 여전히 사람을 바라볼 수가 있습니다. 기도하면서 내 경험도 또 내 계산도 이걸 바라보며 기도할 때가 있다는 거죠. 그래서 간절한 기도는 하나님 앞에 오로지 나의 시선을 하나님께만 돋는 거예요. 하나님께만. 나의 시선을 온전히 하나님께로만 돌리는 것. 그런 의미에서 낯을 벽으로 향했다라는 표현은 신학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6장 6절 말씀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6장 6절 말씀 같이 읽겠습니다. 마태복음 6장 6절 시작 너는 기도할 때에 내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내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내 아버지께서 갚으시래라. 소위 말하는 골방의 기도죠. 골방의 기도. 골방은 단순한 장소를 말하는 것일까요? 예전에 한 모친이 존도가 되셨는데 그 모친이 교회에 와는 좀 멀리 계신 분입니다. 자주 못 오시니까. 그 가정을 신방을 했는데 그 가정에 갔더니 이 모친이 제 손을 붙잡더니 복자님 제가 하나님을 빚고 나서 만든 곳이 있어요. 제 손을 이끌고 어디로 가냐면 창고 같은 골방으로 데려가시더니 거기에 가봤더니 이렇게 책상 같은 상 하나를 앞에 두고 바닥에다 두툼한 방석을 두고 거기에 보니까 촛불을 이렇게 초를 놓고 웬 옛날 목걸이 그다 놨다 놓고 그리고 기도하는 손 모양이 있는 무슨 액자 비슷한 걸 놓고 여기가 제 골방이에요. 여기서 매일마다 아침에 하나님께 빌어요. 이분이 믿은 지 얼마 안 되신 분이다 보니까 옛날 자기가 하던 기도의 습관이 여전히 남아요. 빈대요. 그 앞에서 하나님 오늘도 들어주세요 라고 이렇게 해서 기도한다고 골방을 만드는 여기서 하나님께 기도한다고 저는 이제 믿음의 단계에서 정말 대단하시다라는 말씀을 드렸어요. 이러기가 쉽지 않으신데 이런 말씀을 드렸지만 사실은 이 골막이라는 것이 어떤 장소만을 말하는 것일까요? 여기서 말하는 것은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은밀한 중에 계신 내 아버지께 은밀한 중에 보시는 내 아버지 즉 하나님과 나와만 관계할 수 있는 그 자리를 말하는 거예요. 하나님과 나와만 교제할 수 있고 관계할 수 있는 세상의 소리도 내려놓고 사람의 평가도 내려놓고 나의 계산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서 홀로 서는 자리 홀로 서는 시간 희승현은 왕궁 안에 있었지만 바로 골방에 가서 그것을 벽 앞으로 표현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주변에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 마음에는 하나님과 자신만 존재하는 하나님 이제 제가 의지할 분은 누구밖에 없어요?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난주에 간증 드렸을 때 저에게는 그곳이 이제 쌍치기도소 같은 곳이었죠. 이제 그런 곳이죠. 그 고백이 낯을 벽으로 향했다 라는 행동으로 나타난 거죠. 어떤 성도님이 새벽기도를 단순한 습관으로 생각하지 않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분의 새벽기도는 하나님과 자신만이 만나는 거룩한 골방의 시간 거룩한 골방의 시간이죠. 아무리 늦게 잠든 날에도 때로는 출장 때문에 먼 곳에 머무는 날에도 새벽기도를 드릴 수 있는 상황이 오면 그 시간을 놓치지는 않아요. 왜 그렇습니까? 새벽기도가 자신의 노력이나 열심을 하나님께 보여드리는 그런 시간이 아니라 그 시간은 하나님 앞에 가장 먼저 나아가는 내 삶의 가장 먼저 가장 먼저의 의미가 그분의 신앙에는 있어요. 세상의 소리가 그분의 표현이 그렇습니다. 세상의 소리가 시작되기 전에 사람들의 요구가 밀려들기 전에 하루의 계획을 세우기 전에 먼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다. 이게 저한테는요 골방이에요. 그래서 이분이 이렇게 기도한다는 거예요. 하나님 오늘 하루의 주인은 제가 아닙니다. 하나님 제 생각과 계획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합니다. 하나님 제 힘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그래서 이분은 어떤 시간보다 이 새벽 기도 시간을 정말로 소중하게 생각해요. 그래서 가끔 이야기해보면 제가 퇴근을 어제 새벽 3시에 했는데요. 새벽 기도 나오시는 거예요. 성경의 믿음의 사람들도 같은 태도를 가진 분들이 굉장히 많죠. 다이슨 수많은 위기 속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10편 62편 5절 6절 보겠습니다. 10편 62편 5절 6절 함께 읽겠습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대저 나의 소망이 저로 쫓아 나는도다 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시여 나의 구원이시여 나의 산성이시니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다윗씨 문제가 없어서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문제가 너무 컸지만 하나님이 더 크신 그런 분인 것을 믿었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만 바란다 하나님만 본다 하나님 밖에 없다 그래서 그것이 삶에 드러나는 사람 이게 다윗 이지 않습니까 요 사밭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쟁의 위기 앞에서 이렇게 기도하죠. 역대하 20장 12절에 보면 우리 하나님이여 저희를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고 오직 주만 바라봅니다. 주만 바라보나이다.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믿음의 사람이 가진 태도 하나님만 바라보는 우리의 기도 생활을 들여다봐야 되지 않겠어요? 어려움이 생겼을 때 우리가 무엇을 먼저 찾는가에 대해서 이게 우리의 기도의 태도 있지 않습니까? 어떤 성도님이 큰 어려움을 만났습니다. 처음에는 해결 방법을 찾아봤지만 아는 사람에게도 물어보셨습니다. 찾아보고 여러가지 방법도 찾아보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동원해 봤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래서 마지막 그가 선택한 것이 제가 이제 좀 어려움이 생긴 분들이 와서 기도해달라 요청을 하셨을 때 제가 먼저 요청하는 것 중 하나가 뭐냐면 새벽기도에 오세요 라는 말을 자주 하거든요. 그분도 그렇게 말씀을 드렸어요. 새벽기도를 참석하셔라. 그게 우선이다. 하나님께 가는 것이 가장 먼저 우선 이시다. 제가 기도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겠지만 하나님은 형제님의 자매님의 기도를 먼저 기다리신다. 그걸 먼저 하셔야 된다. 그 믿음을 하나님 옆에 보여줄 수 있는 시간에 우리에게 있는 가장 소중한 시간 중에 하나가 저는 새벽기도 라고 생각이 된다. 이런 말씀을 드리거든요. 그랬더니 이분이 새벽기도 오셔가지고 이렇게 기도하시더라고요. 하나님 지금까지 저는 사람을 바라보았습니다. 제 방법을 붙들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깨닫습니다. 이 문제보다 크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그때 문제가 사실 사라지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기도의 가장 큰 열매가 그 문제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대하는 내가 달라지는 것이라고 자주 말씀드리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 불안이 평안으로 바뀌고 두려움이 어떤 믿음으로 바뀌는 이런 어마어마한 일이 사실 기도에 있어요. 어떨 때 가능합니까?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그 믿음의 태도에서 나오는 열매들이지 않습니까? 벽 앞에 산 자신 어떤 것도 보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겠다는 그 믿음의 태도. 여러분들은 이 믿음의 태도를 무얼 통해 나타나시겠습니까? 고민해 봐야 되지 않겠어요? 두 번째 간절한 기도는 하나님 앞에 자신의 삶과 마음을 숨기지 않는 태도입니다. 숨기지 않는 태도예요. 희승이하가 낯을 벽으로 향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사람을 피한 행동만은 아니었다는 거예요. 사람의 시선을 내려놓고 하나님만 바라보겠다. 하나님만 나는 바라본다. 라는 그런 믿음의 태도 있죠. 하나님만 바라본 희승이하는 이제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하냐면 자신의 마음을 쏟아내기 시작해요. 솔직하게 하나님은 내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인 것. 이것을 믿는 그 하나님 앞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쏟아내는 그게 3절입니다. 3절 같이 읽겠습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요하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의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소서 하고 심히 통곡하더라. 희승이하의 기도를 자세히 살펴보면 희승이하는 단순히 이렇게 기도하지 않았어요. 하나님 저 죽기 싫습니다. 하나님 제 병을 고쳐주셔야 돼요. 이렇게 기도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물론 생명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의 기도의 중심에는 뭐가 있냐면 하나님과 자신이 있어요. 기도의 중요한 건 그거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과 자신. 하나님 제가 주 앞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하나님 아쉽지 않습니까? 이런 기도를 쉽게 못합니다. 우리는 부끄럽거든요. 그래서 회개를 그래서 하는 거예요. 하나님 제가 진실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려고 했던 것 하나님 기억하시죠? 자신의 왕이라는 위치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업적을 말하지 않았어요. 하나님 앞에 살아온 자신의 삶. 자신의 신앙. 이게 온전히 좀 들여져야 됩니다. 그러면 여기 희승이하는 그 모든 자신의 진실함. 자신의 전심. 모든 마음. 이걸 하나님께 다 드러내지 않았습니까? 때로는 우리는 이걸 드러내게 되면 두 가지가 나타나죠. 저도 그래 보니까 회개밖에 할 게 없더라고요. 하나님 제가 이것도 잘못했고 생각해 보니까 이것도 잘못했고 저것도 잘못했고 이런 일을 당해도 제가 말할 자격이 없어요. 이럴 때가 참 많아요. 그래서 온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면 이건 솔직해지는 거거든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숨길 수가 없고 숨길 것도 없어요. 진짜로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니. 그래서 드러내는 모든 것을 쏟아내는 것이죠. 여기서 희승이하가 말하고 있는 놀라운 일은 뭐냐면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의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소서라는 말입니다. 주 앞에서라는 표현은 단순하게 내가 착한 일을 했어요라고 하는 말이 아니라는 거예요. 자신의 온 삶을 누구를 의식하며 살았다는 거예요?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았다는 겁니다. 하나님을 의식하고 살아가는 그 삶 전체를 말해주고 있는 겁니다. 사람 앞에서 인정받는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그 신앙. 희승이하는 지금 죽음이라는 가장 두려운 순간. 그 순간 그가 붙들고 있는 게 뭐냐면 자신의 왕권이 아니라 자신의 업적이 아니라 사람들의 평가가 아니라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였다는 거예요. 하나님 저는 하나님 앞에서 살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려고 했습니다. 하나님 제 마음을 아시지 않습니까? 그것이 그 간절한 기도로 나타났다. 그래서 5절에 보니까 그 간절한 기도 앞에 하나님은 뭐라고 반응하고 계시냐면 5절 보겠습니다. 5절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너는 돌아가서 내 마음의 주권자 이슥이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요하의 말씀이 내가 내 기도를 들었고 내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낳게 하리니 내가 3일 만에 요하의 전하에 올라가겠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단순하게 희승이야가 운 것을 기억한단 말일까요? 그래 내 눈물을 보았다. 아 눈물을 많이 흘려야 하나님이 들어주시는구나. 뭐 그렇습니다.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나님은 사실 우리 마음을 아시는 분이죠. 무슨 얘기냐면 희승이야가 울고 있는 이 눈물이 어떤 의미인지를 아신다는 거예요. 단순하게 우리가 눈물을 흘린다가 아니라 그 눈물을 흘리는 그 마음을 아신다는 겁니다. 마음을. 10편 139편 2절에 보면 주께서 나의 안고 일어섬을 하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하나님께서 보신 눈물은 뭐냐? 눈물의 양이 아니라 눈물 속에 담긴 마음이 하나님 앞에 숨기지 않는 진실입니다. 이걸 보았다는 거예요. 한나의 기도가 흐르지 않습니까? 한나는 오랜 시간 자녀의 문제로 고통받은 사람 아닙니까? 그 사람 앞에서 쉽게 표현하지 못했던 그 마음을 어떻게 했어요? 하나님 앞에 쏟아내는 거예요. 그래서 3일상 1장 10절에 보면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통곡하면 때로 사람이 마음이 괴로워서 사람에게 그걸 표현하는 경우가 있죠. 막 화내고 물론 그래야 세상 사람들은 스트레스가 풀린다. 이런 얘기도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마음 우리의 감정이라는 것을 사람 앞에 풀어내는 사람들이 아니라 누구 앞에 쏟아내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 쏟아내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예전에 우리의 마음을 너무 믿지 마셔라. 우리의 감정을 너무 믿지 마셔라. 우리의 감정은 거품 같은 거다. 거품이란 거 뭐냐. 거품을 걷어내 보면 실체가 있지 않냐. 그래서 그 겉으로 드러났던 감정 이것이 좀 사그라질 때까지 좀 기다릴 줄 알아야 된다. 그래서 감정을 사람에게 그대로 드러내지 말고 좀 기다렸다가 기다렸다가 드러낼 때 우리는 실수를 훨씬 줄일 수 있다. 이런 말씀을 드렸던 기억이 나요.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기억을 안 하시는 것도 좋습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새롭게 들을 수 있으니까 성부님들은 아 그런데 우리 하나님 앞에서는 감정을 다 쏟아내는 거예요. 여기 있는 이슥이야처럼 그것이 때로는 눈물로 쏟아낼 줄도 알아야 됩니다. 너무 괴롭고 너무 고통스럽고 정말로 힘들면 다 그걸 쏟아내고 내 삶을 다 쏟아내고 그런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그 간절한 기도. 어린아이가 부모 앞에서 자신의 마음을 숨기지 않지 않습니까? 부모가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부모가 자신을 받아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에요. 아프면 울고 무서우면 울고 좋으면 기뻐하는 왜냐하면 그 관계 안에서 숨길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관계 가운데서 역시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하나님은 우리의 아픔을 모르시는 분이 아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 마음을 가지고 자신한테 나오기를 원하시고 바라시죠.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저는 괜찮은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제 마음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제 마음이 무너질 때도 있어요. 그래서 이렇게 하나님 앞에 나옵니다. 솔직하게 그 하나님 앞에 자신의 이 모든 삶을 쏟아내고 그걸 통해서 회개할 건 회개하고 역사하길 바랄 건 바라는 이 간절한 기도가 우리에게 있어야 된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의 감정을 좀 드러낼 줄 알아야 되는데 그래서 하나님 앞에 은혜도 기쁘게 드러낼 줄 아는 그래서 안시게르는 좀 드러내는 거예요. 다윗이 오랜 시간 동안 성전을 떠나 있었던 언약계가 들어올 때 그거 뭐 했죠? 춤췄습니다. 춤췄어요. 왕의 채통이 없습니다. 왕의 채통이 없어요. 그런데 그걸 보고 이 다윗의 아내인 미갈이 뭐라고 말했습니까? 왕이 돼가지고 채통 없이 뭐 하는 거냐고 직접적으로 말하면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다윗이 왜 그랬냐고 말하냐면 사무엘하 6장 21절 보겠습니다. 사무엘하 6장 21절 사무엘하 6장 21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다윗이 미갈에게 이르되 이는 요호와 앞에서 한 것이라 저간에 아비와 그 온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로 요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를 삼으셨으니 내가 요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뭐라고 말하냐면 나는 사람 앞에서 한 게 아니라 하나님 앞에 이 온전한 감사를 이렇게밖에 할 수가 없다 이렇게 하는 거예요 기쁜 찬양을 하면 기뻐할 줄 알아야 되고 감사 찬양을 하면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귀하면 귀한 걸 그대로 드러내는 게 필요하지 않습니까 하나님 앞에 해야 될 것을 사람 앞에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게 우리는 때로는 그럴 때가 있으니까요 간절한 기도는 감정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하나님께 가져가는 거예요 슬픔도 하나님께 가져가고 두려움도 하나님께 가져가고 기쁨도 하나님께 가져가는 것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마음을 아시는 아버지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겁니다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이 오하의 말씀이 내가 너의 그 간절한 기도를 들었고 온 마음을 쏟아낸 너의 눈물을 내가 보았다 그래서 마지막 간절한 기도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붙드는 태도입니다 그래서 11기와 20장 6절에 보니까 내가 내 나를 15년을 더할 것이다 15년을 연장받는 어마어마한 그 기도의 응답을 받게 되지 않습니까 이 말씀 봅니까 내가 내 생명을 주장한다 내 나를 내가 붙들고 있다 이 말씀을 해주고 있는 거예요 단순하게 이 사람의 병을 고쳐준 어떤 이런 걸 말하는 것이 아니라 너의 생명이 주인 도대체 무엇이냐 누구이냐 희승이하는 하나님의 약속을 듣고 이 표적을 또 구하지 않습니까 8절에서 희승이하가 이사에게 이르되 요하께서 나를 낫게 하시고 3일 만에 요하의 전에 올라가게 하실 무슨 징조가 있나이까라는 그 표적을 구하게 되는데 뭐 이런 표적을 구하는가 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표적을 어떻게 했냐면 들어줘요 11절에 보니까 선지자 이사야가 요하께 강구함에 아우스의 일용표 위에 나아가던 해 그림자로 10도를 물러가게 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일용표라는 것은 오늘날의 시계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해의 위치에 따라 그림자가 생기고 이 그림자를 통해서 시간이 가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도록 이 일용표 있죠 놀라운 건 뭐냐면 해 그림자가 뒤로 물러갔다는 거예요 무슨 얘기냐면 마치 시간이 거꾸로 가는 거죠 이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하나님을 드러내는 일이에요 이 시간의 주인이 누구라는 거예요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하시는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냐 단순하게 그냥 병 하나 고쳐주시는 하나님 그런 분입니까 그런 분 아니라는 거예요 단순하게 그냥 어떤 부여함을 주는 재테크 전문가 뭐 이런 겁니까 그런 거 아니지 않습니까 간혹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의 기도의 대상을 그렇게 여길 때가 많습니다 내가 고민하는 것들을 해결해 주는 고민 전문가 뭐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전능자십이죠 시간의 주인이신 그래서 대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라는 말씀에 합당한 온 세상의 주인 온 세상의 창조자 그 하나님 그래서 우리가 기도하는 그 기도는 마땅히 우리 그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내 모든 신뢰를 그 앞에 걸고 드리는 겁니다 하는 거죠 이 말씀을 우리 하나님 앞에 꼭 마음가운데 새겨 하나님께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어떤 간절함이 우리의 기도 가운데 묻어나는지에 대해서 생각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기도에 대한 믿음은 또 태도라는 것은 기도할 때 우리가 어떤 믿음을 가졌는가에 따라 태도가 달라지는 거예요 이왕 새벽 기도에 대해서 얘기가 나왔으니까 어떤 분이 그런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장로님이 제가요 사실은 저도 목회를 하고 싶어가지고 신학을 할까도 했는데 결정적으로 저는 아침잠이 많아가지고 목자님들은 새벽 기도해야 되니까 그래서 제가 이 목회를 포기했어요 물론 여기는 농담도 들어갔겠지만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새벽 기도 때문에 목회 못하겠다 뭐 이런 얘기를 그러면 저는 쉬웠을까요 새벽 기도가 왜 이렇게 힘들어요 그래서 처음에 제가 새벽 기도를 하는 것은 의무감에 있습니다 참 목회자가 돼가지고 별일을 다 하죠 의무감에 있어요 왜 이렇게 힘든지 몰라요 그래서 새벽 기도를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새벽 기도의 시간을 5분 단위로 알람을 한 5개 6개를 맞추네요 저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게 뭐냐면 이 새벽 기도는 의무감이 시작을 했는데 새벽 기도를 참석하다 보니까 거기 믿음이 생기기 시작해요 목회자가 참 죄송합니다 저는 과정을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왜냐하면 새벽 기도 오셔가지고 은혜 받는 분들이 생겨요 성령 받는 분도 생기고 병을 고침받는 분들도 생기고 제가 좀 그렇죠 새벽 기도하니까 저런 일도 생기네 그러면서 믿음이 생기니까 이 자발성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이제 지금은 새벽 기도를 오는 것이 어렵지는 않아요 아침에 한 번 듣고 일어나서 준비해서 나옵니다 알람은 물론 지금도 맞춰놓지만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저는 성도님들에게 있어서 기도의 소중함, 기도의 믿음이 있다면 반드시 하나님께 내가 기도하는 기도의 태도가 좀 나타났으면 좋겠습니다 하루 중에 어떻게 기도하시는가 우리가 우리가 올 수 있으며 새벽 기도를 좀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는 많은 믿음이 담길 수 있어요 먼저입니다. 하나님 먼저입니다. 일상의 계획에 하루의 계획에 먼저는 하나님이십니다. 다른 것을 바라보는 것 이전의 내가 하나님입니다. 이 우선의 가치가 여기에 담겨져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가 이 새벽기도의 때거든요. 이것만은 아니죠. 물론 새벽기도만 답니까? 그러진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할 수 있는 많은 골방의 기도들이 골방의 시간들이 골방의 때들이 있어요. 골방의 방법 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 옆에 기도할 제목이 충분히 있다면 이걸 담아내는 간절함이 있어야 됩니다. 담아내는 간 절함. 우리는 무엇을 통해 나아가시겠어요? 꼭 그것을 붙잡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희승이하의 이런 간절한 기도에 뭐라 말했습니까? 내가 너의 기도를 들었고 너의 눈물을 보았다. 이 눈물은 단순한 그냥 눈에서 흐르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간절함의 표현 마지막 결과 같은 것이 않습니까? 오늘 시간에 이 말씀이 우리 마음껏에 새겨져서 성령 받기를 위해서 기도하시는 분, 병고침을 위해서 기도 하시는 분, 자녀를 위해서 기도하시는 분. 저는 여기에는 간절함은 필수잖아요. 꼭 있어야 된다고 믿으니까. 이것보다 급한 거 없지 않습니까? 사실은. 돈 가지고 기도하라. 이거 아니잖아요. 그렇다면 그 간절함이 꼭 묻어났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앞에. 이슥이야처럼. 그럴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추천드립니다. 다 같이 묵도하시겠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AI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 정리한 내용입니다. 정확한 말씀은 영상 원문을 확인해 주세요.
관련 지교회
대방교회
이 영상은 대방교회 채널의 콘텐츠입니다.
같은 채널 다른 영상
대방교회 채널 최신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