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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예수교회 True Jesus Church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이요셉 · 롬8:29-39

제작일 2026.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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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본문: 롬 8:29-39
찬양: 434, 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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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8:29-39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은혜에 대한 말씀으로, 인간의 노력보다 하나님의 주도와 은혜가 중심에 있다.

본문로마서 8:29-39
  • 로마서 8:29-39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은혜에 대한 말씀이다.
  • 이 구원은 하나님의 주도하에 이루어지며, 인간의 노력이나 성과에 의존하지 않는다.
  • 신앙생활에서 고난과 균형, 하나님의 인도와 인간의 노력이 모두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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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구원 계획

  • 하나님의 구원은 "미리 아시고, 미리 정하시고, 부르시고, 의롭게 하시고, 영화롭게 하신다"는 다섯 단계로 이루어진다.
  • 이 과정은 하나님의 주도하에 이루어지며, 인간의 노력이나 성과에 의존하지 않는다.
  • 그리스도인의 탄식은 하나님의 목적에 이르기 위한 과정이며, 이는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
  • 세상 사람들과 다른 점은 그리스도인의 탄식이 노력으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의 목적에 이르는 것이라는 점이다.

구원의 본질

  • 구원은 하나님의 완전한 일로, 인간의 노력보다 하나님의 은혜와 선택에 의존한다.
  •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는 제목은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의 확신을 나타낸다.
  • 고난은 믿음의 일부로, 선택하지 않더라도 찾아온다.

신앙생활과 고난

  • 참예수교회의 한 자매는 극심한 고난과 건강 악화를 겪었지만, 결국 치유와 믿음의 성장으로 이르렀다.
  •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사람을 더 깊이 인도하고, 믿음을 성장시킨다.
  • 신앙생활에서 균형이 중요하며, 하나님의 인도와 인간의 노력은 모두 필요하다.
  • 어려움과 대적은 피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이를 통해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든다.

하나님의 은혜와 확신

  •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모든 필요함을 채워주시며, 믿음 안에서 확신을 주신다.
  • 스스로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끊는 유일한 방법이다.
  • 신앙은 죄의식과 회개,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성장한다.
  • 하나님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길 수 없다는 확신을 주신다.
  • 인간의 노력과 절망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에 의존한다.
  • 삶의 굴곡은 하나님의 은혜 덕분이며, 현재도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며 살아야 한다.
  • 하나님의 은혜는 삶에 함께 하며, 구원의 열매를 맺게 한다.
전사(자막) 전문▼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하나님 말씀 증가하겠습니다 우리 함께 하나님 말씀 로마서 8장 29절부터 39절까지 말씀을 다 같이 찾겠습니다 하나님 말씀 로마서 8장 29절에서 39절까지 말씀 중에서 우리 먼저 32절까지 말씀만 함께 읽겠습니다 로마서 8장 29절에서 32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그런 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아멘 네 오늘 이 시간은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어떤 수행자가 있었습니다 이 수행자가 묵상과 또 성찰을 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을 하고 있는데 쥐가 방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쥐를 어떻게 없애서 내가 이 묵상을 더 깊이 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하다가 아 고양이를 키우자 이렇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고양이를 키워서 상당히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고양이를 키우려고 하니까 고양이를 먹여야 될 것 아닙니까 우유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이 우유를 어디서 마련할까 하다가 젖소를 키우게 되었습니다 젖소를 키우니까 우유가 생기죠 그래서 우유를 가지고 고양이를 먹였습니다 그런데 젖소를 먹여야 되지 않습니까
젖소를 먹이다 보니까 수행할 시간이 너무 부족한 거예요 묵상하고 성찰할 시간이 너무 부족한 것입니다 그래서 열심히 또 생각을 해봤습니다 아 결혼해서 아내와 자녀가 생기면 그 가족들이 이 젖소를 돌봐주지 않을까 하고 결혼을 했습니다 그래서 아내와 자녀가 생겼습니다
그 수행자는 자기 수행을 계속 할 수 있었을까요 우리의 정신을 일깨워주는 이 이야기는 인도 수행자들에게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들, 이야기입니다 어떤 뜻으로 하는 말일까요 이런 문제에 빠지지 말고 본질에 집중해라 본질에 집중해라 그런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흐트러지는 일들이 워낙 많다 보니까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서 무뎌져가고 또 흐트러져가는 자신을 일깨우고자 하는 그런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저기 인도에 있는 수행자들의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생각해보면
이 세상에는 헛된 것에 마음을 두고 싶지 않고 또 일시적인 것 조금 있으면 없어질 것에 마음을 두지 않고 본질적인 것을 찾으려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세상에 너무 많다는 거예요 정신을 차리고 보면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불교에 있는 사람들은 번뇌를 벗어나서 해탈하기를 추구하고 있고
또 우리 그리스도인도 색깔은 다르지만 또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내 모습에 근심하면서 온전해지기를 또 원하고 있지 않습니까 또 무신란자들도 사실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들 나름대로 정치와 경제와 과학 이런 것들을 이용해서 이 세상을 어떻게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 볼까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이 그 사람들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노력을 할 뿐이지 사실 모든 사람이 다 같은 걸 추구하고 있다 같은 노력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언뜻 들어보면 또 맞는 것 같기도 하죠
로마서를 보면 하나님도 그것을 알고 계신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그리스도인이 탄식하고 있다 이런 말씀을 배우지 않았습니까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린 사과처럼 우리가 기다리고 탄식하고 있다 이렇게 말씀을 배웠습니다 이것은 다름이 아니라
단지 그냥 아무 의미 없이 시간을 보내다가 내가 죽고 나면 내 몸이 부활해서 영원천국에 가겠지 그것이 아니라 내가 이 땅에서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을 이루고 예수님처럼 그 사명을 다 이루어서 나도 예수님처럼 몸의 부활에 이르겠다 그런 탄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뿐만이 아니라 성경 말씀을 보면 모든 피조물이 다 탄식하고 있다 이것을 우리가 배우지 않았습니까 로마서 8장 21절 보면 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7장을 가서 기억하시면
여러분 기억하십니까 7장을 가서 보시면 아담에 속한 사람이 굉장히 크게 탄식하고 있지 않습니까 어쩌면 우리보다 더 크게 탄식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뭐라고 탄식하고 있습니까 오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겠느냐 이렇게 탄식하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다 각자의 영역에서 각자의 목표를 가지고 탄식하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면 차이점이 있을까요 그들과 우리 사이에 차이점이 있을까요 무엇이 중요한 것일까요 누가 더 열심히 탄식하고 누가 더 열심히 수행하는가 누가 더 열심히 완성이 이르기를 노력하는가
그 열심의 정도의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그것이 중요한 것일까요 때로 어떤 사람들을 보면 그 노력 불완전한 자기의 만족하지 않고 조금 더 나아지려고 하는 이 노력을 우리가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불교에서도 수행하는 분들을 보면 정말 진심으로 하는 분들을 보면
아주 대단합니다 카톨릭도 마찬가지죠 과거 수도원을 보면 어떻게 저렇게 살 생각을 했을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성지순례를 가보신 분은 한번 가보셨을 텐데요 신해산 있는 광야에 가보면 거기 신해산 아래에 수도원이 있습니다 정말 놀랍더라고요 왜냐하면 우리가 버스를 타고
오랫동안 달려서 거기에 갔단 말이에요 제가 거기서 들은 이야기가 뭐냐면 거기와 얼마나 더운지 이 버스도 보통 그냥 버스는 갈 수가 없대요 벤츠 버스여야 된대요 제가 직접 들었습니다 뻥치는 게 아니에요 너무 더워서 엔진이 퍼지기 쉽고 에어컨도 작동이 안 되어서
그 안에서 갈 수가 없는 겁니다 좋은 버스여야 된대요 그 버스를 타고 그 오랜 시간을 가야 나오는데 어떻게 거기까지 갔는가 어떻게 거기까지 갈 수 있었지?
어떻게 거기서 살 수 있었지?
무엇이 또 얼마나 간절하면 무엇이 그들을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지?
굉장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책에서만 봤지 정말 여기서 사람들이 살았구나 그들은 무엇을 원했던 걸까?
그들의 노력과 열심을 생각해보자면 좀 부끄럽죠 그렇게도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그들도 훌륭한 것 아닌가?
우리는 별것 아닌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들의 탄식은 아무리 훌륭해도 그 수행과 노력이 아무리 훌륭해도 그것은 노력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탄식 참 그리스도인의 탄식은 탄식으로 끝나지 않고 그것은 반드시 열매를 맺습니다 세상에 이런 자화자찬 있을까요?
너무하는 거 아닙니까?
남들은 깎아내리고 우리는 좋다고 이렇게 말하는 것 여러분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을 들어보시면 왜 그런지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자 본문으로 돌아가서 우리
8장 28절에서 30절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28절에서 30절 읽겠습니다. 시작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 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자 여러분 29절 30절 이 말씀은 굉장히 유명한 말씀입니다. 이 두 구절에 별명이 있어요. 그 애칭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면 구원의 다섯 계단 혹은 구원의 황금사슬 골든체인이라고 부릅니다. 어떤 한 사람이 최종적으로 구원에 이르는 것 그 과정에 대해서 다섯 단계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 다섯 단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첫 번째 미리 아시고 두 번째 미리 정하시고 세 번째 부르시고 네 번째 의롭게 하시고 다섯 번째 영화롭게 하신다 이것입니다.
아주 간단하게 말씀을 드리면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아담을 만들고 지구를 만들기도 전에 이미 우리라는 존재를 알고 계셨다는 거예요.
우리라는 존재의 삶을 아셨다는 것입니다.
미리 아셨다는 거예요.
그리고 나서 우리를 먼저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태어나서 뭔가를 하기도 전에 착한 일 나쁜 일을 하기도 전에 택하셨다는 거예요.
택하셨기 때문에 우리 삶의 역사 어떤 한순간에 우리를 불러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불러주시기 위해서 우리를 다양한 경로로 인도해 주셨겠죠.
그리고 결국 의롭다 하심, 칭의에 이르게 하셨다는 거예요.
이것은 세례를 말하죠.
그리고 최종적으로 영화롭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거예요.
자, 여러분.
여기서 아주 특별한 점이 뭐냐면 뭘까요?
주어가 모두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에 대해서 주어가 우리가 하나도 없다는 거예요.
주어가 전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죠? 하나님께서 미리 하시고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시고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하나님께서 불러주시고 하나님 께서 의롭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영화롭게 하셨다.
이것입니다.
이 말씀만 보면 우리는 주머니에 손 꽂고 있어도 될 것 같아요.
그렇지 않습니까?
사람이 주어가 돼서 내가 주어가 돼서 하는 게 하나도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서 하는 말씀이 뭐냐면 구원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28절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일을 만나게 하셔서 선을 이룬다.
좋은 일만 아니라 때로는 어려운 일, 이런저런 일을 통해서 이렇게 이르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100% 하나님의 일이라는 거죠.
하나님이 주시기 나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택하기 나름이라는 거예요.
구원을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사람의 탄식, 우리가 탄식하고 있다.
이 끝에 이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굉장히 의미가 있는 거죠.
여러분의 삶을 한번 돌이켜보면 여러 번 어디에 부딪혔을 겁니다.
그때마다 부딪히는 것으로 인해서 삶의 방향이 바뀌게 되죠.
그렇죠?
그래서 우리가 여기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뭐라고 말하기 힘들지만 때로 어떤 성도님들을 보고 그분의 삶을 보면 자기가 택하지 않은 고난 때문에 지금 믿음 안에 있을 수 있구나 이걸 느낄 때도 있어요.
우리 가운데 누가 고난을 택하겠습니까?
그렇죠?
택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러나 자기에게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전했다는 거예요.
그런 일도 있구나 이런 것을 느낄 때가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참예수교회의 어떤 한 자매님은 굉장히 거친 분이 있었습니다.
그분을 제가 종종 생각을 합니다.
이분이 귀신에 들려가지고 여차저차 해가지고 우여곡절 끝에 참예수교로 왔습니다.
그래서 치유를 받았죠.
그런데 그 치유 과정에서 건강을 거의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한 번은 화장실에서 넘어졌는데요.
화장실에서 스스로 일어나는 걸 못해요.
화장실에서 넘어졌는데 주변에 사람이 없으니까 아무리 불러도 밖에서 반일하고 있는 남편이 들을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3시간인가 4시간인가 그걸 화장실의 바닥에 이렇게 엎어져가지고 있었대요.
건강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아주 우리 박하나 집사님 아십니다.
가보셨을까요?
아주 경치 좋은 집에 살고 계시거든요.
제가 가서 차매님 참 좋겠어요.
이런 집에 사셔서 이렇게 뭐라도 제가 칭찬을 해야 되겠지 않겠습니까?
했더니 좋으면 뭐합니까?
저한테는 감옥입니다.
그러나 합니다.
저도 감옥에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랬을까요?
그런데 그분이 너무 건강에 안 좋다 보니까 돈 있어도 누릴 수가 없고 누릴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한 번은 원망을 했대요.
교회에 앉아가지고 원망을 했대요.
그랬더니 그분이 정말 하나님의 큰 호통 소리를 듣고 땅바닥에 내쳐졌습니다.
그분이 떼골떼골 굴렀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분이 달라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도대체 너한테 뭘 얼마나 더 해줘야 되냐 화를 내시더래요.
그리고 제가 그 교회에 부임했을 때 그분의 표정이 천사 같았습니다.
그리고 믿음에 관해서 대화를 하면 말이 통해요.
그래서 제가 생각할 때 만약에 이분이 건강했다면 이분은 교회를 떠났을 것 같아요.
박안나 집사님 동의하십니까?
동의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분도 동의를 하시더라고요.
건강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가 믿음 안에 있는 거죠.
그렇죠?
하나님께서 합하여서 선을 이룬다라는 말씀을 참 분명하게 보여주는 그런 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은혜와 이런 다스림을 우리에게 주지 않으면 우리는 왜곡되기가 참 쉽습니다.
저도 제 과거를 돌이켜보면 그때는 몰랐지만 정말 이때 그때 참 위태로웠구나 이런 순간이 참 많습니다.
지나고 나서 보니까 아찔한 순간이었구나 이럴 때가 참 많단 말이에요.
그러나 그때그때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또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회개하게 해주시고 그랬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여기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시기 나름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믿으십니까?
예, 믿으셔야 합니다.
물론 우리 신앙에는 균형이 필요합니다.
28절을 잘 읽어보시면 이 생각이 너무 치우쳐가지고 나는 특별한 노력을 안 해도 된다 이렇게 생각을 한다면 안 되겠죠?
하나님이 주시기 나름이라며 그러면 될 놈은 되겠네 이렇게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아요.
28절을 보면 다시 한번 읽어보시면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균형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뜻대로 부르심을 받아야 된다는 거예요.
이것은 거듭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게 무엇입니까?
내 가치관이 바뀌었다는 거죠.
그래서 일평생에 내가 예수님을 닮아가고 나에게 주어진 일을 완수하고자 하는 그런 마음이 있고 탄식이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탄식이라고 할 만한 정도의 노력과 싸움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참 피곤하다.
이런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신다.
역사해 주시고 모든 것이 합하여 선을 이루도록 해 주신다.
그런 사람에게
이런 말씀입니다. 여러분 어느 쪽이든지 치우치면 병이 듭니다. 우리의 노력도 중요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도 중요합니다. 둘 다 100%입니다. 우리가 노력할 때는 우리의 노력으로 되는 것처럼 노력해야 되고 때로는 우리의 노력이 아무 의미 없이 하나님께서 주시기 나름이라는 그런 믿음이 같이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모순된 것 같지만 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거기서 우리가 잘 균형을 잡을 때 우리 신앙이 치우치지 않는다는 거예요.
여러분 그래서 누구든지 싸움이 있어야 합니다. 자기가 신앙의 경력이 얼마나 됐든지 아무리 훌륭하든지 상관 없이 자기 나름의 투쟁이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탄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지금 어디서 싸우고 계십니까? 무엇과 싸우고 계십니까?
그것으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탄식하고 계십니까?
만약에 싸우고 계신다면 우리 하나님께서 함께 싸우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령께서 탄식한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서 그걸 아시고 우리가 탄식할 때에 우리를 도우사, 우리의 연약함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탄식하십니다.
혹 여러분의 가정을 위해서 또 싸우고 기도하고 계신다면 우리 하나님께서 틀림없이 알고 또 그 기도를 듣고 계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다니엘 9장을 보겠습니다.
다니엘 9장입니다.
다니엘 9장 20절에서 23절 읽겠습니다.
다니엘 9장 20절에서 23절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내가 이같이 말하여 기도하며 내 죄와 및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자복하고 내 하나님의 거룩한 산을 위하여 내 하나님 여우 앞에 간구할 때 곧 내가 말하여 기도할 때에 이전 이상 중에 본 그 사람 가브리엘이 빨리 날아서 저녁 제사를 드릴 때 즈음에 내게 이르더니
내게 가르치며 내게 말하여 가로돼 다니엘아 내가 이제 내게 지혜와 총명을 주려고 나왔나니 곧 내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내게 고하러 왔느니라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그런즉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이상을 깨달을 지니라 다니엘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탄식할 때였습니다
어떻게 할 수 없으니까 하나님 옆에서 탄식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것이 굉장히 힘들었을 거예요 열심히 기도하면 기도할수록 그것이 굉장히 힘듭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힘이 되는 말씀이 있죠 천사 가브리엘이 왔을 때 뭐라고 얘기를 하냐면 네가 기도를 시작할 때 나에게 명령이 내려왔다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네가 기도를 시작할 때에 하나님께서 내게 명령하셨고 내가 이제 도착했다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를 할 때에 하나님께서도 일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되겠습니다 그 인내 가운데 기도의 열매를 얻으시는
우리 성도인들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어서 본문을 보겠습니다 로마서 8장 31절부터 이어지는 말씀을 보시면 우리가 여러 가지 불안을 떨쳐버리고 평안과 또 확신에 이를 수 있는 그런 말씀을 주고 31절부터 39절을 보시면 여기에 다섯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보다 더 열심히 탄식하는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의 탄식이 우리의 노력이 온전치 않다 할지라도 구원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으로 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더 이상 근심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자 여기서 다섯 가지 질문을 하고 있는데요
하나씩 우리 읽어볼까요 31절을 보시면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이것은 몰라서 물어보는 게 아니라 확신을 얻기 위한 질문이죠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느냐 32절을 보시면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겠느냐 세 번째는 무엇입니까?
33절입니다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겠느냐 송사한다고 하는 것은 고발한다는 거죠 네 번째는 무엇입니까?
누가 우리를 정죄하겠느냐 그 다음에 다섯 번째는 35절입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겠느냐 이렇게 다섯 가지를 질문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신앙 생활을 시작하고 신앙에 좀 바로 서려고 하면 어려움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내가 신앙 생활을 잘하겠다 이렇게 마음을 먹으면 모든 것이 순조롭게 잘 풀리죠?
그러면 이런 고민을 왜 하겠습니까?
어려움이 있고 대적이 있습니다 문제가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것들과 마주하기 싫어서 두려워하기도 하지 않습니까?
예전에 제가 오래전에 제가 학생 시절에 한 가지 기억이 나는데요 저하고 제 친구가 같이 교회를 다녔는데 교회에서 잘 때 뭐라고 했냐면 그 친구는 저희 집에서 잔다고 이야기를 하고 저는 그 친구 집에서 잔다고 이야기를 하고 우리는 아버지 집에서 잤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그 친구가 살던 동네였고 아는 사람들이 많아서 교회에 드나드는 것을 누가 보잖아요 그래서 교회 앞에 그 길이 있었는데 그 길 너머에는 차가 들어갈 수 없는 아주 좁은 골목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이 친구가 그러면 이 친구가 교회를 나갈 때
이렇게 나가는 게 아니라 교회에서 저 반대편 골목까지 다다다다다다 뛰어갔습니다 아무도 못 보게 들어올 때 나갈 때 아무도 보지 못하게 다다다다 뛰어서 갔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골목을 삥 돌아가지고 저리로 집에 갔죠 대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려움이 있고 방해가 있다는 거죠
신앙생활을 하면 모든 것이 원만하지는 않습니다 세상 문제도 있죠 신앙생활은 참 좋은데 먹고 사는 것이 좀 어려워질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사단의 회방도 있죠 제가 이런 일을 경험한 적이 있는데요 어떤 한 자매님을 어떤 구도자를 전도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노력을 했는데
그분에게 사실 사랑이 좀 역사를 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같이 기도하고 말씀을 가르치기 위해서 시간을 잡았어요 거기까지 오는 것도 굉장히 어렵지 않습니까 그렇게 시간을 잡았는데 안 오는 거예요 왜 약속 시간에 또 안 오나 하고 봤더니 그분이 편의점 점주였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상장 시간하고 뒷근무자가 와야 이제 자기가 맡기고 오는 거였어요 그런데 뒷근무자가 안 온 거예요 그러니까 자기가 올 수 있습니까 못 온 거죠 그래서 뒷근무자가 왜 안 왔느냐 이렇게 나중에 보니까 그 뒷근무자가 그분도 거제도 분인데요 거제도는 산이지 않습니까
아파트에 옹벽이 많아요 옹벽이 뭔지 아시죠 벽을 쳐가지고 아파트를 지었는데 주차를 하다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주차 그 블럭을 넘어서가지고 인도를 넘어서서 벽을 뚫고 옹벽 밑으로 차가 추락을 했어요 한 10미터 정도 됩니다 차가 이렇게 내리 꽂혔습니다
그러니까 주인이 올 수 있습니까 그래서 참 이렇게도 해방을 하는구나 결국 만나지 못했습니다 반드시 사단의 해방이 있습니다 어려움이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그럴 때는 대적이 있지만 대적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느냐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럴 때 딱 돌파를 해버려야 합니다 눈을 딱 감고 그냥 돌파를 해버려야 그런 것이 사라집니다 연기처럼 사라져버린다는 것
두려워서 멈칫할 필요 없다는 거예요. 눈치 보고 두려워하고 회피하고 원만하게 하려고 하면 그런 일이 계속 생기고 계속 반복됩니다. 계속 그 선에서 주저주저하게 된다라는 거죠.
그래서 우리 하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요. 두려워 말라 두렵건데 내가 너로 그들 앞에서 두려움을 당 하게 할까 하노라. 너 무서워하지 마라.
네가 무서워하면 정말 내가 무섭게 해주겠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우리가 용 기를 내면 돌파하고 나면 그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아무도 우리를 대적할 수 없다라는 거죠 .
그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있지 않습니까? 오늘 거제교의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이야기를 오늘 말씀을 생각 하는데 몇몇 분이 생각이 나더라고요.
한 분은 제가 있었을 때 구도자였는데 나중에 가니까 우리 진자 같은 어떤 형제님입니다. 이분이 참예수교회에 오는 과정을 저한테 말씀해 주셨는데 참예수교회에 왔을 때 너무 성령이 충만하게 느껴졌대요.
제가 있을 때 구도자로 왔는데 1년 전에 왔었답니다. 그런데 뭐라고 그러냐면 교회가 성령이 더 충만해진 것 같다. 뭘 보고 그렇게 말했는지 모르겠는데 하여튼 좋게 봐주니까 고맙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참예수교를 접하고 참예수교로 오고 싶은데 그분이 저기 시골교회를 다니고 있었거든요. 하필 그 교회 담임 목사님이 고등학교 선배였어요.
그 시골교회 인원이 몇 명 되지도 않는데 고등학교 선배님이 담임 목사인데 거기에서 자기가 떠나온다. 그리고 사는 건 계속 거기 사는 거니까.
이게 너무 힘들었던 것입니다. 배신하는 것 같이 느껴졌던 거예요.
자기 빼고는 다 노인밖에 없는데 자기가 뭐라도 해야 되는데.
그리고 거기서 수고하는 담임 목사님을 배신하고 내가 나 쫓아가고 여기 가야 되나. 이게 입이 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거든요. 사람과의 의리도 중요하지만 하나님과의 의리도 중요하다.
그리고 제가 떠났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나중에는 마음을 먹었어요. 내가 이번 주는 내가 가서 말하 겠다. 하고 큰 마음을 먹고 갔습니다.
그래서 다미 목사님이 안 왔더래요. 전도사님이 설교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왜 이렇게 됐지?
예배를 마치고 전도사님이 전신도를 모았습니다. 한 10명 정도 되는. 전신도를 모아놓고 뭐라고 그러냐면 다미 목사님이 갑자기 우리 교회를 떠났다는 거예요. 우리를 버리고. 저기 다른 데에 갔다는 겁니다.
그분이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하나님이 나를 도우셨구나. 마음에 부담 없이 올 수 있도록 하나님이 나를 도 우셨구나.
그래서 우리 교회에 오셔서 세례받고 거듭나서 신앙생활을 잘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렇게 벽을 뚫겠다는 마음으로 가야 하나님께서도 길을 열어주신다는 겁니다.
대적이 있지만 두려워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실제로 무서운 것은 대적이 아니라 하나님이죠.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시면 우리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리고 오늘 이 말씀을 보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 여 내어주시니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않겠느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신앙으로 인해서 잃어버리는 것이 있는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다 채워주신다.
필요한 만큼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신앙으로 인해서 염려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염려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쌀포대를 쥐고 달리기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동작이 늦어지겠죠. 그렇죠?
염려는 우리의 마음을 둔하게 만듭니다.
우리 마음을 어리석게 만듭니다.
누가복음 21장을 보겠습니다.
누가복음 21장 34절입니다.
누가복음 21장 34절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해지고 뜻밖의 그날이 덧과 같이 너희에게 이말이라.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러운 것이 얼마나 더러운 것인지 좋은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잘 분별하지 못하고 살아가게 된다는 거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에 불안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특별히 세상을 선도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사람들 앞에서 굉장히 여유가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그들 속에 불안함이 사실을 가장 큽니다.
이 마음 속에 있는 불안함, 모호함은 사람이 벗어날 수 없는 거죠.
소유를 통해서 이것을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오직 믿음으로만 해결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셨는데 우리에게 무엇을 아끼시겠습니까?
우리에게 필요하다면 무엇이든지 주시지 않겠습니까?
주시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거나 우리에게 위험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시지 않는 것일 겁니다.
그런 믿음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더 말씀드리자면 여러분, 우리 신앙생활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게 뭐냐면 바로 죄의식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보면 누가 우리를 송사하리요?
누가 우리를 정죄하리요?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때로 죄의식에 빠져서 나 자신을 비난하고 그래서 동굴에 숨어버리는 경우가 있죠.
그렇죠?
여러분, 그러나 우리가 부족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언제든지 그 자리에서 내가 해나가는 것을, 해야 할 것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고 하셨는데 누가 우리를 의롭지 않다고 하겠습니까?
여러분, 이 말씀을 믿으시고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를 붙드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마음가운데에 확신을 주실 때가 있을 것입니다.
서로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핍박을 당한다 할지라도 우리를 그리스도에게서 끊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만약에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끊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마귀는 그것을 했을 겁니다.
그러나 그 방법이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마귀가 쓰는 단 한 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게 뭔지 아십니까?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는 단 하나의 방법이 여러분 뭔지 아십니까?
스스로 나오게 하는 것입니다.
미혹하는 거죠.
스스로 넘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아담과 하와를 타락시킬 수 있었다면 했을 거예요.
그런데 할 수 없으니까 속이는 말을 하는 거지 않습니까?
스스로 넘어지게 하는 것 이것밖에 우리를 끊을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없습니다.
다만 내가 할 수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버리고 내가 하나님을 떠나고 내가 넘어지면 넘어지는 거죠.
그러나 세상에서 심지어 죽음조차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말씀의 결론 맺겠습니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은 어쩌면 우리가 흉내낼 수도 없을 만큼 크게 노력하고 탄식하죠.
그러나 여러분 구원은 사람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기 나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굴곡진 삶을 살아왔지만 그 가운데 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서 여기에 이른 것 아닙니까?
우리가 지금부터도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탄식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며 살아간다면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모든 사람의 삶에 함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마지막에 구원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이 은혜를 맛보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AI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 정리한 내용입니다. 정확한 말씀은 영상 원문을 확인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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