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배로운 믿음 (토)
벧후1:1-2
제작일 2026.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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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복목자 #TJC전주 http://tjc.or.kr
AI 설교 정리
베드로 후서 1장에서 믿음의 귀중함과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서 성장하는 믿음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본문베드로 후서 1장 1~2절히브리서 12장 2절요한복음 6장마태복음 25장
- 베드로 후서 1장은 믿음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서 성장하고 실천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 믿음은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은혜와 평강을 얻는 귀중한 가치를 가진다.
- 믿음은 하나님의 주님의 약속으로 주어지며, 개인의 성장에 따라 크기나 깊이가 다를 수 있지만,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서 성숙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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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귀중함
- '보배로운 믿음'이라는 표현은 믿음이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귀중하고 가치 있는 것임을 강조한다.
- 믿음은 세상의 보물보다 더 귀중하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은혜와 평강을 얻는다.
- 믿음은 하나님의 주님의 약속으로 주어졌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생겨난다.
믿음의 특별함
- 믿음은 성경을 읽고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믿음과는 구별되어야 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은 특별함.
- 믿음을 가진 자는 하나님께 인정받아야 하며, 그 믿음은 유전되지 않음.
-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자만이 받을 수 있고, 그 믿음은 동일하지만 개인의 성장에 따라 크기나 깊이가 다를 수 있음.
믿음의 성장과 실천
- 믿음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서 성장하고 성숙해진다.
- 믿음은 덕과 함께 있어야 하며, 감정이나 사리사욕으로는 부족하다.
- 믿음은 하나님의 성품과 연결되어 있어, 성령, 세례, 안식일 등도 함께 요구된다.
- 믿음은 단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실천되어야 한다.
전사(자막) 전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말씀 증거하겠습니다. 성경말씀 베드로 후서 1장 1절 2절에 있는 말씀 봉독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도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알므로 은혜와 평강이 너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아멘 오늘 읽는 말씀은 베드로 사도가 모든 믿는 형제들에게 편지를 하면서 인사의 말씀으로 기록된 내용을 읽었습니다. 우리도 인사하십시다. 할렐루야 반갑습니다. 왜 반갑다고 하느냐 그러면 설명을 해야 될 것 같아요. 우리 동일하게 하나님으로부터 지의심을 받는 우리 형제 자매님들이 함께 모여서 예배드리게 되었으니 반갑다는 얘기고요. 두 번째는 하나님께서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동일한 보배로운 믿음을 받은 분들이 함께 모여서 예배드리니 감사하고 고맙다는 뜻에서 감사하다고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 다음에 세 번째는 왜 반갑냐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가 똑같이 받을 사람들이잖아요. 좋은 믿음 생활에서 꼭 하나님의 나라를 받을 수 있는 우리 형제들이 함께 모였으니까 반갑다고 하는 그런 의미에서 반갑습니다. 라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활짝 웃으시면서 옆에 있는 분들에게 똑같은 내용으로 반갑습니다. 한번 하십시오. 네 반갑습니다. 내가 왜 이 구구히 설명을 했느냐 그러면 본문에도 보면 12절에 있는 말씀을 보면 이런 말씀이 항상 너희들에게 생각나게 하기 위해서 이 말씀을 전하라고 했는데 오늘 인사말도 구구히 설명을 하는 것은 이 말씀 자주자주 생각나게 하라고 생각나게 하시도록 하려고 이렇게 설명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본문에 있는 말씀대로 보배로운 믿음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믿음 그러면 됐지 굳이 보배로운 믿음이라고 하는 말을 별로 안 쓰지 않습니까? 성경에도 보면 다른 곳에는 별로 없어요. 그런데 베드로 사도는 마지막 편지를 하면서 보배로운 믿음을 동일하게 받는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라고 하면서 믿음이라는 말 앞에다가 수식어를 붙였어요. 보배롭다고요. 우리 성도님들은 믿음을 보배롭게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대체로 그냥 믿으면 되는 거지 그게 어떻게 보배롭고 안 보배롭고 하는 거야? 라고 생각할 테지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마는 베드로는 왜 굳이 보배롭다고 하는 말을 썼을까라는 생각을 해볼 수가 있어야 제가 그래서 저도 이 말씀을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까 세상에서는 신기한 보물들이 참 많아요. 우리들의 마음을 빼앗아가는 보물들이 많이 있거든요. 그런데 그것들이 더 보물일까? 아니면 믿음이 더 보물일까라고 생각을 해보면 믿음이 더 보배로운 것 같아요. 왜 그렇습니까? 세상에 있는 것들은 우리가 그 보배를 가지면 마음이 뿌듯하고 사는데 도움이 되고 또 영화롭게 생각을 할 수 있는데 이런 것들은 모두 우리가 세상을 떠나게 되면 다 썩어진 것들이에요. 그렇죠? 왠고 왠고 보아가 많이 있다 하더라도 내가 세상을 떠나게 되면 다 부질없는 것들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사는 동안에 귀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믿음보다 보배롭지는 않다. 그러나 이 믿음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도 보배로운 믿음을 가지게 되면 본문에서 말하는 대로 은혜와 평강이 더할 것이고 또 나아가서 내세에 가서 하나님의 영화로운 나라를 연결시켜 주시는 믿음이기 때문에 세상의 것과는 비교가 안 돼요. 그렇죠? 이해가 안 되나요? 이해가 안 돼요. 믿음보다 더 보배로운 것은 없어요. 그러나 문제는 뭐냐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을 수십 년 믿어도 세상의 진귀한 보아보다 믿음이 더 보배롭다고 하는 생각을 가진 분들은 그렇게 많지 않아요. 왜 그럴까요? 믿음의 가치를 잘 모르기 때문에 그래요. 그런데 믿음이 보배로운 것은 뭐냐 그러면 믿음이 주는 가치가 보배로운 거예요.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에게 아무리 좋은 것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나와 상관이 없어요. 그런데 그 하나님께서 그 보배로운 것을 우리 사람이 보기에만 보배로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생각하시기에 가장 보배로운 것을 약속으로 주면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보배와 이 믿음이 연결되어 있는 거예요. 그래서 보배로운 거예요.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성모님들은 어떻게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믿음은 어디서 난다고 얘기를 해요? 바울사도는 믿음은 들으면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인하느니라 라고 말씀이 되어 있는데 그 말을 우리가 간단하게 생각을 해버리면 그냥 믿음은 들으면서 나는 거야. 하나님의 말씀 들은 데서 믿음이 생기는 거야. 라고 생각하고 알 수가 있는데 그런데 본문에 있는 말씀을 보면 믿음은 누가 주셨다고 얘기를 해요? 본문에 있는 말씀을 한 번 더 읽어보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에게 주는 사람이 없으면 받는 사람이 없잖아요. 주는 이가 없으면 받을 게 없잖아요. 그런데 이 믿음을 가리켜 하나님이 주셨다고 얘기를 해요. 여러분은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을 가지고 계신가요? 아니면 내가 성경을 읽고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그 믿음으로 하나님을 믿으신가요? 바울사도는 이렇게 얘기를 해요. 그게 잘 이해가 됐든지 안 됐든지 간에 베드로사도는 하나님 앞에 보배로운 믿음을 받았어요. 그런데 그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형제들이 믿음 안에 있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와 같이 동일한 믿음을 우리가 받았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하나님께서 주셔서 우리가 이렇게 받았다는 얘기가 되는 거죠. 믿음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성경을 읽고 믿어지는 믿음은 아무나 가질 수 있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자만 받을 수가 있어요. 본문에 있는 말씀은 그런 뜻으로 하는 얘기예요.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건지 아니면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음으로 인해서 내 마음속에 생기는 건지 잘 모르잖아요 그건 알 수가 없어요 근데 그 삶에 들어가면 아마 구분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어쩌면 삶을 보아도 잘 모를 수도 있어요 왜냐하면 마태복음에 있는 말씀을 보면 그런 말씀이 있어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믿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를 놓고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력도 하며 귀신도 쫓아내며 많은 권능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나는 너희들을 도무지 알지 못한다 믿지 않고 선지자 노력할 수 있습니까? 믿지 않고 귀신 쫓아낼 수 있어요? 있죠 믿지 않고 권능을 행치 않을 수 있느냐 하면 사실은 믿음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은 아니라는 거예요 만약에 그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 안에서 믿음으로 주여 주여 하고 믿음으로 역사하고 그 믿음 안에서 그런 능력을 행했다고 한다면 하나님이 모르신다고 할 리가 없잖아요 당신이 주시는 믿음 안에서 했으니까 알아야 될 거 아니에요 우리가 주여 주여 주님께서 주시는 믿음을 가지고 수십 년 동안 열심히 믿고 내가 이렇게 하나님 앞에 왔습니다 라고 했었을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믿음을 가지고 믿는 믿음이라면 그래 착하다 잘했다 라고 이야기할 테지만 하나님이 주시지도 않는데 자기 스스로 잘못된 교훈을 듣고 믿고 그 안에서 충성해놓고 주여 주여 내가 주여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했습니다 주여 이름으로 귀신 쫓아냈습니다 주여 이름으로 능력 행했습니다 라고 말한들 그것이 하나님께 맺혀지지 않다라는 거예요 그게 뭘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으로 해야 된다는 거죠 그런데 불법을 해가는 자들아 내게서 물러가라 라고 말씀하신 거예요 내가 믿음을 갖는 것이 중요한 것인데 하나님으로부터 주시는 믿음을 받았을 때 고마웠고 감사하고 보배로운 것이지 사람 속에서 일어나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이 인정해 주지 않는 믿음 안에서 자기 스스로 선지자 되고 병고치는 능력 가지고 또는 권능을 행한다 하더라도 그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베드로 사도는 우리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믿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다 라고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이 말씀을 보면서 우리가 이런 생각을 해야 될 것 같아요 스스로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믿음이 별로 가치가 없어요 그렇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주셔서 받았다고 생각을 하게 되면 그건 정말로 귀한 거예요 왜냐하면 주시는 자만 받으니까 세상 모든 사람들이 왜 하나님을 안 믿습니까 하나님을 아는 믿음을 주지 않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우리는 그 사람들보다 뭐가 똑똑합니까 부족한 점이 더 많을지라도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믿음을 주셔서 하나님을 믿는 거예요 세상에서는 믿음의 유산이라고 하는 말을 요새 많이 쓰더라고요 믿음은 유전되는 것입니까? 성경에 믿음이 유전된다는 말이 없어요 만약에 믿음이 유전이 된다면 다윗같이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서 압살롬 같은 아들이 날 수가 없어요 그런데 다윗같은 하나님 앞에 충성된 종이 아들을 낳았는데 그건 완전히 불량자예요 자기 아버지를 죽이고 자기가 왕이 되려고 하는 사람 그건 유전되는 거예요? 안 되는 거예요? 엘리 제사장 같은 분에게서 홈리와 피누하스가 났어요 그런데 이 홈리와 피누하스는 자기 아버지처럼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아요 하나님의 말씀을 귀히 여기지도 않아요 왜 그 제사장 아래서 아들을 낳았는데 왜 유전이 안 될까요? 이런 일들은 성경이 너무 많아요 유전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주셔야 받는 거예요 어린아이에게도 어머니에 따라서 교유를 다닐 수가 있어요 모태신앙일 수는 있어요 그러나 그가 가지고 있는 신앙이 어머니의 신앙과 같을 수는 없는 거예요 물론 디모델에서 보면 디모델라고 하는 사람은 내 의조모에게 그 신앙이 있고 내 어머니에게도 그 신앙이 있더니 너에게도 이런 신앙이 있구나라고 이야기하는데 어떻게 보면 유전인 것처럼 이야기 되지만은 하나님께서 그 의조모에게도 그 신앙이 주었고 그 어머니에게도 그 신앙이 주었고 디모델에게도 그 신앙이 주시는 거예요 하나님이 우리의 각 사람에게 믿음을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의 주위에 보면은 나와 좀 다른 사람들이 있잖아요 우리 다 다르잖아요 생각하는 것도 다르고 여러 가지가 다 다르지만은 그래도 똑같은 게 있네요 뭐냐면은 하나님께서는 나를 소중히 여기는 것처럼 곁에 있는 사람도 소중히 여겨서 나에게 보배로운 믿음을 주시는 것처럼 그에게도 보배로운 믿음을 주었다는 거예요 우리는 똑같이 하나님의 보배로운 믿음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이에요 우리가 보기에는 다르지만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다 같이 보배로운 사람들이에요 하나님은 아무에게나 믿음은 주시지 않으세요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마태복음 7장에 있는 말씀을 보면은 거룩한 것을 개에게 던지지 말고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지 말아라 그것들이 받고 찢는 이라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으세요 예수님은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는 것을 원치 않으세요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는 것도 원치 않으세요 거룩한 것이 거룩하신 것인 줄 아는 사람에게 거룩한 것을 줘야 되고 진주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에게 진주를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그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가 있어요 그렇죠?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도 그래요 사람이 보는 눈이 각각 다르기는 하지만은 그래도 마음에 이 사람은 믿을만해 라고 하는 사람에게는 마음을 주지만은 이 사람 말을 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어 하는 사람에게는 할 필요가 없잖아요 하나님께서도 당신의 이 보배로운 믿음을 주실 때 우리 모두에게 주셨는데 만약에 밟고 찔들찔들 그런 간수하지 못할 사람 같으면은 안 주셨을 것이라는 얘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믿음은 똑같은 거예요 동일한 믿음이에요 그런데 크고 작을 수는 있어요 아직 우리가 그 믿음에 대한 이해와 그 믿음에 대한 인식이 확실하고 그 다음에 믿음으로 인한 하나님의 모든 은혜와 축복이 우리와 이렇게 함께하게 될 때 우리가 이렇게 믿음에서 자라난 정도에 따라서 큰 사람도 있고 적은 사람도 있고 그럴 거예요 그렇지만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배로운 믿음을 주셨다고 한다면은 그 보배로운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보배로움에 참여하실 수 있도록 하나님이 이루실 거예요 왜 그러느냐 그러면은 히브리서 12장 2절에 있는 말씀을 한 구절 보실까요? 히브리서 12장 2절에 보면은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사 부끄러움을 개우치 않냐 하시더니 여기에 처음에 보면은 믿음의 주라는 말이 나와요 믿음의 주라는 말이 무슨 뜻이에요? 우리가 모두 믿음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의 주인이 누구예요? 그 믿음의 주인이라는 뜻이에요 뜻이에요. 우리가 누구에게 믿음을 받았다는 얘기예요? 우리 주님, 예수님에게, 하나님에게 믿음을 받았다는 얘기예요. 다음에 있는 말씀을 보면은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 예수를 바라봐라. 무엇을 온전케 하신다는 거예요? 믿음을 온전케 하신다는 거예요. 우리에게 믿음을 주신 이도 하나님이시고 우리의 믿음을 온전케 성숙시켜가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거예요. 하나님은 당신이 원하신 자는 반드시 믿음으로 성공할 수 있도록 이끄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요한범 6장에 있는 말씀을 보면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 중에 내가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냐고 모두 마지막 날에 부활시켜서 영광에 이르게 할 것이다. 말씀을 하고 계세요. 누가? 하나님이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주시는 모든 예수님의 사람들을 그러니까 그 말 속에는 구원받을 자가 포함되어 있는 거예요. 전부 내게 주시는 자 내가 구원시키자 구원시키자 그런데 이 사람들을 누가 구원시키느냐 그러면은 하나님이 구원시키신다는 거예요. 예 내가 똑똑해서 구원시키는 구원시키는 하나님께서 내가 구원시키는 구원시키는 구원시키는 것입니다. 성숙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면은 하나님이 하시는 거예요. 열심히 있는 그 사람 속에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그 믿음을 성장시키는 성숙시키는 그런 일을 지금 하고 있는 거예요. 내가 믿음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그 믿음으로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많은 덕을 세우면서 믿음의 생활을 하고 있어요. 내가 잘나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분으로 그렇게 하시도록 만드시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좀 부족한 점이 보일 수도 있어요. 왜 믿음의 생활을 저렇게 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주시는 믿음이 가지고 있는 믿음이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라면은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를 장성한 믿음으로 성숙시켜가지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만드실 거예요. 믿음이 왜 보괴로우냐 그러면은 그러기 때문에 보괴로운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믿음보다도 세상의 것들을 더 가치있게 생각하는 경향들이 너무 많아요. 우리가 세상에 나가서 자기의 자존심을 드러내게 될 때 무엇이 자기로 금지를 가지게 만듭니까? 어떤 사람은 돈일 수도 있어야 나는 이런 사람이야. 그래도 나는 돈을 이만큼 가진 사람이야. 어떤 사람은 지식이나 지혜일 수도 있어야 나는 이런 사람이야. 그런데 그런 것들은 중요한 건 사실이에요. 우리가 인간 사유에서는 너무너무 중요한 것들이지만 믿음 안에서는 그것보다 우에 놔둬야 될 것이 있어요. 그게 뭐예요? 보배로운 믿음이에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보배로운 믿음이 그런 것들보다 우에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사도들은 돈을 구한 적은 없어도요. 예수님에게 믿음은 달라고 구하는 기록이 있어요. 사도들은 예수님에게 믿음을 달라고 기도드렸어요. 그 말씀이 어디에 있느냐 하면 누가 보금 17장 5절에 보면 사도들이 예수님에게 믿음을 구하는 내용이 나와요. 돈을 구한 적은 없어요. 또 마가복음 9장 24절에 있는 말씀을 보면 어떤 부모에게 귀신 들린 아이가 있어요. 이 귀신 들린 아이가 아버지 보기에 너무 다가운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가서 이 아이가 지금 귀신 들렸는데 귀신을 좀 쫓아내 주십시오라고 하니까 기도했겠죠. 그런데 안 되는 거예요. 나중에 예수님에게 데리고 왔어요. 예수님 이 애가 귀신이 들려서 이렇게 고생을 하는데 당신이 제자들에게 가서 나서달라고 하니까 못 나서 주십시다. 할 수 있으면 이 아이를 좀 구해 주십시오. 하고 이야기하니까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할 수 있거든 무엇이냐 믿기만 해라. 그러면 아이가 구원을 받을 것이다. 라고 이야기하니까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제가 믿음이 없습니다. 믿음을 더해 주셔서 예 고쳐주시더라는 거예요. 우리는 하나님 앞에 뭘 많이 기도합니까? 예 세상에 부족한 것들 너무 많죠. 넘치게 가지고 있으면서도 부족해요. 좋은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더 좋은 집을 못 가져서 부족하고 좋은 차 가지고 있는 사람은 더 좋은 차 타고 싶어서 부족하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어떤 일을 하게 될 때는 잘 되는데도 그래도 부족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드리고 예 그럽니다. 그런데 이런 것 같아요. 어린아이에게 잘 익은 맛있는 사과 하나하고 그 사과만 하는 금더미하고 둘을 주면 뭘 선택할까요? 어린아기니까 당연히 어린아기니까 사과를 선택을 하겠죠. 금은 돌멩이잖아요. 금덩이는 먹을 수가 없어요. 우선 필요한 것은 사과인 거죠. 사과를 취해요. 그게 어린아이들이 하는 짓이에요. 어른들은 어떨까요? 어른들은 안 그러겠죠. 그런데 생활 속에 들어가 보면 똑같아요. 똑같아요. 우리가 기도하는 것 중에 하나님 내가 이렇게 믿음으로 살아가려고 보니 정말로 믿음이 부족해요. 믿음 부족 안 하던가요? 저는 부족해요. 그런데 그 부족한 믿음을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아요. 차고 넘쳐도 못 달라고 기도드립니까? 하는 일 잘되게 만들어 달라고 기도하고 나에게 복을 달라고 기도하고 복을 달라고 하는데 하늘나라 복이에요? 아니면 세상 복이에요? 세상 사는 가운데 복 달라고 기도하고 이런 걸 취하는 거예요. 그럼 뭐예요? 우리는 영적으로 보았었을 때 아직도 좋고 나쁜 것에 대한 구분이 잘못 가고 있는 거예요. 잘 안되는 거예요. 그렇지 않습니까? 바꿔야 해요. 무엇이 소중한지를 알아야 된다는 거죠. 믿음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어요. 돈 가지고 천국 가는단 말 들어보셨어요? 없어요. 지식 가지고 천국 가는단 말 들어보셨어요? 없어요. 그럼 무엇을 가지고 간다고요? 믿음을 가지고 간다고요. 그런데 믿음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우리 참 부족하게 살면서도 내가 이렇게 믿음으로 살려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싶은데 살고는 싶은데 살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거예요. 그럼 사람 다 그런 거지 뭐 해가지고 그냥 지나면 그냥 지나가는 것이겠지만 정말로 보배로운 믿음을 가지고 그 보아를 향해서 가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믿음 없으면 믿음 달라고 해가지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그곳에 가려고 해야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베드로 사도가 이 믿음의 형제들에게 이 보배로운 믿음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그런 의미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내 믿음을 한번 측량을 해보셔야 돼요. 내가 가지고 있는 믿음이 돈보다 더 귀요기는 믿음이냐 아니면 지식보다 더 귀한 믿음이냐 내 건강보다도 믿음이 더 귀한 것이냐 물어보셔야 돼요. 없으면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준비하셔야 돼요.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신랑을 맞을 열처녀의 비유가 나와요. 다섯은 슬기가 있고 다섯은 미련의 이스라엘 나라의 결혼식은 밤중에 이루어지는데 신랑을 맞을 신부들이 기름을 준비하고 등을 준비해가지고 밤중에 신랑을 맞을라니까 이렇게 신랑을 기다리고 있는데 예수님이 좀 늦게 오시는 거예요 초밤에 오셨으면 참 좋을 텐데 늦게 오시더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늦은 시간에 신랑이 오는 소리가 난다고 하면서 뭐다 깨우고 일어나라고 하는데 어떤 사람의 불들은 꺼져가는 거예요 불 꺼지면 신랑 맞을 수 있어요? 없어요? 없어요 그런데 지혜로운 처녀, 지혜로운 다섯 처녀에게는 등도 있고 기름도 준비를 해놨어요 그래서 불이 꺼져가더라도 부으면 되는 거예요 옆에 꺼져가는 등을 가지면서 기름이 없는 사람은 있는 사람에게 가가지고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조금 빌려달라고 얘기를 하니까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하는 얘기가 우리가 쓰고 너희의 쓰기도 서로 부족할까 싶으니까 차라리 사는 자들에게 가서 사가지고 오세요 라고 이야기를 했어요 완전히 어떻게 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 미련한 처녀는 그제서야 기름을 사러 갔어요 그동안에 기름을 가지고 준비한 처녀들은 신랑을 맞아서 안식에 들어갔고 문은 닫혔는데 나중에 기름을 사가지고 와서 보니까 문이 닫혔어요 그러니까 문을 두드리면서 지금 기름 사가지고 왔는데 문 좀 열어주세요 내가 신랑을 맞이하랍니다 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그 안에서 뭐라고 얘기를 하시느냐 그러면은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대로 내게서 떠나가라 라고 얘기를 했어요 기름을 가진 사람들은 뭐라고 얘기를 하냐면은 너와 내가 쓰기에 부족할까 싶으니까 파는 자들에게 가서 사와라 라는 게 파는 자 믿음을 파는 자가 누구예요? 예수님이에요 이미 예수님은 끝났어요 다 팔아버렸어요 그럼 어떤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내가 너에게 믿음 준 적 없어 준비하라고 하는 적도 없어 라고 얘기하시는 것과 똑같은 얘기예요 자기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그렇게 살 거라는 얘기예요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 거예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보배로운 믿음을 가진 사람은 보배로운 믿음을 가진 것만큼 극악한수하고 그 믿음을 따라 살으려고 열심히 노력을 할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어느 쪽이세요? 믿음의 생활은 그럭저럭 하는 게 아니에요 예수님이 길이고 진리라고 그러는데 예수님의 진리 따른 게 아니라고 우리가 천국 갈 수 있는 사람 있어요?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그 믿음으로 인해서 큰 보배로운 것을 약속해 주시고 그 약속해 주시는 것은 왜 약속을 해 주시느냐 그러면 세상에 썩어진 것을 욕심으로 취하는 생각들이 사람들에게 다 있기 때문에 그 보배로운 것을 보여주면서 그 보배로운 것을 바라보면서 이 썩어질 것들을 취하지 말라고 치우지 말라고 보배로운 것을 보여주시는 거예요 우리가 믿음을 가졌으면 하나님이 얼마나 보배로운 것을 이 믿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고 싶어 하는가 하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거죠 그래서 세상에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믿음을 주시지 않으니까 믿고 싶은 생각도 없고 우리가 아무리 가서 권면을 해도 하나님이 믿음 안 주시니 이해가 되지를 않으니 믿을 수가 없는 거예요 우리는 세상에 믿음의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요 아마 기독교에서 조사한 내용으로 보면 한 천만 명이 믿음의 생활을 한다고 합니다 나라를 치리하는 위정자들도 믿는 사람들 참 많아요 그런데 믿는 자들이 정치를 하는 것을 보면 개떡같이에요 믿음으로 안 하더라는 얘기예요 자기 사리사욕 찾으면서 명예를 위해서 이렇게 일하더라는 거예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왜 그렇게 살까요? 하나님 주신 믿음이 아니어서 그런 것인가 생각해요 왜냐하면 그들은 만약에 그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면 하나님이 그들에게 성령도 주셨어야 될 거 아니에요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듯이 예수 그리스의 피로 씻어서 세례도 받게 만들어야 될 것이고 안식일도 기억해서 고르키 지키게 만들어야 될 거예요 그런데 그런 건 안 해요 왜 그럴까요? 자기들이 안 하고 싶으니까 안 하는 거예요 성경에는 분명하게 말하고 있지만 성령은 주시지 않아서 못 받는 거고 안식일 지킬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안 지키는 거예요 이것은 율법이니까 우리는 유전을 지키는 거죠 3일체를 누가 만들었는데 3일체를 우리가 믿어야 된다 해가지고 유일신은 안 믿고 3일체를 믿어요 그 3일체를 믿고 싶어요 그 3일체를 믿고 싶어요 그 3일체를 믿고 싶어요 그 3일체를 믿고 싶어요 16세기에 나오는 얘기라든가 그런 얘기가 있더라고요 그런데 그건 사람의 말은 믿어요 그러면서 하나님의 말씀은 안 믿어요 그런 것을 보니까 아마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이 아니지 않는가 라고 생각이 돼요 저도 잘 몰라요 어쨌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보배로운 믿음은 그 보배로운 것을 내가 깨닫고 나는 그 보배로운 믿음을 지켜나가기 위해서 힘써 노력을 해야 되는 거죠 그 다음에 그 보배로운 것이 뭐냐 그러면 마태복음 25장 31절에서 34절에 있는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에 심판의 과정을 얘기를 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믿는 자 중에서 오른편에는 양들을 세우고 왼편에는 염소들을 세웠습니다 양과 염소는 전문가가 아니면 구원을 할 수가 없어요 비슷하다는 거죠 그런데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는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을 하라 라고 이야기를 하고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는 저주를 받은 저들아 나를 떠나쳐 붕버스에 들어가라 라고 이야기를 해요 얼마나 엄중한 얘기인지 몰라요 그런데 그것이 별로 엄중하게 여겨지지를 않아요 그러면서 나는 오른편에 서 있을 거야 라고만 생각을 했죠 그것보다는 그것보다는 나는 과연 내가 가지고 있는 믿음이 하나님께로 받은 것이며 또는 내가 가지고 있는 믿음이 정말로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를 상속할 수 있는 그런 믿음으로 우리가 성장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우리가 한번 되돌아 봐야 된다는 것이오 그래서 성경에서는 이런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덕이 있어야 된다 그 뒤에 있는 말씀을 보면 그래요 너희는 믿음의 덕을 덕의 지식을 이런 말씀을 하고 있지요 믿음만 있으면 된다 이렇게 생각을 하시면 그건 잘못이에요 믿음은 있어야 돼요 그런데 그 믿음이 어떤 믿음이냐가 중요한 거예요 믿음에는 반드시 덕이 있어야 된다고 얘기를 해요 믿음에 덕이 있어야 됩니다 덕이라고 하는 것은 모둠을 품어주는 거예요 모든 사람들에게 같이 베푸는 게 덕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습니까 요나서에 보면 요나는 하나님의 선지자예요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까 없는 사람이겠습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이 요나에게는 뭐가 없느냐 그러면 덕이 없어요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나타나서 저 이누의 성에 가가지고 사흘길을 돌아다니면서 복음을 증가하는 거예요 앞으로 40일이 있으면 이 성을 내가 멸할 테니 회개를 하라고 복음을 전파를 하라는 거예요 그런데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임에도 불구하고 듣고 싶지 않는 거예요 믿음은 있으신 분이에요 그런데 안 듣고 싶은 거예요 왜 그러느냐 그러면 아수르나라 사람들이 이스라엘나라 백성들을 너무 혹독하게 고통을 시켰거든요 그러니까 마음에 한이 생긴 거예요. 저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벌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야. 하나님이 언제 벌하실까? 빨리 벌해주시기만을 바라는 것이 요나의 신정이었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거기 가서 복음 증거하라는 거예요. 요나는 알아요. 복음을 증거하게 되면 그 사람들이 회개할 줄을 알아. 회개하면 하나님이 용서해 주실 것이거든. 그래서 싫은 거예요. 감정이 복받치는 거예요. 믿음에 감정이 섞이면 안 되잖아요. 그런데 이 요나는 믿음은 있는데 덕이 없어. 그래서 포용을 하고 싶지 않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분들도 포용하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다시 도망을 갔어요. 제가 왜 이런 얘기를 하냐면 오늘 우리는 요나 같은 사람일까?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사람일까라고 한번 생각을 해봐야 돼서 이런 말씀을 드린 거예요.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우리는 내가 사랑하고 싶은 사람은 사랑하고 내가 귀히 여길 사람은 귀히 여길 줄 알아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귀히 여겨야 될 줄 알면서도 귀히 여기지 않냐고 돌아서요. 이게 요나의 마음이에요. 우리 각 신도들 반에도 똑같이 마음 많은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어떤 한두 사람은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하는 경우도 있을 수도 있어요. 감상적으로. 그랬을 때 우리는 모든 사람들을 봤을 때 이렇게 자기 나름대로의 잣대를 가지고 정해야 가지고 사랑할까 말까 가까이 갈까 말까 마음을 줄까 말까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서로 사랑해라 라고 이야기를 해도 내 마음에 맞지 않으면 돌아서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그게 요나의 심정이었어요. 믿음은 있는데 덕이 없으니까 품어줄 덕이 없으니까 도망가더라는 거죠.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우리 삶 속에서 우리가 서로를 품어줘야 되고 사랑해야 되는데도 불구하고 자기 마음에 맞지 않으면 돌아서 가지고 자기 감정대로 살아가는 그런 신앙 덕이 없어서 그러고 하나님 말은 지식이 없어서 그러는 거예요. 우리가 믿음을 갖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과 내 성품을 이어주는 것이 믿음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믿음도 있어야 되고 덕도 있어야 되고 지식도 있어야 되고 여러 가지 덕의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의 인내를 인내의 경건을 경건의 형제의 의외를 형제의 의외를 사랑을 공급하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성품인데 그 성품에 참여해가지고 그렇게 사는 믿음이어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고 하는 것을 우리들에게 가르쳐주시는 말씀인 것 같아요. 제가 너무 시간이 많이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님들에게 하나님의 보배로운 믿음을 주셨으니까 그 보배로운 믿음 안에 들어있는 약속을 우리가 이어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지켜주시고 성장시켜주셔서 그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할 수 있는 저희들 태도로 끝까지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오늘의 말씀 생각해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원합니다. 복도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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