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교회01
앙장이 주는 교훈 20 이찬우
신학생 · 출36:8-19
제작일 2026.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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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장이 주는 교훈 (출 36:8-19) 20260825 이찬우 신학생 http://tjc.or.kr/
AI 설교 정리
출애굽기 36장 8~19절에서 설명된 성막의 앙장은 예수님의 겸손하고 초라한 외형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상징한다.
본문요한복음 1:46출애굽기 36:8-19
- 성막의 앙장은 외적으로는 초라하지만 내면에 아름다움이 숨겨져 있다.
- 예수님은 외적으로는 볼품이 없었지만 내면에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었다.
- 성도는 예수님의 삶을 본받아 외적으로는 초라하더라도 내면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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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막의 앙장
- 앙장은 성소를 덮는 4개의 덮개로 구성된다. 첫 번째는 청색, 자색, 홍색 실로 수놓은 천, 두 번째는 염소털로 짠 천, 세 번째는 붉게 염색한 수양의 가죽, 네 번째는 해달의 가죽으로 만들어졌다.
- 앙장은 외적으로는 초라하지만, 내면에는 아름다움이 숨겨져 있으며, 이는 예수님의 삶과 유사하다.
예수님의 삶
- 예수님은 외적으로는 볼품이 없었고, 태어날 때는 구유에 누워 있었다.
- 예수님은 평범한 목수의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고향에서조차 배척받았다.
- 예수님은 자신이 "머리둘 곳이 없는" 삶을 살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 예수님은 외적으로는 초라했지만, 내적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는 아름다운 삶을 살았다.
성도의 삶
- 성도는 예수님의 삶을 본받아, 외적으로는 초라하더라도 내면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한다.
- 하나님은 외모보다 중심을 보시며,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 자리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 성도는 화려한 삶보다는 새벽 이슬처럼 묵묵히 하나님의 자리를 지키는 삶을 살아야 한다.
전사(자막) 전문▼
편안히 앉아주시길 바랍니다.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하나님 말씀 증거하겠습니다. 우리 먼저 본문 말씀 출혈국기 36장 말씀을 찾겠습니다. 본문 말씀 출혈국기 36장 8절부터 19절까지의 말씀을 저와 한 구절씩 교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출혈국기 36장 8절부터 19절 말씀 한 구절씩 교독하겠습니다. 제가 먼저 읽겠습니다. 출혈국기 36장 8절 그 5복을 서로 연하며 또 그 5복을 서로 연하고 그 연락할 한 복에 고 50을 달고 다른 연락할 한 복에 가해도 고 50을 달아 그 고들이 서로 대하게 하고 그 성막을 덮는 막 곧 앙장을 염수털로 만들되 11복을 만들었으니 그 앙장 5복을 서로 연하며 또 6복을 서로 연하고 노트 갈고리 50을 만들어 그 앙장을 연합하여 한 막이 되게 하고 붉은 물 들인 수양의 가죽으로 막의 덮개를 만들고 해달의 가죽으로 그 웃덮개를 만들었더라 아멘 할렐루야 성도님도 평안하시죠? 오늘도 이렇게 하나님께 예배 드리기 위해서 이 자리에 오신 성도님들께 하나님께서 은혜와 평강을 주시기를 원합니다 오늘은 앙장이 주는 교훈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자 오늘 우리가 나눌 말씀이 바로 앙장에 관한 것인데요 앙장이 뭐냐면 성막의 기구 중에 하나입니다 사실 우리가 성경을 볼 때 구약을 읽으면서 가장 어려운 세 가지를 뽑자면 제사와 절기 그리고 이 성막에 관한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왜냐하면 재미있는 이런 스토리가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막 수치와 방법 같은 그런 딱딱한 내용이 주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막은 사실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한 내용입니다 우리가 반드시 배워야 하고 또 알아야 하는 굉장히 중요한 개념입니다 왜냐하면 성막은 우리가 구원을 받는 그 구원의 원리를 보여주기 때문이고 또 성막은 오늘날 부르심을 받은 교회인 우리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막에 대해 배우는 것은 곧 구원에 대해 배우는 것입니다 성막에 대해 배우는 것은 곧 교회가 갖춰야 될 모습이 무엇인지 그것에 대해 배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막을 배울 때 성막을 공부할 때 우리 신앙에 굉장히 큰 유익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오늘은 성막의 한 부분인 앙장에 대해서 우리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앙장이 어떤 부분인지 제가 더 잘 보여드리기 위해서 오늘은 특별히 사진을 하나 제가 준비를 했습니다 앞에 보이시는 그림이 바로 성막에 대한 그림입니다 성막은 이 전체를 가리켜서 성막이라고 하고 그 안을 보면 각각의 기구들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제가 간단하게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가장 바깥쪽에 있는 하얀색 벽이 바로 울타리입니다 그 울타리 가 기준이 돼서 안쪽에 있는 것들은 다 성막의 부분이라고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왼쪽 밑에 빨간색 부분이 있죠 울타리 중간에 빨간색 부분이 있는데 그게 바로 성막의 문입니다 성막에는 문이 딱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성막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문을 통해서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문으로 들어갈 때 가장 먼저 나오는 기구가 바로 번재단입니다 우리 그림을 보시면 불이 있는 재단이 있죠 그게 바로 번재단입니다 여기서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곤 합니다 그리고 이 번재단을 지나면 그 다음에 이제 물두멍이 나옵니다 여기서부터는 이제 오직 제사장들만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제사장들은 이 물두멍에서 수족을 씻고 드디어 성소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림에 보시면 가장 안쪽에 한 건축물이 있죠 그게 바로 성막입니다 성소입니다 우리가 찬양을 부를 때 성소에 들어간다라는 찬양 가사가 굉장히 많이 있지 않습니까 저 건축물이 바로 성소입니다 그리고 이 성소 안에 들어가면 이제 또 지성소라는 공간이 있고 그 안에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하나님의 언약계가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 성소로 들어간다는 것은 한 단계씩 한 단계씩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과정과도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성소를 보면 이제 무언가가 성소를 덮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이 오늘 우리가 배울 앙장이라는 기구입니다 제가 빨간색 동그라미를 쳐놓은 부분이 바로 앙장입니다 그러니까 앙장이라는 것은 성소를 덮고 있는 덮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지금부터는 제가 이 앙장의 초점에 맞춰서 더 자세히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다음 사진 보여주세요 양장의 부분만 더 확대해서 보면 이 그림과 같이 생겼습니다 양장은 성소를 덮는 덮개인데 한 개가 아니라 네 개입니다 네 겹으로 되어 있습니다 각각의 덮개는 그림과 같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8절에 보면 첫 번째 앙장이 나오는데 청색, 자색, 홍색 실로 그룹들을 수놓은 아주 아름다운 덮개입니다 여기서 그룹은 천사를 의미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굉장히 아름답고 정교하게 짜진 앙장이 첫 번째 앙장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앙장은 오늘 본문 말씀 14절에 등장합니다 이 앙장은 염소털로 짠 천으로 만든 덮개였습니다 그래서 이제 하얀색의 덮개가 되겠죠 그리고 세 번째 앙장은 오늘 본문 말씀 19절에서 등장을 합니다 이 앙장은 붉은 물로 염색을 한 수양의 가죽 덮개였습니다 그래서 색깔을 보니까 빨간색으로 되어 있죠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 앙장은 마찬가지로 오늘 본문 말씀 19절에서 등장을 하는데 해달의 가죽으로 만든 덮개였습니다 이 네 가지의 앙장이 성수의 차례대로 덮여졌습니다 그래서 완성된 모습을 보면 첫 번째 사진과 같은 모습으로 됩니다 첫 번째 사진 다시 보여주세요 우리가 첫 번째 사진을 보면 우리가 앙장이 가진 특징이 뭔지를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그게 뭐냐면 가장 바깥쪽에 있는 해달의 가죽 덮개만 보인다는 것입니다 네 가지의 덮개가 있는데 해달의 가죽 덮개만 보이도록 만들어놨다는 거예요 왜 그랬을까요? 사실 우리 같으면 가장 아름답고 가장 정교하고 화려하게 만든 덮개를 가장 위에 두고 싶지 않으십니까? 만약에 세상 사람들이 보면 바보 같다고 할 만한 구조일 수도 있습니다 아름다운 것은 안에 감춰놓고 보잘것 없는 것을 가장 위에 뒀으니 바보같이 만들었다고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왜 가장 아름답고 화려하게 만든 덮개는 보이지도 않는 가장 안쪽에 두면서 왜 가장 보잘것 없고 초라한 해달의 가죽 덮개만 보이도록 둔 것일까요? 이게 바로 오늘 우리가 배울 앙장의 특징이다라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굉장히 초라한 덮개만 보인다라는 것이죠 그런데 겉으로는 초라하지만 그 안에는 아름다운 덮개가 숨겨져 있습니다 겉으로는 보잘것 없지만 그 안에는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앙장을 보면 예수님의 삶과 너무나도 닮아 있습니다 사실 성망의 모든 부분은 다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이 앙장은 예수님의 삶과 너무나도 닮아 있는 기구입니다 여러분 예수님도 외적으로는 굉장히 볼품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삶을 들여다보면 이 사실을 너무나 명확하게 알 수가 있죠 사실 태어날 때부터 예수님께서는 굉장히 초라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 누가복음 2장 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누어모 2장 7절 말씀 제가 읽겠습니다 마다들을 나 강보로 싸서 구유에 누였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때 사관에 자리가 없어서 짐승들이 거하는 곳에서 태어났다고 지켜라 지금 이야기를 하고 있죠 우리가 위인전이나 사람들이 만든 다른 신화들을 보면 언제나 영웅의 탄생은 굉장히 화려합니다 영웅은 굉장히 위대한 모습으로 이 땅에 태어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다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지내는 것도 아니고 짐승들이 지내는 곳에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또 예수님의 외모를 보면 흠먹을 것이 하나도 없다고 되어 있습니다 2사 53장 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2사 53장 2절 말씀을 제가 읽겠습니다 2사 53장 2절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많은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음 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여기 보니까 예수님께는 흠모할 만한 것이 없다고 되어 있습니다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고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다고 기록이 되어 있죠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외적인 면이었습니다 자 그러면 예수님의 배경은 또 어땠을까요? 예수님은 모든 사람이 무시하는 촌동네 나사렛에서 자라셨습니다 얼마나 무시하는 동네냐면 나사렛에서는 선한 것이 날 수 없다라는 말이 나오기도 합니다 요한복음 1장 46절 말씀을 찾겠습니다 요한복음 1장 46절입니다 제가 읽겠습니다 나사렛에서 예수님의 제자인 빌립이 예수님을 만난 뒤에 자기 친구인 나사렛에게 찾아갑니다 그리고 이야기하기를 지금 율법이 예언된 사람이 나타났다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근데 그게 바로 나사렛에서 온 예수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자 나다네일이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어떻게 나사렛에서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나사렛 같은 촌동네에서 대체 어떻게 그런 인물이 날 수가 있느냐라고 대답을 합니다 그만큼 무시받는 동네가 바로 예수님께서 자라신 나사렛이라는 동네였습니다 그럼 예수님의 가정환경은 어땠을까요? 마태복음 13장 54절 55절 말씀을 찾겠습니다 마태복음 13장 54절 55절 제가 읽겠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가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저희가 놀라가로돼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낫느냐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모치는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구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예수님께서 고향에서 말씀을 전하실 때 사람들이 이렇게 반응을 합니다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그저 평범한 목수의 아들 아니냐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을 배척을 하게 되죠 예수님께서는 무슨 뛰어난 집안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그냥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목수의 가정에서 자랐다라는 것입니다 특별한 것이 하나도 없는 그런 가정이었다라는 것이죠 그럼 예수님께서 살아가신 그 삶은 또 어땠을까요? 마태복음 8장 20절 말씀을 찾겠습니다 마태복음 8장 20절 말씀을 우리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8장 20절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쳐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아멘 예수님께서 스스로의 삶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하십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들도 거쳐가 있는데 내 삶은 머리둘 곳조차 없는 삶이다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여우나 공중의 새들도 가지고 있는 그런 기본적인 것들도 없는 그런 삶이라는 것이죠 그러면 그 예수님께서 죽으실 때는 또 어떻습니까? 제자들에게 배신당하고 버림당하고 자기 백성들에게 고소당해서 모든 사람들의 조롱 속에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겉으로 보면 이렇게 비참한 죽음이 아닐 수가 없죠 예수님의 삶을 보면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것이 다 초라합니다 태어남도 외모도 배경도 출심도 삶도 죽음도 모든 게 다 볼품이 없이 초라합니다 외적으로는 그런 삶이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적으로는 어떠셨습니까? 내적으로는 굉장히 아름다운 삶을 사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는 굉장히 아름다운 그런 삶을 사셨습니다 겉으로는 초라했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구속 계획을 이루어 가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삶은 사실 누구보다 아름다운 삶이었습니다 겉으로는 해달의 가죽으로 덮여져 있어서 한없이 초라해 보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예수님께서 이루어 가신 그 아름다움들이 있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그의 제자로서 이런 예수님의 삶을 본받아야 합니다 세상은 예수님의 그런 아름다움을 보지 못했죠 왜냐하면 세상은 아름다운 왕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외적으로 위대하고 화려하고 굉장히 아름다운 사람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작 오신 분이 굉장히 초라한 사람이었던 것이죠 그래서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고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내적인 삶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예수님께서 그 한없이 초라함 가운데에서 무엇을 이루어 가셨는지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그의 제자로서 그의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알고 따라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천안교의 성도님들은 어떠십니까? 혹시 내 모습이 내가 보기에 너무 초라하다 내 삶이 너무 구차하다 형편없다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사실 우리가 우리를 볼 때 우리 외적인 면이 초라해 보일 때가 너무너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외모를 볼 때도 그렇고요 내 출신이나 내 학력이나 내 직장이나 내 가정 형편을 볼 때도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그것 때문에 외적인 것 때문에 무시를 당할 때도 있다는 것이죠 여러분들은 그때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혹시 부끄럽지는 않으셨습니까? 그래서 외적으로 더 나아지고 싶고 더 좋은 외모를 가지고 싶고 그래서 남들이 좋아해 주고 인정해 줄 만한 그런 사람이 되고 싶고 그래도 남들이 이 정도면 잘 갔다 하는 대학에 가고 싶고 좋은 직장에 가서 화려한 삶을 살고 싶고 그러지는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그것은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단 한 번도 자신의 겉모습을 화려하게 꾸미려고 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에는 겉모습을 꾸미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실 겉보기가 아니라 그 안에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언제나 성경은 하나님께서는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그 중심을 보신다고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상 16장 7절의 말씀입니다 이외에도 많은 성경 말씀이 하나님께서는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중심을 보신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 우리는 우리 외적인 면을 꾸미려고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좀 부족하면 어떻습니까? 좀 못 나면 어떻습니까? 우리가 가져야 하는 아름다움은 그런 겉모습이 아니라 그런 외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아름다움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겉모습이 초라하다고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우리 겉에 있는 겉덮개를 꾸미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외쪽으로 보이는 덮개는 내게 주어진 대로 초라하다면 그냥 초라한 대로 해달의 가죽 덮개 같은 모습이라면 그냥 해달의 가죽 덮개인 그대로 더더욱 괜찮은 것입니다 우리가 이루어가야 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 내적인 아름다움입니다 우리가 화려하지는 않아도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어가는 그런 삶을 살아간다면 중심을 보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겉모습이 아니라 우리의 내면의 아름다움을 보고 기뻐하실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그러면 어떻게 우리는 내적인 아름다움을 이루어 갈 수 있냐라는 것이죠 우리 10편 110편 3절 말씀을 찾겠습니다 10편 110편 3절 말씀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10편 110편 3절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죽게 나오는 도다 아멘 여기 9절에 보면 새벽 이슬 같은 청년들이 죽게 나온다 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새벽 이슬 같은 청년들은 어떤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여러분 성경에서 보면 새벽 이슬은 당연한 것을 가리킬 때 사용이 됩니다 새벽에 이슬이 맺히는 것은 이슬아엘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는 팔레스타인 지역에는 밤낮의 기온 차가 굉장히 큽니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면 항상 이슬이 맺혀 있어요 그래서 새벽 이슬을 갔다는 것은 매일 있는 현상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현상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나를 표현할 때도 이 새벽 이슬을 가지고 설명을 합니다 우리 민수기 11장 9절 말씀을 찾겠습니다 민수기 11장 9절 말씀을 제가 읽겠습니다 밤에 이슬이 진해 내릴 때 만나도 같이 내렸더라 만나가 처음 등장해서 이 만나에 대해서 설명을 할 때 무엇을 가지고 설명을 하냐면 이슬을 가지고 설명을 합니다 무슨 뜻이냐면 만나도 이슬과 같이 새벽 이슬과 같이 매일 내렸다는 거예요 항상 있었다는 거예요 그걸 설명하려고 이슬을 빗대어서 이야기를 합니다 이슬이 매일 같이 항상 있었듯이 만나라는 것도 하나님께서 매일 내려주시는 은혜였다라는 것을 지금 설명한 것 입니다 이슬이라고 하는 것은 항상 있는 거예요 그런데 시편에 보니까 주님의 청년들이 이슬과 같이 하죠 주의 청년들도 새벽 이슬을 갔대요 그러면 무슨 뜻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청년대요 외적인 아름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항상 그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어떤 자리입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자리 그 자리를 벗어나지 않고 그 자리에 항상 있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가는 아름다운 삶을 사는 방법인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천안교의 성도님들이 화려한 일꾼이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렇게 화려한 일꾼이 아니라 눈에 띄지는 않아도 항상 그 자리에서 묵묵히 일하는 그런 일꾼들이 되셨으면 좋 겠습니다 화려하면 사람들은 굉장히 좋아합니다 능력이 있고 뛰어나면 사람들이 주목하고 또 칭찬을 해주죠 그런데 아무리 화려한들 내가 그 자리를 떠나버린다면 내가 사라져버린다면 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너무 당연해서 아무도 고맙게 생각하지는 않아도 누가 알아주지는 않아도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 하나님 보시기엔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새벽 이슬 같은 일꾼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런 삶을 사셨습니다 화려한 삶이 아니었음에도 예수님의 삶이 그토록 아름다웠던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주신 자리를 떠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초라한 해달의 가죽 덮기 같은 그 자리를 끝까지 지키셨다는 것이죠 그래야 하나님의 계획을 이룰 수 있으니까 그 자리를 지키신 것입니다 우리도 그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예수님의 길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언제나 도전이 있죠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의 삶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사실 언제나 도전을 받으셨습니다 어떠한 도전입니까? 그 자리를 떠나라는 유혹과 도전이죠 사람들에게 무시받고 초라하고 고통스러운 그 자리를 떠나라고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다운 사람들에게 칭성받고 높임받는 그런 자리로 가라는 유혹과 도전을 항상 받으셨습니다 마귀가 예수님이 배고플 때 예수님께 나타나서 이렇게 유혹을 합니다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가로 돼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 얻은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마태공 4장 3절의 말씀입니다 여기서 마귀가 뭐라고 유혹하고 있습니까? 너 하나님의 아들이잖아 그런데 너 왜 그렇게 배고프고 고통당해야 하는 거야? 너 하나님의 아들이잖아 그러니 그 능력을 써서 이 돌을 떡으로 만들어서 배불리면 되잖아 왜 너가 배고프고 고통당해야 돼? 라고 유혹합니다 마귀가 하나님께서 주신 자리를 떠나라고 유혹하는 것이죠 그리고 예수님께서 가장 수치스러웠던 그 십자가 위에서는 또 어떠셨습니까? 유대인들이 십자가에 달려있는 예수님을 보고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마태공 27장 40절 말씀을 찾겠습니다 마태공 27장 40절 말씀 제가 읽도록 하겠습니다 마태공 27장 40절입니다 가로대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여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여기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정말로 너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봐라 정말로 너의 말대로 너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지금 왜 십자가에 그렇게 달려서 고통당하고 있냐라고 조롱하는 것이죠 왜 그렇게 고통당하냐 한번 내려와 봐라 그럼 우리가 믿겠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정말로 하나님의 아들이지 않습니까? 사실 예수님께서는 정말로 다 하실 수 있는 분이지 않으십니까? 그런데 안 하셨어요 아무것도 안 하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께서 주신 자리를 지켜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에 있어야 하나님의 계획을 이룰 수 있으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아무것도 안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십니까? 마귀는 언제나 우리가 우리의 자리를 떠나도록 우리를 유혹합니다 야 너 왜 그렇게까지 고통당해야 돼? 왜 그렇게 무시당하고 스트레스 받으면서까지 그 자리에 있어야 돼? 그냥 떠나면 되잖아 그냥 안 하면 되잖아 그러면 편해질 수 있잖아 저도 이제 돌이켜보면 돌이켜보면 항상 이러한 유혹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만약에 포기한다면 정말로 편해질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이 자리를 떠나기만 한다면 이 모든 스트레스에서 내가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들도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게 바로 마귀의 유혹이라는 것이죠 여러분 그럴 때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이 세상에서 가장 억울하고 가장 수치스러운 그 십자가의 자리를 떠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그 삶이 남이 보기에는 초라하고 비참한 삶으로 보일지 몰라도 사실 우리에게만큼은 그것이 가장 아름다운 삶인 것입니다 그게 나에게 가장 귀한 삶으로 보여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의 삶을 보면서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나도 그런 예수님의 삶을 따라가고 싶다라는 마음이 우리에게도 있어야 합니다 그게 바로 제자된 우리가 가져야 되는 마음가짐인 것입니다 바라옥기는 우리 천안교의 성도님들이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삶을 사시기를 소망합니다 자 이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은 성막의 기구 중 하나인 앙장이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씀을 드렸습니다 앙장은 성소를 덮는 덮개로서 4개로 구성되어 있었죠 4개의 덮개 중에서는 분명하게 화려한 덮개들도 있었지만 가장 위에 덮여진 것은 초라한 해달의 가죽 덮개였습니다 그게 바로 앙장이 가진 특징이었죠 겉으로는 초라하지만 그 안에는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이러한 앙장의 특징은 겉으로는 초라했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신 아름다운 예수님의 삶을 나타냈습니다 우리도 이러한 예수님의 삶을 본받아서 겉으로는 초라해도 영적으로는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주신 그 자리를 지켜가야 합니다 화려하지는 않아도 좀 뛰어나지는 않아도 새벽 이슬같이 항상 그 자리를 지키는 삶을 우리가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실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통해 그 계획을 이루어 가실 줄로 믿습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고 주신 자리를 지키며 살아가는 우리 천안교의 성도님 되시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묵도 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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