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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예수교회 True Jesus Church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20

정호민 · 마4:1-2

제작일 2026.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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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서 40일 금식하며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고, 이를 통해 인간을 대표하여 승리하셨으며, 시험을 극복하는 방법은 기도와 영성생활을 통해 준비하는 것임을 보여주셨다.

본문창세기 3장
  • 예수님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으며, 이는 인간을 대표하여 승리하신 사건이다.
  • 시험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인간의 욕심과 마귀의 유혹으로 인해 발생하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체험할 수 있는 장소이다.
  • 시험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도와 영성생활을 통해 준비해야 하며, 개인과 공동체 모두의 기도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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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시험과 승리

  • 예수님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셨다.
  • 예수님은 마귀의 시험을 통해 인간을 대표하여 마귀의 권세에 승리하셨다.
  •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시험을 받으셨기 때문에, 시험 받는 자를 도와주실 수 있다.

시험의 원인과 의미

  • 시험의 원인은 마귀의 유혹으로 인한 인간의 욕심이다.
  • 하나님은 인간을 미혹하지 않지만, 믿음을 시험하여 순종과 신뢰를 증명하게 한다.
  • 하나님은 믿음을 연단하여 더욱 굳건하게 만들고, 궁극적으로 복을 주기 위해 시험을 주신다.

시험을 극복하는 방법

  • 시험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기도와 영성생활을 통해 준비해야 한다.
  • 기도는 특정 시간이나 날에 한 번 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꾸준히 해야 한다.
  • 개인의 기도와 공동체의 기도 모두 중요하며, 교회에서의 기도는 더 큰 응답을 받을 수 있다.
  •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시험을 인식하고, 그에 대비할 수 있다.
  • 예수님은 광야에서 기도하신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습관을 가지셨다.
  • 개인의 광야(기도 장소)를 설정하고, 공동체와 함께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사(자막) 전문▼
증거해 주시겠습니다.
하나님 말씀 증거하겠습니다.
먼저 하나님 말씀 찾겠습니다.
마태복음 4장 1절에서 2절까지 말씀 함께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4장 1절에서 2절까지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4장 1절에서 2절까지 말씀 사셨으면 저와 성도님들 함께 한 목소리로 읽겠습니다.
읽겠습니다. 시작!
그때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40일을 밤낮으로 금직하신 후에 줄이신지라.
아멘.
오늘 이 시간 우리 성도님들과 함께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라는 제목으로 말씀 나오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나아가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세 가지 시험 받는 내용이 여기서 나오게 됩니다.
마귀는 비방하는 자, 고소하는 자라는 뜻으로 곧 하나님과 그의 백성을 대적하는 사단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과 누가복음 4장 2절에서는 마귀이라고 표현하는 한편 마가복음 1장 13절을 보시면 사단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단 곧 마귀는 하나님의 백성을 시험하고 죄를 짓게 하여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트리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마태복음 4장의 말씀을 보시면 이제 누가 마귀의 시험을 받으러 가십니까?
예수님께서 마귀의 시험을 받으신다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빌리뽀서 2장 6절의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예수님의 본체는 곧 하나님, 전지전능한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예수님께서 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러 가는 걸까요?
애초에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을 이유, 필요가 있을까요?
오늘 이 시간에는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나아가시는 이 대목을 살펴보면서 오늘날 우리는 어떤 시험을 받고 또한 어떻게 준비해야 되는지 상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우리가 나눌 교훈은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시험 받는 곳으로 나아가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시험 받는 곳으로 나아가야 한다.
오늘 본문 1절 말씀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1절 읽겠습니다. 시작!
그때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아멘 1절 말씀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예수님께서 어떻게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가셨냐라는 것입니다.
1절을 보면 예수님은 무엇에 이끌려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가셨다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성령에게 이끌려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가셨다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끌려 갔다라는 것은 올라가다, 이끌고 가다, 인도하다 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시험 받으러 가셨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평행 구절인 마가복음 1장 12절, 누가복음 4장 1절에서도 동일한 맥락으로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마가복음 1장 12절을 제가 바로 읽어보면 여기에서는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여기서는 성령이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셨다, 쫓아냈다 라고 말씀하고 있고요.
또한 누가복음 4장 1절을 보시면 여기서도 성령에게 이끌리셨다라고 말하고 있죠.
그런데 앞서서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세 말씀을 통해서 공통적으로 알 수 있는 사실은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시험 받으신 것은 우연이 된 일이 아니다.
운이 없어서 된 일이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시험 받기 위해 나아가셨고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았다라는 것은 곧 이 가운데 누구의 뜻이 있다라는 의미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뜻이 있다라는 의미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먼저 짚고 갈 것은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왜 시험 받으셨냐 왜 그것이 하나님의 뜻과 합하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두 가지로 생각을 해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예수님께서 마귀의 권세에 최종적으로 승리할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시험 받으셨다라는 것입니다.
아담의 범죄로 인해서 영적으로 죄인이 된 우리 모든 인류는 마귀의 권세 아래서 죄의 종로를 타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사람은 자신의 힘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고요.
자신의 힘으로 마귀의 시험에 능히 대적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누가 이 땅에 오셨습니까?
예수님께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장 21절을 보시면 자기 백성을 저의 죄에서 구원할 자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고요.
또한 요한 1서 3장 8절의 말씀을 보시면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해서 나타나셨다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말씀은 찾아보겠습니다.
요한 1서 3장 8절의 말씀입니다.
요한 1서 3장 8절의 말씀.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여기서 말하는 마귀의 일이라는 것은 사람들을 시험하여 죄를 짓게 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시키는 일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해서 누가 나타나셨다고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토께서 나타나셨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차원에서 지금 오늘 예수님께서 본격적인 공생의 사약을 하기 직전에 마귀에게 시험 받으러 나아가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것은 곧 그 시험을 받고 그 시험에서 승리함으로써 결국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다스리는 마귀의 권세에 최종적으로 승리할 것을 나타내셨다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께서 시험 받으신 이유는 시험 받는 모든 자를 능히 돕기 위해서 우리와 똑같은 시험을 받으셨다라는 것입니다.
우리 히브리서 4장 15절을 찾아보겠습니다.
히브리서 4장 15절 말씀입니다.
히브리서 4장 15절 말씀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채율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오.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 돼 죄는 없으시니라.
아멘.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 곧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채율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오.
이중부정이죠.
우리의 연약함을 극율이 여겨주시는 분이다라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연약함을 어떻게 극율이 여겨주시고 도와주실 수 있느냐.
예수님께서 우리와 한결같은 우리와 똑같은 시험을 받으셨다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같은 아픔을 지닌 사람이 상대방의 아픔을 전적으로 공감하며 돌보아 줄 수 있는 것처럼 비록 예수님은 죄는 없으시지만 죄 있는 우리와 똑같은 시험을 받음으로써 시험 받는 우리를 극율이 여겨주실 수 있고요.
우리를 전적으로 도와주실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2장 18절을 보시면 마치 읽겠습니다. 히브리서 2장 18절입니다.
읽겠습니다. 시작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 즉 시험을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
아멘 자 여기서 분명히 말하고 있죠.
자기가 예수님께서 시험을 받아서 고난을 당하셨은 즉 시험 받는 우리들을 능히 도와줄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똑같은 시험을 받으셨다.
그런데 이 말을 뒤집어 보면 결국 우리도 예수님이 받으신 시험을 똑같이 받게 된다라는 의미가 됩니다.
앞서 우리가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힘만으로는 마귀의 시험을 모든 시험을 능히 이겨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어떻게 시험 받으시고 어떻게 이겨내시는지를 본다면 우리가 앞으로 이런 시험을 당할 때 이렇게 이겨내야 되는구나 라는 것을 배울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아
그래서 마치 학생들이 아니라 선생님이 시험치는 과정을 학생들이 보는 것과 같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그 방법을 다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학생들이 그 과정을 보면서 배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시험 받으시는 이 과정을 보면서 아 예수님께서 이렇게 시험을 이겨내셨구나를 우리가 배울 수 있다라는 것이죠.
이렇게 예수님께서 시험 받으신 이유가 분명히 있다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가 시험 받는 이유도 분명히 있다라는 것이죠.
예수님께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시험 받으러 가신 것처럼 오늘날 우리 역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다 보면 시험의 자리로 나아갈 때가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신앙 생활하면서 기대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복을 온전히 누리기를 고난당하지 않고 아주 형통한 그런 평안한 삶을 누리기를 기대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간다고 해서 시험 없는 삶이 아니라 고난 없는 삶이 아니라 오히려 그 시험과 고난을 거쳐가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이라는 거죠.
이 가운데는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구원에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멸하기 위해서 우리를 유혹하고 우리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시험 주지 않으신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받는 시험의 두 종류를 또한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시험을 받는 두 종류이자 두 주체라고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우리가 받는 시험은 마귀의 시험입니다.
마귀의 시험.
오늘 말씀 찾아보겠습니다.
야고보서 1장 13절에서 15절 말씀입니다.
야고보서 1장 13절에서 15절까지 말씀입니다.
야고보서 1장 13절에서 15절 말씀 찾으셨으면 같이 읽겠습니다.
읽겠습니다.
시작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되미니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
아멘 자 이 말씀을 보시면은 13절에서 끝에서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시험하지 않는다 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분별해야 될 것은 여기서 말하는 시험은 바로 유혹의 시험을 가리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미혹하여서 믿음을 무너뜨려서 사망에 이르도록 시험하지 않으신다 라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각 사람이 이런 시험을 받는 것은 무엇으로 인함이냐 14절에서 말하고 있죠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되었다라는 것입니다.
자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욕심을 사람의 욕심을 자극하는 존재가 있죠 그 존재가 누구입니까 바로 마귀 사단이라는 것입니다.
자 그래서 우리가 창세기 3장 1절에서 6절까지 인류가 최초로 범죄하는 그 과정을 보면서 이 말씀을 보다 더 분명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시고 에덴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그 모든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때 누가 하와를 유혹합니까 뱀 곧 사단이 하와를 유혹하죠 자 그런데 이때 뱀이 그냥 억지로 강제로 먹이지 않습니다.
그 마음에 욕심을 자극하죠 처음에는 질문을 합니다.
정말로 이 실과를 먹으면 안 되냐 자 그럴 때에 그 뱀의 유혹을 듣고 하와가 대답하지 않습니까
그 대답이 하나님의 말씀과 온전히 일치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분명히 하나님은 이 과실을 먹으면 너희가 정령 죽으리라 라고 말씀하셨지만 하와는 죽을까 하노라 그리고 그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과 온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라는 것을 알 수 있고요 여기서 틈을 발견한 뱀이 본격적으로 비혹하기 시작합니다.
아니다. 너 그거 먹어도 안 죽는다.
오히려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같이 된다 라고 욕심을 자극합니다.
그래서 욕심이 일어난 이 하와가 이제 그 과실을 보니까 어떻게 보입니까?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탐스러워 보인다라는 것입니다.
결국 그 욕심을 이기지 못하고 그 과실을 먹게 되고요 남편에게도 주어서 같이 죄를 범하게 됩니다.
이로 말미암아서 결국 사람은 죄를 짓게 되고요 그 죄로 말미암아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이 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말하는 사망이라는 죽음이라는 의미는 단절을 말합니다.
그래서 육신의 죽음이 내 육신과 영혼이 단절 분리되는 것이라면 내 영혼의 죽음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내가 단절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범죄한 사람을 에덴에서 추방하시고 그리고 그 앞에 주의 사자를 두어서 화연금을 두루 두어서 그 길을 막지 않습니까?
즉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가 완전히 단절되었음을 의미하고요 이것은 사람의 입장에서 봤을 때 영적인 죽음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15절에서 다시 야고보서 1장 15절을 보시면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는다라고 표현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마귀가 이렇게 우리를 시험한다 미혹한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귀는 늘 우리의 틈을 노리고 있고요 우리가 틈을 보이는 순간 우리 마음의 욕심을 끊임없이 자극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하나님의 뜻에 대적하게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게끔 우리를 미혹한다라는 것이죠.
그래서 마귀가 이렇게 시험을 한다 반대로 말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런 시험을 주지 않으신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기도문 할 때마다 이렇게 기도하지 않습니까?
마태복음 6장 13절을 보시면 우리를 뭐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요?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여기서 말하는 시험이 바로 마귀가 주는 악한 미혹의 시험을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 도움을 구한다라는 것이죠.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사람이 사람의 힘으로 마귀의 시험을 능히 대적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또한 우리가 주기도문 할 때마다 이 말씀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전적으로 의지할 수 있어야 된다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우리가 받는 시험은 바로 하나님의 시험입니다.
앞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미혹하는 시험을 주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경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다른 차원에서 사람들을 시험하시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창세기 22장 1절 이하의 말씀을 보시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시험이 어떤 시험입니까?
우리가 잘 아는 아브라함의 사랑하는 아들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는 시험이었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셨는가?
창세기 22장 12절의 말씀을 보시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전적인 순종을 보시고 즉시 주의 사자를 보내어서 그가 이삭을 죽이는 것을 막고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내 아들 내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나님은 전지전능한 하나님이시죠.
사람의 마음까지 다 꿰뚫어보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마음을 아브라함의 믿음을 아무것도 몰랐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마음을 아브라함의 믿음을 다 아십니다.
중요한 것은 그 마음 그 믿음을 동기로 행함으로 증명했느냐라는 것을 보신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라는 것은 단지 머릿속으로 아 나는 하나님이란 존재를 믿어 라는 차원의 믿음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믿음은 정말로 내가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을 굳게 믿고 그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그 믿음까지 우리에게 보신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학생들은 또 학교에서 시험을 치지 않습니까?
학교에서 시험을 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학생들 괴롭히려고 시험 주나에?
그렇지 않습니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그렇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시험을 내는 궁극적인 목적은 지금 이 학생이 배운 내용을 잘 이해하겠습니까?
하고 있는지 그것을 드러내기 위해서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시험을 치지 않습니까?
하나님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할 수 있는지 그 믿음을 증명하고 나타내고자 우리를 시험하신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더욱더 연단시켜주기 위해서 연단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을 더욱 굳게 세워주기 위해서 시험하신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명기 8장 2절과 16절의 말씀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40년 동안 걷게 하신 그 목적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명기 8장 16절을 같이 찾아보겠습니다.
신명기 8장 16절입니다.
신명기 8장 16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아멘 그래서 2절의 말씀과 이 말씀을 같이 보시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40년 동안 걷게 하시고 만나를 먹 이시고 이 모든 과정이 하나의 시험이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험을 통해서 무엇을 알고자 하셨느냐?
바로 내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을 낮추시기 위해서 시험을 주셨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 입장에서 광야 땅에서 40년을 걷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힘든 일을 아무 이유 없이 주신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서 그 광야의 여정을 통해서 내 욕심을 죽이고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나를 낮추도록 그 믿음을 연단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은 이러한 시험을 주셨다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결국 이러한 시험의 궁극적인 목적은 16절의 마지막 말씀처럼 우리에게 내게 무엇을 주기 위함이라고요?
복을 주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서서 마귀의 시험을 보지 않았습니까?
사람을 미혹하여서 죄를 짓게 하고 하나님의 관계를 깨트리는 것 결국 그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입니까?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에 있다면 하나님의 시험에 궁극적인 목적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것 그 복이라 말하면 단순히 우리가 현생을 살아가는 동안만 누리는 그런 차원의 복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구원의 복을 온전히 누리게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시험을 주신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시험도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도 쉽지 않습니다.
참 괴롭죠.
오히려 마귀의 시험보다 더 견디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험 가운데 하나님의 선한 뜻, 구원의 뜻이 있고요.
그 시험을 온전히 감내하고 극복해낼 때 그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더욱더 굳건히 하시고 그 믿음을 따라서 우리에게 큰 복을 주시고 구원으로 인도해 주신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대표적으로 요배의 고난을 생각해 보시면 물론 사단의 참소로 시작을 했지만 그 가운데 하나님의 허락하심으로 이 시험이 시작되지 않았습니까?
요배의 입장에서 보면 하루아침에 전 재산뿐만 아니라 내 사랑하는 자녀들을 다 잃어버립니다.
요배의 입장에서 보면 이게 하루아침에 무슨 날벼락입니까?
그렇죠?
그렇다고 요배의 하나님께 죄를 짓는 그런 악한 삶을 살았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욥기 1장에 처음 서두를 보시면 요배는 순전한 사람이었고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가는 그런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욕이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가운데 시험을 당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시험의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은 욕의 믿음을 더욱더 연단시켜 주시고요.
더욱더 굳건히 해 주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과정을 통해서 마지막에 말씀을 보시면 욕에게 더욱 큰 복을 허락해 주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잘 아는 욥기 23장 10절의 말씀을 보시면 욕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 욥기 23장 10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욥기 23장 10절 말씀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아멘.
단련하다. 연단하다. 라는 것이죠.
그래서 마치 쇠를 뜨거운 불에 달구고 끊임없이 치면서 단련, 연단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우리의 믿음을 단련하시고 연단하신다. 라는 것입니다.
비록 그 연단의 과정은 힘들고 괴롭지만 그 연단의 과정이 맞춰질 때 순전한 금과 같은 그런 아름다운, 그런 온전한 믿음으로 나오게 된다. 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전서 1장 7절을 보시면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님의 칭찬과 영혼의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셨지만 이것은 우연이 된 일이 아니었습니다.
전적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성령의 추만함을 입고 성령의 이끌림을 따라 나아간 것이고요.
그렇다는 것은 이 가운데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성령으로 기도하고 성령의 추만함을 입어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갈 때 때로는 시험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아무 이유 없이 우리에게 시험 주지 않으신다.
그 가운데 나를 향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한 뜻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비록 시험은 힘들고 괴롭지만 우리가 그 가운데 끝까지 인내할 수 있으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감당치 못할 시험은 주지 않으신다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에서 말하고 있죠.
내가 시험 가운데 있을 때에는 너무 괴롭다. 나는 이 시험 견디지 못하겠다.
라고 여길 수 있지만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시험 주신 것은 그 시험은 내가 감당치 못할 시험이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내가 감당할 수 있고요.
또한 내가 감당할 수 있음은 하나님께서 그 고난 가운데, 그 시험 가운데 나와 함께하고 계시다라는 것입니다.
성령이 인도하셨다는 것.
그것은 곧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라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어디를 가든지, 어떤 시험을 받든지, 어떤 고난을 받든지, 그 모든 상황 속에 하나님은 반드시 나와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을 통해서 내가 그 시험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반드시 주신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간절히 바라올기는 우리가 모든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 정말 힘써 기도하고 또한 어떤 길이든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나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여러 가지 길을 만나고 또한 선택을 해야 될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그 길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떤 길은 되게 편하고 쉬운 길이 있는가 하면 어떤 길은 참 어렵고 힘든 길도 있습니다.
그럼 보통 세상 사람들은 어떤 길로 가게 됩니까?
넓은 길과 좁은 길이 있으면 당연히 넓은 길을 가지 않습니까?
하지만 우리 신앙인이 추구해야 되는 길은 단순히 쉽고 편한 넓은 길이 아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되는 길은 어떤 길입니까?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나아가야 하는 길이다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 길 가운데에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시험이 고난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시험은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시험이고요.
그 시험 가운데 나를 향한 하나님의 지극히 선한 뜻이 있음을 믿습니다.
그래서 바라보기는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어떤 시험을 만나더라도 우리가 이상이 여기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그 시험 가운데 나를 향한 하나님의 선한 뜻이 있음을 믿고요.
우리가 오직 성령을 의지해서 즐거움으로 시험을 감당하는 그런 저와 우리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함께 나눌 교훈은 우리는 광야와 같은 곳에서 기도로 시험을 준비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광야와 같은 곳에서 기도로 시험을 준비해야 된다.
그다시 오늘 본문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우리가 1절 말씀에 살펴본 것처럼 예수님은 성령에 인도하심을 따라 마귀에게 시험받기 위해 어디로 가셨습니까?
의미가
광야로 가셨습니다.
그러면 광야로 가신 예수님께서 무엇을 하셨는가?
2절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광야로 가자마자 바로 시험을 받은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2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40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줄이신지라.
아멘!
예수님께서 광야에 가서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40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셨다라는 것입니다.
그 후에 3절부터 시험이 시작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보낸 40일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즉 시험 받기 전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행하셨다라는 것입니다.
먼저 광야라는 장소를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광야는 말 그대로 인적이 없고 황폐한 넓은 들판을 말합니다.
마실 물이나 음식을 쉽게 구할 수 없고요.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추운 곳입니다.
그리고 위험한 들짐승까지 살고 있는 그런 무서운 곳입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사람이 광야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생존할 수 없는 땅이에요.
그런데 우리가 추리국기의 말씀을 보시면 그 광야에서 누가 40년을 살았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니 한 명도 아니고 두 명도 아니고 그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광야에서 생존할 수가 있었습니까?
누구의 은혜로예요?
하나님의 은혜로.
그래서 광야는 시험과 고난의 장소인과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체험할 수 있는 장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세상에서의 모든 것과 단절되어서 오직 하나님 한 분만 바라보고 의지하고 동행할 수 있는 장소라고도 우리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광야에서 며칠의 시간을 보내셨습니까?
40일의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성경을 보면 특별히 이 40과 관련된 많은 기록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노아의 홍수 사건에서 하나님께서는 40주야 40일 동안 내내 비를 땅에 쏟으신 것을 볼 수 있고요.
또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유리한 해수도 40년입니다.
식혜명을 받을 때 모세가 40일을 금식한 것을 볼 수 있고요.
또한 엘리야가 광야에서 40주야 40일을 있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다윗이 이스라엘을 40년 통치했고요.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에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모습을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40과 관련된 내용들을 쭉 정리를 해보면 이 가운데에서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저주가 나타나는 한편 또한 동시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죄악에 관용한 이 세상을 노아시대 때 그 세상을 40일 동안 비 내리면서 심판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그 가운데에서 노아의 가족을 구원하셨고요.
또한 이스라엘의 불신앙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광야에서 40년간 방황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광야에서 사는 모든 날 동안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하셨고요.
그들의 의복이 헤어지지 않고 발이 부르트지 않게 그들의 생명을 지켜주셨습니다.
그래서 이 40이라는 숫자는 하나님의 저주와 하나님의 은혜를 동시에 나타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이 광야에서 40일이라는 시간 동안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셨느냐 밤낮으로 금식하셨다라는 것입니다.
금식을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스스로 몸과 마음을 괴롭게 하여서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을 철저히 낮추고요.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는 데에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시면 종종 예수님께서 또한 성경 인물이 금식하는 장면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아무 이유 없이 금식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우스갯소리로 금식이 아니라 그냥 단순히 정말 밥을 안 먹는 금식의 목적으로 금식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인 교제를 위해서 금식을 한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이라는 시간 동안 금식을 하셨다라는 것은 이것은 곧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인 교제를 통해서 시험을 준비하셨다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시험 받으신 것처럼 오늘날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길을 걸어가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우리도 얼마든지 시험 받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시험이 언제 어떻게 올지 아무도 모른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될까요?
준비를 해야 된다라는 것입니다.
어떤 시험이 어떻게 언제 닥치더라도 우리가 쉽게 무너지지 않고 능히 극복할 수 있도록 항상 준비된 모습으로 시험을 대비해야 된다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시험을 칠 때는 벼락치기라는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제일 좋은 것은 사실 미리 미리 준비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학생들이 예를 들어서 여러 가지 이유로 제대로 준비를 하지 못했어요.
그러면 시험이 닥치기 직전에 벼락치기 하면서 공부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면서 받는 시험은 벼락치기가 불가능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시험이 언제 어떻게 올지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아무도 모릅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가운데 반드시 시험을 만나게 된다라는 것입니다.
어떤 형태든지 우리는 시험을 만나게 돼 있고요.
그 시험을 거쳐가야 됩니다.
그 시험을 피해가야 되는 것이 아니라 거쳐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준비를 해야 된다라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이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서 평소에 어떤 생활이 중요합니까?
우리의 영성생활, 기도생활이 중요하다라는 것입니다.
우리 말씀 찾겠습니다.
마태복음 26장 41절의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26장 41절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26장 41절 말씀 찾으셨으면 함께 읽겠습니다.
읽겠습니다.
시작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의로 돼.
육신이 약하도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반대로 말하면 우리가 깨어 있어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에 들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더라도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간다 하더라도 그런 나도 시험에 들 수 있고요.
시험에 무너질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이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깨어 있어 기도해야 되고요.
그래서 누가복음 21장 36절의 말씀을 보시면 예수님은 또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여기서 깨어 있어 기도하라.
그래서 여기서 깨어 있다라는 것은 영적으로 깨어 있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우리가 육적으로도 늘 졸고 자는 그런 시간을 보내수는 안 되겠죠.
더욱 중요한 것은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된다.
영적으로 우리가 민감해야 된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단이 시험을 주는 것도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시험을 주는 것도 우리가 보이는 그 시험과 고난 만이 아니라 그 가운데 영적인 시험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영혼이 죄에 무너지지 않도록 우리의 영혼이 어떤 시험에도 능히 그 시험을 감내하고 극복할 수 있도록 우리는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된다.
영적으로 깨어 있지 않으면 내가 어떤 시험을 받더라도 그것이 시험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가 시험에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했죠.
내 욕심으로 인한 사단이 내 욕심을 자극해서 미혹받는 마귀의 시험이 있고요.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증명하고 연단하기 위한 하나님의 시험이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영적으로 깨어 있지 않으면 내가 어떤 시험을 받든지 그것이 시험인지도 모르고요.
그냥 힘든 일이라고만 생각합니다.
힘든 일이라고만 생각하면 그러면 많은 경우 하나님을 원망하게 됩니다.
하나님 제가 왜 이런 일을 겪어야 돼요?
제가 이날 이때까지 하나님 열심히 믿고 교회도 열심히 나오고 있는데 왜 제가 이런 시험, 왜 제가 이런 고난 받고 살아가야 됩니까?
나는 참 너무합니다.
그러면 내가 하나님을 믿는 그 신앙생활도
가치없게 느껴집니다 아니 세상에 저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 믿지 않아도 저렇게 떵떵거리면서 저렇게 잘만 살아가는데 나는 하나님 믿는데 나는 교회 나오는데 왜 이런 일을 겪는 거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되고요 영적으로 깨어 있기 위해 기도하고 기도함으로 깨어 있어야 된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의 기도 생활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기도 생활이 중요한 것은 단순히 어떤 특정한 날에 특정한 시간에만
한 번 모여서 열심히 기도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의 기도 생활이 중요하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시험을 정말 잘 보기 위해서는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그 시험만을 목적으로 변악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공부가 중요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정말 공부 잘하는 학생들한테 인터뷰하면 매일 똑같은 말 하잖아요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어요?
예복습 철저히 했어요?
아니 누가 모릅니까?
그런데 정말로 그것을 꾸준히 했느냐 안 했느냐에 따라서 결과는 차이가 나더라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계신 우리 성도님들 중에서 기도 중요하지 않아요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렇잖아요 그런데 정말로 내가 그 기도의 중요성을 정말 철저히 인식하고 매일매일 시간과 장소를 정해서 정말 꾸준히 기도하고 있느냐 기도로서 깨어있느냐 거기서 우리가 언젠가 시험 당할 때에 우리의 반응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라옥기는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언젠가 어떤 시험을 받든지 그 시험의 능이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매일매일이라는 시간 동안 기도로 준비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더 나아가서 정말로 우리가 매일매일 정말 하나님께 힘써 기도해 줄 수 있는 나만의 광야를 설정할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사실 사복음사의 말씀을 전체적으로 보시면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만 혹은 개세만의 동산에서만 어떤 특정 시기에만 기도한 것이 아니다 예수님에게는 기도의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그 공생의 바쁜 사역 가운데에서도 늘 시간을 내어서 새벽 미명의 한적한 곳에서
한적한 곳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방해받지 않는 정말 내가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과 일대일로 깊이 교제할 수 있는 그런 장소를 말하지 않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나오는 광야도 그런 의미로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광야에서 기도한다는 것이 또 한편으로는 육체적으로 보면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영적으로 보면 정말 하나님과 깊이 교제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인들도 하루하루 신앙 생활하는 가운데 정말 내가 하나님과 일대일로 깊이 교제할 수 있는 나만의 광야 나만의 기도 장소를 도성할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우리가 똑같이 기도하더라도 주변에서 TV 틀어져 있고 누군가 막 사부적이고 이런 가운데서 기도에 집중하기 어렵잖아요 그래서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 성도인들의 삶의 환경을 각자 돌아보시고 내가 기도할 수 있는 매일 내가 기도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가 어디일까
고민해 보시고 생각해 보시고 설정해 보시는 그런 하루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가 공동체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가 개인적으로는 나만의 광야 어떤 집이든지 어디든지 그 장소를 설정해서 매일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또한 우리가 공동체로 본다면
우리가 이렇게 함께 모여서 기도하는 것도 정말 중요하다 그래서 광야라는 장소가 또 한편으로는 세상과 단절된 곳이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교회에서 이렇게 정한 예배일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오늘과 같은 안식일 토요일이 있고요 토요일만 안식일이 아니죠 금요일 저녁 안식일도 똑같이 안식일입니다 그리고 화요일 저녁이 있고요 그리고 매일마다 새벽에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새벽 기도회 시간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시간과 이 장소를 소중히 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한 명 한 명의 간절한 기도에도 응답을 하시지만 정말 한몸된 교회가 한 마음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해 주시고요 더욱 크게 역사심을 믿습니다 그래서 시험이라는 것이
개인적인 차원으로 오기도 하지만 교회적인 차원으로 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있어야 됩니다 개인적으로 보면 한 명 한 명이 깨어있어야 되고요 그 한 명 한 명이 모인 우리가 함께 깨어있어야 된다 그래서 교회가 어떤 시험을 받을 때 우리가 영적으로 인지해야 됩니다
아, 이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시험이다 그래서 그 시험에 대비하기 위해서 또한 그 시험을 능히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힘써 기도해야 되고요 마치 광야와 같이 세상과 구별된 이 교회에 모여서 우리는 기도하기에 힘써야 될 것입니다 요즘 들어서 날씨가 너무 덥습니다
그렇죠?
더 무서운 것은 내년에는 더 덥대요 그 다음에는 더 더워진답니다 얼마나 더워지는 걸까요?
감이 오지 않습니다 이렇게 날씨가 너무 더우면 사실 사람이 무기력해지잖아요 밖에 나가는 것조차 쉽지가 않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안식이를 기억해서 이 자리에 모이신 우리 성도님들을 사장님께서 귀히 보시고 더 큰 축복으로 채워주시리라 굳게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말로
이런 어려운 시기에 또 쉽지 않은 그런 날씨에 우리가 모였다라는 것은 그냥 다람쥐 세파키 굴러가듯이 그냥 모인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또한 이 자리를 예비해 두신 하나님이 있고요 그런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모여서 함께 기도하기에 힘쓰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시험을 받기 전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광야로 가서 금식하신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바라옵기는 나의 광야 우리의 광야에서 힘써 기도하며 시험을 힘써 준비하는 그런 저와 우리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함께 감사합니다.

AI가 설교 자막을 바탕으로 자동 정리한 내용입니다. 정확한 말씀은 영상 원문을 확인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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