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8.1일 안식일 오후예배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찬송_431, 432장
제작일 2026. 7. 31.
AI 설교 정리
빌립보서 1:27-30절을 중심으로 그리스도인의 복음에 합당한 삶과 고난, 협력,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본문빌립보서 1:27-30
- 빌립보서 1:27-30절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일심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해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며, 고난을 감수하는 것이 신앙의 일부이다.
- 십자가의 고난은 구원의 빈거이며, 그리스도인은 이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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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삶과 복음에 합당한 행동
- 그리스도인은 일심으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해 협력해야 한다.
-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받는 것도 신앙의 일부이다.
-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들에게 신앙의 본이 되어야 한다.
복음과 구원
- 복음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미리 약속하신 것이다.
-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보혈로 인해 구원이 가능하다.
- 십자가의 고난은 멸망하는 자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 예수님은 죄 없는 몸으로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
교회와 협력
- 참된 교회는 하나로 통합되어야 하며, 이는 예수님과 한 세례, 한 성령을 통해 이루어진다.
-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로 연결되어 있고, 성찬을 통해 하나임을 증명한다.
- 교회 내 분리와 다툼은 하나님께 옳지 않으며, 한 마음과 한 뜻으로 복음을 위해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 협력은 하나가 되어 함께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고난과 신앙
- 복음을 위해 담대하게 살아가야 하며, 개적하는 자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 고난은 유익하게 작용하며, 신앙생활을 통해 믿음이 강화된다.
- 그리스도의 보금을 통해 주어진 은혜를 생각하고,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 그리스도의 교훈은 사랑을 요구하며, 사랑은 약한 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 예수님은 사랑으로 십자가에 죽으셨고, 이는 담대한 사랑의 모습이다.
신앙생활의 강화
- 신앙생활은 전신갑주를 통해 강화되어야 하며, 이는 진리, 의, 구원 등 요소로 구성된다.
- 고난은 믿음으로 이겨내야 하며, 예수님의 은혜와 함께 하면 감당할 수 있다.
-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하며, 이는 고난을 통해 존귀와 영광을 얻는 길이다.
전사(자막) 전문▼
우리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하나님 말씀 증거하겠습니다 먼저 성경 말씀 같이 보시겠습니다 빌립보서 1장 성경 말씀 빌립보서 1장 27절부터 30절까지 있는 말씀입니다 빌립보서 1장 27절부터 30절까지 있는 말씀 같이 이렇게 보시겠습니다 제가 봉독해 드리겠습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해라 이는 내가 너희를 가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일심으로 서서 한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아무 일이라든지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않는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하니라 이것이 저희에게는 멸망의 빈거여 너희에게는 구원의 빈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너희에게도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우리 오늘 시간에는 27절에 있는 말씀과 같이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그렇습니다 바울사도가 이런 요구를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담는 삶을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디에 그냥 신앙의 생활이 나의 전부가 아니라 나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겠죠 그러니 나의 삶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의 모습과 또 이웃을 사랑하는 삶의 모습이 어디에 기준이 됩니다 우리는 바울사도나 예수님만 우리 신앙의 본이 아니라 저희들 또한 어디에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또는 내 주위에 있는 나와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어디에 신앙인의 삶의 모습을 닮아가게 하는 본이 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어디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목표가 되지 않나 되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 해봅니다 우리는 그러기 위해서는 어디에 지금보다는 더 나은 나의 삶의 모습이 변화되는 삶의 모습이 필요하겠죠 우리는 그래서 바울사도가 저희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그러는 것 같아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그런 생활 바울사도가 우리 이 말씀을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바울사도는 감옥에 있을 때 순서심이라 그랬습니다 감옥에 있습니다 우리 필리포 성도들은 감옥에 있는 바울사도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요 우리 그도 계획을 지어 가지고 감옥에 갔을까 이런 염려일까요 아니면 그 감옥에 가 있는 그 모습이어야 돼 안타까워 가지고 기도하고 있는 모습일까요 어쩌면 저희들에게 필요한 것이 바울사도에 대한 어떤 모습이 필요해요 바울사도가 빌리포 교회를 생각하듯이 빌리포 교회 성도들도 바울사도를 어디에 생각하는 생각하는 또는 염려하는 그런 마음이 필요하겠죠 그것이 어디 저희들이 시민권이 어디 또 저희들의 삶이 어디 세상과 함께하는 삶이지만 나의 삶의 목표는 어디 하늘에 두고 있기 때문에 그랬습니다 그래서 우리 필리포서 3장에 있는 말씀을 보시면 우리의 시민권은 어디에 있어요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다 그랬습니다 우리는 땅의 삶이 전부인 줄 알고 살아가고 있지만 결국은 어디 땅의 삶을 마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통해서 어디 하나님의 나라에서 삶을 이어나가야 한다고 하는 것이죠 우리 어찌 보면 육신의 삶을 이어가고 또 하나님의 나라의 삶을 이어간다고 해서 이 삶이 어디 끝나지 않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우리 육신의 삶을 가지고 있을 때는 어려움도 있고 슬픔도 있고 고통도 있지만 하나님의 나라의 삶은 어떠한 삶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요 다시는 눈물 흘릴 일이 없다 그랬습니다 고통이 없다고 하는 것이죠 괴로워할 일이 없습니다 우리 이러한 나라를 저희들은 소망하면서 소망하면서 지금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들어가기까지가 돼요 우리는 힘든 것이죠 그래서 바울사도는 지금 저희들에게야 돼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희 복음이라고 하는 것이 뭐이기 때문에 이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라 라고 말하고 있을까요? 이 복음의 시작은 누구로부터 일까요? 이 복음의 시작은 한번 보시겠습니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들었는데 로마서 1장에 있는 말씀 보시면 이런 말씀이 있어요 이 복음은 로마서 1장 2절에 있는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우리 1절로 한번 보실까요? 1절에 있는 말씀 보시면 예수 1절 2절 한번 보시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하심을 입었으니 누구의 복음을 위해서 택정함을 입었다고요? 바울사도는 저희들 또한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택하심을 입었습니다 우리 2절에 있는 말씀 보시면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예수님에 관한 말씀들을 많이 하고 계셨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윗을 보면서 또는 요셉을 보면서 누구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을까요? 단지 그들이 성실한 삶 또 믿음의 삶을 사는 것만으로 그들의 삶의 전부를 표현한 것일까요? 그들의 삶 속에 그리스도의 모습이 가려져 있다고 하는 것이죠 또 선지자들을 통해서 예수님에 대해서 어떻게 세상에 올 것이며 어디에서 태어날 것이며 하는 이런 말씀들을 많이 말씀하셨다라고 하는 것이죠 선지자들을 통해서 누구를 말씀했어요?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 그렇군요 우리를 구원하실 자라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오늘날 저희들은 복음하면 바울사도는 하나님의 복음을 그렸는데 보금을 통해서 약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저도 그렇게 믿고 믿어왔고 여러분들도 보금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고 우리는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왜요? 하나님이 직접 저희들을 택해서 구원하셨는가요?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 어디? 그의 보혈로 말미야마 하나님의 자녀되는 삶을 살아가게 하셨는가요? 만약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지 않았다면 저희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을까요? 예수님이 아니거나 어디?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갈 수 있는 그런 은혜가 저희들에게 있을 수 있을까요? 없죠? 예수님을 통해서 어디? 이루어진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보금의 중심은 예수님이라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이 보금을 통해서 어디? 우리가 구원을 얻는데 그 구원의 합당한 삶을 저희들로 알고 어디? 살아가라라고 하는 것이죠 어떠한 삶이 이 보금의 합당한 삶이라고요 우리 본문에 있는 말씀을 통해서 한번 세 가지만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 본문 빌뽀서 1장 27절 말씀 다시 한번 보러 오면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보금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를 가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보금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그랬습니다 우리 1절에 보면 이런 말씀 있죠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보금의 신앙을 위해서 협력하는 것과 그랬습니다 보금을 위해서 어디? 보금의 신앙을 위해서 협력하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바골사도가 왜 여기에 보금을 통해서 협력하라 신앙을 위해서 협력하라라고 말하고 있을까요? 협력이라고 하는 것은 뭐예요? 협력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는 로마서 8장 28절에 있는 말씀 보시면 우리 이런 말씀 있죠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불우심을 이룬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라고 말씀 했습니다. 우리 여기 있는 이 말씀의 합력이라고 하는 것은 각각의 어디, 자기의 직분을 따라서 어디, 자기 책임을 가지고 그 일을 다 하면 어디, 모든 것들이 잘 이루어져서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한다라고 하는 것이죠. 우리가 차를 타고 다니지만 차에 부품들이 얼마나 들어간다고 해요. 그런데 그중에 몇 개만 빠지면 차가 어떻게 되는가요? 부품이 몇 개만 빠지면 고장나서 못 갈 수도 있거든요. 기름만 안 넣어도 어디, 한 가지만 없어도 어디, 차는 안 움직인다라고 하는 것이죠. 모든 것이 필요하다� ��고 하는 것이죠. 자기 역할이 있다라고 하는 것이죠. 자기 역할을 다함으로써 이 차가 움직이는 것이 자기의 책임을 다하는 것 이고 우리 여기에서 말씀하고 있는 협력이라고 하는 것은 어디, 교회의 일에 어디, 하나가 되어서 어디, 나아가라 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가 되어서 나아가는 것. 그래서 이 교회는 어디, 하나님의 교회는 이 땅에 몇 개가 심기워졌는가요? 이 땅에 하나님의 교회는 몇 개가 심기워졌어요? 아마 이런 생각이 돌아가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하나님의 교회가 여기도 있고 저기도 있고 많이 보이던데 우리 그러한 하나님의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땅에 세운 참된 교회는 몇 개냐라고 하는 거죠. 하나라고 하는 것이죠. 왜 하나예요? 미국에도 참네수교회 있고 한국에도 참네수교회 있으면 두 개지. 왜 하나예요? 한 교회라고 하는 것이죠. 뭐 때문에요? 예수님은 하나라고 하는 것이죠. 또 한 세례를 통해서 하되요. 한 성령을 통해서 하되요. 똑같은 믿음을 가지고 하되요. 신앙성을 하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라고 얘기합니다. 이 성령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라고 하는 것을 증명한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남은 시내에 많은 교회가 있다 할지라도 그러한 교회와 저희 교회가 하나되지 못하는 것은 뭐 때문에 그럴까요? 하나될 수가 없는 것은 교파가 달라서 그럴까요? 물론 그런 것도 있겠죠. 그렇지만 하되요. 하나가 될 수 없는 것은 약속의 성령이여되요. 함께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라고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를 하되요. 하나되게 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 앉아있는 저희들은 하되요. 한 성령으로 하되요.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된다라고 하는 것이죠. 또 우리는 성찬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라고 하는 것을 증명하고 있죠. 예수의 몸이 하나이듯이 떡 하나를 빚어가지고 그것을 떼어서 나누어주면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이건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하나씩 하나씩 떼어서 먹지만은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제 한 형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마음이 나누어져서 분리가 되고 다툼이 있고 하는 이러한 것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옳지 않다라고 하는 것이죠. 우리는 주위에서 많은 이러한 모습들을 볼 것입니다. 다툼이 생기고 나누어지고 하는 모습들이요. 국가도 그렇고 사회도 그렇고 조직도 그렇고 많은 곳에서 어때요? 우리 이웃도 그렇고 나누어지는 것은 분쟁 때문에 그러거든요.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 되기를 원한다라고 하는 것이죠. 우리는 무엇에 하나 되기를 원한다고요? 바우사도는 복음에 한 복음에 그리스도의 예수님의 그 은혜에 하나 되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한다라고 하는 것 이죠. 우리는 그 안에 이러한 것들이 있는 것 같아요. 집회도 있고 모임도 있고 또 선교하는 것도 있고 전도하는 것도 있고 또 우리 기도하는 것도 있고 또 교육하는 것도 있고 우리 이러한 다양한 교회 안에서 활동들이 어디? 한 목소리로 이어져 나가고 행하여져 나갈 때 어디? 그러한 일들을 통해서 우리는 이런 효과를 이야기하죠. 그래서 한 사람이 힘을 쓰는 것보다 두세 사람이 함께 힘을 쓰면 어디? 시너지 효과가 난다 그러죠. 두세 배 더 효율을 올릴 수 있다고 하는 것이죠. 그렇듯이 어디? 마음을 같이 한다라고 하는 것은 그만큼 교회 안에서 어디? 중요하다라고 하는 것이죠. 우리가 복음을 위해서는 이와 같이 한 마음을 가지고 한 뜻으로 함께하는 그러한 신앙의 삶이 필요하다라고 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 두 번째로는 우리 28절에 있는 말씀 보시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아무 일이라든지 개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저희에게는 멸망의 빈 거여 너희에게는 구원의 빈 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이라 그랬습니다. 우리 두 번째로 복음을 위해서 어디? 어떤 모습을 갖추라고요? 담대하라라고 하는 것이죠. 개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말라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나는 데는 여러 가지 일로 염려와 근심이 많죠. 이 염려와 근심이 어디? 나의 삶을 늘 행복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그런데 염려와 근심이 사라지면 어디? 즐거워할 수 있거든요. 마음 놓고 어디? 참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복음 안에서 또 하나 어디? 우리 신앙을 위해서 또 하나 어디? 저희들은 담대하라라고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신앙에 대해서 담대해야 할까요? 우리의 본문을 쓴 바울 사도에게도 이러한 삶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알기 이전에 참 그는 어떤 삶을 살았다 그래요. 세상에서 존경받고 잘나가는 우리 그러한 사람이었다 그랬습니다. 우리 사도의 행정 7장에 있는 말씀 보시면 집사로 세워진 어디? 스대반을 죽이는 것도 어디? 참 서슴지 않고 행했습니다.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에도 근화된 당당하게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기 위해서 도서를 받아가지고 밤의 색으로 이렇게 늠름하게 사람들을 데리고 어디? 같은 사람이거든요. 예수님을 알기 이전에 근화된 많은 사람들 어디? 핍박하고 때리고 감옥에 가지고 하는 이러한 일들에 있어서 그는 이렇게 생각이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어디? 다른 사람보다 더 열심히, 적극적으로 어디? 그들보다 더 많은 성과를 내면서 살아간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어디? 예수님을 만남으로 인해서 어디? 완전히 깨어졌죠. 완전히 깨어졌을 뿐만이 아니라 이 바우사도는 어디? 예수님을 알고 난 이후에는 어떤 행보를 걸어갔어요? 그 행보가 고린도 후서 11장 27절부터 아니 23절부터 27절까지에 있는 말씀이죠. 그한테 한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예수님을 알고 난 이후에는 어떤 길을 걸어갔는가? 고린도 후서 11장 23절부터입니다.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40에 하나 가만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일을 기품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의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에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굶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보선노라 그랬습니다 여러분들이 바우사도가 걸어온 그 길이여야 돼요 평탄한 길인가요? 험난한 길이었죠 우리 이런 걸 당하면서 어떻게 그런 믿음을 지켰을까 하고 생각할 정도입니다 실제로 이러한 일들이 개인어대행 저희들에게 임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개인어대행 나름대로 그러더라고요 나름대로 제가 우리 김천에 있으면서도 그랬고 어디에 있으면서도 그랬는데 교회 가장 가까운 데에 있는 바로 옆에 있는 산대로 어디에 한번 올라가 봤어요 높이가 그렇게 높지는 않습니다 280m 높아야 한 300-400m 높지는 않는데요 이런 이런 느낌이 들어요. 항상 올라갈 때마다 왜 이렇게 힘들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고 보면 그때그때� ��다 자주 올라갔으니까 편해하는데 그러지 않고 똑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똑같은 길이고 똑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항상 올라가는 그 길은 힘들다고 하는 것을 느꼈을 때 이건 우리의 삶이 그러한 것 같구나라고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편하게 산다 할지라도 아무리 내가 많은 권력을 가지고 어디 또는 부유한 가운데 산다 할지라도 그의 삶 속에는 어디 이와 같이 항상 어디 자기에게 자기만이 느끼는 어디 그러한 어려움들이 있구나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 번은 아까 조금 높은 산을 올라가 봤습니다. 한 900고지 정도요. 여기 구미에 있는 산인데 저는 힘들게 올라가는데 옆에서는 이렇게 팔딱팔딱팔딱팔딱팔딱 뛰면서 올라가더라고요. 그 사람은 제가 힘들게 올라갈 때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든지 한참 올라가고 있는데 또 중도까지 갔다가 내려올 때도 그래요. 바짝 뛰어다닙니다. 저분은 어떤 체력을 가지고 뛰어야 돼요. 그러는가 하고 참 이렇게 생각을 했었는데요. 우리 그분은 늘 그와 같은 훈련을 했기 때문에 그렇겠죠. 그렇다고 해서 그분도 어디 그분은 안 힘들고 그럴까요? 아마 그분도 그분 나름대로 어디 다른 사람보다 앞서 가지만 어디 뛰어가지만은 아마 그 나름대로 어디 자기 체력이 어디 맞추어서 힘들게 참 올라갈 것이다. 라고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이 각 사람에게는 어디 자기의 모습이 있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어디 어찌면 그의 나름대로의 그 길이 있지만은 우리 사람이 누구에게나 어디 똑같은 어려움들은 있을 거라고 하는 것이다. 전혀 바울사도가 이런 삶을 살고 난 이후에 이런 길을 걸어가고 난 이후에 그는 이런 고백을 하잖아요. 어려움이 있든 아니면 편하게 그 길을 걸어갔든 모든 사람들에게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룰 수 있는 고백인 것 같아요. 그러나 바울사도는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우리 디모데 후서 4장에 있는 말씀 보시면은 우리가 잘 아시는 말씀인데 우리 이렇게 말씀이 있습니다. 4장 7절 8절에 있는 말씀 보시면은 우리 고린도 후서에 보면은 험난한 길을 걸어왔잖아요. 매로 맞기도 하고 파손을 당하기도 하고 돌로 맞기도 하고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죽고 배고프고 이런 어려움도 겪었다 그랬죠. 그런데 이러한 것들을 다 무엇으로 말씀하고 있냐면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7절에 있는 말씀 보시면은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래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멸일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위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그랬습니다. 그는 그가 겪은 일들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죠. 선한 싸움이라고 있습니다. 선한 싸움. 내 맞는 것이 선한 싸움인가요? 죽고 배고프고 굶지는 것이 선한 싸움이에요? 그런데 바울사도는 지금 이렇게 말씀하고 있거든요. 선한 싸움을 싸웠다 그랬습니다. 무엇을 위한 싸움이었기 때문에 그럴까요? 무엇을 위한 싸움이었기 때문에 자기의 삶을 위한 싸움일까요? 아니면 스펙. 뭔가 경험을 하기 위한 싸움이었을까요? 아니면 이러한 일들을 통해서야 돼. 더욱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어디. 또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신이 어디. 더 강해졌을까요? 그런 이러한 싸움은 선한 싸움이라고 그랬습니다. 믿음의 싸움이기 때문에 그렇죠. 아마 저희들도 어디. 지금 믿음의 싸움을 싸우는 우리 그러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그러면서 우리는 나아가고 있거든요. 그래서 무엇을 버리지 말라고요? 이 믿음만은 버리지 말라라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도 어디. 자기의 삶은 포기했고 내 육신이 어디. 용맹한 것, 아름다운 것은 포기했지만 믿음만큼은 지켰다라고 하는 것이죠. 그러면서 그를 위해서 기다리고 있는 하늘에 상이 있었다 그랬습니다. 우리 그것을 의의 멸류관 그랬죠. 그런데 그 의의 멸류관은 누가 주었다 그랬어요? 으로 오신 재판관 그랬습니다. 우리 마지막 때 어디. 우리 연세 많은 의로운 재판관을 만나는가요? 우리 딱 있는 재판관은 아니겠죠. 우리가 하늘에 있는 어디. 마지막 심판 때 어디. 하나님께서 어디. 우리에게 주실 이 의의 멸류관을 위해서 어디. 신앙 생활을 하고 나니까 어디. 그가 어디. 우리 나에게 어디. 이 의의 멸류관을 주실 것을 믿었다라고 하는 것이죠. 우리는 이러한 믿음이 필요한 것 같아요. 이러한 믿음은 어디. 하지만 하루아침에 세워지는 것은 아닌 것 같죠. 이러한 믿음은 하루아침에 세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바울사도는 예배소서에 있는 말씀 보시면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얘기하고 있죠. 전신갑주가 뭐예요? 우리 군인들 보면 어디. 파이가 쓰고 어디. 또 군복 입고 어디. 또 총을 들고 어디. 군화를 신고. 흑대를 메고. 우리 이러한 일들이 있습니다. 우리 그러면서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이 전신갑주가 군인의 무장의 모습을 보이면서 무엇을 말씀하고 있어요. 복음의 신을 말하고 있고 진리의 띠를 말하고 있고 의의 흉표를 말하고 있고 구원의 투구를 말하고 있고 우리 이러한 것들 어디. 우리의 신앙이 자라가면서 어디. 우리의 신앙이 어디. 자라가는데 필요한 요소들 아닌가요? 하나하나 우리가 갖춰졌을 때 저희들의 믿음이 어디. 강건해질 수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그러한 믿음을 가질 때 세상에 대해서 어디. 또 우리는 핍박에 대해서 두려워하지 않는다라고 하는 것이죠. 우리는 복음을 위해서 어디. 담대하라라고 파우사도는 요구하고 있습니다. 또 그런가 하면 우리 29절에 있는 말씀 보시면 파우사도는 이런 말씀을 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어디. 고난도 받게 하십니다. 그랬습니다. 주를 위해서는 어디. 복음을 위해서는 고난도 감수해야 한다라고 하는 것이죠. 정말 우리는 이 신앙 때문에 어디. 어려움을 당해보신 적이 있는가요? 복음을 전하면서 어디. 가진 어디. 모욕과 멸시와 또 무시를 당한 적들이 아마 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 복음을 위해서는 어디. 때로는 고난도 어디. 감당할 필요가 있다라고 하는 것이죠. 그런데 이 고난은 우리 신앙인들에게만 사실 있는 것은 아니죠. 모든 사람들에게 고난은 있겠지만 특히 우리 신앙인들에게 있어서의 이 고난은 왜 우리에게 올까요? 우리 시편에 있는 말씀을 보시면 성도는 어디. 고난도 때로는 유익이라 그랬습니다. 이 고난을 통해서 어디. 내가 하나님의 율법을 깨달았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정작 이 고난의 삶은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내가 세상을 이겼기 때문에 어디. 그 세상을 이기는 그로 인해서 내게 고난이 있다라고 얘기합니다. 무슨 말씀인가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죠. 그러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은 무엇을 승리하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어요? 위로움의 승리로 그랬죠. 위로움의 승리로. 죄 없으신 분이시지만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모든 사람들의 죄를 짊어졌다. 그랬습니다. 곧 죄 없는 몸이여되 죄를 뒤집어쓰고 십자가에 죽으셨다라고 하는 것이죠. 무엇을 위해서요? 우리를 구원을 위해서.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이해를 해요. 우리 본문에 있는 말씀 가운데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28절 후반부에 보면 중반부에 보면 이것이 너희에게는 멸망의 빈거요. 또 너희에게는 구원의 빈거니? 그랬습니다. 저희에게는 멸망의 빈거요. 멸망의 빈 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빈 거인 이것이 뭘까요? 이게 뭐예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어주신 것이거든요. 우리 이 말씀이 어디에 있어요? 고린도전서 1장에 있는 말씀이죠. 십자가에 도는 일. 멸망하는 자에게는 어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어디? 하나님의 능력이라 그랬습니다. 이 십자가의 구원의 은혜가 어디? 우리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은혜가 어디? 내 삶 속에 있음을 저희들로 하여 변하되. 증거한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삶이 어디? 서로 애매한 고난을 당한다 할지라도 또 우리 육신의 삶에 어려움을 당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이 어디? 지금 필요하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실은 지금 바구사도가 어디에 있다고 그랬어요? 어디에서 표지 썼다고 그랬어요? 보금을 전하면서 편한 가운데 쓴 것이 아니라 감옥에 있을 때 썼다고 그랬습니다. 그러면 바구사도가 대명을 어겨서 감옥에 들어갔는가요? 아니면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어서 감옥에 들어갔을까요? 그거는 보금을 전하는 일로 인해서 감옥에 들어갔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인해서 사람들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어요? 멀리 떨어져 있는 바구사도가 감옥에 들어갔다는데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요? 죄를 지어서 그런 거예요. 보금을 전하다 들어간 거예요. 우리는 믿음으로 생각하면 어디? 좋게 생각하면 보금을 전하다가 감옥에 들어갔죠. 그런데 그게 사실이죠. 그런데 사람들 어디? 때로는 저희들도 어디? 믿음이 없는 경우에는 어디? 무엇인가 잘못을 했겠지 하는 우리라는 마음이 줄 때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이러한 것은 어디? 잘못된 길이죠. 이 보금을 통해서 어디? 보금으로 인한 이 코나 이것은 어디? 우리 믿는 자들에게 있는 일이니? 우리는 그걸 통해서 어디? 그걸 통해서 다시 한 번 어디? 나를 돌아보라고 하는 것이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라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29절에 시작하는 말씀에 그랬습니다. 그리스도를 인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시는 것은 그랬습니다. 은혜를 주시는 것은 어디? 믿는 것뿐만이 아니라 때로는 권한도 임할 수 있다. 라고 이렇게 말씀하고 있거든요. 우리는 이런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이죠. 우리 그렇기 때문에 바울사도가 저희들에게 지금 요구하는 것이 뭐예요? 그리스도 보금에 합당하게 생활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보금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이 은혜를 생각하고 또 이 보금을 통해서 우리의 삶의 모습이 세상에 대해서 어떠해야 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본문의 교훈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보금을 위해서 우리 믿는 사람들이 마음을 같이 해서 하나가 되는 것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요. 또 우리 두 번째는 어디? 우리는 세상도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대적하면서 삽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교훈은 대적하는 게 하나님의 뜻인가요? 사랑하는 게 하나님의 뜻인가요? 사랑하라고 하는 것이죠. 그런데 이 사랑하는 것은 어디? 큰 힘이 필요한 것 같아요. 우리 어제 저녁에 제가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어디? 약해진다 그랬습니다. 약한 자가 된다라고 하는 것이죠. 사랑하는 사람은 약한 자가 된다라고 하는 것이죠. 정말로 그러는 것 같아요.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어디? 그는 십자가에 죽어주셨다라고 하는 것이죠. 그런데 그 사랑의 모습이 어디? 정말 약한 자의 모습인가요? 담대한 모습이라고 하는 것이죠. 담대한 모습을 가지기를 원하고 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이 은혜로 말미야마 우리에게 임하는 많은 여러 가지 일들 우리가 이러한 것들을 이겨나갈 수 있는 이 고난을 헤쳐나갈 수 있는 우리가 믿음이 또한 필요합니다. 우리의 힘으로 되지는 않겠지만 예수님이 나와 함께해 주신다면 예수님의 뜻을 우리의 삶 속에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 이러한 고난도 어디? 능히 감당할 수 있는 그러한 삶의 모습을 이루게 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모습이라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오늘 바오사도는 저희들에게 어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한 그러한 생활로서 이와 같이 세 가지의 교훈을 말씀하고 있는데 우리 이러한 교훈들이 어디? 우리가 잘 생각해가면서 주님을 더욱더 가까이 하고 또 비록 우리에게 어려움이 있지만 이 믿음을 참고 견디고 나아갈 때 어디 우리가 마지막 때에는 그리스도 앞에서 이 고난을 통해서 존귀와 영광을 얻을 수 있는 그런 길로 저희들을 인도할 기금이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은혜가 저희들의 삶 속에 함께하기를 우리 예수님으로 추구합니다 이렇게 목도하시고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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