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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예수교회 True Jesus Church

지혜자의 얼굴의 광채 313

전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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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진 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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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와 질서의 중요성, 악과 선의 운명, 그리고 가정과 사회에서의 순복에 대해 설명함.

본문전도서 8장 1~8절
  • 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고, 마음의 평안과 외적 변화를 가져온다고 설명함.
  • 질서와 복종은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것이며, 가정에서의 존중과 사랑이 중요하다고 강조함.
  • 악은 결국 심판받고, 의인은 하나님의 보상과 영원한 삶을 얻는다고 설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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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본질

  • 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선물이며, 마음의 평안과 외적 변화를 가져온다고 설명함.
  • 지혜는 악에 빠지지 않게 하며, 하나님을 기뻐하는 삶을 살게 한다.
  • 지혜는 얼굴에 빛을 내며, 삶을 아름답게 경영하는 능력을 가져온다고 설명함.

질서와 복종

  • 권위에 복종하는 것은 질서의식이며,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에 따르는 것임.
  • 가정에서의 복종은 남편을 존중하는 것이며,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이 아름다운 삶의 모습임.
  • 남편의 발을 씻어주는 행위는 존경과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 사회의 문제는 가정의 질서를 지키지 않음에서 비롯된다.

악과 선의 운명

  • 악을 행하는 자는 결국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며, 악행에 대한 보응은 결국 이루어진다.
  • 악인은 잠시 형통할 수 있지만, 결국 그림자처럼 사라진다.
  • 하나님의 공의는 분명하며, 악인들의 번영은 오히려 저주로 간주된다.
  • 의인은 이 세상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지만, 마지막에는 눈물로 깨끗이 씻겨진다.
  • 의인의 영원한 삶에 비하면 악인의 짧은 삶은 그림자처럼 보인다.

지혜로운 삶

  • 지혜로운 삶은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살아가는 것이라며, 하나님을 경애하고 악을 떠난 삶을 살아야 한다.
  • 순간순간의 행동과 말이 참된 지혜로운 행동이 되어야 한다.
  • 기도로 하나님께 지혜와 위로를 구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 예배는 주님의 기도문으로 마무리된다.
전사(자막)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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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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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묵상을 하게 되더라고요.
나의 갈 길 다 간 후에 내 삶을 돌아봤을 때 진짜 예수 인도하시는 그런 삶을 살았을까?
이런 찬양을 하게 되고 나중에 내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 영령 부를 나의 찬송 예수 인도하셨네 라고 고백할 수 있을까라는 그런 마음을 계속 들어지게 하는 그런 찬양인데 그런 마음으로 3절만 다시 한번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찬송가 243장 영원하신 기업 찬양하시겠습니다.
찬송가 243장 찬송가 243장 찬송가 243장 찬송가 243장 찬송가 243장 찬송가 243장 찬송가 243장 제 마음 정돈하시면서 또 드리겠습니다.
찬송가 243장 찬송가 243장 찬송가 243장 찬송가 243장 찬송가 243장 찬송가 243장 찬송가 243장 찬송가 243장 찬송가 243장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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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우리 그 주 예수 그리스로님 받들어서 말씀 증거하겠습니다.
전도서 8장 1절부터 8절까지 봉독하겠습니다.
전도서 8장 1절부터 8절까지 봉독하겠습니다.
같이 봉독하겠습니다.
지혜자와 같은 자 누구며 사례의 해석을 아는 자 누구냐.
사람의 지혜는 그 사람의 얼굴에 광채가 나게 하나니 그 얼굴에 사나운 것이 변하느니라.
내가 구원하노니 왕의 명령을 지키라. 이미 하나님을 가리켜 맹사였음이니라.
왕 앞에서 물러가기를 급거히 말며 악한 것을 일삼치 말라. 왕은 그 하고자 하는 것을 다 행함이니라.
왕의 말은 권능이 있나니 누가 이르기를 왕께서 무엇을 하시나이까 할 수 있으리야.
무릎 명령을 지키는 자는 화를 모르리라. 지혜자의 마음은 시기와 판단을 분변하느니.
물은 무슨 일이라든지 시기와 판단이 있으므로 사람에게 이만한 화가 심함이니라.
사람이 장래일을 알지 못하나니 장래일을 가르칠 자가 누구리야.
생기를 주장하여 생기로 머무르게 할 사람도 없고 죽는 날이 없으리야.
아멘
저는 밝은 얼굴 선한 빛깔의 얼굴을 가지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저를 보면서 그냥 어떻게 보면 선한 빛깔이 흘러나와서 스트레스도 해소가 되고 또 힐링도 되고 그런 얼굴의 모습을 갖고 살기를 원합니다.
좀 신선한 매력이 있는 모습. 그런데 그런 얼굴을 유지하기가 굉장히 어려워요. 어느새 제가 거울을 보면 얼굴이 어두워져 있는 모습들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오늘은 특히 우리 진영경제가 저를 보더니 목자님 어디 아프세요? 피곤하세요? 오늘 굉장히 몸이 좀 무겁네요.
밝은 얼굴을 가지고 살려고 해도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장에서는 지혜자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 속에서 말하는 지혜자는 그 누구보다도 삶 의 모든 문제에 있어서 살이에 맞게 행동하는 자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지혜자의 얼굴이 어떻습니까?
광채가 나요. 빛깔이 나요. 어떤 지혜자로서의 어떤 선한 빛깔이 나타나고 밝은 빛깔 희망의 어떤 광채 나는 그런 빛깔이 나타나겠죠.
숨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자의 얼굴이 없음으로 인해서 광채가 사라지는 것이죠.
만일 저에게 지혜가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의 지혜가 있다면 제 얼굴이 광채가 아마 빛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를 소유한 사람은 그 사람의 얼굴에 광채가 난다고 말씀했죠.
그리고 여기서 광채가 나는데 얼굴에 사나운 것이 변하는 이라라고 말하면 사나운 얼굴이 있어요.
사나운 얼굴.
얼굴만 봐도 가까이 가고 싶지 않은 살기어린 어떤 그런 찬바람이 휙 도는 그런 살기어린 그런 얼굴도 있잖아요.
저 사람 참 무섭게 생겼네요.
왠지 모르게 가까이 가서는 안 될 것 같은 위협이 느껴지는 그런 인상들.
그런 사람들은 결코 만만하게 볼 수가 없는 사람들이죠.
남들도 함부로 대하지 않겠죠.
그럼 이 사납다라고 하는 것이 또 세상 사람들 속에서는 그래도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하나의 그런 공격적인 어떤 도구의 하나의 수단이 쓰게 되겠죠.
그러나 성경에서는 말하는 것은 이 사납다는 것은 뭘 얘기하냐면요.
사람이 얼굴이 사납다는 것은 그 사람이 무지하다 그 뜻입니다.
아주 무식한 사람입니다. 무지하다.
그리고 아주 미련하다.
이런 특징을 갖고 있어요.
무지하고 미련한 자에게 흔히 보이는 특징입니다. 사실은요.
아주 무지막지한 사람이에요.
무지막지.
그러니까 무식하니까.
이것저것 따지 않고 그냥 자기 혈기대로 정욕대로 행하는 거예요.
세상 사람에게는 매력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아주 짐승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사납다 얘기하는 것이죠.
그들의 성격과 행동은 아주 거칠고 모렴치예요.
남의 체면 따지지 않습니다.
인정사정 보지 않습니다.
사실은 사람의 탈을 쓰고 사는 것이지 어떻게 보면 그 마음은 영혼은 사람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꼭 살아온 맹수 같은 모습일 수도 있겠죠.
그런데 본절에서 지혜의 효용성을 얘기하고 있는데 그 지혜의 효용성은 어떠냐면요.
만병통치학과 같아요.
만병통치학과 같아요.
이렇게 거칠고 모렴치하며 거만한 사람이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갑자기 평안해지는 거예요.
얼굴이 밝아지고 아주 정말 순결한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평안해요.
그 평안을 누려요.
그러니까 마음이 불편하니까 그 사나운 얼굴을 가지는 거예요.
뭔가가 욕구불만이 채워지지 않으니까 말이죠.
환한 모습으로 사랍게 살아가는 거죠.
그런 사람이 지혜가 들어오게 되면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평안해지요.
그리고 이기적이고 거친 성품이 사라지게 할 뿐만 아니라 외적인 모습까지도 변화가 됩니다.
싹 다 변해요.
평안하고 아주 얼굴에 광채가 나는 선한 빛깔이 이렇게 비춰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지혜가 들어오게 되면 얼굴부터 바뀌어요.
인상이 안 좋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그것은 하나님의 참된 지혜가 없어서 그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지혜는 하나님께 받은 선물인데 누가 노력해서 받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 하나님은 누구에게 이런 선물을 주실까요?
산탈아버지는 우는 아이들에게는 안 줘요.
선물을 안 주신대요.
그러니까 절대 울면 안 돼요.
그렇죠?
그런데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선물을 줄까요?
자 우리 10편 111편 10절 보겠습니다.
10편 111편 10절입니다.
여기 돌아오겠습니다.
바로 10편 111편 10절 하나님은 얼굴에 광채가 나는 지혜를 누구에게 주시는가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여와를 경애함이 곧 지혜의 근본이라 그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좋은 지각에 있나니 여와를 찬송함이 영원히 있으리로다 그래서 여와를 경애함이 곧 지혜의 근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공경할 줄 알고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특별히 허락하시는 선물이 뭐냐면 지혜를 주셔요.
우리가 하나님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되겠다 이런 마음을 갖게 되면 우리가 뭐가 깨달아질까요?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들을 찾잖아요.
그런 지혜들이 성냥 안에서 깨달았게 만들어요.
하나님을 두렵게 생각하게 되면 하나님의 명령을 쫓아 살 뿐만 아니라 또 한편으로는 악에 빠지지 않게 내가 이런 악을 행하면 내가 어찌 하나님 앞에서 득재하리요?
포숭과 같은 그 유혹의 여인 그 전장에서 그렇지 않습니까?
그 여인을 경애하는 자만이 빠져나가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을 경애하는 자 그 사람만이 이 여인의 손악에서 빠져나가는 것입니다.
전도서 7장 26절 읽겠습니다.
내가 깨달은 즉 마음이 올무와 금을 갖고 손이 포숭 같은 여인은 사망보다 독한 자라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는 저를 피하려니와 죄인은 저에게 차피 이리로다.
올무나 금을과 포숭, 죄인을 묶는 줄이죠.
그런데 이런 어떤 여인을 표현하고 있는데 여기는 악을 비유하는 말입니다.
이 악의 유혹을 얘기하는 것이죠.
악의 유혹을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 하나님을 경애하는 자죠.
그들만이 하나님의 참 지혜가 있기 때문에 그 악을 물을 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지혜가 있기 때문에.
그러나 죄인은 이 세상의 악에 빠질 수밖에 없고 거기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죠.
결국 하나님의 참 지혜는 바로 하나님을 경애하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공경할 줄 알고 하나님을 두렵게 생각하면 악에 빠지지 않아요.
그뿐만 아니라 또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한 삶을 살게 되죠.
그런 선한 삶을 정직한 삶을 살기에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함께 하시고 늘 우리에게 앞으로 나아가야 될 길들을 인도하시고 우리의 앞날을.
특별히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시고 이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게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지혜와 거기다가 보너스가 뭡니까? 그 사람의 얼굴에 광채까지 허락해 줍니다.
그래서 은혜로운 사람들은 얼굴에 은혜로운 빛깔이 있어요. 그리고 이렇게 결코 사납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 혜가 들어오면 또 지혜가 함께하고 그 지혜가 함께 들어오면 인해서 우리의 삶을 정말 아름답게 경영할 수 있는 경영능력이 생겨나죠.
얼굴부터가 표정부터가 바뀌어지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있기 때문이죠. 옆 사람은 한번 가만히 요심히 기분 나쁜 게 자세히 보지 말고 살짝 한번 보세요. 하나님의 지혜가 그 얼굴을 광채하게 했는지 말이죠.
그러면 이들은 어떻게 행동을 할까요? 어떤 삶을 살아갈까요? 첫째 권위에 복종합니다. 권위에 복종하는 생활 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참된 지혜는 권위에 복종하는 거예요.
권위라고 하는 것은 질서의식을 얘기할 수 있어요. 질서의식. 집안에도 아버지가 있고 어머니가 있고 자녀가 있고 손주가 있고 할아버지도 있고 그렇죠. 가정에도 질서가 있죠.
사회에서도 마을에서 반장님도 있고 이장님도 있고 도지사도 있고 장관도 있고 대통령도 있고 여러 질서 속에서 또 거리에 나가면 교통순경이 거기서 또 이렇게 교통정리를 하죠. 질서가 있습니다.
자 이 권위에 복종한다라고 하는 것 이렇게 권위에 복종하는 이유는 뭘까요?
첫째로 권위에 복종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이기 때문입니다 .
이렇게 참된 지혜를 가진 사람들은요 권위에 복종할 줄 알아요. 그리고 한마디로 질서의식이 있다는 거죠.
그 복종의 이유는 그 첫째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이기 때문입니다.
2절 8장 2절 보겠습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내가 권하노니 왕의 명령을 지키라. 이미 하나님을 가르켜 맹세하였음입니다.
여기서 왕의 명령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을 얘기합니까? 왕의 어떤 강제성을 지닌 지시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억지로 시켜도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입에 나오는 모든 말들을 다 순종하고 따르라는 얘기죠.
그런데 억지로 하는 것이 불법적인 것을 시키는 데에 하라 그것이 아니라 왕은 선하다고 이야기하면서 반드시 해야 된다고 명령 내렸지만 내가 하기 싫어요.
내가 받아들이기 싫어요. 왕은 좋을지 몰라도 아무리 나에게서 선한 것이랄지라도 내가 원하지를 않아요.
그럼 하기 싫잖아요. 억지로라도 해라. 옛날에 그런 말이 있잖아요.
어른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라도 떡을 얻어 먹는다. 이런 말이 있잖아요.
어른 말에 순종을 해라.
잘 될 나무는 떡잎부터 한다. 어릴 때부터 이렇게 순종하고 예쁜 모습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질서의식을 가져야 됩니다. 가정 속에서도 그렇고 사회 속에서도 그렇고 직장 속에서도 그렇고 교회 내에서도 그래야 돼요.
그런데 사회나 교회나 이런 데서 직장이나 이런 데서는 질서를 잘 지키기가 쉬워요.
왜냐하면 직장에서 질서를 안 지키면 짤리니까. 짤리면 돈을 못 벌잖아요.
그러니까 어쨌든 원하든 원치 않았든 위 상급자에게 잘 따를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문제는 가정입니다.
그런데 이 가정에서의 질서의식을 지키라고 하는 것이 우리 사회님들에게는 굉장히 납득이 안 가고 기분이 나쁜 그런 부분일 수 있지요.
요즘 여성 상위시대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어느 장군이 병사들에게 이런 명령을 내렸답니다. 알아보고 싶었거든요.
자기가 부인을 엄청 무서워하거든요.
장군이라도 많은 사람을 거드리고 있어도 부인은 무서워.
그래서 부인이 안 무서운 사람은 왼편으로 가고 무서운 사람은 오른편으로 가라.
그렇게 했더니 전부 다 무섭다고 다 오른쪽으로 가버렸어요.
그런데 한 사람만 가운데 딱 서 있는 거예요.
그래서 대단한 사람이 나타났다고 왜 가운데 서 있느냐 그랬더니 그러면서 아내가 안 무섭냐 그랬더니 무섭다.
그런데 왜 그러면 오른쪽으로 안 갔냐.
그러니까 아내가 사람 많은 데는 가지 말라고 딱.
그래서 결국 다 무서워요.
이런 시대입니다.
장군도 부인이 무서운 시대예요.
그런데 에베소서 5장 22절을 한번 보겠습니다.
에베소서 5장 22절.
같이 읽겠습니다.
에베소서 5장 22절.
시작.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죽게 하듯 하라.
복종하라고 하죠.
남편은 존경의 대상입니다.
그리고 남편과 아내가 의견이 맞으면 신앙적인 것이 아니라면 아내가 굽혀줘야 됩니다.
그리고 남편을 따라야 됩니다.
그리고 항상 남편이 말하는 것에 대해서 경청할 줄 알고 존경하는 마음을 가져립니다.
그런데 부부 안에서도 화가 나면 어떻게 하냐면 바로 대번에 요즘에는 연상여인하고 많이 살잖아요.
누나들하고 많이 살아 보면.
그래서 아주 그냥 상대가 좀 남편이 식거든.
동생이야.
그러니까 야 너 주인 안 해.
그래서 연상여인하고 사는 한 65세 넘으신 분한테 제가 궁금해서 물어봤어요.
몇 살이냐면 세 살인가 위를.
어떻게 요즘에는 그렇다 치더라도 그때 어떻게 연상여인하고 사니까 행복하시는지요.
제가 물었어요.
그랬더니 힘들대.
모든 걸 자기 혼자 다 결정하려고 그러는데.
모든 걸 자기 만들어 하려고 그러는데.
항상 65세가 돼도 동생이야.
참 너무 힘들대요.
그냥 자기 뜻대로만 하려고 한대요.
그래서 참 믿음의 아내인데도 그래요.
다른 말씀은 다 이렇게 따르는데 그 가정의 질서에 대한 이 성경 구절만큼은 받아들일 수 없는 그런 모습이에요.
제가 이 설교를 하잖아요.
교회 다닐 때마다.
그러면 이 설교하고 하면 반드시 집에서 한바탕 아내가 얘기합니다.
남편도 잘해야 돼요.
남편도.
제 아내같이 저를 잘 챙겨준 사람 어디 있습니까.
여러분도 인정하죠.
그런데 대답을 잘 하시네.
다른 따라 아다가.
그런데 어쨌든 간에 그 왜 우리 보고만 복종하라고 하냐고.
그렇게 대번이 나와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복종하라고 설교한 다음에 집에 가서 뭔 소리 안 들을 때가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오늘 저녁도 저는 기도해야 될 것 같습니다.
어쨌든 에베스 5장 24절을 보면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 얘기하듯 아내들도 범사의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골루세서 3장 18절을 보면 골루세서 3장 18절 제가 읽겠습니다.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그래서 이것이 정말 아름다운 것이고 사실은 가장 여인이 아름답게 빛날 때가 되냐면 남편을 정말 빛나게 해주는 겁니다.
남편을 존중하고 인정해주는 겁니다.
그러면 남편은요.
정말 아내에게 바라는 게 뭐냐면요.
야 그러면 그때부터는 사랑의 대상이 아니에요.
이게 남편은 존경하고 자기를 인정하는 아내를 목숨을 걸고 사랑하게 돼 있어요.
특히 세상 사람들은 안 그러겠지만 우리 믿음 안에서는 그렇게 할 겁니다.
사실은.
그런데 이제 함부로 대하는 순간부터 그 남편으로부터 받을 사랑은 없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친구처럼 서로 그냥 아기다 깡이다.
때로는 눈탱이도 밤탱이도 해서 오고 사안에 못 사안에 하고 그래서 이게 굉장히 중요해요.
가정의 질서가 그래서 이런 부분들을 정말 잘 지키는 게 좋습니다.
그래서 성격 공부를 하더라도 제가 이런 숙제를 내요.
남편 발 씻겨드리라.
그러면 이제 새 종일을 하라고 남편 발을 이렇게 씻겨주려고 이렇게 하면 그것도 약종이
같은 거 타면 안 돼요. 맹물로 해야 됩니다. 수돗물 그냥 떠다가 맹물로. 이렇게 의자 놓고 거기에 앉혀� ��고 여보 여보 부르는 거예요. 의자에 앉으라고 발 좀 시켜주겠다고. 생기는 안 하던 짓을 하니까 불안하죠.
이상하죠. 이 여자가 나한테 잘못한 거 있나 아니면 뭔가 돈을 좀 달라고 하는가. 긴장하게 시작합니다.
왜 안 하던 짓을 하고 그래. 빨리 와봐요. 앉아와요. 앉으라고 하니까 어쩔 수 없이는 앉죠. 그러면 남편 이 묻습니다. 약물이야. 약물. 약초물이에요. 특별히. 그러니까 약초 아니에요. 그냥 맹물이에요. 맹물로 효 과가 있다니까요. 약초로 하면 효과가 없어요.
그것을 씻겨주면서 여보 그동안 수고했어요. 우리 가정을 위해서. 여보 진실로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그때 남 편이 눈물이 구슬같은 눈물이 흐르고 여보 고마워. 나도 당신 발 씻어줄게. 남자들이 참 이렇다니까요. 그런데 여자는 남자의 사랑을 가지고 살잖 아요. 그런데 남자는 여자의 인정과 존경을 먹고 사는 존재라는 것을.
우리가 그 습성을 알고 서로 간에 그렇게 돼야 되는데 서로 간에 그걸 채워주지 못하니까. 남편은 아내의 사랑을 채워주지 못하고. 확인해 주지 못하고.
아내는 남편은 아내는 남편을 얼마나 쌀쌀 맞게 대할 뿐만 아니라 아주 폭력적으로 말도 함부로 하니까 돈 벌 어다가 이상한 데 빠져서 술집도 주고 그러잖아요.
사회의 그러한 슬픔이. 이렇게 보면 하나님의 말씀하신 가정의 질서를 지키지 않음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정말로 남편을 존경하는 데에 가장 문제가 있겠습니까. 남편을 인정하는 데에 그 아내를 사랑하지 않을 남편이 있겠습니까.
너무 이 말씀에 대해서 고깝게 생각하지 마시고 인생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서로 간에 남편과 아내의 관계 가 어찌해야 되는가 하는 그런 질서의식을 우리가 바로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을 깨닫는 게 지혜입니다.
우리 형제님들이 굉장히 기분이 좋으실 것 같아요. 오늘.
잘하면 발도 씻어줄 겁니다.
어쨌든 또 나라에서는 왕이 있잖아요. 왕에게 순복해야 된다는 거죠.
왜 순복해야 될까요.
2절 말씀처럼 맹세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왕은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로 하나님이 임명해서 다스리도록 삼은 사람으로 여겨졌기 때문이에요 .
하나님이 임명했다는 거죠. 기름 부어서.
그게 질서예요. 백성들을 다스리라고 하나님께서 선택하셔서 기름을 부어놨으니까 백성들은 따를 의무가 있다는 거죠.
하나님 앞에 명령을 따르기로 맹세한 자들이잖아요. 그러면 하나님이 세운 자도 따라야죠. 그렇죠.
그걸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도 세상 권력에 대해서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3장 1절.
로마서 13장 1절.
같이 읽겠습니다. 로마서 13장 1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한 가정이나 한 국가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설정해놓으신 이러한 질서를 지키라.
각종 법규들을 지키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또한 하나님께서 세우신 이런 질서를 곧장 잊어버릴 때가 많이 있죠.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 사이에서 관계도 그랬습니다.
항상 고라와 당을 이루었던 사람들이 왜 너희만 높이느냐.
하나님은 우리와도 함께하는데.
그런데 사실 아론과 미리암도 그랬어요.
모세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너만 예언하느냐.
너에게만 하나님이 여태놨느냐.
똑같다 너나 나나.
상당히 아론과 미리암도 권위가 있었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전체를 모세를 통해서 다스리기를 원했어요.
실은요.
그래서 너희들과 모세는 다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여기에 미리암을 문둥병을 주셔가지고 하나님의 질서가 무엇인지를 그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또한 어떤 곳에 일주일인가요.
이렇게 뭐라고 해야 되나.
갇혀 있었어요.
반성하도록.
그러면서 하나님 안에서의 질서의식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교육하신 적이 있습니다.
신앙인들은 이러한 질서의식이 있어야 됩니다.
권위에 복종하는 이유.
또 두 번째는 권위에 복종해야 되는 이유는요.
평안히 살기 위해서입니다.
평안히 살기 위해서입니다.
5절.
무릎 명령을 지키는 자는 돌아와서 화를 모르리라.
그래서 3절 한번 읽겠습니다.
왕 앞에서 물러가기를 급거이 말며 악한 것을 일삼지 말라.
왕은 그 하고자 하는 것을 다 행함이니라.
왕 앞에서 자기 뜻에 안 맞는다고 해서 또 자기에 대한 어떤 처우에 대한 불만을 품고 나서 갑자기 등을 보이고 나가버리.
물을 꽝 닦고 나간다 그 말이죠.
그리고 심지어는 자기가 자신이 맡긴 직무를 내려놓아버립니다.
못해.
이렇게 나 아니면 이 국가가 운영되는지 봐.
회사 같은 데도 그럴 수도 있겠죠.
사장님 앞에서도 화가 나니까 이 회사가 부당해요.
나 이런 회사에서 일 못하겠어요.
그러면 내일부터 나오지 마세요.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왕은 맘 먹고자 하면 다 하는 거예요.
권위를 가진 사람들은.
그러면 집에 가면 직장 이르면 아내한테 막 바가지 편하겠습니까.
완전 실직자가 되는 거잖아요.
그리고 왕 앞에서 이렇게 급거이 나가고 그러면 목도 달아날 수 있고 자기만 죽어요.
가족들이 이제 어떻게 될지 몰라요.
아니가.
그래서 이 권위에 복종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요.
아마도 힘 있는 자가 있어요.
힘 있는 자가 우리 사회에는 그래서 그들 앞에서 행동을 질서를 지켜야 된다는 거죠.
그래야 가정도 편하고 내 일신상에도 편하다는 것이죠.
그래서 5절의 말씀을 쉬운 말 성경으로 읽어드리자면요.
세상의 모든 일에는 다 적절한 시기와 절차가 있건만.
사람이 그것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자기 나름대로 판단하여 스스로 행함으로 고통과 불행이 임하게 된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어떤 악행이라고 생각하는 어떤 악행이라고 생각하는 부조리들이 발생이 됐을 때 거기서 의분이 일어나고 격분이 일어나죠.
분한 마음이 생길 수 있죠.
그런데 그때 잘 행동하는 게 중요합니다.
내가 그 상황을 잘 읽고 어떤 말을 해야 될지 어떤 행동을 할지.
이게 바로 지혜자가 그 시기를 때를 분별하는 게 내가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내가 가만히 있어야 되는지.
내가 어떤 행동을 해야 되는지.
지혜자는 그 시기를 잘 판단해요.
그런데 지혜롭지 못한 사람들은 자기 성질대로 자기 생각대로 그렇게 움직여버립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지금 현재의 상황이 왕의 학정이 될 수 있죠.
밑에 후반제를 보면 왕의 학정.
백성들을 괴롭히는.
그러다 보니까 어떤 생각이 들까요.
이 왕을 죽이고 뒤엎어버리자.
그래서 왕을 제거하려는 반역이 일어날 수 있죠.
그럴 때 그 반역에 가담하지 말라는 것이죠.
그리고 인내하고 때를 기다려야 된다.
우리 성도들은 왜 그렇게 참고 때를 기다려야 하는가.
인간이 당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때를 따라 이루어지고 있다.
무슨 얘기냐면요.
결국 공의로운 하나님께서 심판으로 응보하는 때가 있다는 것이죠.
그것을 하나님의 지정하신 때가 있음을 알아야 된다는 거죠.
하나님께서 신이 징치하시는 때가 있다.
하나님은 반드시 그들을 징치하세요.
그리고 인내로서 자신의 마음을 안돈시키고 내 얼굴이 사납게 변하게 하지 말고 지혜로운 광채가 나도록 평안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7절 보면 6절 보겠습니다.
5절 볼까요?
명령을 지키는 자는 화를 모르리라.
지혜자의 마음은 시계와 판단을 분변하나니 해야 될 말이 있고 안 할 행동이 있어요.
내가 그냥 화를 내고 내가 이무적으로 행동해버리면
속은 시원할지 모르겠지만 나중에 그 화를 겪을 화가 너무 커요. 너무 커요. 속은 시원하다니까. 그런데 그것으로 인해서 내가 닦을 책임이 너무 큰 거예요. 그것도 생각해가면서 얘기해야 된다는 말이죠.
6절. 물음 무슨 일이든지 시기와 판단이 있으므로 사람에게 임하는 화가 심함이니라. 그래서 하나님은 어떤 시기와 때가 있습니다. 심판하시는 때가 있어요. 하나님의 심판의 때를 우리는 믿음의 사람들은 지혜자들은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7절 말씀. 사람이 장래일을 알지 못하나니 장래일을 가르칠 자 누구리야. 생기를 주장하여 생기로 머무르게 할 사람도 없고 죽는 날을 주장할 자도 없고 전쟁할 때에 모면할 자도 없으며 악이 행악자를 건전할 수도 없는 이라.
그러니까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때를 정해놨죠. 죽음의 때도 정해놨어요. 그러니까 이 죽고 사는 것도 자기 마음대로 안 돼요. 이미 그 영혼이 떠날 영혼을 붙잡을 수도 없고 또 죽을 사람을 살릴 수도 없는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그 모든 때를 작정하고 계시기 때문에 그분이 또 하나는 심판을 그 악에 대한 심판을 하실 것이 니까 내가 마음의 분노를 품지 말고 하나님 앞에 맡기고 때를 기다리고 그렇게 평안한 마음을 평정된 마음을 가지고 그 인내로서 그 시기를 버텨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주 고약스러운 시어머니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집 며느리들 보면 얼굴이 달아올랐어요. 빨개요. 그런데 그분들이 못 배운 며느리들이 아니에요. 며느리들이 착하고 예뻐요.
그런데 그냥 시어머니한테 어떻게 시달리든지. 그래도 나중에 보니까 때가 되니까 돌아가시더라고요. 시어머니가 . 그러니까 지금은 다 활짝 피셨더라고요.
그 힘든 때를 믿음으로 잘 이겨넘으신 거예요. 참 힘들 때지만 우리가 그렇게 해야 될 때들이 있어요.
아무튼 구절 말씀 보면 내가 이런 것들을 다 보고 마음을 다하여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살편 즉 사람이 사람을 주장하여 해롭게 하는 때가 있습니다.
큰 사람한테 시달리는 게 너무 힘들어요. 내 눈앞에서 막 거슬리는 그런 악한 행동들이 나를 슬프게 만들고 나를 괴롭게 하는 것. 나를 내 마음을 억누리게 만들고 곱다질 것 같아요.
그냥 이 판사판 한번 해볼까? 저런 인간들을 내 눈앞에서 내가 용납 못해 나는. 그래서 내 어떻게 보면 살아온 얼굴로 짐승처럼 변해갈 수 있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 것인가가 고민될 때가 있어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오늘 전도서는 마음을 가난치라고. 그건 너의 일이 아니라는 거죠.
사람의 모든 그런 날은 하나님께서 이미 죽음도 정해놨고 심판도 정해놨으니까 하나님 앞에 맡기고 인내하며 버 텨가라는 것입니다.
연단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마음이 있으면 지혜가 있으면 그런 사람들하고 그런 조직하고도 부딪히지 않겠죠?
오히려 기도해주게 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될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폭발을 대면 안 되겠죠?
자 그래서 우리가 왜 왕압의 권위를 인정해야 될까요?
폭정을 휘둘러도 내 눈앞에서 거슬려도 왜 그럴까요?
평안히 살기 위해서다. 평안히 살기 위해서.
자 그 다음에 두 번째로 하나님을 지혜자는 어떻게 행동할까요?
권위를 복종합니다. 권위 복종하고 질서의식이 있죠?
두 번째는 하나님을 경애하여 악을 멀리합니다.
하나님을 경애하여 악을 멀리합니다.
악인이 악을 행하는 이유는 뭘까요?
그 첫째는 징벌이 속히 시행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볼이 막 딱 떨어지고 악을 행할 때마다 그냥 막 음성이 나가지고 징벌을 하고 그냥 땅을 막 열어가지고 그냥 삼켜버리고 그러면 누가 무서워서 악을 행할 거예요?
11절 악한 일에 징벌이 속히 시행되지 않으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
그러니까 이 악인이 악을 몇 번을 행하냐면 악을 12절 보면 이렇게만 행해요.
죄인이 백 번 악을 행하고도 백 번 악을 행한다는 것은 뭡니까?
수없이 많은 횟수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아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는 거예요.
그냥 그리고 자기가 얻을 만한 욕심이나 욕망이나 목적을 다 이루어요.
악을 통해서.
그래서 때로는 악을 가지고 막 내 밥그릇을 찾아야 돼요.
내가 양보하고 선하다면 내 밥그릇 다 뺏겨.
이런 의미죠.
할 수 없을 만큼의 수많은 악을 행하는데도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그냥 그 마음껏 악을 행하죠.
그러면서 이 악한 행위에 대한 형벌은 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계속 이 죄악을 저지르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악인이 마치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복을 누리듯이 살고 있어요.
그게 문제죠. 12절. 같이 해보겠습니다.
죄인이 백번 악을 행하고도 뭐하고 있어요?
장수는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이잖아요.
단명해야 되는데.
내가 정령 안 오니 하나님을 경애하여 그 앞에 경애하는 죄가 잘 될 것이요.
그러니까 평안이 장수하는 걸 볼 때 악인들이 더 오래 살고 더 잘 살고 아주 행복하다고 난리들이에요.
의인들은 하나님의 절대적 공의로운 신 성품이 의심스러워져요.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세상의 삶 속에서 14절 보면 참 아주 정말로 기가 막히죠.
아시겠습니다. 시작.
세상에 행하는 헛된 일이 있나니.
곧 악인의 행위대로 받는 의인도 있고.
의인으로 사는데 악인이 받아야 될 흥불과 악인이 받아야 될 고통을 다 받고.
질병이란 질병은 다 걸리고.
의롭게 살아났들.
뭐 필요가 없네요.
하나님께 상도 못 받고.
또 보겠습니다. 놀라운 것이죠.
의인의 행위대로 받는 악을 행하는 도장.
집안이 잘 되고 애들도 잘 되고 사업도 잘 되고 그냥.
내가 이루는 이것도 헛대도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그런 공의로운 신 성품이 의심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어쨌든 악인들은 하나님의 존재와 위험을 무시한 채 악한 일을 행하게 더욱 그러니까 담대하게 살고.
그래서 죽을 때까지 악을 행하고 살아요.
죽을 때까지.
자기 악을 채우는 거예요.
그게 좋은 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악인이 뭐든지 형통한 게 좋은 게 아니에요.
저주스러운 거예요.
잔칫날을 위해서 돼지가 살찌는 것입니다.
얼마나 큰 고통을.
이 징벌은 피해갈 수 없어요.
두 번째 악인들이 왜 악을 행할까요.
악인이 결과적으로 잘못된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쉬운 말로 악인이 심판받는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래요.
심판.
결국은 심판이 있어요.
막 사람들 이렇게 심판 안 받고 악인들이 잘 되는 것 같죠.
결국 하나님은 지금 다 세막하고 있고 기억하고 계시고 몽땅 그 모든 것을 하나도 놓지 않고 그 악인들에게 그 분노와 진노와 저주를 쏟아 부으시겠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12절을 이렇게 잘 되는 것 같아도 13절 보겠습니다.
시작.
악인은 결국 어떻게 돼요?
잘 되지 못하며 장수하지 못하고 그날이 그림자가 되니 이는 하나님 앞에 경애하지 아니합니다.
하나님은 경애심이 없기 때문에 그래요.
그런데 이미 장수를 했고 이미 잘 살았잖아요.
그럼 그건 어떻게 해석해야 되나요?
불완전한 한시적인 현재 속에서 악인의 악행에 대한 불완전한 응보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걸 인정했죠.
성경 속에서는.
본절에서는 그렇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심판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거예요.
궁극적으로는 마지막에는 결국 하나님께서 예비해놓은 것이 악행에 대한 합당한 보응을 받게 된다.
이걸 예비해놓은 것.
이거 틀림없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거예요.
필연코.
죄의 싹스는 없어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게 큰 문제죠.
두려움 없이 죽을 때까지 악을 행했으니까.
좋은 게 아니죠.
오래 산 게 좋은 게 아니죠.
오래 살았으면 죄 짓는 시간이 더 긴 거예요.
악한 사람들은.
선한 사람들은 선을 쌓을 기회가 많지만 오래 산 게 더 처지해요.
차라리 작게 사는 게 덜 받아요.
괜히 오래 살아가지고 거침없이 어떻게 보면 돌이킬 수 없는 어떤 회개할 수 있는 어떤 그 삶의 어떤 역경이 없었다라고 하는 것이 너무나도 그들에게는 치명적인 그러한 불행이었다라고 하는 것이죠.
잘된 게 불행이에요.
잘된 게.
게 악인들은. 형통한 게 죄악이고요. 죄 짓는 그런 기회로밖에 이용을 안 하는 거죠. 그러면 여기서 장수하지 못한 것과 그날이 그림자 같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될까요. 그들이 온갖 악행을 통해서 부당한 방법으로 차지한 권력과 금력을 배경으로 해서 이룩한 평안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사실 이 땅에서는 60, 70년, 80년 오래 샀다고 하자면 이 영원한 우주의 시간에다 놓고 보면 순간에 불과해요. 그런데 그분들이 떠날 때는 순식간에 딱 떠나버려요. 순식간에. 그렇죠. 우리 대통령들도 보면 옛날에 박정희 대통령 어렸을 때부터 그냥 마을회관에다 붙여놨는데 우리
커다랗게 그냥. 얼마나 대통령 얼마나 이승만 대통령. 옛날에 지금 없어진 사람. 그분들만 그렇습니까. 김대동 대통령 우리 존경하는 노무현 대통령도 그러시고. 순식간에 사라지. 아무리 이 세상에서 잘나가고 장수하고 그런 것 같아도. 사는 것 보면 결국 보면 그림자 같아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살아있으니까 살아있는 것이지 살고 나면 잘 사나 못 사나. 인생 속에 보면 그림자가 왔다 가는 것 같은 그런 삶입니다.
그래서 악인들이 조금 오래 살았다고 해서 악인들이 좀 편안하게 살았다고 해서 그것 갖고 하나님의 공의가 좀 이렇게 의심스럽고 그렇게 볼 필요가 없는 것이죠. 하나님의 공의는 분명히 살아있습니다. 그들이 더 번영을 누리는 것이 더 저주고 그들이 오래 산 것이 죄를 짓는 그런 기회밖에 안 되니까
더 저주스러운 것이지요.
세 번째는요. 왜 악을 행합니까. 경애하는 자가 결과적으로 잘 된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애하는 자를 결국 보상을 해줘요.
그걸 알았더라면 악인도 방향을 바꿨을 건데 냉수 한 그릇이라도 결단코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시죠. 그러니까 주님 만나기 전에 더 아름다운 일들을 해야 되겠죠.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불안전하고 한시적인 이 세상 속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이죠.
그래서 결국은 이 땅의 모든 삶 속에서는 결과적으로 우리 의인들이 악인처럼 그렇게 모든 어려움을 겪고 산다 할지라도 12절을 말씀해 보겠습니다. 종국적으로는 어떻게 될까요. 마지막에는 틀림없이 우리의 눈물로 게시를 보면 닦아줘요. 그렇죠.
우리 근심 슬픔도 하나님께서 거두어주시고 위로해 주시는 그날이 받듯이 옵니다.
이 땅에 살아가면서도 오는 거고요. 사실은요.
근심만 주는 게 아닙니다.
천국에서는 더하겠죠.
12절 읽겠습니다. 시작.
어떻게 보면 의인이 누릴 영원한 삶에 비하면 그들이 그림자 같다라는 말은요.
우리 의인들이 누릴 그런 영원한 삶에 비하면 그 악인들의 80, 70년, 80년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그렇게 짧은 시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죠.
오늘 이 땅을 살아가면서 폭발할 것 같은 얼굴이 사나워지려고 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어떻게 사는 게 지혜로울까요.
그 대답을 했습니다. 질문을 했습니다.
얼굴이 광채가 나도록. 광채는 어떤 사람이 난다고요.
하나님의 지혜가 내 삶을 주장하도록. 주장되는 사람들이 광채가 나는 것이죠.
그들의 삶은 어떤 삶입니까.
권위에 복종하는 질서의식이 있고 그 다음에 또 하나는 하나님을 경애하여 악을 떠난 삶을 살아갑니다.
묵도 드리겠습니다.
아멘. 515장입니다.
아멘.
아멘.
해 아래 압박 있는 곳 죽어기 계셔서 그 팔로 막아주시여 정의가 사나니.
아멘.
이 땅을 살아가면서도 순간순간 어떻게 행동해야 이게 참 지혜로운 행동인가.
어떻게 말해야 지혜로운 행동인가.
그렇게 내 마음이 그렇게 혼란이 올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참된 지혜가 우리에게 임해서 우리가 주님 안에서 지혜롭게 잘 처신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하늘이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 이름으로 그도 드리옵나이다.
하늘이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 이름으로 그도 드리옵소서.
하늘이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 이름으로 그도 드리옵소서.
하늘이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 이름으로 그도 드리옵소서.
하늘이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 이름으로 그도 드리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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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주님 가르치신 기도로 마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여 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에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과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롱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우체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하게서 고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이상 예배 마치겠습니다.
다같이 일어나서 인사 나누겠습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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