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교회01
본 받을 간증 20
허명도 · 갈1:11-24
제작일 2026.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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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받을 간증 (갈 1:11-24) 20260814 허명도 목자 http://tjc.or.kr/
AI 설교 정리
갈라디아서 1장과 마가복음 5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와 간증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바울의 복음 전파와 신앙의 변화를 다룬다.
본문갈라디아서 1:11-24마가복음 5:19-20고린도후서 12:1-4
- 갈라디아서 1:11-24은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해 복음을 받았음을 강조한다.
- 간증은 개인의 체험을 통해 믿음을 전파하고, 신앙을 확신하게 한다.
- 바울은 예수를 만나고 인생관과 구원관이 변화되었음을 고백하며, 복음을 전하는 데 생명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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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1:11-24의 핵심 내용
-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해 복음을 받았으며, 이는 유대교의 율법 중심적 구원 개념과 대비된다.
- 그의 복음은 인간의 뜻이나 교육이 아닌,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을 강조한다.
- 바울은 자신의 복음의 출처를 분명히 하며, 간증을 통해 믿음을 견고하게 하고 전파한다.
간증의 의미와 역할
- 간증은 개인의 체험과 하나님의 능력의 경험을 나누는 삶을 통해 이루어진다.
-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친족에게 전하는 것부터 간증의 시작이다.
- 간증은 믿지 않은 사람들에게 믿음을 전하고, 자신의 믿음을 다시 확인하는 역할을 한다.
바울의 신앙 변화와 복음 전파
- 바울은 예수를 만나고 유대교에서 은혜로, 박해자에서 전도자로 변화되었다.
- 그는 예수와의 영적 관계를 깊이 이루기 위해 아라비아로 갔으며, 이후 다메섹과 예루살렘으로 복음을 전했다.
- 고린도후서 12:1-4에 따르면, 바울은 하나님과의 깊은 은혜 경험을 통해 신앙을 확신하게 되었다.
- 바울은 생명을 걸고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각오를 가지고,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담대하게 전했다.
전사(자막) 전문▼
예수 그리스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말씀 증거하겠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 갈라디아서 1장 11절에서부터 24절 말씀 보시겠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11절에서부터 24절 말씀 11절 12절까지 같이 읽겠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느니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오 배운 것도 아니오 오직 예수 그리스의 게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오늘 이 시간에는 본받을 간증이라는 제목으로 오늘 말씀 가지고 은혜 나눈 시간 갖도록 하시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 사도가 사도가 된 이런 그 내력들을 소개를 하고 있는데 11절부터 24절까지 짤막한 구절이지만 자기의 인생을 간단하게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부분을 통해서 어떻게 또 이렇게 말씀을 받게 되었고 그 이후에 어떻게 또 어느 곳을 다니면서 사약을 했는지 같이 살펴보시면서 은혜 나눈 시간 갖도록 하시겠습니다. 제일 먼저 11절부터 12절까지는 우리 사도 바울이 받은 그 복음의 내용을 어떻게 해서 받은 것이냐. 이것은 자기가 배운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의 게시로 말미암은 것임을 먼저 이렇게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가 보게 될 때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 그런데 그 다른 복음에 사실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굉장히 중요한 내용이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할애를 받으라라는 그런 내용인데 오늘 우리 사도 바울은 그런 부분을 정면으로 이렇게 또 부딪히는 가운데에서 율법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할애를 받아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를 믿는 믿음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는 부분을 이렇게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부분에 관해서 제일 부딪히는 부분은 유대인들과의 이런 그 부딪힘이겠죠. 특별히 대제사장들, 또 바르세인들, 석유관들과의 그 율법사들 이런 사람들과는 굉장히 심하게 충돌할 수밖에 없는 그런 부분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사도 바울은 자기가 받은 이 복음의 출처가 어디인지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받은 것은 게시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 11절에 보니까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의 그 뜻으로 말미암아 이런 그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서 내가 사람에게서 배운 것도 아니고 받은 것도 아니고 배운 것도 아니요. 가장 기본적으로 열두 사도를 통해서 배운 것도 아니다. 또 그 제자들과 다른 제자들과 이렇게 또 서로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서 내가 깨달은 것도 아니다. 그러면서 오직 예수 그리스의 게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그래서 자기가 전하는 복음의 출처를 예수 그리스의 게시로 말미암 것임을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많은 부분에서 어떻게 보면 우리 같은 경우도 행위로 계속해서 우리가 볼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미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구속을 통해서 바로 우리의 죄를 다해 주시고 앞으로의 모든 죄도 역시 이 십자가 구속을 통해서 우리 죄를 사하시고 또 다시 기억지 않냐 하시고 용서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부분에서 우리는 아직도 다른 사람을 보게 될 때 그런 면에서 봅니다. 우리 스스로 구분할 때가 있죠. 쟤는 구원 받을 만한 사람. 쟤는 구원 받지 못할 사람. 그 기준이 무엇입니까? 행위죠. 행위. 그래서 우리가 본능 안에 그런 부분이 없지 않은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저 사람이나 우리나 똑같이 예수 그리스의 궁율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친히 성령 우리에게 부호심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사도 바울은 제일 먼저 본인이 받은 그 복음이 게시로 말미암은 것을 이렇게 얘기하는 가운데서 자기 생애를 짤막하게 간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성경에서 우리 그리스인들을 증인으로 이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 사회에서 보게 되면 나의 증인, 나의 전호로 종으로 택함을 받은 종이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더 나아가서 하늘로 승천하실 때 마지막 제자들에게 하신 것은 성령을 받으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오은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그래서 증인되는 삶을 이렇게 우리에게 명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현수막에도 이렇게 가끔 가다가 길거리 가다 보면 현수막에 붙어질 때가 있습니다. 몇 년 몇 월 며칠 몇 시에 목격자를 찾습니다. 증인의 힘이겠죠. 그래서 증인이라는 것은 본인이 들은 것, 본인이 본 것, 본인이 체험한 것을 분명히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증인으로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나중에 가룬유다의 빈자리를 보충할 때도 그 본종할 때의 그 조건은 그였습니다. 항상 우리와 같이 다니던 사람 중에 예수 그리스의 부하를 증거해야 될 사람을 우리가 결혼을 보충해야 된다. 이런 마음으로 세우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서로 간에 예수님께서 나에게 깨닫게 하신 것, 나에게 역사하신 것을 서로 나누는 삶을 사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 간증은 세 가지 부분에서 중요한 역할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믿음 안에서 서로 간의 믿음을 세워주는 역할을 합니다. 천안교회에 오니까 참 그 좋은 부분이 간증을 나눌 수 있는 그런 기회가 많은 것이 참 좋은 것 같습니다. 대학부 영원에 갔다 오니까 또 대학부들 간증하고 학생부들 끝나고 또 학생부들 간증하고 그다음에 사청부도 간증하겠죠. 다음에 또 9월에 있으니까. 굉장히 좋은 것 같습니다. 이런 작은 부분에서 우리가 깨닫고 알고 느낀 말을 서로 나누시다는 것은 굉장히 좋습니다. 들으면서 우리 어른들은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 한편으로는 대견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참 순수해 보이는 믿음이 좋아 보기도 하고 또한 나도 저런 믿음 가졌으면 좋겠다는 이런 바람도 같이 가지게 되면서 우리 믿음이 서로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장 11절 12절 보시겠습니다. 로마서 1장 11절 12절 우리 사도바울이 왜 이렇게 로마에 가기를 원하고 로마인 성도를 보기를 원하는가 그 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 신령한 은사는 사도바울의 전하는 복음 또 사도바울의 간증 이런 내용들을 통해서 그들을 경고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을 인하여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합니다. 서로 간의 믿음을 확인한 가운데서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합니다. 어떻게 믿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까? 서로 간의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경의 그다음에 또 그 안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한 그런 경험도 이런 것들을 서로 나누면서 서로와 위로와 격려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간증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믿음을 소개하는 통로가 되기도 합니다. 마가복음 5장 18절부터 20절 보시겠습니다. 예수께서 배에 오르실 때 귀신 들렸던 사람이 함께 있기를 간구하였으나 허락지 아니하시고 저에게 이루시되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내게 어떻게 큰일을 향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내 친속에게 고하라 하신대 우리 거라사 제발에 갔을 때 무덤에서 뛰쳐나온 그런 귀신 들린 사람을 봤습니다. 그런데 그 귀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았죠. 얼마나 귀신이 많았던지 이름이 군대였습니다. 군대. 그래서 그 군대를 돼지대에 들어가서 돼지대가 몰살당하고 이 사람은 귀신에서 노임을 받습니다. 이 은혜가 너무나 크고 감사하니까 예수님을 따라가려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허락지 아니하시고 뭐라고 합니까?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내게 어떻게 큰일을 향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내 친속에게 고하라. 이것이 바로 간증이에요. 그래서 20절 보니까요.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일을 향하신 것을 대가 볼리의 전파하니 모든 사람이 기이 여기더라. 대가 볼리의 전파하니 모든 사람이 기이 여기더라.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간증은 어떤 영화를 한다고요? 믿지 않은 사람들에게 믿음을 소개하고 믿음을 가지게 하는 통로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간증은 자신의 믿음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더욱더 확실한 믿음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사도 베드로가 이제 자기가 자기의 날이 얼마 안 남았구나 라는 이런 부분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자기가 떠난 후에라도 더욱더 확실하게 이런 부분들을 증거해야 되겠다 하는 가운데에서 베드로 후서에서 높은 산에 올라가서 예수님께서 변화되고 하늘로서 드는 음성을 다시 한번 그들에게 얘기를 해 줍니다. 그것은 자기 믿음의 확신을 뿐만 아니라 다시 한번 그것을 갖다가 다른 사람들도 더욱더 확실에 과하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간증을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 후서 1장 16절부터 18절까지 보시겠습니다. 베드로 후서 1장 16절부터 18절까지 같이 읽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쫓은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험을 친히 본 자라.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 저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이 소리는 우리가 저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 하늘로서 나음을 들은 것이라. 우리 사도 베드로가 이 부분을 얘기하게 될 때 자기가 이 소리를 치니 하늘로서 들은 것이다. 라는 부분을 간증하게 될 때 얼마나 마음속에 큰 확신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우리 베드로 사도의 일생에 있어서 엄청난 경험이었을 것입니다. 거기에 누구가 나타났었을까요? 두 사람이 나타났죠? 다 알던 것도 이렇게 질문하면 다 생각이 안 납니다. 당연한 거예요. 모세와 엘리아가 나타났어요. 그런데 그때 베드로가 모세와 엘리아를 알아봤습니다. 주의 우리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돼 하나는 주를 위해서, 하나는 모세를 위해서, 하나는 엘리아를 위해서 짓고 영원히 여기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얼마나 놀라웠을까요? 모세가 몇 년 전 사람입니까? 엘리아가 몇 년 전 사람이에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나타나서 예수님과 대화하는 모습을 봅니다. 예수님께서 또 이렇게 완전히 영광의 형체로 변화된 모습도 함께 보게 됩니다. 그리고 또 하늘로서 음성이 들립니다. 치이 이것을 체험했어요. 평생 이것을 잊어버릴 수가 있을까요? 우리 성대님들도 작은 간증 하나가 있으면 그거 평생 잊어버리지 못합니다. 어디 가든지 간증하려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간증이 하나씩 있을 것입니다. 우리 사도 베드로에게는 바로 이것이 그 간증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생각할 때마다 더욱더 자신의 믿음을 굳건히 하고 더 확신하는 믿음에 고하는 가운데에서 바로 친히 여기를 떠나면 나를 위해서 예비하신 곳에 간다라는 이런 믿음을 더욱더 굳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간증을 많이 하는 것은 사실은 자기를 위해서 도움이 되는 거예요. 자기를 돌아볼 수 있으니까 다시 생각을 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많은 부분에서 우리가 전도집회하게 될 때 보게 되면 서로 간에 돌아가면서 많은 사람이 간증할 수 있다는 것은 그 교회의 복인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 사도 바울은 몇 가지 간증을 하는데 어떠한 내용으로 간증하는지 같이 몇 가지로 살펴보도록 하시겠습니다. 제일 첫 번째로는 자신이 변했다라는 부분을 이렇게 간증하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을 두 가지로 얘기를 한다면 변화와 성장이라고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변화와 성장. 옛날에 어떠한 사람이었는데 이렇게 변했다. 그리고 이렇게 또 성숙했다라는 부분이 사실은 신앙 안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의 모습인데 오늘 사도 바울은 제일 먼저 자신이 변했음을 이렇게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1장 13절 보시겠습니다.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하여 잔해하고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주상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히 있었으나 그래서 두 가지를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박해자로서 이제는 박해자에서 전도자로 믿는 사람으로 변화가 되었다라는 부분을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유대교에서 다시 말해서 기독교로 율법에서 은혜로 변화가 되었다. 구원관의 변화를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변화가 없이 변화를 다른 말로 우리가 회계라고 그럽니다. 회계가 없이 다른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회계하라. 천국에 가까웠느니라. 우리가 지금 이런 모습으로 살면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제일 먼저 촉구하신 것은 회계하라였습니다. 이 모습을 바꿔야 된다는 거예요. 뭘 바꿀까요? 가치관과 인생관이 바뀌어야 됩니다. 가치관, 인생관이 바뀌지 않는 것은 진정한 회계를 이룰 수가 없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삿개호를 부렸을 때 삿개호가 뭐라고 얘기를 합니까? 내 수의 절반을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주게 싸우며 만일 내가 다른 사람에게 토색한 것이 있다면 내가 네 배를 갚도록 하겠습니다. 세리로서 인생의 목적이 돈을 모으는 것이었어요. 욕을 먹는다 할지라도, 매국노라는 이런 비난을 받는다 할지라도 돈을 모으는 게 목적이었었는데 예수 그리스로 만나고 그의 삶이 온전히 변화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부여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또 구원받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절반을 팔아서 다 나눠주겠다. 절반 팔아서 나눠주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것입니다. 가끔 우리 목자님들이 쉽게 산술적으로 얘기를 합니다. 우리 모든 성도가 한 사람당 100만 원씩만 내더라도 그냥 30억 될 텐데 쉽게 계산해서요. 모든 성도가 그냥 가진 돈에 11조만 낸다면 교회 건축 쉽게 할 수 있을 텐데 서울 같은 경우는 1인당 가진 재산의 10분의 1만 내면 건축하고도 남습니다. 집이 30억이면 10분의 1이면 한 사람이 3억을 내는 거예요. 그리고 몇 억 텐데 하지라도 그것은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겠죠. 그래서 우리가 삿개호가 얘기하는 것이 굉장히 쉬운 것처럼 보이는데 굉장히 어려운 거예요. 가치가 변했다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내가 이렇게 인생을 살아가야 되겠다. 우리 사도 바울은 예수구를 만나고 난 다음에 자기에게 유익하던 모든 것을 다 배설물로 여긴다라고 고백하고 있어요. 배설물. 자기에게 유익하던 것이 다 배설물을 여긴다. 그래서 완전한 가치관이 변화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규를 지나치게 믿어서 내 주성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히 있었으나 율법에 대해서 굉장히 열심히 있었다. 우리 사도 바울은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였다라고 그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어느 누가 율법의 의로 흠이 없는 자라고 자신 있게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요? 오늘 우리도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오는 가문에서 이스라엘을 믿고 구원 받은 이후에 100% 다 순종하는 삶을 살았다. 100% 다 순종하는 삶을 살았다. 이렇게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그런 행위적인 부분에서 우리 사도 바울은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거예요. 그것으로 우리가 의롭담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담을 받는 것이라는 사실을 진정으로 다시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관이 바뀐 거예요. 구원관. 한 사람의 구원관이 바뀌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요즘 우리가 다른 교회에서 우리 교회에 들어오는 것이 쉬울까요? 어려울까요? 천주교회에서 우리 교회에 들어오는 것이 쉬울까요? 어려울까요? 일반 안식교회에서 침례교회에서 장롱교회에서 오는 것이 사실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에 1세대 우리 어르신들을 보게 되면 전부 다 장롱교회에서 오시고 또 안식교회에서 오시고 이렇게 오셨어요. 뭘 찾아오신 것입니까? 구원의 바른 진리, 구원관을 바로 깨닫고 돌아오신 거예요. 그래서 너무나 귀한 것입니다. 그래서 제일 첫 번째는 자신이 변했음을 이렇게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갈라디아서 1장 15절부터 17절까지 보시겠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15절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시니가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또 나보다 먼저 사도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오직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색으로 돌아갔노라. 여기 보니까 오직 아라비아로 갔다가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왜 아라비아로 갔을까요? 혈육과 의논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도들을 만나기 위해서 굳이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았다. 그러면서 아라비아로 갔다라는 것입니다. 아라비아로 왜 갔을까요? 아라비아는 뭐가 있을까요? 보통 우리가 성경에 아라비아를 얘기할 때는 아라비아 광야로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광야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광야에 간 이유는 바로 예수 그리스로를 만나고 더욱더 예수 그리스로와 영적 표제를 이루기 위해서 아라비아로 간 것입니다. 우리 고린도후서 12장 1절부터 4절까지 보시겠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 1절부터 4절 같이 읽겠습니다.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개시를 말하리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14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느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이렇게 보니까 14년 전을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고린도서를 언제 썼는지 대충 이렇게 우리가 기억을 할 수 있겠죠. 그래서 제일 먼저 14년 전에 이렇게 셋째 하늘에까지 이끌려갔다. 이 셋째 하늘이 어딜까요? 첫째 하늘은 우리가 지구의 대기권을 얘기를 하고 둘째 하늘은 지구 대기권 밖의 우주를 얘기를 하고 그다음에 셋째 하늘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까지 자기가 가게 되었다는 거예요. 우리 사람이 갈 수 있습니까? 갈 수 없는 곳이에요. 첫째 하늘도 우리는 뚫고 나가지 못합니다. 그냥 몸으로. 그리고 또 하나 신기한 것이 있어요. 그가 몸 밖에 있었는지 몸 안에 있었는지 나는 모른다. 다시 말해서 자기 몸까지 다 간 거냐 아니면 영혼만 간 거냐 나는 모르겠다. 그런데 나를 인도하신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엄청난 체험일 것입니다. 그리고 간 곳이 어디라고요? 간 곳이 낙원이라는 것입니다. 낙원에 실제로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무슨 말을 들었을까요? 그래서 이때 사도바울이 받은 모든 게시가 이때 받은 게시로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너무나 크게 자랑할 만한 거다. 세상에 이런 사람이 또 있을 수가 있을까요? 셋째 하늘에까지 갔다 왔어요. 하늘에까지. 예수님께서도 하늘로부터 온 인자 외에는 하늘을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우리 사도바울은 셋째 하늘까지 이끌려 갔다 왔습니다. 우리 영혼이 몸에서 빠져나와서 내 몸을 바라보아도 그것이 엄청난 충격적인 체험인데 심지어는 내가 빠져나가서 아니면 내 몸 그대로 갔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낙원까지 갔습니다. 낙원은 우리가 장래에 갈 곳입니다. 그런데 거기까지 갔어요. 거기서 무슨 말을 들었을까요? 할 말이 굉장히 많은데 우리 사도바울은 너무나 교만을 가해서 그만둔다. 사실 거기서 보고 들은 것만 다 정리해줘도 우리 바울의 보금서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정말 그냥 그 자체로만 해도 엄청난 내용일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거기에 대한 기록은 없어요. 그런데 분명한 것은 사도바울은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셋째 하늘에까지 이끌어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는데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으로다. 우리 사람의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사람이 말로 다 이룰 수 없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이때가 언제냐. 아라비아로 가서 이런 일이 있는 것으로 우리가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예수를 만나고 제일 먼저 안 것은 예수 그리스를 통해서 엄청난 게시를 받음을 통해서 오늘 사도바울의 신학적 체계가 완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많은 부분에서 우리 바울 사도가 쓴 바울서신이 없다면 많은 부분의 어떤 신학적인 부분을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 부분들이 굉장히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본인이 셋째 하늘, 낙원까지 이끌려가서 보고 들은 내용을 토대로 해서 우리 사도바울이 계속해서 쓴 이런 모든 바울서신을 종합해서 우리가 바른 구원관, 바른 소망, 또 바른 믿음을 우리가 가질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다시 1장 17절 보시겠습니다. 1장 17절 세 번째로 또 17절 또 나보다 먼저 사도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냐고 오직 아라비아로 갔다가 그다음에 다시 다메세고로 돌아갔노라. 우리가 사도행전 9장에 보게 되면 사도바울이 다메세고로 가는 도중에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을 했고 그다음에 거기서 즉시에서 이렇게 복음을 전하다가 박해를 당하니까 잠깐 예루살렘으로 갔다가 사도베두를 만나지 못하고 다시 다소로 가는 내용이 나오게 됩니다. 그 가운데 바나바가 역할을 좀 했죠. 사도들에게 바나바를 소개를 하고 바나바가 사도들에게 우리 사도바울을 소개를 하고 그다음에 다소로 가서 둘이 가르치는 내용도 이렇게 소개가 됩니다. 그런데 다시 다메세고로 돌아갔노라. 굳이 다메세고로 돌아간 이유가 뭘까요? 그곳이 사도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장소이고 사도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제일 먼저 복음을 전한 장소가 바로 그곳입니다. 그래서 그곳에 가서 다시 굳이 안 가도 되는데도 불구하고 거기를 간 이유는 본인이 이만큼 더 성장했다. 라는 부분을 그들에게 증거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때 사도바울이 즉시 그리스도에 관해서 전파했다고 하는데 사도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아는 정도가 얼마나 됐을까요? 그때 사도바울의 믿음은 굉장히 내용적인 부분에서는 빈약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라비아로 가서 너무나 엄청난 얘기를 게시를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누구한테 제일 먼저 알려주실까요? 자기가 초기에 복음 전했던 그 사람들에게 제일 먼저 이런 내용들을 알려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초기에 전했던 복음과 수많은 것들이 더해져서 더욱더 영적으로 깊은 내용을 그들에게 증거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사도행전 9장 우리 20절 보시겠습니다. 22절에 대해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22절에 대해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색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키니라. 그래서 우리 사도바울이 예수를 믿고 나서 제일 먼저 전파한 것이 예수님의 하나님의 아들 되심. 그다음에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했습니다. 그것이 가장 기본인 거예요. 그것을 증거를 했습니다. 그런데 아라비아가 가서 엄청난 내용들을 게시를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에 많은 것을 다시 다메색에 있는 성도들에게 알려주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계속해서 보시면 23절 여러 날이 지남해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그 개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저희가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시키거늘 그의 제자들이 밤에 광주리에 사울을 담아 성에서 달아 내리더라. 그래서 다메색에서 피난한 내용이 이렇게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다시 간 이유는 바로 그 이유예요. 기본적인 도리를 진리 말씀을 가르쳤지만 이제는 본인이 알고 있는 더 많은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야 될 필요성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더 성장한 모습을 제자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다음에 네 번째로 갈라디아서 1장 18절을 보시겠습니다. 1장 18절 그래서 3년 만에 개발을 신방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함께 15일을 위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다른 사도는 보지 못하고 주의 형제 야구부만 봤었다. 그래서 베드로와 야구부를 봤음을 이렇게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이 예루살렘에 가는 것은 우리 사도바르기스에서는 엄청난 모험입니다. 우리 예루살렘에 있을 때 주로 했던 것이 뭐였습니까? 예수민 사람들을 핍박하고 예수민 사람들을 잡아서 감옥에 가두고 심지어 예수민 사람들을 잡아서 어떻게 할까 처리할 때 죽이는 표에 찬성표를 던졌던 그런 사람입니다. 심지어는 대세상들로부터 엄청난 권세를 유임까지 받은 사람이에요.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 가게 되면 어떤 대접을 받을까요? 대세상들과 바리샘들, 소경안들로부터는 변절자라는 이런 공격을 당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루살렘에 어떻게 보면 안 가고 싶을 거예요.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도바울은 예루살렘에 가기를 희망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복음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해서 온 유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렇게 복음이 전파될 텐데 복음이 제일 먼저 시작된 곳이 예루살렘입니다. 그래서 다시 거기 가서 참된 복음, 참된 구원의 질의를 그들에게 증거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비록 십자가가 일할지라도. 그래서 사도바울이 예루살렘에 가게 될 때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가지 말라고 건면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9장 26절 보시겠습니다.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의 제자들을 믿지 아니하니 예수를 믿던 제자들은 사도바울을 믿을 수가 없는 거예요. 저 사람이 거짓말로 저렇게 위상해서 우리한테 침입하기 위해서 저렇게 오는 것 아니냐. 그래서 심지어는 예수님의 참된 제자들도 사도바울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때 역할을 했던 사람이 바로 바나바라는 거예요. 27절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본 것과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담회색에서 그가 어떻게 이렇게 예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던 것을 말하니라. 사오리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또 주 예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위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형제들이 알고 가해사라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서 복음 전파하는 내용을 여기서 이렇게 얘기하는데 이것은 어떻게 보면 생명을 건 부분이다. 복음을 위해서. 나중에 다시 최종적으로 예루살렘에 들어가고자 할 때 3차 존도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가기 전에 에베소에서 장로들을 청합니다. 밀레도에서 그들을 만나죠.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뭐라고 합니까? 들어가지 말라. 예루살렘에 들어가게 되면 정말 이제는 많은 핍박과 환란이 기다리고 있다. 이럴 때 우리 사도바울이 굉장히 유명한 말을 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0장 22절부터 24절까지 보시겠습니다. 사도행전 20장 22절부터 24절 보라. 이제 나는 심령의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심령의 매임을 받았다는 것은 이것은 내가 원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친히 나를 이끄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안 갈 수가 없다는 거예요. 반드시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났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란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는 예언하는 사람들까지 와서 우리 사도바울이 이렇게 결박당할 거다. 많은 환란을 당할 거다라는 부분들을 선지자들이 와서 얘기를 해줍니다. 그런데 24절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하면 나의 생명을 조금 더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하면 나의 생명을 조금 더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그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마치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준비를 하고 있는 것처럼 오늘 사도바울은 그러한 각오로 예루살렘에 들어가겠다라는 것입니다. 나의 생명을 조금 더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어떻게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그것은 부활을 확신하기 때문에. 그것은 영생을 믿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서 준비하신 초소. 하나님 나라를 믿기 때문에 내 생명이 조금 더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이런 마음을 함께 가질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로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갔다라고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21절부터 24절까지 보시겠습니다. 그 후에 내가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이르렀으나 유대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들이 나를 얼굴로 알지 못하고 다만 우리를 핍박하던 자가 전에 잔해하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 다음을 듣고 나로 말미암아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니라. 수리아와 길리기아는 어떤 곳이냐면 바로 사도바울의 고향 지방입니다. 길리기아 지방에 다소에서 났다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까 우리 사도행전 9장이 보게 되면 그 다소로 보내니라. 가이사로 가서 다소로 보낸 이유가 사도바울의 고향이기 때문에 잠깐 거기에 가있으라는 의미로 고향으로 보낸 것입니다. 사도행전 21장 39절을 보시겠습니다. 바울이 가로대 나는 유대인이라. 소읍이 아닌 작은읍이 아니라 작은 지역이 아니라 길리기아 다소성의 시민이니 청컨대 백성에게 말하기를 허락하라. 길리기아 지방의 다소성의 시민이다. 그래서 다소 사람임을 분명히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22장 3절 보시겠습니다. 22장 3절.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낳았고 이 성에서 자라. 이 성에서 자랐다는 것입니다. 청년 시절을 여기서 지났다는 거죠. 그리고 가말리엘의 문화에서 우리 소상들의 율법에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히 하는 자라. 심지어는 거기서 가말리엘의 문화에서 교육까지 받은 사람이다. 굉장히 유명한 납비 중에 하나의 문화에서 교육까지 받았던 사람이다. 그러니까 자기의 어린이 지절을 다 거기서 보낸 것입니다. 그럼 거기에 누가 있을까요? 가족이 있을 테고 친척들이 있을 테고 이웃들이 있을 테고 친구들이 있을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제일 보금 전파할 때 제일 쉬운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제일 꺼리는 존재들이에요. 그렇지 않습니까? 이 보금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누구한테 가야 됩니까? 가족들한테 가야 되는 거예요. 친구들한테 가야 되는 것입니다. 친척들한테 가야 되는 거예요. 이웃들한테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제 어릴 때 전부 다 우려랑 했을 때 다 했던 사람 아니야. 우리 목장들도 그래서 태어난 곳에는 출생제는 잘 안 보냅니다. 제가 예전에 3개를 이렇게 부임해서 갔더니 3개는 제가 출생한 곳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고향입니다. 그러니까 아버지 친구분들이 계시잖아요. 그러니까 저를 딱 보더니 야, 네가 누구 아들이냐? 하면서 그렇게 하시더라고요. 제가 청주를 가면 어떨까요? 청주에서 제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군대까지 거기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다 저를 알겠죠. 어릴 때. 잘해는 것도 있겠지만 부족한 부분도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것도 다 기억하고 있을 테고. 그래서 그런 사람들한테 더 복음 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이 복음이 너무나 귀한 거예요. 생명을 구하는 이 귀한 복음을 낮에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그래도 전해야 되겠다. 그래서 나중에 수리아와 길리에게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어떻게 합니까? 다시 우리 갈라데서 1장 22절 보겠습니다. 23절. 다만 우리를 핍박하던 자가 우리를 핍박하던 자가 전에 잔해하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 다음을 듣고 나로 말미야마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도 바울을 통해서 수리아와 길리가 지방에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생기겠고 또 그로 말미야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말세가 되면 될수록 이제는 그 구원의 날이 점차 점차 이렇게 가까워 오게 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지막 어느 시점에 이르게 되면 이제는 회개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더럽고 거룩한 사람 그대로 거룩하게 하고 의리를 행하는 선 그대로 의롭게 하라. 때가 가까우니라. 그래서 그 날이 오기 전에 우리는 사도 바울처럼 담대하게 이 귀한 생명의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그런 담대함과 용기를 가져야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사도 바울은 가장 기본적으로 본인의 간증의 내용이 다 복음 전파와 관계된 내용의 간증입니다. 우리도 이 세상 살아가는 가운데에서 이제는 가장 귀한 은혜를 우리가 선물로 받았습니다. 나만 누릴 것이 아니라 이 생명의 복음을 전부 내 생명보다 귀하게 여기는 가운데에서 나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는 마지막 이 기회를 통해서 전할 수 있는 우리 성대님들 다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님으로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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